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31화 (31/200)

제31화.

영업이 끝난 늦은 시간 텅 빈 홀에 [양자강] 사장 최영만 혼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가게 앞에 차 소리가 들렸다 멈춘 후 드르륵 문이 열렸다.

“전화로 얘기하자니까 왜 자꾸 만나자는 거야?”

“이런…. 옛 친구한테 너무 야박하군.”

“친구는 무슨…. 뭐가 궁금해서 찾아온 건가? 빨리 용건만 말하고 돌아가.”

최영만이 빈 잔에 다시 소주를 채우고는 그대로 마셔버렸다.

“앞에 앉은 사람에게 술 한 잔도 안 권하는군.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용건만 말하고 사라지라고.”

김형식이 빈 잔에 소주를 반쯤 따라 홀짝 마시고는 매서운 눈으로 최영만을 바라봤다.

“그래서 직접 요리하는 걸 보긴 했나?”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봤지만, 그 어떤 특이한 점도 없었어. 자네나 내가 요리하는 것하고 다를 게 없었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자는 뭐라 하던가?”

“자기 아빠가 요리하는 영상을 보며 밤낮으로 연습했다는군. 이건 그냥 타고난 재능인 거야.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김형식이 눈을 치켜뜨고 일어서더니 최영만의 어깨에 손을 올려 세게 힘을 주었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는 날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얼굴이 벌게진 최형만이 김형식을 잠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내가 본 사실 그대로야. 티끌만큼도 속이는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제야 어깨를 거칠게 누르고 있던 손을 뗀 김형식이 가게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선 김형식의 얼굴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새 바뀌어 있었다.

“다음엔 내가 술 한잔 사지. 이제 이런 싸구려 술은 그만 마시라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던 김형식의 시선이 벽에 걸린 사진에 꽂혔다.

“저 사진도 이제 치우고. 죽은 사람 사진은 뭐 하려고 가지고 있나? 재수 없게.”

“뭐? 그냥 죽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고향 친구야. 30년을 넘게 같이한 친구란 말일세.”

김형식이 비릿하게 웃으며 사진 속의 서동수를 다시 한번 더 쳐다보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환한 불빛과 함께 차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다시 주위가 고요해졌다.

커다란 홀에 소주 따르는 소리와 깊은 한숨 소리가 꺼지지 않았다.

* * *

드디어 대망의 결승전이 열리는 금요일 저녁.

인우는 여느 때처럼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항상 인우보다 먼저 와있던 최만수가 없으니 더 어색하고 허전했다.

스튜디오는 준결승 때보다 더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참 리허설을 하는 낯선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그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새로운 스텝들도 보였다.

결승전부터 시청자 심사위원단이 평가한다더니, 아무래도 그들인 것 같았다.

담당 피디 이명훈과 얼굴이 익숙한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소란스러운 곳을 피해 자신이 요리할 조리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인우에게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저 서인우 씨 맞죠?”

“네, 그런데요?”

“제가 방송을 한 회도 빠짐없이 다 봤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젊은 나이에 그런 멋진 요리를 해낼 수 있는지 정말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대회 준비를 하려는 인우에게 그 남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이번 대회 끝나고 나면 가게를 여실 거라고 하셨죠?”

“네. 그럴 겁니다.”

“혹시 나랑 동업해볼 생각 없어요? 서인우 씨 실력이라면 분명히 성공할 것 같은데... 자본은 내가 준비하리다.”

동업?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아빠의 [서풍]을 다시 여는 건 무조건 내 힘으로 할 생각이다.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동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스카우트 하는 방향으로다가...”

“죄송합니다.”

인우는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앞치마를 두르며 조리대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자, 쭈뼛거리던 남자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작은 소리로 한마디 더 했다.

“혹시라도 생각 바뀌면 연락해줘요. 여기 내 전화번호입니다.”

남자는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고는 다시 사람들 대열에 섞여 들어갔다.

-앞으로 저런 사람들 많이 만날 거다. 어떻게든 네 능력을 사려고 난리일 거야.

‘난 동업 생각해 본 적 없어. 게다가 다른 이름의 가게에서 일할 생각도 없고.’

-나야 잘 알지. 하지만, 이 방송을 본 수많은 시청자는 네 솜씨로 돈 벌 궁리만 할 테니까. 내가 몸을 좀 사렸어야 했는데, 너무 능력을 다 보여줬나?

방송 시간이 다가올수록 스튜디오는 더욱 북적거리고 복잡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본 곳에는 김원상이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긴장된 얼굴로 서인우를 슬쩍 쳐다보고는 담당 피디 이명훈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방송 시작까지 10분이 채 남지 않았다.

얼굴이 붉게 변한 담당 피디 이명훈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시청자 심사위원단과 스태프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사회자가 있는 무대를 중심으로 왼쪽 앞으로 시청자 심사위원들을 차례로 앉혔다.

다섯 명씩 두 줄로 앉아 맞은편 조리대가 잘 보이도록 꼼꼼하게 체크를 했다.

분주했던 스튜디오가 차분해지고, 드디어 결승전의 막이 올랐다.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사회자 전민규가 무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 사회를 맡은 전민규입니다.”

시청자 심사위원들의 박수 소리가 더해져 평상시보다 무대가 더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오늘 드디어 대망의 결승전이 펼쳐지는데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결승전 심사를 맡아줄 시청자 심사위원단을 소개합니다.”

전민규의 멘트가 끝나자 카메라가 시청자 심사위원 열 명의 얼굴을 하나씩 천천히 비추며 지나갔다.

“그럼 오늘 결승전을 펼칠 두 명의 참가자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준준결승전과 준결승전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던 김원상 참가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만가복] 김원상입니다. 결승전답게 최고의 요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김원상 참가자의 번호는 1번입니다. 잘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카메라가 김원상의 얼굴과 조리대 앞에 보이는 이름과 번호를 한 번에 쭉 이어서 비춰주었다.

“이에 맞서 멋진 요리를 보여줄 두 번째 서인우 참가자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인우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인우 참가자의 번호는 2번입니다. 역시 잘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전민규의 멘트가 끝나자 조금 전 김원상을 소개했을 때처럼 카메라가 서인우의 얼굴과 이름, 번호를 이어서 비춰주었다.

“이백 명이 넘는 참가자들로 시작한 경연대회가 이제 최종 우승 일인을 가리기 위해 단 두 명의 참가자만 남아있습니다. 오늘 최종 우승하는 사람은 전 국민으로부터 중화요리 고수로 인정받게 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인우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 떨고 있냐?

‘나도 떨리는데….’

-너 컨셉 잘 유지해라. 내가 떠는 컨셉이고 넌 차분하게 결승에 임해야지.

중식도의 농담 섞인 말이 들리자 떨리던 가슴이 진정되며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마지막까지 심사를 위해 수고해주실 네 명의 전문 심사위원을 모시겠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유경동 심사위원을 비롯해 나영희, 박정원, 마영준이 무대를 향해 걸어 나와 인사를 했다.

“결승전 심사를 위해 누가 한 말씀 해주시죠?”

전민규의 말에 준비했다는 듯 유경동 심사위원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오늘 드디어 결승전이 펼쳐집니다. 방송에서 보셨다시피 워낙 실력 있는 참가자들을 물리치고 이 자리에 선 만큼 누가 최종 우승을 차지할지 전혀 예상되지 않습니다.”

유경동이 김원상, 서인우와 눈을 마주치며 바로 말을 이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재료를 준비하는 손길부터 칼과 웍을 다루는 솜씨, 거기에 불을 다루는 솜씨까지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최종 우승자가 될 것입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유경동이 말하는 동안 카메라는 끊임없이 김원상과 서인우를 번갈아 가며 찍었다.

“오늘 있을 결승전 심사 방법을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시청자 문자 투표가 30퍼센트, 여기 계시는 심사위원의 평가가 7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결승전에서 달라진 것은 시청자 심사위원단 열 명의 점수와 네 명의 요리 전문가 점수를 합산해서 점수를 책정하게 된다는 겁니다.”

카메라가 시청자 심사위원단을 비추자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중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서로 흘낏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자 그럼 대망의 결승전 주제는 과연 무엇일지 정말 궁금한데요, 지금 바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민규가 뒤로 돌아 손짓을 하자 검은색 휘장 옆에 말려있던 하얀색 휘장이 샤라락 펼쳐졌다.

[필살기]

“드디어 결승전이 시작됐는데요, 오늘의 주제는 바로 자신만의 필살기입니다.”

뭐?

필살기?

인우는 자기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 눈을 몇 번이나 깜빡거리고는 주제가 적힌 휘장을 다시 쳐다봤다.

‘사부. 이거 뭐야? 사부가 말한 대로 정말 필살기가 결승주제야. 이게 말이 돼?’

-말이 되진 않지. 글자인데….

‘장난하지 말고.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보라고.’

-내가 감이 좋다고 했지? 결승전이니까 당연히 제일 자신 있는 요리를 해보라고 하겠지. 안 그래? 뭐 이 정도로 놀라기는….

인우는 며칠 전 중식도가 전민규 목소리까지 흉내 내며 했던 말을 그대로 듣자 머릿속에 종이 댕댕 울리는 것 같았다.

-별 거 아니라고. 내가 그냥 느낌이 왔어. 대단하지 않냐?

인우는 여전히 넋을 놓고 하얀색 휘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신줄 잡아라. 필살기도 제대로 못 보여주고 탈락하겠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인우는 다시 전민규의 멘트에 집중했다.

“필살기라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선보이라는 뜻인 것 같은데요? 설명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영희 심사위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민규 씨는 여기 유경동 심사위원의 대표 메뉴가 뭔지 아시나요?”

“워낙 많지만, 그래도 유경동 셰프님 하면 불도장이죠.”

“네, 유경동 셰프님 불도장은 몇 대째 대통령들도 반드시 찾는 메뉴죠. 그럼 마영준 심사위원의 필살기는 뭘까요?”

나영희의 이어지는 질문에 전민규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영준 세프님은 퓨전 요리로 유명하시죠. 특히 탕수육 위에 치즈가 듬뿍 올라간 치즈 탕수육이 필살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마영준이 입이 귀에 걸려 웃어 보였다.

“맞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요리사들은 그들만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죠. 자신 있는 요리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요리, 혹은 천하제일의 맛을 낼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입니다.”

“아, 오늘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지금 결승전을 겨루게 되는 두 참가자의 필살기는 저뿐 아니라 모든 시청자분이 꼭 보고 싶어 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서인우는 중식도와 자신의 합작품인 필살기를 선보일 생각이었다.

바로 어제까지 연습한 요리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반면 김원상은 머릿속이 복잡한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어떤 요리를 선보여야 할지 보여주고 싶은 요리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김원상 참가자와 서인우 참가자는 마음의 결정을 하셨습니까?”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바로 팬트리로 가서 재료를 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하나 더 할 수 있다면 뭘 해볼래?

‘무슨 말이야? 두 가지 요리를 준비하라고?’

-연두부탕은 수없이 연습했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그리고 맛이 담백해서 어떤 요리와 먹어도 잘 어울리지.

‘그럼 시청자들에게 복을 준다는 의미로 전가복을 같이 만들어야겠어.’

-뭐 하고 있어? 빨리 재료 챙겨온다. 실시!

인우는 양손 가득 재료를 챙겨 조리대로 돌아왔다.

팬트리에 한참을 서 있던 김원상도 결심한 듯 입을 꾹 닫고는 재료를 챙겨 자리고 돌아갔다.

“두 참가자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오늘따라 재료가 굉장히 화려한데요. 결승전이라 남다른 각오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가 각자 준비해온 재료들을 가까이서 찍어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결승전 요리를 시작합니다. 시간은 똑같이 60분입니다. 그럼 바로 두 분의 필살기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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