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8화 (18/200)

제18화.

나영희 요리 전문 평론가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다른 세 명의 심사위원뿐 아니라,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거…. 분명히 내가 잘 아는 식당의 양장피인 것 같은데요…. 이런 스타일로 양장피를 내놓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거든요.”

인우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거의 완성 돼가는 것 같은데, 신중히 처리해야 하니 최종 심사할 때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과연 [서풍]의 양장피를 알아본 걸까?

마지막으로 플레이팅 하는 인우의 손끝이 살짝 떨려왔다.

차가운 요리를 바깥쪽으로, 그리고 따뜻한 요리를 그 안쪽에 플레이팅을 해서 또 각각에 맞는 소스를 뿌려 주면 완성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호명하는 참가자는 완성된 요리를 가지고 무대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곧바로 심사위원들의 시식이 있겠습니다.”

전민규의 종료를 알리는 멘트에 정신없이 요리했던 참가자 모두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땀을 닦았다.

“지금 스튜디오는 각종 맛있는 음식 냄새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입니다. 그럼 정신 차리고 진행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박지훈 참가자, 요리를 가지고 무대로 나와 주십시오.”

전민규로부터 이름이 불리자 박지훈은 거대한 국화꽃처럼 예쁘게 잘 튀겨진 커다란 생선 위에 붉은색 소스를 뿌린 요리가 담긴 접시를 조심스럽게 들고나왔다.

-저거 서동수도 정말 잘했던 요리인데…. 물론 이 사부님의 현란한 칼솜씨가 한몫하기는 했지.

중식도의 목소리에 유독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도 기억해. 내가 항상 생선 꽃 해달라고 했었거든.’

중식도와 속으로 대화를 나누며 박지훈의 요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 전민규의 멘트가 들렸다.

“박지훈 참가자, 음식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카메라가 박지훈의 요리를 가까이서 찍고 있었다.

“제가 사실 생선요리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중국에 여행을 갔다가 처음 먹어 본 이후 유일하게 먹는 생선요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생선에 칼집을 많이 내어 튀긴 후 소스를 뿌려 완성한 쏭쑤위 입니다.”

네 명의 심사위원들은 준비된 접시에 각자 음식을 조금씩 덜어 신중하게 음미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심사평을 말한 사람은 유경동이었다.

“매쓰를 잡던 솜씨라 그런지 칼집을 아주 잘 내어 생선 살이 화려한 다람쥐가 됐네요. 아, 쏭쑤가 중국어로 다람쥐를 뜻합니다. 바삭한 식감을 아주 잘 살렸어요.”

-언젠가 꼭 겨뤄보고 싶군. 내 승부욕에 불을 지르는 저런 멘트 자제해 달라고 전해줘.

‘시끄럽다고 전하라는데?’

뒤이어 나영희 심사위원의 평가가 이어졌다.

“내가 냄새에 예민한 사람인데, 생선 비린내도 아주 잘 잡았습니다. 소스도 너무 달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새콤달콤해서 좋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나영희 심사위원의 눈짓을 받은 전민규가 바로 멘트를 이어갔다.

“다음은 김원상 참가자, 요리를 가지고 앞으로 나와 주세요.”

박지훈은 자리로 돌아가고, 김원상이 보기만 해도 땀구멍에서 땀이 송송 나올 것처럼 매콤해 보이는 새우요리를 들고나왔다.

“조금 전에 마라롱샤와 비슷하다고 하셨는데요, 김원상 참가자, 가지고 나온 요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원상이 자신의 요리를 가까이서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해 잠시 접시를 잘 보이게 들었다 내려놓았다.

“전분 반죽을 묻힌 새우를 바삭하게 두 번 튀긴 후 기름기를 빼고, 웍에 기름을 부어 생강과 마늘 편을 향이 올라오게 볶은 후에 거기에 고추장, 산초, 불린 고추로 매운맛을 살린 요리입니다.”

심사위원들의 손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많이 매운지 나영희 요리 전문 평론가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바로 물을 마셨다.

“아주 매운데 확실히 마라롱샤보다 먹기 간편해서 더 좋고, 입에 남은 매콤함이 자꾸 손이 가는 요리입니다.”

시식을 마친 마영준 셰프의 질문이 이어졌다.

“새우의 비린 향이 전혀 나지 않는데, 무슨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김원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 있게 답을 내놓았다.

“마지막에 소금, 후추 등으로 간을 하면서 웍의 가장자리에 맛술을 살짝 부어 그 열로 새우의 비린 향을 증발시킨 겁니다.”

“아주 깔끔하고 맛있게 맵죠?”

마영준이 옆에 있는 세 명의 심사위원들에게 동의를 구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새로 온 저 젊은 심사위원 맘에 안 들어. 공정하게 심사한다고 하더니 맛있다고 강요하는 거 아니야? 저건 반칙 아니냐고?

‘정말 맛있나 보지. 나도 그 맛이 궁금하긴 해.’

-그냥 많이 먹으면 다음 날 화장실 갈 때 쓰라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딱 그런 맛이야.

‘그런 게 또 술안주로는 최고긴 하지. 매운맛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가 많겠네.’

냅킨으로 붉게 물든 입술을 닦으며 박정원 심사위원이 평을 시작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마라롱샤가 사실 껍질 벗기기도 귀찮고 실제 먹을 것도 별로 없는데, 그 아쉬움을 잘 살려주는 요리인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정원 심사위원의 평을 듣고 얼굴 가득 미소를 보인 김원상이 의기양양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은 최만수 참가자입니다. 요리를 가지고 앞으로 나와 주세요.”

두부와 피망이 들어간 전골과 흰 밥을 얹은 쟁반을 들고 최만수 참가자가 무대로 조심스럽게 나왔다.

“얼핏 보면 한식 같은 느낌인데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방송 시작할 때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젊은 시절 열심히 돈을 좇아야 했을 때, 요리하는 재미와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효과를 다 주었던 요리입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음식을 각자 담아간 심사위원들의 시식이 시작됐다.

“두부를 튀겨서 요리하는 이유가 있나요?”

“식감 때문입니다. 쫄깃한 식감과 고소함이 고기가 생각날 때 조금이나마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또한 튀긴 두부에서 나오는 적당한 기름기가 중국요리를 먹는 느낌을 극대화해주기도 하고요.”

“저렴하고 단순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중화요리가 아닐까 합니다.”

유경동 심사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박정원, 나영희와 달리 마영준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 이 요리는 집에서나 해 먹을 만한 요리 아닙니까? 최고의 중화요리 고수를 찾는 오늘 경연에는 맞지 않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영준의 평가를 들은 최만수가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가장 자신 있으면서 꼭 선보이고 싶은 요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왠지 숙연해진 분위기에 중식도가 또 불쑥 말을 걸었다.

-저 젊은 놈 인생을 몰라. 인생을 알아야 진정한 맛도 아는 법인데...

인우는 최만수의 뚝심이 느껴져 좋았다.

보잘것없는 재료이지만,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엿보인 듯했다.

자리로 돌아가는 최만수의 표정에서 아쉬움이나 후회 따위는 묻어나오지 않았다.

“다음은 한지숙 참가자 순서인데요, 요리를 가지고 앞으로 나와 주세요.”

조금 전 마영준 심사위원의 독한 심사평 때문인지 한지숙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한지숙 씨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요. 편하게 가지고 온 요리를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홍샤오 파이구 인데요. 파이구는 갈비를 말하는 겁니다. 갈비를 삶아 건져 놓고, 웍에 기름과 설탕을 넣어 갈색이 될 때까지 끓였다가 갈비와 파, 산초, 생강을 넣고 볶아줍니다. 다시 물을 붓고 맛술과 중국 식초, 소금을 좀 넣어 끓여 부드럽게 만든 요리입니다.”

시식하던 유경동 심사위원이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송만 아니면 몇 개 더 뜯고 싶은데, 정말 아쉽네요. 이 음식은 국물을 얼마나 조리냐에 따라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고, 또 면을 삶아 같이 먹어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

“당면을 넣어 같이 조리하면 더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될 것 같네요. 조금 아쉬운 건 시간 조절을 잘 못 했는지 약간 질긴 느낌입니다. 좀 더 부드럽게 졸이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나영희 심사위원의 평가였다.

-파이구는 시간이 오래 걸려. 그래서 잘게 토막을 내서 요리하는 거지. 좀 크다 싶더라니.

‘맛있어 보이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쉬운 일이 아니지.’

-너 짜장면집이 배달요리 1위인 이유를 잊었냐?

‘시간?’

-그래, 중화요리는 시간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넵, 사부.’

-온다, 온다. 이제 네 차례다. 결전의 순간이라고.

드디어 인우의 차례다.

요리를 가지고 앞으로 나간 인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바깥쪽에 놓인 차갑게 준비한 재료와 안쪽에 따뜻하게 준비한 요리를 가운데 놓은 양장피와 섞어 먹는 요리입니다. 음식을 만들어 먹기 직전에 각각의 소스를 뿌려 재빨리 섞어 먹는 게 가장 맛있습니다.”

인우는 옆에 준비한 소스를 뿌리고 예전에 아빠가 했던 것처럼 하얀 꽃잎 같은 양장피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빠른 속도로 섞었다.

제일 먼저 음식을 덜어간 마영준 심사위원이 잘 섞인 양장피를 입에 넣는 순간 어깨를 움찔했다.

흔한 양장피를 만들고 있다고 무시하던 표정이 쏙 사라지고 놀라움에 눈만 깜빡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시식하던 나영희 심사위원이 아직 입에 있는 음식을 삼키지도 않은 채 서인우를 한참 쳐다봤다.

“조금 전에 이 양장피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설마 했었는데, 이제 정확히 알겠네요. 이거 맞죠? [서풍]의 시그니처메뉴.”

유경동 심사위원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맛도 모양도 확실합니다, [서풍]의 양장피가. 처음 소개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기 위해 요리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죠? 그럼 서인우 참가자 아버지가 [서풍]의 서동수 셰프라는 말입니까?”

“네, 아버지의 뒤를 이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인정받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가 만든 요리를 맛보고 아버지를, 그리고 [서풍]을 떠올려 준다면…. 저는 단지 그 목적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카메라가 진지한 서인우의 눈빛을 그대로 담아냈다.

다섯 명 참가자의 요리에 대한 심사가 끝이 났다.

이미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최종 5인의 요리는 말 그대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보였다.

“이제 심사위원들의 시식과 시식 평은 끝났습니다. 너무나도 멋진 요리를 선보여준 다섯 명의 참가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전민규의 박수를 시작으로 심사위원과 스튜디오에 있던 스텝들까지 손뼉을 쳤다.

“심사위원들의 회의를 거쳐 5차전에 출전할 네 명이 정해질 겁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멋진 요리를 보여 준 다섯 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의 요리는 더는 방송으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참가자들의 긴장된 모습이 하나하나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한참 시간이 흘러도 심사위원들이 무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결정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다 맛있어 보였는데요. 너무 군침을 삼켜서 이제는 배가 부릅니다.”

전민규의 유머에도 참가자들은 웃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어색하게 살짝 웃어넘긴 전민규의 멘트가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이 신중하게 심사하는 동안 다음 주부터 있을 경연의 심사 방식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 다섯 명은 긴장된 얼굴로 전민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최종 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나면 네 명의 참가자가 불꽃 튀는 경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 준준결승, 그다음 주 준결승전을 치르고 나면 대망의 결승전만 남아있게 됩니다.”

참가자들의 한숨 소리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스튜디오에 적막이 흘렀다.

“그래서 심사 방식도 달라집니다. 다음 주부터는 모든 방송이 생방송으로 진행됩니다.”

참가자들의 걱정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렸다.

“금요일 저녁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동안 여기 계시는 심사위원의 점수가 70퍼센트, 시청자들의 문자 투표가 30퍼센트 반영되게 됩니다. 결승전에서 최종 우승하는 한 분은 심사위원들께 인정을 받은 동시에 시청자의 인정과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전민규가 다음 주부터 바뀌는 심사 방식을 설명하는 사이 심사위원들이 무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어려운 심사가 끝난 것 같은데요, 과연 다음 주 준준결승에 참가할 네 명은 누가 될까요?”

카메라가 다섯 명의 참가자 얼굴을 하나씩 천천히 찍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전민규의 앞으로 카메라가 도착했을 때 카메라를 향해 전민규의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준준결승에 참가할 네 명의 이름은... 잠시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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