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10, 10, 10,10
“와우, 네 명의 심사위원 모두 서인우 참가자의 요리에 만점을 줬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건 누구 심사평을 들어봐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카메라가 서인우를 가까이서 찍어댔다.
-내가 그랬지? 우승 한 번 할 거라고.
‘사부, 저 숫자 보여? 내가 드디어 마영준 심사위원한테도 만점을 받아냈어.’
-그놈도 요리사 아니냐? 아무리 억지를 부려보려고 해도 오늘 네가 내놓은 요리를 보고 딴죽걸기는 힘들지. 그래도 마지막에 양심을 되찾았나 보네.
인우는 심사위원 전원에게 만점을 받은 사실도 기뻤지만, 지금까지 낮은 점수에 혹평만 내놓던 마영준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진심으로 좋았다.
“이전까지 서인우 참가자에게 계속 낮은 점수를 줘왔던 마영준 심사위원의 평을 안 들어볼 수 없겠죠?”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전민규의 멘트에 인우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마영준 또한 전과 달리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항상 뭔가에 쫓기듯 불안한 눈빛을 보였었는데, 방송이 끝나가는 지금 그의 모습은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실 오늘도 서인우 참가자의 요리에 어떤 흠이라도 보이면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었습니다. 저도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러운, 아니 샘이 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맞아요. 실력도 인물도 최고예요.”
갑자기 시청자 심사위원석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스튜디오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러니 샘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단점을 찾지 못하셨다는 말이군요?”
“네, 솔직히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인우 참가자는 아버지를 대신해 [서풍]의 이름을 이어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영준이 처음으로 서인우를 지긋이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인우는 그가 방금 해준 말이 가슴속 깊이 와닿아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추스르며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오늘 서인우 참가자와 김원상 참가자 모두 이미 실력은 어디 가도 뒤지지 않습니다. 둘 중 단 한 사람에게만 우승이 쥐어지고, 최고 고수라는 명칭이 붙을 뿐입니다. 두 분 다 훌륭했습니다.”
유경동 심사위원이 말하는 사이사이 가슴이 벅찬 듯 천천히 또박또박 마지막 심사평을 내놓았다.
유경동을 시작으로 시청자 심사위원단 전원과 스튜디오의 모든 스태프까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지금 시청자 문자 투표와 일일 심사위원단 점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문 심사위원단들의 점수를 계산한 결과가 제 핸드폰으로 들어왔습니다.”
몇몇은 이미 결과를 알겠다는 듯이 서인우를 쳐다봤다.
그가 전문 심사위원단들로부터 올 만점을 받으면서 이미 계산하지 않아도 1위는 확연히 드러난 상태였다.
김원상은 아직 초조한 듯 맞잡은 손이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 예선전부터 치열하게 준비하고 경쟁한 끝에 남은 두 참가자, 이 중 한 사람만이 최종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럼 지금 그 이름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튜디오 안에 둥둥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스포트라이트 또한 김원상과 서인우 위에서 반짝반짝 불을 비추고 있었다.
“이 방송을 사랑해주신 모든 시청자분과 여기 심사위원단들이 뽑은 결승전 최종 우승자는 바로 2번 서인우 참가자입니다. 우승을 차지한 서인우씨에게는 상금 1억 원과 SUV 자동차가 주어집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두 참가자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더 강한 빛으로 인우를 향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우레같은 박수 소리 또한 터져 나왔다.
믿기지 않았다.
단지 이 방송을 통해 아빠를 기억해줬으면, [서풍]을 이어갈 만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으면 그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튜디오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가 없었으면 사람들 귀에 들릴 만큼 심장이 뛰어대는 것 같았다.
“두 분 다 무대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전민규가 무대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며 두 참가자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잠시 나갔다 올게.’
-그, 그래...
‘사부 울어?’
-울긴...그래. 운다. 정말 감동의 도가니탕이다.
‘아, 또 아빠 말투.’
-시끄럽고, 얼른 나갔다 와.
전민규를 가운데 두고 서인우가 왼쪽으로 그리고 김원상이 오른쪽으로 섰다.
그 뒤로 유경동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전부 나와 무대가 꽉 찬 느낌이었다.
“먼저 아쉽게 오늘 우승을 놓친 김원상 참가자와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김원상은 아쉽고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얼굴에 드러냈다.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데 저는 오늘 결승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후회가 남습니다.”
“네? 어떤 후회가 남으시는 건가요?”
“솔직히 팬트리에 재료를 가지러 가면서 사천탕면과 만두 중 뭘 만들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주자는 욕심이 후회로 남습니다.”
김원상은 혹평을 들려준 박정원을 살짝 돌아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을 교훈 삼아 일에는 욕심을 내도 요리에는 욕심내지 말아야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준 이 프로그램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말하는 김원상의 눈빛엔 여전히 화가 난 듯 아쉬움이 역력했다.
“네, 긴 여정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이어서 오늘 우승을 차지한 서인우 참가자와 인터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서인우가 카메라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뒤돌아 심사위원들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결승전까지 오기 전에 이미 이 대회에 참가한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제 요리를 통해 [서풍]을 기억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기 서 있는 두 참가자는 공통점이 있네요. 둘 다 요리실력이 집안 내력인가 봅니다. 유경동 심사위원님. 김원상 참가자는 [만가복], 서인우 참가자는 [서풍], 규모는 다르지만, 중식계의 획을 그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전민규가 유경동의 설명을 기다린다는 듯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그렇습니다. [만가복]은 이미 여러 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을 만큼 인정을 받은 곳이고, [서풍]은 죽은 서동수 셰프가 혼자 운영했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맛에서나 인기에서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할 수 있지요.”
“이걸 우연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부모 대에 이어서 그 아들이 맛과 전통을 이어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전민규가 전문 심사위원단을 돌아보며 누구든 빨리 대답을 내놓으라는 듯한 눈빛을 쏘아댔다.
나영희 심사위원이 그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배우고 따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서인우 참가자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아마 이 방송을 계속해서 지켜봤던 시청자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대회 중간에 서인우의 요리에서 [서풍]을 느꼈던 사람인 만큼 그 감동을 솔직히 말해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두 분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오늘 방송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먼저...아, 김원상 참가자 먼저 말씀해 주시죠.”
김원상은 꾹 다문 입술이 지금의 심정을 보여주듯 비장한 눈빛을 더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대회에 최종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멀리했던 요리에 다시 빠질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감정을 오래 유지하며 다시 한번 요리에 인생을 걸어보려 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네, 멋진 각오를 보여준 김원상 참가자에게 큰 박수를 부탁합니다.”
전민규의 우렁찬 멘트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힘찬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인우 또한 진심으로 그의 요리 인생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방송 중이라 말을 건네지는 못해도 누구보다 더 크게 손뼉을 쳐주었다.
김원상은 그런 그의 마음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눈길도 주지 않고 뒤돌아 심사위원들에게만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는 중화요리 고수가 되신 서인우 참가자의 계획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획?
인우는 마구 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늘 저에게 최종 우승을 안겨주신 많은 시청자분과 여기 심사위원들의 응원에 힘입어 [서풍]을 새롭게 열 것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더 노력해서 다시금 [서풍]의 바람을 일으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여기저기서 고함과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응원받고 위로받는 것 같아 더욱 가슴이 뛰었다.
“정말 멋진 각오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만가복]과 [서풍]에서 손님으로 만날 수 있겠네요. 두 분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스튜디오에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울리던 음악 소리가 작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는 서인우 참가자의 최종 우승으로 막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많은 시청자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저는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전민규의 인사를 끝으로 음악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시청자 심사위원단과 전문 심사위원단 모두 서로 악수를 권하며 인사를 나눴다.
스튜디오가 점점 어두워지며 그렇게 대망의 요리경연대회는 막을 내렸다.
카메라 감독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방송이 완전히 끝났는데도 스튜디오는 여전히 시끌시끌했다.
여기저기서 기념사진 촬영을 요구해 서인우는 마치 연예인이 된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사진 촬영 요구에 응하고 나서는 가방을 챙기고 있던 김원상에게 다가갔다.
“오늘 정말 멋진 요리였습니다. 그동안 같이 요리하면서 대화는 처음 나눠보네요.”
아직 뭔가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한 김원상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죠. 오늘 요리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우승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아빠한테 회장님 성함을 몇 번 들었었습니다. 이렇게 같이 방송에 출연하는 인연이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다음에 회장님께 인사한 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우의 입에서 자신의 아빠 얘기가 나오자 얼굴색이 더 어두워진 김원상이 시선을 떨구며 정리한 가방과 짐을 손에 들었다.
“그러세요.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김원상의 차가운 반응에 살짝 당황한 인우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김원상 또한 고개를 까딱하고는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요리할 때 알아보긴 했지만, 인성이 영 아니네. 오늘 우승 못 했다고 저러는 거냐? 사내자식이 쪼잔하게.
‘잘은 모르겠지만, 우승보다는 나한테 별로 감정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참…. 부러우면 지는 건데. 아니지, 져서 부러운 건가?
중식도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은 했지만, 조금 전 김원상이 보여준 서늘하리만큼 차가운 눈빛은 영 기분이 좋지 않게 느껴졌다.
“오늘 정말 멋진 요리였습니다. [서풍]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시작할 건가?”
박정원 심사위원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제 계획도 세우고 알아보려 합니다.”
“한가지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방송 끝났으니 말 편하게 해도 되겠지?”
“그럼요.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더 좋습니다.”
박정원이 피식 웃어 보이며 인우의 어깨를 지긋이 두드렸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줬던 요리에 대한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서풍]을 일으키겠다는 각오가 변하지 않길 바라네.”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라면 안 하셔도 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좋아. 다음에 밥 먹으러 가지.”
“네, 감사합니다. 미리 예약받았으니 꼭 오십시오.”
인우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중간 다른 심사위원들과 인사를 하는 김원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박정원이 그를 따라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김원상 씨. 잠시 얘기 좀 합시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김원상의 얼굴에 순간 알 수 없는 분노가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