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인우는 먼저 작은 냄비에 닭 육수를 내는 동안 전가복을 준비했다.
전복, 새우, 관자를 비롯한 해물을 정확하고 빠르게 썰어 접시에 준비해 두고, 청경채와 송이버섯을 비롯한 각종 채소를 씻고 손질했다.
“지금 서인우씨는 해물과 채소를 손질하고 있는데요, 내가 먹어 본 해물은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전민규의 말에 유경동 심사위원이 웃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서인우 참가자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주고 싶은가 봅니다.”
“복이라고요? 아, 그렇다면 전가복 요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지금 재료로. 봐서는 그런 것 같은데…. 끝까지 봐야 알겠죠?”
김원상은 볼에 밀가루를 가득 넣고는 손반죽을 시작했다.
며칠 전 연습했던 서인우의 레시피를 그대로 본따 탱글탱글하고 빨리 퍼지지 않는 반죽을 만들 생각이었다.
“김원상 참가자는 밀가루로 반죽을 하고 있습니다. 준준결승전에서 보여준 반죽 솜씨로 뭔가 다른 요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마영준 심사위원이 답했다.
“저 반죽이 면 요리가 될 수도 있고, 만두를 만드는 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난번에 보셨지만, 요리가 담기는 먹을 수 있는 튀김 그릇이 될 수도 있고요.”
“정말 중식의 세계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다음에 꼭 시간 내서 요리를 배워보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유경동 심사위원이 장난기 있는 얼굴을 하며 전민규를 바라봤다.
“전민규 씨가 시간만 낸다면 내가 얼마든지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요리 가르쳐 줄 때는 좀 과격해져서, 등짝 스매싱이 자주 나오기는 하는데..그게 괜찮다면 말이죠.”
“네? 등짝 스매싱이요? 초등학교 때 학원 간다고 나갔다가 몰래 피씨방으로 빠져 엄마한테 맞아본 이후 정말 오랜만일 것 같은데요. 아, 갑자기 잊고 있던 다른 스케쥴이 막 생각났네요.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스튜디오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사회자는 깐족깐족 많이 맞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사회는 제일 잘 봐.’
-그래, 그건 인정. 흠흠, 아쉽지만 다음기회에...
중식도가 또 전민규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무대 중앙에 서 있는 그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으로 착각이 들 만큼 정확한 성대모사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사부 때문에 소리 내서 웃을 뻔했잖아.’
-잠시 긴장 풀라고. 전가복 빨리 완성하고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필살기를 선보여야지.
인우는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지런히 썰어놓은 채소들과 해물들을 먼저 익는 순서대로 구분해 놓고는 동시에 필살기를 요리하기 위해 당근을 집어 도마 위에 올렸다.
단단한 당근을 종잇장처럼 얇게 편으로 썬 후 다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채를 썰었다.
김원상도 부지런히 해물과 채소를 손질해 놓고 연근 가루를 넣어 만들어 놓은 반죽을 납작하게 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결승전을 대비해 연습했던 사천탕면을 선보일지 만두를 선보일지 잠시 고민하던 김원상은 반죽을 더 얇게 밀기 시작했다.
시원한 사천탕 국물에 만두를 작게 만들어 두 가지 음식을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할 작정이었다.
속이 뻥 뚫리게 시원한 국물에 육즙이 폭발하는 만두를 함께 먹는다면 그야말로 한꺼번에 두 가지를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이 서자 벌써 우승이라도 차지한 듯, 한껏 들뜬 김원상이 요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얇게 만두피를 만들어 서로 붙지 않게 밀가루를 살짝 뿌려 젖은 면 보자기로 덮어놓았다.
시원한 사천탕을 만들기 위해 준비해 둔 배추와 양파, 죽순, 버섯, 청경채 등 채소를 비롯해 오징어와 새우, 소라를 각각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웍에 살짝 기름을 넣고 채 썬 마늘, 파, 청양고추를 넣어 센 불에 볶아주었다.
그리고는 청주와 간장, 굴소스를 조금 넣고 바로 썰어놓은 채소들을 다시 볶고, 마지막으로 각종 해물을 넣어 볶아낸 후 소금으로 부족한 간을 했다.
매콤하고 시원한 향이 서서히 퍼져가는 것 같았다.
“지금 아주 매콤한 향이 스튜디오에 진동하는데요, 해물인가요? 시원한 향이 같이 올라옵니다.”
“김원상 참가자가 시원한 탕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업장에 따라 사천탕면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백 짬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영희 심사위원의 보충 설명이었다.
“백 짬뽕이라면 이 경연대회 시작할 때 서인우 참가자가 보여줬던 그걸 말하는 겁니까?”
“지금 김원상 참가자는 해물을 많이 넣고 매운 향이 더 많이 올라오는 것으로 봐서는 사천탕면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술 마신 후 해장으로 좋을 것 같은데요?”
“어떤 해물이 많이 쓰였냐에 따라 굴짬뽕이나 낙지 짬뽕, 문어 짬뽕 등 종류도 많이 있어요. 홍탕이냐 백탕이냐에 따라 또 달라지기도 합니다.”
“갈수록 맛있는 메뉴는 더 많아지니 저와 같은 소비자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결승전을 치르고 있는 두 참가자의 음식도 중화 요리계의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민규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김원상과 서인우의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저, 저건 뭘 하는 거죠?”
서인우가 연두부를 얇게 편으로 썰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민규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너무 부드러워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 연두부를 생선회 뜨듯이 얇게 썰고 있습니다. 저게 가능한건지...아니, 지금 그걸 다시 펼쳐 채를 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전민규의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는 올라간 것 같았다.
전문 심사위원들 뿐 아니라 시청자 심사위원단 모두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인우의 요리를 보기 위해 목을 기다랗게 빼고 움직이고 있었다.
카메라 감독 또한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인우가 중식도를 잡고 연두부를 써는 모든 장면을 담아냈다.
세 개의 화구에 모두 불을 켜고 하나의 웍에는 익는 순서대로 준비해놓은 채소와 해물을 볶고, 다른 웍에는 소스를, 또 세 번째 화구에는 약한 불로 닭 육수를 끓이고 있었다.
“지금 서인우 참가자는 세 개의 요리를 동시에 하는 건가요?”
전민규의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심사위원들 모두 인우의 요리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했다.
분위기가 서인우에게로 넘어가는 듯하자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김원상이 만두소를 위한 부추와 당면을 유난히 더 소리를 크게 내며 다지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숙성된 만두피에 소를 넣고 순식간에 작고 단단한 만두를 만들어 보였다.
“지금 김원상 참가자가 만들고 있는 건 만두죠? 면이 아니라 만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영준 심사위원이 재빨리 시선을 김원상에게 옮기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시원한 국물이 있는 면과 만두, 이렇게 두 가지 요리를 선보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아니,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깜짝 놀라게 해주지. 기대들 하라고.’
김원상이 소리 없이 입꼬리만 살짝 올려 피식 웃어 보였다.
그때였다.
서인우가 닭 육수에 물로 풀어놓은 연두부를 조심스럽게 넣어 웍을 흔들며 살살 펼치고 있었다.
“우와, 저...저게 연두부 맞습니까? 실, 그것도 가는 실 아닙니까? 사람 손으로 저게 가능한 거긴 한 건지...누가 설명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사람 손으로 쉽지는 않지. 이 사부님이니까 가능하지.
‘어때? 성공인 것 같지?’
-그래, 좀 하는데?
유경동 심사위원도 적잖이 놀랐는지 눈이 두 배나 커져 있었다.
“지금 서인우 참가자가 만든 요리는 중식도를 몇 년 이상 수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요리입니다. 중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원쓰도우푸(文思豆腐)라고 하는 요리입니다.”
“원쓰 뭐라고요? 처음 들어보는 요리입니다. 젊은 나이에 저런 기술을 보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시청자 심사위원단 사이에서도 웅성웅성 난리가 났다.
생전 처음 보는 요리에 신기한 듯 고개를 좌우로 저어가며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순간 분위기가 너무 한쪽으로 몰리는 걸 간파한 전민규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갑니다. 지금 김원상 참가자도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것 같은데요.”
해물과 각종 채소가 가득한 매콤하고 시원한 탕에 면대신 만두를 넣어 두 음식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듯 김원상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작고 탱탱한 만두와 시원한 탕의 콜라보라니... 정말 빨리 먹어보고 싶습니다.”
아직 서인우의 요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시청자 심사위원단에서 몇몇이 김원상이 만드는 요리에 관심을 보이며 쳐다봤다.
“시원한 국물도 먹고 싶고, 만두도 먹고 싶을 때 아주 딱인 메뉴인 거 같지 않습니까? 역시 [만가복] 후계자라 뭐가 달라도 다른데요?”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불쑥 말을 걸자, 옆에 앉아서 서인우의 요리를 보고 침을 흘리고 있던 40대 초반의 여자가 힐끗 쳐다봤다.
“글쎄요. 서인우 참가자의 요리가 워낙 눈길을 끌어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네요. 저건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신이 만드는 요리 같지 않아요?”
남자의 얼굴이 순간 슬며시 일그러졌다.
“제법 눈길을 끄는 요리긴 하지만, 그래봤자 두부 아니겠어요? 뭐 딱히 기대되는 맛이 아니라서.”
“난 태어나서 저렇게 가늘고 부드러워 보이는 두부는 처음 봤어요. 저 기다란 손으로 저렇게 섬세한 요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이 한 편의 영화 같네요.”
남자는 안 되겠다 싶은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왼쪽에 앉은 젊은 남자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실전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낫겠죠? 듣자 하니 [만가복] 회장님한테 요리도 직접 배웠다고 하던데?”
“아, 저 김원상 참가자 말씀이죠? 역시 요리하는 솜씨가 뛰어나네요.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가 빨리 저 시원해 보이는 국물을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는 실실 웃어가며 말하는 젊은 남자의 대답에 고개를 심하게 끄덕거리며 만족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대 위에 걸려있는 커다란 시계가 60분이 다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자,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두 참가자는 심사위원단 테이블과 무대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로 요리를 가지고 나와 주세요.”
-최종 간이랑 다 본거지?
‘음, 연습했던 대로 잘 만들었어. 이제 결과는 저 심사위원들에게 달렸지.’
-너무 긴장하지 마. 마지막인데 우승 한 번은 하겠지.
‘마지막이라 더 중요하지. 이 대회 최종 우승인데...난 이 자리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해.’
-그러냐? 난 아닌데. 이게 카메라에 자꾸 나오다 보니까 재미가 붙어서. 이번에 우승해야 또 방송국에 올 일이 생길 것 아니냐?
서인우는 쟁반에 중식도가 알려준 필살기 원쓰도우푸와 전가복을 담아 무대로 향했다.
결승전은 심사위원 수가 몇 배로 늘어 준비해야 하는 양도 훨씬 많았다.
아무리 자신이 있는 음식도 많은 양을 준비하다 보면 정확한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인우는 결승전을 준비하며 계속 많은 양을 만들며 그 맛이나 모양이 달라지지 않도록 꾸준히 신경을 써왔다.
오늘 요리에 후회는 없었다.
잠도 안 자며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다.
지금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선보이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가슴이 벅찼다.
“지금 서인우 참가자는 두 가지 요리를 준비해서 심사위원단 앞에 놓았습니다. 김원상 참가자 또한 두 가지 요리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느낌인데요. 그럼 바로 심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참가자가 요리하는 모습을 전담해서 찍던 카메라 감독이 두 명의 요리를 가까이서 자세히 찍었다.
이미 전광판의 시청자 문자 투표는 정신없이 숫자가 바뀌고 있었다.
각자 작은 접시에 음식을 덜어 시식하던 심사위원들의 눈이 하나같이 튀어나올 듯 커져 있었다.
특히 좀 전에 서인우 요리를 대놓고 깎아내리던 남자가 원쓰도우푸를 한 입 떠서 넣자 눈에 지진이 이는 것처럼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듯 끝에 앉은 다른 사람과 무언의 눈빛을 나누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방송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던 박정원 심사위원이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