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분명 같은 꽃게에 같은 양념 베이스의 깐풍꽃게 요리다.
그런데, 맛이 확연히 달랐다.
서인우의 꽃게살을 베어 문 마영준 심사위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영준 심사위원의 표정이 뭘 의미하는 건지 궁금한데요, 먼저 심사평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영준의 동공에 지진이 이는듯했다.
오늘은 그냥 점수로만 깎을 수는 없다.
어떤 점수를 주든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너무도 완벽한 맛의 밸런스.
단맛, 신맛, 매운맛 중 그 어느 것도 과하지 않게 그야말로 완벽하다는 말 외에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마영준 심사위원님. 심사평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민규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마영준은 마른침을 크게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세 명의 요리는 보시다시피 아주 훌륭합니다. 하지만, 요리 전문가답게 날카로운 평을 해야겠죠?”
“네, 세 명의 참가자 모두 어떤 평가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겁니다.”
“우선 1번 김원상 참가자의 요리는 꽃게를 잘게 잘라 튀긴 후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깐풍소스에 매운맛을 더 부각했습니다.”
“아, 이번에도 역시 맥주 안주로 그만이겠네요.”
김원상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웃어 보였다.
-너랑 같은 요리이지만, 맛은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지. 단순히 매운맛이면 호불호가 있겠지만, 중요한 건 전체적인 맛의 밸런스라고 할 수 있지.
‘맞아. 내가 한 요리는 약간의 매운맛이 추가되어 칼칼한 정도로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요리고.’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리라는 거지. 이 맛의 밸런스라는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럼 마지막으로 맛을 본 서인우 참가자의 요리와 같은 맛인가요? 보기에는 거의 똑같은 모양인데요?”
“아닙니다. 둘 다 깐풍꽃게를 준비했지만, 그 맛은 확연히 다릅니다. 서인우 참가자의 요리는 그 맛이...”
마영준이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 맛의 조화로움이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깐풍소스는 매장마다 너무 신맛이 강하거나 매운맛이 강한데, 서인우 참가자의 깐풍꽃게는 그야말로 조화로운 맛이라는 표현 외에는 덧붙일 수 있는 말을 못 찾겠네요.”
나영희 심사위원이 재빠르게 심사평을 늘어놓자, 마영준 심사위원이 어색한 웃음을 내보였다.
“네, 김원상 참가자의 깐풍꽃게는 매운맛이 강해 어른들의 메뉴라고 한다면, 서인우 참가자의 깐풍꽃게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기는 합니다. 다만….”
마영준이 잠시 말을 멈추자, 담당 피디 이명훈을 비롯한 다른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다만 도드라진 맛이 없어서 개성이 없는 맛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 더는 못 참겠다. 말리지 마, 붙잡지 말라고.
‘나 안 잡았는데?’
-그, 그랬냐?
중식도와 속으로 가볍게 얘기를 나누면서도 인우의 머릿속은 뿜어져 나오는 매연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뿌옇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저 정도면 분명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간 거다.
마영준과 개인적인 접점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경쟁하는 다른 참가자와 마영준 사이에 뭔가 접점이 있는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인우는 그래도 이해 안 되는 게 있었다.
지난번 이정복 심사위원과의 루머도 그렇고 준준결승, 그리고 오늘까지 왜 자신을 둘러싸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생각에 잠겨 있던 인우는 전민규의 이어지는 멘트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집중했다.
“지금 마영준 심사위원과 나영희 심사위원이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었는데요, 그럼 이번에는 유경동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번 김원상 참가자의 깐풍꽃게는 손질도 잘되어 비린 맛도 전혀 없고, 잘 튀겨져 바삭한 꽃게 맛도 일품입니다. 단, 지난번부터 매운맛에 좀 치중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 깐풍소스보다 매운맛을 극대화한 요리로 호불호가 있을 듯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3번 서인우 참가자의 요리와 비교를 해주신다면요?”
“3번 서인우 참가자 역시 꽃게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꽃게는 잘못 자르면 단면이 날카로워져 입안에 상처가 생길 수 있는데, 아주 깔끔하게 잘려 바삭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살려주었습니다. 역시 비린 맛은 전혀 없었고요. 차이는 소스인데...”
“네, 서인우 참가자의 소스는 어땠습니까?”
“나영희 심사위원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분들마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 깐풍소스의 신맛, 단맛, 매운맛을 아주 적절하게 잘 배합했습니다. 훌륭한 맛이었습니다.”
-저 심사위원, 아주 예리해. 내가 꽃게를 자를 때 신경 쓰는 단면까지 정확히 지적했어. 언제 술 한잔하며 긴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
‘대한민국 중화 요리계의 역사를 쓰신 분이야. 그 경륜은 무시 못 하지.’
-그렇지, 그러니 나한테 잘하라고.
‘갑자기 왜 사부한테 잘하라는 얘기야?’
-내가 대한민국 중화 요리계의 혁명을 일으킨 1인 서동수에 이어 이번에 그 주니어까지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지. 이건 나라에서 인정해줘야 하는데, 내가 워낙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서.
‘한 번 나서보지 왜? 중화 요리계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것 같은데? 아닌가? 비밀을 밝힌다고 어디 끌려가서 조각조각 분해될 수도 있겠다.’
-너 무슨 말을 해도...비밀 유지 확실히 해라. 갑자기 나사 이런 곳에서 나 잡아가지 않게.
“2번 박지훈 참가자의 요리는 꽃게를 먹을 때의 불편함을 없애주기 위해 밀대로 살을 발라내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기와 꽃게살이 섞여 꽃게의 풍부한 향과 감칠맛이 사라진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유경동 심사위원의 이어진 평가였다.
“아, 그렇군요. 간편해서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요.”
박정원 심사위원이 평을 덧붙였다.
“다른 요리보다 꽃게 요리는 가격이 비쌉니다. 비싼 만큼 제대로 된 꽃게 맛을 살려줘야 하는 거지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지금 저 요리만 보면 속에 꽃게가 들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카메라가 재빠르게 박지훈의 요리를 비췄다.
순식간에 벌게진 그의 얼굴은 다행히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았다.
“세 명의 요리가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든데요. 공교롭게 그중 두 명의 요리가 겹친 상황에서 심사위원들도 점수를 매기기 한층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전민규가 전광판에 반짝이는 전화번호를 쓱 쳐다보고는 멘트를 이어갔다.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하여 평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5분 후 시청자 문자 투표는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각자 응원하는 참가자에게 마지막까지 투표하고 있었다.
드디어 현란하게 변하던 숫자가 멈췄다.
그 사이 카메라가 김원상, 박지훈, 서인우의 얼굴을 천천히 비추고 지나갔다.
각자 번호표 앞에 놓아둔 요리도 하나하나 가까이 찍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시청자 투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과연 다음 주에 있을 결승전을 향한 두 개의 티켓은 누가 차지하게 될지 떨리는 순간입니다.”
카메라가 세 명의 참가자 얼굴을 동시에 비추었다.
긴장된 참가자들의 표정이 여과 없이 방송에 내보내졌다.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 준결승전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 문자를 획득한 사람은 바로 1번 김원상 참가자입니다. 축하합니다.”
세 명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가 김원상을 가까이에서 찍어댔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김원상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네, 역시 준결승전이라 더 많은 시청자가 투표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최종 득표수는 92만 3,572표로 김원상 참가자가 월등한 차이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마영준을 제외한 세 심사위원의 이마에 동시에 선명한 줄이 그어졌다.
“그럼 이어서 시청자 문자 투표 2위를 발표하겠습니다. 2위는 바로 3번 서인우 참가자입니다. 축하합니다.”
좋지 않은 심사평으로 시무룩해 있던 박지훈의 얼굴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3위는 2번 박지훈 참가자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심사위원 평가가 남아있습니다. 결과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박지훈의 표정이 어두워져서인지, 전민규가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드디어 심사를 마친 네 명의 심사위원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지금 심사위원들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을지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박정원 심사위원님. 오늘부터 심사위원의 점수를 투명하게 공개하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누가 몇 점을 줬는지, 왜 그 점수를 줬는지 시청자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게 자세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마영준은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뭔가 결심을 한 듯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발표하기 전에 한가지 공지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다음 주에 열릴 대망의 결승전에 관한 건데요.”
결승전이라는 말에 세 명 참가자의 얼굴이 잔뜩 긴장되어 보였다.
참가자 세 명 중 한 명은 오늘 이 자리가 마지막이 될 것이니 피가 마르는 것도 당연했다.
“시청자 여러분을 대표해서 열 명의 시청자 심사단을 선정할 것입니다. 요리경연대회인 만큼 음식 재료를 다루는 솜씨와 비법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맛을 느껴보는 것이겠죠. 나영희 심사위원의 설명이 있겠습니다.”
“방송을 통해 보이는 것은 참가자들의 능숙함과 성실함,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그들만의 비법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입니다. 결승전인 만큼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직접 시식하고 평가할 기회를 제공해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함입니다.”
“당연히 시청자 평가단 선정도 공정하게 해야겠죠?”
“물론입니다. 이미 프로그램 사이트를 통해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나이, 성별 등 고르게 평가할 수 있도록 제작진들이 수고해 주실 것입니다.”
나영희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눈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메인 카메라가 다시 사회자 전민규를 가까이서 찍기 시작했다.
“자, 이제 오늘 대결을 마친 참가자들의 결과를 공개해야겠죠?”
김원상의 긴장된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그럼 제일 먼저 시청자 투표 1위를 차지한 1번 김원상 참가자의 점수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처럼 전광판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점수는 유경동 심사위원, 마영준 심사위원, 나영희 심사위원, 박정원 심사위원 순서입니다.”
전광판에 1번 김원상이라는 이름이 반짝거리더니 그 옆으로 숫자가 떠올랐다.
9.10.8.9 총점 36점.
“1번 김원상 참가자의 점수는 36점입니다. 마영준 심사위원이 10점 만점을 주셨는데요?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높은 점수를 줄 만큼 아주 훌륭한 요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요리가 너무 달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매운맛을 강조한 점이 만점을 주게 된 이유입니다.”
“마영준 심사위원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 하나 맛보고 싶습니다. 그럼 제일 낮은 점수인 8점을 준 나영희 심사위원의 평을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이유가 저에게는 감점의 포인트입니다. 일반적인 깐풍소스를 기대한 저한테는 너무 맵기만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2번 박지훈 참가자의 점수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심사위원의 점수순서는 같습니다.”
전광판에 2번 박지훈이라는 이름이 반짝거리고 그 옆으로 숫자가 나란히 나타났다.
8.5.8,9. 총점 30점.
“시청자 문자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박지훈 참가자의 점수는 총 30점입니다. 이번에도 마영준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오늘 박지훈 참가자의 요리는 아이디어만큼 맛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비싼 고급 재료를 하향평준화 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큰 감점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 또한 요리사의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박지훈의 고개가 뚝 아래로 떨어졌다.
“최고점을 준 박정원 심사위원의 평을 들어보죠.”
“재료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귀찮은 재료인 꽃게를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개발한 아이디어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심사위원 평가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3번 서인우 참가자의 점수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광판에 3번 서인우라는 이름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