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38화 (38/200)

제38화.

아까부터 가게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메뉴판만 한참을 쳐다보고 있던 인우 이모부가 가까이 다가왔다.

인우의 이모부는 붉어진 눈시울로 간신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작긴 해도 형님 가게에 다시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에요.”

“자, 우리 이런 감격스러운 날 한잔해야지. 어디 좋은 곳에 가자. 내가 멋지게 쏠 테니.”

다시 번화한 연남동 골목으로 다 같이 넘어와 식사와 술을 함께할만한 곳을 찾고 있던 인우 일행의 눈에 크고 화려한 간판이 하나 들어왔다.

[만가복].

요리경연대회에서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김원상이 맡은 곳이자, 아빠 친구 김형식이 회장으로 있는 바로 그곳.

골목 끝으로 큰 건물 1, 2층을 다 쓰고 있는 [만가복]이 유독 거대한 성처럼 보였다.

아직 6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로 홀이 꽉 차 있었다.

골목을 지나가던 인우 이모가 일행을 멈춰 세우고 한참을 쳐다봤다.

“우리 인우도 이런 근사한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데...이곳이 너랑 결승전 붙었던 그 사람이 하는 곳이지?”

“네, 아버지 친구분이 회장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름 많이 들어서 알아요.”

“김형식 회장?”

“이모부도 아세요?”

인우 이모부의 표정이 잠시 어둡게 변했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않아. 형님하고 술마실 때 이름만 들어봤지.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인우 이모부가 다시 작게 말을 이었다.

“형님 장례식에도 왔었고.”

“안 그래도 결승전 끝나고 여기 맡은 김원상 씨와도 잠시 얘기 나눴어요. 회장님께도 언제 인사드리러 가야죠.”

“가까운 곳에서 네가 가게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면 글쎄...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이모부의 말에 이모가 바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여기 골목에 중식당이 몇 개인데? 인우 실력이 워낙 뛰어나 긴장은 되겠지만, 서로 경쟁하다 보면 발전도 있을 것이고. 신경 쓰지 마.”

인우 이모가 오픈 앞두고 괜한 소리 한다고 이모부를 흘겨봤다.

실실 눈치를 보던 이모부가 큰 소리로 웃으며 이모의 등을 밀어 앞으로 향했다.

인우는 한참 식당 간판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만가복] 나의 첫 도전 상대가 되겠군!’

먼저 가는 일행을 따라 곧바로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였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 보이는 앳된 얼굴의 여자가 [만가복]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만가복] 홀 매니저 오승연이 문을 열고 나왔다.

“죄송하지만,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문자 보냈잖아요? 확인 안 하셨어요?”

“봤어요. 그래도 직접 듣고 싶어서요.”

“뭐를요?”

“내가 왜 탈락했는지 그 이유 말이에요.”

여자는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 원한다면 말씀드리죠. 우린 외국 손님도 많이 찾고 해서 기본으로 영어는 돼야 가능해요. 아시겠어요?”

오승연이 더 할 얘기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를 위아래로 쳐다봤다.

여자는 조금 전 기세가 약간 꺾인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만가복] 간판을 노려봤다.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짜장면집 직원 뽑으면서 외국어 실력까지 요구해요? 일만 잘하면 되지.”

“그 일에 언어능력도 포함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곳보다 페이도 높고요.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오승연 홀 매니저가 조금 전 나왔던 문으로 다시 사라지자 여자는 엄한 바닥만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저기….”

인우가 다가가 말을 걸려 하자 화들짝 놀란 여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악! 깜짝이야.”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제가 아직 명함이 없는데, 저쪽 시장 입구에 [서풍 TWO]라는 중식집이 토요일에 오픈합니다.”

“그래서 뭐요?”

여자는 별 미친놈이 하는 표정으로 인우를 쳐다봤다.

인우는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자신의 핸드폰 번호와 [서풍 TWO] 라는 가게 이름을 적어 건넸다.

“혹시 일할 생각 있으면 토요일에 오픈하니까 아무 때나 한번 들러요.”

“됐어요. 별꼴이야.”

여자는 좀 전보다 더 거세게 바닥을 발로 차고는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우린 일만 잘하면 됩니다. 영어 실력 따위 필요 없어요.”

여자의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더 남긴 인우도 멀찍이 떨어진 일행을 향해 뛰어갔다.

여자는 건네받은 종이를 구겨 버리려 쓰레기통을 찾다 주머니에 쑤셔놓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 * *

3월 2일 토요일 [서풍TWO]의 오픈 날.

깨끗하게 잘 다려진 까만 셰프복을 입은 인우의 표정은 많이 상기되어 보였다.

인우 엄마와 이모, 이모부까지 아침 일찍부터 와서 오픈 준비를 도왔다.

작은 가게가 식구들로 이미 꽉 찬 느낌이었다.

“인우는 요리하느라 정신없으니까 홀은 네가 다 맡아서 해줘야 해, 알아듣지?”

인우 이모는 카운터를 맡기로 한 딸아이 지영에게 신신당부했다.

긴 웨이브 머리를 깡충 묶고 흰 블라우스에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은 지영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말을 했다.

“엄마, 한 번만 더 말하면 백번이다. 내가 어디 가서 손해 보고 오는 거 봤어? 걱정 좀 그만하셔.”

인우 이모는 큰 소리로 웃으며 다시 인우 엄마 곁으로 걸어갔다.

인우는 오전 내내 고기 손질부터 각종 채소와 해물 손질을 완벽히 끝내 놓고는 잠시 부엌에서 나왔다.

여전히 남편 가게에 있던 메뉴판만 쳐다보고 있는 인우 엄마를 보고는 인우 이모가 말을 건넸다.

“우리 인우 셰프복이 진짜 잘 어울리는데, 인물은 형부보다 우리 인우가 훨씬 낫지. 안 그래 언니?”

인우 엄마 이지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치? 그러니까 언니 이런 날 좀 웃어. 그래야 손님도 많이 오고 그러지.”

인우 이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

카운터에 서 있던 지영이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첫 손님을 맞았다.

첫 주문이 들어오자 부엌으로 다시 들어온 인우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요리 준비를 했다.

“사부, 드디어 내 가게에서 첫 주문이야, 우리 잘해보자고.”

-나는 항상 완벽해, 너만 잘하면 되는 거지.

“알았다고! 잘난 척은.”

인우는 피식 웃고는 바로 냉장고에서 소금, 후추, 생강즙 등에 재어 소분해 놓은 돼지고기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양파와 적채, 당근과 사과를 꺼내 도마 위에 올리고 중식도를 들었다.

아빠의 레시피대로 재료를 손질해 놓고는 튀김 웍에 고기를 바싹하게 튀기고, 다른 웍에 소스를 만들었다.

-소스에 불린 목이버섯 넣고 당근, 죽순 먼저 넣어.

“음, 지금 벌써 넣었지, 이제 양파랑 적채, 사과 넣을 거고.”

-뭐야? 그렇게 잘하면 재미없지. 내가 너 혼내는 재미로 사는데... 경연대회를 괜히 나갔어. 그거 준비하느라 너무 많은 걸 오픈해버렸다고.

“그래서 후회해?”

-이게 천천히 하나씩 우려먹었어야 했는데... 그 상금에 눈이 멀어서. 아, 맞다. 상금?

“시끄럽고. 지금은 요리에 집중하자고.”

-넌 뭔가 네가 불리하다 싶으면 시끄럽대? 난 항상 무겁고 조용한 남자인데.

인우는 살짝 웃어 보이고는 소스 위에 잘 튀겨진 고기를 넣어 재빨리 볶았다.

완성된 탕수육에 무순을 올려놓고 벨을 눌렀다.

지영이 바로 음식을 쟁반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주문하신 탕수육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가 덜어주는 탕수육을 한 김 식히고는 바로 입에 넣었다.

식사 테이블과 떨어진 곳에서 각자 자연스럽게 일하는 척하고 있던 인우 이모와 이모부가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올 대사에 온갖 신경을 쏟고 있는 듯했다.

“아빠, 빨리 먹어봐. 이거 너무너무 맛있어.”

“앗싸, 흡.”

테이블을 쳐다보고 있던 인우 이모부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나자 인우 이모가 강제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말을 했다.

“내가 못 살아, 식사하는 사람 불편하게 왜 이렇게 쳐다보고 그래?”

인우 이모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눈은 웃고 있었다.

이어서 40대로 보이는 남자 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저 혹시 여기가 몇 년 전 그 [서풍]인가요? 중화요리 고수 서인우 씨가 하는 거 맞아요?”

짜장면을 완성해 홀을 보고 있던 인우가 주방에서 나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그 [서풍] 맛이 나는지 오늘 평가 바랍니다. 맛있게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얼굴 보니 맞네, 맞아.”

두 남자 손님은 마치 소풍 가기 전날 초등학생처럼 들뜬 표정으로 메뉴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그럼 당연히 양장피를 먹어봐야지.”

“그렇지, 그리고 짬뽕하고.”

인우는 바로 주방으로 들어와 요리를 준비했다.

“사부, 드디어 예전 아빠 손님에게 추억을 선물해 줄 때가 왔어.”

-아, 정말 옛날 생각난다. 자 한번 신나게 달려볼까?

중식도를 들고 있는 인우의 손은 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신들린 듯한 칼질이 끝나고는 바로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명심해! 지난번 눈물 콧물. 경연대회에서 선보인 그 맛을 정확히 내보라고.

“알았어, 사부. 나 한번 해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 내가 또 천부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어 어!”

인우의 손에서 중식도가 자꾸 꿈틀거렸다.

-너 헛소리하면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알았어, 요리에만 집중하자고.”

인우는 차가운 재료와 따뜻한 재료를 늘 하던 대로 가지런히 놓고 양장피 면을 올려서 각자 준비된 소스를 뿌려 요리를 완성했다.

벨을 누르지 않고 직접 홀로 나온 인우는 기대에 찬 손님의 눈을 바라보며 그 앞에서 직접 능숙한 솜씨로 섞어주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예전 [서풍]은 이렇게 사장님이 직접 재빠르게 섞어주셨지.”“맛있게 드세요.”

인우가 주방을 향해 몇 걸음 가지 않아서 바로 격앙된 두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두 남자 손님은 서로 눈을 바라보고 있다 흥분하며 말을 했다.

“아니, 이게 얼마 만이야? 다시는 이 맛을 못 볼 줄 알았는데...”

그대로 주방을 향해 걸어가는 인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숨죽이고 손님의 반응을 살피고 있던 이모와 이모부는 둘이 서로 손을 맞잡고 글썽이는 눈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카운터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영이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와 거의 복화술 수준으로 말했다.

“엄마, 아빠! 내일부터는 절대 가게 나오지 마. 가게도 좁고 창피해서 일을 못 하겠어.”

“우리가 너무 감동해서 그래. 얼마나 기쁜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다.”

인우 이모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지영에게 대답했다.

“내일부터는 내가 중계방송해 줄 테니 가게는 출입 금지. 알았어요?”

지영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인우 이모는 입을 씰룩거리고 서 있었다.

주방에서 고개를 내빼고 바라본 인우의 눈에 인우 엄마 이지희가 아무 말 없이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때였다.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던 인우 엄마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드리웠다.

엄마의 행복한 미소를 본 게 얼마 만일까?

인우는 이 모든 광경이 꿈만 같았다.

“사부!”

-왜? 갑자기 그렇게 달콤하게 부르기 있기 없기?

“내가 이말 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뭔데?

“사부! 사랑해.”

-나도 이말 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무슨 말?”

-나 칼 들었다!

인우는 하마터면 웃음소리가 튀어나올 뻔해서 급히 입을 막고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우리 멋진 파트너가 될 것 같아. 내가 평생 사부로 모실게.”

중식도가 또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내 노후의 거처는 내가 결정한다!

“칼자루는 내가 잡고 있는데?”

-아! 참을 수 없는 이 존재의 가벼움이여.

정신없이 지나간 [서풍TWO]의 첫날 밤, 좁은 가게에 복작거리던 이모네 식구들과 엄마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오롯이 혼자가 된 시간.

인우는 희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이며 다시 가게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순간 가게 문이 열리며 준형이 모습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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