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도착한 곳은 김원상이 맡은 [만가복] 마포점이었다.
왜 이곳으로 차를 몰고 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멈춰 선 차 안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김원상이 차 문을 열고 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아직 두 개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머, 점장님. 오셨어요? 오늘 방송 짱이었어요. 이렇게 가다가는 최종 우승까지 하시겠어요.”
홀 안내를 담당하는 매니저 오승연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 소리에 막 써빙을 마친 직원까지 다 달려와 축하 인사를 서로 건넸다.
김원상은 순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들의 칭찬이 진심인지 아닌지 의심하지 않고 그냥 믿고 싶은 자신이 우스웠다.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나아졌다.
“곧 영업 마칠 시간이지? 오늘 다 같이 회식할까요? 나 없이 애쓰는 데 고기라도 사줘야지.”
“정말요? 제가 안에 셰프님들한테도 여쭤볼게요.”
마침 주방에서 나오던 차은석 셰프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차은석이 김원상에게로 다가왔다.
“오늘 바빠서 방송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점장님이 면 반죽 만드는 장면은 자세히 봤습니다. 준준결승전 1위 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차라리 아무 말을 말지.
속내를 읽지 못할 얼굴로 하는 칭찬을 들으니 오히려 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점장님이 고기 사주신다는데 회식하실 수 있는 거죠?”
매니저 오승연이 거절하면 잡아먹을 듯한 빛을 눈에서 쏘아댔다.
“거절할 이유 없지요. 안에는 내가 말하고 최대한 빨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하는 회식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차은석과 오승연을 포함해 써빙하는 직원들까지 거의 다 모였다.
기다란 테이블 두 개에 나눠 앉아 직원이 가져온 선홍빛의 삼겹살이 얼른 익기만 기다렸다.
커다란 솥뚜껑 위에 적당히 비계가 붙은 삼겹살과 버섯이 노릇노릇하게 기름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구워지고 있었다.
그 위로 내려온 연통이 불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마셔대느라 연신 시끄러운 소리를 뱉어냈다.
“거의 다 익어가는데 술이든 음료든 먼저 한 모금 합시다.”
너무 고기 익는 데만 집중해 적막이 흐르자 김원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오승연이 옆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자 여기 주목. 오늘 우리 점장님 우승하신 거 축하하는 의미에서 첫 잔은 원샷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김원상을 바라보며 잔을 내밀었다.
“점장님 축하드려요.”
“최종 우승도 아닌데, 우승 얘기는 그만합시다.”
김원상은 아버지한테 들은 얘기를 곱씹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저기서 젓가락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우리 직원들이 이렇게나 재빠른 사람들이었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제대로 익은 걸 먹긴 한 건지 솥뚜껑 위에 살짝 눌어붙은 살점 조금을 제외하고는 뭐가 있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이가 없어 웃으며 사장을 불러 삼겹살을 추가 주문한 김원상이 연신 술을 마셔대자 차은석이 슬며시 말을 건넸다.
“점장님. 안주도 같이 드시죠. 긴장했다가 빈속에 이렇게 술만 마시면 금방 취합니다.”
오늘따라 무표정하지만 그래도 전처럼 불만스럽게 대하지 않는 차은석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네. 먹고 있어요.”
상추 옆에 박혀있던 기다란 오이를 우걱우걱 씹으며 김원상이 불판에 다시 올려진 삼겹살을 바라봤다.
“뭐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네.”
“오늘 면 반죽을 했던 레시피를 우리 [만가복]에서는 왜 활용하지 않는 겁니까? 지금 하는 방식보다 더 부드럽고 소화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저게 궁금해서 따라온 거군.
“예전에 한참 요리에 빠져있었을 때 했던 방법인데...사과를 끓인 물의 배합이 쉽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면에서 사과 향이 강하게 나서 시큼한 맛을 낼 수도 있어요.”
“그 배합 비법을 알고 계셔서 오늘 우승한 거 아닙니까?”
며칠 전에 [서풍]의 서동수 영상을 보다 우연히 알게 된 비법이란 걸 모르는 차은석은 그 반죽 비법이 몹시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대량으로 하는 건 아직 확신이 안 생겨 [만가복]에서는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연구 중이라 확신이 생기면 알려드리죠.”
차은석의 눈빛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이 보였다.
삼겹살이 세 번이나 더 추가되고 그 위에 밥까지 볶아 야무지게 먹고 나서야 회식 자리가 마무리됐다.
계산하고 나온 김원상이 대리기사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술이 약간 취한 듯한 차은석이 다가왔다.
“솔직히 나보다 실력도 없는데 회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이번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에 점장님한테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그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발언에 가까이 있던 보조 셰프 김지호와 오승연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급하게 그를 데리고 가려는 김지호의 팔을 살짝 잡은 차은석이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화내는 거 아니니까.”
다시 김원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번 방송 보면서 대회에 나갈 만큼 충분한 자격이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이제는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던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꼭 우승하세요.”
생각지 못했던 반전 발언에 여차하면 입을 틀어막으려 준비하고 있던 오승연과 김지호가 서로 눈만 크게 뜨고 바라봤다.
김원상 또한 놀라긴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뭐라 답해야 할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평온한 얼굴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꼭 우승할 거니까 지켜봐 주세요.”
그나마 대리기사가 일찍 도착해 어색한 상황을 모면한 김원상은 짧게 인사를 건네고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정말이지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드는 밤이었다.
* * *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서인우는 오늘따라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를 보고 예전처럼 반갑게 웃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인우는 그런 엄마한테 한 번도 서운함을 가진 적이 없었다.
단지, 가슴만 아플 뿐.
핸드폰에서 엄마 이지희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엄마 저예요.”
-그래.
핸드폰을 통해 잔뜩 말라 갈라질 듯 건조한 엄마의 음성이 들렸다.
“방송 잘 보고 있어? 나 다음 주에는 준결승전에 나가요.”
-그래.
“건강 잘 챙기시고, 대회 끝나면 한 번 내려갈게요.”
-알았어.
“쉬어 엄마. 밥 잘 먹고.”
-인우니? 너 건강은 괜찮고?
“이모? 나야 잘 지내죠.”
-너 카메라 잘 받더라. 하긴 워낙 인물이 좋으니까.
역시 하이톤의 이모가 잠시 가라앉았던 인우의 기분을 몇 배는 올려주는 것 같았다.
-너희 이모부가 주말이니까 올라가서 너 영양 보충 해주자고 난리인데, 내가 대회 준비로 정신없을 것 같아서 다음에 가자고 했어.
“아무 때나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정신없지. 분명 이이가 또 술 한잔하자 할거고, 그 심사위원 욕... 아니 시끄러울 거야. 대회 끝나는 대로 엄마 모시고 갈게. 잘 지내.
“네. 이모. 그럼 또 전화할게요.”
이모가 하려던 말을 끊었지만, 어제 방송 이후로 이모와 이모부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자기를 아껴주고 편들어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간단히 국이라도 끓여 먹으러 주방에 들어간 인우는 냉동실에 넣어놓은 이모와 엄마가 가져온 꼬리곰탕이 생각났다.
작은 냄비에 꽁꽁 언 꼬리곰탕을 넣고는 가스 불을 켰다.
국물이 녹아 끓기 시작하자 반찬통에 남아있는 잘 익은 배추김치를 조금 넣어 다시 팔팔 끓였다.
-해장국 만들게?
‘응, 속도 별로고 배도 고프고 해서.’
-서동수는 곰탕 싫어하던데.
‘아빠가? 아닐 텐데..우리 동네 오래된 곰탕집 있어서 아빠랑 자주 사서 먹었어.’
-그건 사서 먹는 곰탕이고.
‘그럼?’
-네 엄마가 곰탕을 거의 세숫대야만큼 끓여놓으면 친구들하고 여행 가는 거라고...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곰탕이 가득 있으면 무섭다고 했어.
인우는 중식도의 말에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소리 내 웃었다.
엄마는 항상 아빠와 여행 가고 싶어 했지만, 아빠는 하루라도 쉬는 날에는 음식 맛이 달라져서 안 된다고 절대 가게를 비우지 않았다.
인우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엄마가 포기하고 월요일 쉬는 날에 가까운 곳으로 바람 쐬러 가는 걸로 만족했었다.
문제는 인우가 조금 더 크자, 이모의 꼬드김으로 시작한 여행 바람이 가장 친한 고등학교 동창들까지 합세해 인우 엄마 이지희에게 제대로 불었었다.
그때마다 등장한 것이 바로 저 꼬리곰탕.
중식도를 통해 들은 이야기가 아빠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어 좋았다.
얼큰한 국에 밥까지 말아 든든하게 먹은 인우는 커다란 볼을 꺼내 거기에 밀가루를 부었다.
지난 경연 때와 똑같이 만들어 볼 작정이었다.
-면 반죽은 이미 끝난 주제인데 왜 또?
“더 연습해서 그 심사위원이 나한테 4점을 준 게 얼마나 큰 실수인지 직접 느끼게 해줄 거다.”
-내가 말해준 대로 했다면 아주 완벽했을 텐데...네 면 뽑는 실력이 아직 부족한 건 아니고?
“아니, 손가락과 팔목이 부어서 안 움직일 때까지 연습했어. 수없이 연습했고, 어제 아빠의 레시피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고.”
-아이, 무서워라. 표정 풀어라. 그게 아니면 문제는 그놈이지. 너한테 분명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거야. 얼굴이 영 아니던데 혹시 열등감인가?
인우는 독기를 품은 눈빛을 한 채 경연대회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밀가루를 반죽해 면을 만들었다.
그 면을 그냥도 먹어보고, 심사 때와 똑같이 미리 만들어둔 짜장 소스에 비벼서도 먹어보았다.
다시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가 먹어도 아무 문제 없었다.
확인할수록 더 화가 났다.
이해할 수 없었다.
“준결승전을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그 심사위원에게 반드시 만점을 받아낼 거다.”
-그래,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마. 앞으로가 중요한 거니까. 우승까지 가야지.
“그런 의미에서 준결승전 주제는 뭐일 것 같아, 사부?”
-내가 그걸 알면 중식도가 아니라 무당집 작두지.
인우는 기대하고 물었던 건 아니지만 김빠지는 대답에 그나마 살짝 표정을 풀었다.
다음 대결 때까지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요리들을 한 번씩 더 연습해 보기로 맘먹었다.
아침 일찍 운동하는 걸 제외하고는 밤늦게까지 종일 요리 연습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실력으로는 이미 인정받은 사람들과 겨루는 경쟁에서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바로 탈락이다.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아빠의 레시피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 * *
드디어 준결승전이 열리는 금요일 저녁 시간.
30분 후에 시작할 방송을 보기 위해 회장실 텔레비전으로 채널을 미리 고정해둔 김형식이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방정맞게 울어댔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지만, 한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서랍 속에 있는 핸드폰에 저장된 단 한 사람의 번호, 바로 마영준 셰프의 번호였다.
“내가 분명히 이 번호로 전화하지 말라고 그랬을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 내가 왜 걱정을 하나? 내 핸드폰이 더럽혀지는 게 싫다는 뜻인데, 못 알아들어?
잠시 아무 말도 건너오지 않다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제가 힘을 보태주는 건 오늘까지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김형식이 이마에 주름이 잡히게 인상을 구겼다.
“착각이 심하군. 너를 쓰든지 버리든지 하는 건 오로지 내가 결정해. 조건은 결승전까지라고 분명히 얘기했을 텐데?”
-결승전에는 일반 시청자 심사위원을 열 명 선정할 거라는 게 방금 들은 정보입니다. 그 사람들까지 제가 조종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군, 그 정도 능력밖에 안 되는 주제에. 끊어.”
-회장님. 그건….
툭!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책상 위에 다시 거칠게 내려놓은 김형식이 짜증이 잔뜩 올라온 얼굴로 혀를 찼다.
아들이 참가하는 요리 대결에서 그의 시선을 뺏어버린 죽은 서동수의 아들, 서인우.
중화요리를 평생 해온 김형식의 눈에 안타깝게도 아들 김원상은 서인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똑같은 재료로 요리하면서도 그만의 비법을 충분히 녹여 넣는 준비된 능력자.
그게 제 아들이 아닌 서동수 아들이라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번에 김원상이 우승을 해 [만가복]의 입지를 확고히 해야 했다.
김형식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