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23화 (23/200)

제23화.

“서인우씨!”

담당 피디 이명훈이었다.

“아, 네. 피디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급하게 나가셨어요? 뒷모습 보고 따라오느라….”

이명훈 피디가 숨이 찬 듯 잠시 말을 멈췄다.

“그냥 좀 피곤해서 빨리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새로 합류한 마영준 셰프하고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마영준 심사위원님이요? 저는 지난번 방송에서 처음 뵌 분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에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서인우 또한 계속 오늘 받은 4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혹시 오늘 제게 4점을 주신 분이 마영준 심사위원이신가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의 반응으로는 그렇게 여겨져서요. 저희는 공정한 방송을 원하는데, 혹시 개인감정이 섞인 건가 해서 여쭤본 겁니다.”

“그런 건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부터 그걸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다음 방송에서 실력으로 반드시 증명해 보일 겁니다.”

이명훈 피디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면 다음 방송에서는 달라지겠죠. 그럼 추운데 들어가세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피디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이명훈 피디가 인우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스튜디오로 몸을 돌렸다.

인우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지하철을 향해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 * *

“방송 끝났으니 이제 출발하지.”

“끝나기를 기다리신 겁니까? 아니면, 저 청년 나오는 걸 기다리신 겁니까?”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출발한 검은 색 세단 뒷좌석의 최만수가 입술 끝을 내리며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10년 됐나? 내가 서산으로 내려가기 전에 자네랑 매일같이 갔던 마포에 있는 중화요리 집 기억나나?”

“[서풍] 말씀하시는 거죠? 당연히 기억합니다. 그 바쁜 스케쥴 속에서도 일주일에 꼬박 사일은 그곳에서 식사하셨죠.”

“그랬지. 저 청년이 그때 그 서동수 셰프의 아들이라는 구만. 그렇게 노력해도 난 아직 그 맛을 흉내도 못 내고 있는데….”

장비서가 룸미러를 통해 최만수의 표정을 살폈다.

“지난주 방송 보고 알았습니다. 그때 먹었던 양장피와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진 걸 보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어쩐지 정이 가더라니….”

최만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오늘로 방송은 끝이네요. 재미는 있으셨습니까?”

“어때 보이던가?”

“회장님 처음 뵀을 때처럼 열정이 넘쳐 보였습니다. 경연대회 내내 아드님도 아주 많이 흐뭇해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다른 대회 있나 또 알아보게.”

“네? 진심이십니까?”

“허허, 으허허.”

최만수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가득한 자가용이 도로 위를 부드럽게 달렸다.

* * *

늦은 시간이지만 금요일 밤의 지하철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가까이서 술 냄새가 훅 느껴졌다.

퇴근하며 누군가와 술자리를 하고 돌아가는 듯한 40대 남자가 계속해서 한숨을 쉬어댔다.

양복 위에 걸친 패딩에서 짭조름한 오징어 냄새와 기름진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왔다.

이럴 때는 예민한 감각이 별로다.

빈속에 긴장까지 해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시간은 벌써 9시가 훌쩍 넘었다.

지하철에서 막 내리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웬일이냐?”

-집에 거의 다 도착했지?

“귀신이네. 지금 지하철에서 내렸다. 넌 어딘데?”

-나도 버스에서 내려서 그쪽으로 가고 있다. 술 한잔하자.

“좋지. 배도 고프고 술도 고프던 참이었다.”

지하철 출구로 나와 버스정류장이 있는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자 친구 준형이 패딩 주머니에 손을 꾹 눌러 넣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야, 춥다. 뜨끈한 거 먹으러 가자.”

“전에 거기? 그래. 난 그 집 어묵탕이 제일 맛있더라.”

준형과 조금 더 위로 걸어 올라가 골목으로 들어서 세 번째 건물로 들어갔다.

2층에 [청춘 포차]라는 이름의 술집이었다.

사장님이 일식집을 운영하다 접고 그 자리에 차린 술집이라 특히 어묵탕이 일품인 집이었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훅 들어오는 따뜻한 공기에 달짝지근한 어묵탕의 냄새와 잘 튀겨진 치킨 냄새, 코끝을 찌르는 듯한 매콤한 불향이 섞여 식욕을 자극했다.

벽 쪽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잡은 준형은 앉기 무섭게 메뉴판을 펼쳤다.

“매운 거. 아니면 순한 거?”

“1번 매운 거에 치킨, 2번 순한 거에 골뱅이. 뭐 먹을까?”

“그럼 오늘은 1번. 사장님?”

준형이 순한 맛 어묵탕과 후라이드 치킨, 생맥주 두 잔을 시키고 그새 서비스로 나오는 강냉이를 한 움큼 입에 넣었다.

“이 시간까지 저녁을 안 먹은 거냐?”

“응. 너랑 술 마시려고. 넌 당연히 못 먹었을 거니까.”

“내가 집으로 바로 안 오면 어떻게 하려고. 연락도 없이 움직여?”

“내 감을 믿었지. 집으로 바로 올 거고 술을 마시고 싶어 할 거고, 맞지?”

인우는 말없이 작은 미소만 보였다.

“너 4점 준 심사위원이 누구냐? 지난주 새로 합류한 그 젊은 놈이지?”

“나도 몰라.”

인우도 조금 전 피디의 말을 들은 후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계속 생각했다.

마영준 심사위원이 왜 4점을 준걸까?

오늘 요리는 작은 실수도 전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점이 1, 2점도 아닌 6점이라는 감점을 주게 했을까?

아무 말 없이 계속 생각에 다시 빠져든 인우의 앞에 하얀 거품이 살포시 내려앉은 생맥주 두 잔이 보였다.

“우선 한잔하자.”

준형이 잔을 부딪친 후 차가운 생맥주를 마시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주 마실 걸 그랬나? 춥네. 안주 나오면 먹어야겠다.”

첫 모금에 이미 반을 넘게 마신 인우의 잔을 흘낏 쳐다본 준형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너 이것 좀 봐봐.”

준형이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오늘 생방송 중에 올라온 댓글들을 펼쳐 보여 주었다.

→ 4번. 서인우 우승까지 가즈아.

→ 저렇게 정성을 다해 만든 짜장면 한 번만 먹어보고 싶네. 그래서 언제 가게 열거유? 나 죽기 전엔 먹어볼 수 있을라나?

→심사 결과가 왜 이럼? 4점 준 저 인간은 도대체 누규?

→서인우를 시기하는 사람이 왜케 많음? 인성이 별로인가?

→방송에서 보면 예의도 바르고 뭐든 열심히 던데, 그럼 이게 다 컨셉?

→우리 인우오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사람은 눈빛을 보면 알아. 저런 맑은 눈빛의 사람은 영혼도 맑아.

→가족은 빠집시다.

인우는 거기까지 읽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마침 주문한 어묵탕이 연기를 뿜어내며 테이블에 놓였다.

준형은 태블릿을 다시 가방에 넣고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안주도 나왔으니 이제 제대로 마셔볼까?”

“그래, 마시자.”

맥주를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신 후 어묵을 건져 간장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청양고추와 양파가 들어간 간장소스는 살짝 매콤하면서 개운한 맛을 내며 어묵의 감칠맛을 극대화해주었다.

“역시 맛있어, 맛있어.”

“따뜻하니 좋다.”

“오늘 수고 많았다. 그 할아버지는 떨어져서 너무 아쉽더라.”

할아버지?

최만수 어르신을 말하는 듯했다.

“이번 경연대회에서 유일하게 친해진 분인데 오늘 떨어져서 많이 서운하더라. 어색한 방송국에 적응할 수 있게 해준 분인데….”

“난 오늘 수타면 만드는 장면 보고 반할뻔했는데, 맛이 별로였나? 먹어봐야 맛을 알지.”

“나도 옆에서 요리하느라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그 어르신은 항상 열정이 가득해. 정말 멋진 분이야.”

인우는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어묵 국물로 차가워진 속을 데웠다.

수저를 내려놓는데 가까이 고소하고 기름진 후라이드 치킨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싸. 치킨도 나왔고. 맛있겠다.”

준형이 오동통한 다리를 하나 들어 인우의 그릇에 올려놓고는, 바로 남아있는 다리를 들어 입에 가득 넣었다.

“나 다리 하나 너 줬다. 나중에 술 취해서 내가 혼자 다리 다 먹었다고 따지기 없기다.”

입에 잔뜩 넣은 치킨 살을 우적우적 씹어가며 준형이 실실 웃어댔다.

“알았다. 네가 다 가져가면 칼부림 날 뻔했다. 내 가방에 중식도 있다.”

인우도 준형을 보며 히죽 웃고는 닭 다리를 크게 베어 물었다.

“맛있다.”

둘이 동시에 뱉은 말이었다.

“아참, 너희 그 방송 어쩌면 일반인이 심사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 같더라.”

“무슨 말이야?”

“아까 댓글 다 못 봤지? 오늘 방송 내내 심사위원의 판정이 문제가 됐거든, 일반인을 공정하게 선정해서 같이 맛보고 심사하게 해달라는 글이 엄청 많았어.”

인우는 취업 준비로 바쁜 와중에 친구가 나오는 방송이라고 시간 맞춰 보고 관심 가져준 준형이 고마웠다.

최만수의 탈락으로 씁쓸하고 허전해진 가슴이 다시 따뜻해져 오는 것 같았다.

결국은 배가 불러 주종을 소주로 바꿔 두 병을 더 마시고는 준형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남자에게서 묻어나오던 음식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느껴졌다.

패딩은 벗어 베란다에 걸어놓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하는 내내 오늘 방송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렸다.

마영준 심사위원이 했던 말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서인우 참가자는 아버지 서동수 셰프의 레시피를 그대로 연습만 한 것 같군요. 뭔가 변화를 주려 노력을 해야 발전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원인이라면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반드시 보여주고 말 거다.

술을 섞어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띵하며 아팠다.

머리를 말리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좋냐? 혼자 술 마시니까?

‘혼자 안 마셨는데? 친구랑 마셨는데?’

-나랑 지금 장난하냐?

심통이 난듯한 중식도의 소리를 들으니 두통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술이 좀 고팠어. 술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한 숨 푹 잘까 했는데, 이렇게 또 술이 깨버리네.’

-술 깬 김에 나랑 놀자. 젊은 감각으로 업그레이드시켜줘.

‘다음에. 나 피곤해. 잔다.’

-거봐. 녹음을 했어야 했는데...

인우는 주방에서 계속 뭐라 구시렁거리는 중식도의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 * *

준준결승전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김원상은 방송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맘껏 환호성을 질렀다.

“오호! 아버지, 보셨습니까? 당신이 한 번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이 아들이 오늘 가장 높은 점수로 합격하는 장면을 말입니다.”

운전대를 손으로 툭툭 쳐가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경쾌한 음악 소리도 더 키우자 차 안이 쾅쾅 울리는 것 같았다.

‘노인네 반응을 한 번 들어볼까?’

신호음이 세 번쯤 울렸을 때 아버지 김형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접니다, 아버지.”

-알고 있다.

여전히 무뚝뚝한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자 김원상의 얼굴이 금세 굳어버렸다.

“오늘 방송 보셨어요?”

-바빠서 다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결과는 알고 있다.

“뭐 해주실 말씀 없으십니까?”

김원상은 아직도 아버지와의 대화를 살짝 두려워하는 자신을 깨닫자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설마 칭찬이라도 바라고 전화한 거냐? 네가 최종 우승이라도 했어? 경솔한 놈.

역시 바라는 게 아니었는데...

순간 너무 흥분해서 전화를 건 자신의 행동이 수치스럽고, 후회됐다.

“칭찬 바라고 전화한 거 아닙니다. 방송 끝나고 가면서 그냥 안부 전화한 거예요. 그럼 끊겠습니다.”

-다른 용건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고?

“아니라니까요.”

김원상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제 능력으로 우승한 줄 알고 좋아하기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네 실력은 오늘 2위 한 그놈한테 안 돼! 그러니, 더 연습하고 노력하라는 소리다. 알아듣겠어?

대답 대신 긴 한숨 소리가 차 안에 가득했다.

“알았으니까, 끊어요.”

뭔가 소리가 넘어오는 것 같았지만, 그냥 툭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화가나 미칠 것만 같았다.

전혀 달라지지 않는 고압적인 아버지의 말투가 너무 싫었다.

아니, 칭찬을 바라고 전화했던 자신이 더 싫었다.

핸들을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친구들을 떠올렸지만, 순간 상처받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누구 하나라도 방송을 보긴 했을까?

막상 전화하려고 보니 누구에게 걸어야 할지 잠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정도의 크고 작은 기업들의 2세들.

일 년에 몇 번 만나지도 않지만, 그나마 친구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대상이라는 느낌뿐인 그들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 속 얘기 실컷 할 수 있는 친구와 밤새 술이라도 마시면 좋을 텐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티 내지 않고, 또한 어떤 상처도 받지 않으려고 사람을 깊게 사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답답하고 화가 났다.

액셀레이터에 올려놓은 발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무작정 밟은 차가 어느새 익숙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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