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다른 참가자들의 면보다 두 배는 더 잡아당긴 후에야 툭 하고 끊어지자 마영준 심사위원의 얼굴이 뭐 씹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거 뭔가요? 왜 이렇게 차이가 있는 건가요?”
사회자 전민규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정원 심사위원의 설명이 바로 이어졌다.
“처음 시식했을 때는 다 똑같이 부드러우면서도 탱글탱글한 면이었습니다. 물론 두 번째 심사 기준이었던 밀가루 냄새도 잘 없애주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달라졌나요?”
“아무래도 면은 시간이 지나면 불고 퍼지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반죽을 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되는데, 그걸 보여준 겁니다.”
전민규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서인우 참가자와 김원상 참가자 모두 사과를 이용해 밀가루 냄새도 없애고 면도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서인우 참가자는 분명히 더 쫄깃한 탄력의 차이를 만든 비법이 있었을 텐데요?”
유경동 심사위원이 서인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저는 연근 가루를 반죽에 넣어서 탱탱하고 쫄깃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하루 숙성해서 만들어야 완벽한 면이 되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숙성시키지는 못한 면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면 요리를 먹었는데요, 앞으로는 저뿐만 아니라 시청자분들 모두 면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심사위원들 모두 평가지에 뭔가를 적느라 분주했다.
스튜디오에 잔잔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제 모든 심사과정은 끝이 났습니다. 방송이 시작되면서 시청자들이 보내준 문자 투표의 집계도 마쳤습니다. 아주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무대 위쪽에 준비된 전광판으로 화려한 조명이 비치자 전민규가 멘트를 이어갔다.
“오늘 준준결승에서 누가 준결승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또 누가 탈락할지 시청자 여러분들의 심사를 먼저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카메라가 네 명 참가자의 얼굴과 번호를 다시 한번 보여 주고는 바로 전민규에게로 옮겨갔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반영하는 듯 많은 분이 문자 투표에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럼 시청자들의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최고 득점을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시청자들이 뽑은 1위는 87만 5432표를 얻은 이분입니다.”
전민규의 말이 끝나자 전민규를 찍고 있던 카메라가 네 명의 참가자들 얼굴을 하나씩 번갈아 잡더니 마지막으로 서인우 앞에서 멈춰 섰다.
“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서인우 참가자가 시청자 문자를 무려 87만표 이상 얻은 주인공입니다. 축하합니다.”
주위 다른 참가자들과 스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보냈다.
“아직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심사위원들의 점수 발표가 남아있습니다. 결과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 기억해두시길 바랍니다.”
-인우야. 최종 성적 아니니까 너무 떨지 마라.
‘사부, 난 염소가 울어대는 줄 알았네. 긴장 풀어.’
-이번에도 티 난 거냐?
“그럼 시청자 문자 투표 결과를 이어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2위의 득표수는 74만 8597표를 얻은 바로 이분입니다.”
이번에도 카메라가 나머지 세 명의 얼굴을 하나씩 비추다 김원상 앞에서 멈췄다.
조금 전 서인우가 시청자 투표 1위를 차지했을 때 심하게 일그러졌던 김원상의 얼굴이 다시 펴지며 두 눈이 잘 빚은 반 달떡처럼 웃고 있었다.
“3위는 53만 4932표를 얻은 최만수 참가자입니다. 마지막 4위는 51만 7822표를 얻은 박지훈 참가자입니다. 지금까지 시청자 투표 결과였습니다.”
카메라가 3위 최만수와 4위 박지훈의 얼굴을 한 번씩 비춰주었다.
여전히 얼굴에 여유를 보여 주는 최만수와 달리 박지훈의 표정은 매우 어둡게 보였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시청자 투표 결과는 총 30퍼센트가 반영됩니다. 당연히 음식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인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이제 제일 중요한 대한민국 최고 요리전문가들의 심사 결과가 남아있습니다.”
스튜디오에 긴장감을 최고로 올려주는 음악이 둥둥 울려 퍼졌다.
네 명 모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아 보였다.
심사위원들이 무대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카드를 들고나온 유경동 심사위원이 그것을 전민규에게 건넸다.
“자 따끈따끈한 심사 결과가 지금 막 제 손에 떨어졌습니다. 과연 시청자들의 투표와 같은 결과가 나올지 완전히 뒤집을 수 있을지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각자 어디에서도 공개한 적 없던 반죽의 비법을 모두 보여 주며 최선을 다한 경연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럼 지금 발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각자 응원하는 참가자가 1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많을 텐데요. 우선 무대 위쪽에 설치된 전광판을 봐주십시오.”
길고 가느다란 조명이 전민규의 손에 들린 카드를 비추다 무대 위쪽으로 향했다.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하는 네 명 심사위원들 점수의 총점을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1번 박지훈 참가자의 점수는 전광판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전광판이 두 번 반짝반짝하더니 1번 박지훈의 이름 옆에 8,7,8,9 라는 숫자와 합계 총점 32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네 1번 박지훈 참가자의 점수는 32점입니다. 다음 2번 김원상 참가자의 점수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2번 김원상의 이름 옆에 8,10,9,8 이라는 숫자와 합계 총점 35점이라는 숫자가 반짝거렸다.
“김원상 참가자의 점수는 35점입니다. 그러면 3번 최만수 참가자의 점수를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만수의 점수는 8,7,8,8을 합한 31점이었다.
“최만수 참가자의 점수는 31점입니다. 그럼 현재는 김원상 참가자의 점수가 35점으로 가장 높은데요, 마지막 서인우 참가자의 점수를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광판에 4번 서인우의 이름 옆으로 10, 4, 10, 9 이라는 숫자와 총점 33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서인우 참가자의 점수가 34점으로 심사위원의 총점을 가장 높게 받은 사람은 2번 김원상 참가자입니다.”
-저 4점 준 놈 누구야? 너 살면서 누구랑 원수진 일 있냐?
‘그런 거 없어. 절대.’
-그럼 한번 붙어보자는 거지, 저거? 말이 되는 점수냐고?
인우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실망스럽고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심사위원들과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점수를 줬다는 건 뭔가 크게 문제가 되었다는 이유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런 그의 심정과 달리 카메라가 다가오자 솟아오르는 입꼬리를 잡아 내리느라 애쓰는 듯한 얼굴의 김원상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 손에는 시청자 투표와 심사위원 점수를 합계한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그럼 오늘 준준결승전에서 최종 1위를 차지한 참가자의 이름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튜디오에 긴장감이 팽팽하게 잡아당긴 고무줄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전민규가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펼쳤다.
음악 소리 또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럼 준준결승에서 1위를 차지한 참가자는….”
순간 스튜디오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적막을 깨는 전민규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위를 차지한 참가자는 바로 2번 [만가복]의 김원상입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다시 요란한 음악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김원상의 얼굴을 가까이서 찍어대느라 바빴다.
서인우가 손뼉을 치며 무대로 나가는 김원상을 축하해 주자 주위에 있던 박지훈과 최만수도 같이 축하해 주었다.
“시청자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서인우 참가자가 총 심사 결과 2위를 차지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최만수와 박지훈에게 인사를 건네며 서인우 역시 무대로 향했다.
“이제 준결승전에 참가할 마지막 한 명의 이름만 남아있습니다. 그 한 명의 이름은 광고 후에..”
우우!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광고 후에 발표하면 안 되겠죠? 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끝까지 들으셔야지요.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마지막 한 명은 바로 1번 박지훈 참가자입니다. 축하합니다.”
박지훈이 홀로 남겨질 최만수에게 인사를 하고는 무대로 걸어왔다.
최만수는 그런 그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최만수의 행동과 표정을 담고 있었다.
“네, 이번 대회에서 끝까지 노익장의 힘을 보여 주셨던 최만수 참가자가 안타깝게 오늘로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가까이 가서 인터뷰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민규가 최만수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카메라가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세 명의 준결승 참가자를 한 명씩 카메라에 담았다.
“지금까지 아주 멋진 요리를 선보여주셨는데요, 안타깝게도 준결승전에는 나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금 소감을 한마디 들려주시죠.”
“저 빛나게 젊은 참가자들과 경쟁하면서 준준결승전까지 오게 된 사실이 꿈만 같습니다. 평생을 경쟁하면서 살았지만, 이렇게 즐거운 경쟁은 처음이었습니다. 영원히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오늘까지 멋진 요리를 보여주고 수고해 주신 최만수 참가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어디서든 항상 멋진 솜씨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만수가 카메라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자, 서인우가 가장 먼저 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하며 손뼉을 쳐주었다.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경쟁자라기보다는 동료 같은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가슴 어딘가에 아쉬움이 크게 소용돌이쳤다.
그런 인우의 심정이 느껴졌는지 스튜디오를 나가려 뒤돌아선 최만수가 인우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작게 외쳐주었다.
인우는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스튜디오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준결승전에 참가할 세 명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우선 오늘 1위를 차지한 김원상 참가자의 소감을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김원상이 흥분을 티 내지 않으려 흠흠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다들 최선을 다한 자리였습니다. 물론 저도 최선을 다했기에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준결승전에서도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준결승전에서도 멋진 활약 부탁드립니다.”
전민규의 멘트가 끝나자 카메라가 바로 인우를 향했다.
“서인우 참가자는 오늘 시청자 문자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안타깝게도 최종 심사 결과 2위에 머물렀는데요,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요리하는 모습을 진정성 있게 지켜봐 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심사위원분들의 점수를 되새기며 뭔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심사위원 점수라는 말이 나오자 심사위원들과 전민규의 표정이 어색하게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명의 심사위원에게 높은 점수를 받은 실력을 누군가 한 명이 차이 나게 깎아내려 버렸다.
유경동 심사위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 있었다.
“이것으로 준준결승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열기 속에서 다음 준결승전에서는 어떤 결과를 보게 될지 많은 기대 바랍니다.”
스튜디오에 프로그램의 끝을 알리는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메인 카메라가 잔뜩 상기된 세 명의 참가자 얼굴을 담기 시작했다.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는 여기 세 명의 참가자와 함께 쭉 계속됩니다.”
전민규를 포함해 심사위원들과 참가자들이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하며 긴장감 넘치는 생방송이 막을 내렸다.
인우는 담당 피디의 방송이 끝남을 알리자 그제야 긴장을 조금씩 내려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너도 그렇지?
‘응? 뭐가?’
-준결승전에 나가게 됐는데도 기분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그 노인네 옛친구 생각도 나고 좋았는데...
‘옛친구?’
-서동수 말이다. 네 아빠처럼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통성명이나 해볼까 했더니...
그래서였을까?
아빠와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요리하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했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겨울바람 때문인지 허전한 마음 때문인지 스튜디오 밖이 유독 더 춥게 느껴졌다.
순간 누군가 인우를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