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참가자 각각의 스토리를 듣고 나니 요리가 더 기대되고 궁금해지는데요. 그럼 이 시점에서 오늘의 대결과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전민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항상 그랬듯이 하얀색 휘장이 펼쳐졌다.
[발상의 전환]
“오늘 주제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뭔가 설명이 필요하겠죠?”
심사위원석에 있던 나영희 요리 전문 평론가가 무대로 나왔다.
“발상의 전환이에요. 말 그대로 아이디어를 보자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이정복 대가님이 요리 하나를 보여드릴 겁니다.”
나영희의 말이 끝나자 조금 전부터 심사위원석에 보이지 않았던 이정복 대가가 큰 쟁반에 토마토가 담긴 작은 그릇을 잔뜩 담아 무대로 다가왔다.
“이거 토마토인가요?”
“중화요리 하면 떠올리는 메뉴 중 하나가 만두 일 겁니다. 이건 건강을 생각해 만두피 대신 토마토로 만든 요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에 짭조름한 해물 향과 새콤한 토마토 향이 가득했다.
전민규가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중국요리에서 이런 음식은 처음 보는데요? 정말 궁금합니다.”
“이 음식은 방금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참가자분들에게 조금씩 나눠드릴 테니, 이 안에 어떤 재료가 들어 있는지 한 번 맞춰 보길 바랍니다.”
사회자 전민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이번에도 저는 못 먹습니까?”
“아, 이번에는 전민규 씨한테도 기회를 드리죠.”
이정복 대가가 직접 작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똑같이 나눠주었다.
마지막으로 전민규가 음식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일곱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이 예쁜 토마토를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마토 안에 여러 가지 재료를 꽉 채워 찜기에 푹 찐 듯 잘 익은 토마토 향이 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게 했다.
전민규를 포함해 참가자 일곱 명이 조심스럽게 이정복 대가가 나눠준 음식을 맛봤다.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부드럽지만, 씹는 맛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입안을 깔끔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메뉴 같으면 살찔 걱정 안 하고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어요.”
항상 방송에 나오는 겉모습을 신경 써야 하는 전민규는 무엇보다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라는 것이 무척 맘에 드는 듯 보였다.
“토마토로 만들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고, 속이 어떤 재료로 채워져 있나요?”
“전복이 들어 있습니다.”
박지훈의 대답이 시작이었다.
“새우도 있어요.”
“표고버섯이 씹히는데요?”
“죽순하고 양파도 있었습니다.”
김원상이 초조한 듯 계속해서 눈을 깜빡거렸다.
입 안에 있는 재료들의 맛을 느껴보려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간 마늘, 생강즙, 소금과 후추로 간한 다진고기도 들어갔습니다. 고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서 하셨네요.”
입 안에 있던 음식을 삼키며 서인우가 그저 맛있다는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정복 대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대단하네요. 한데 어우러져서 맛있다는 거 말고는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정말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어서 쓰셨나요?”
전민규의 질문에 이정복 대가가 대답을 내놓았다.
“소고기만 넣으면 퍽퍽할 수 있어서 돼지고기를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서인우 참가자는 그걸 맛으로 감별할 수 있다는 겁니까?”
인우가 주위 다른 참가자들을 슬쩍 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음식을 먹고 혀끝에서 느껴지는 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정말 타고나는 건가 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사회를 보고 참가자분들은 요리하는 거겠죠? 이정복 대가님. 저 음식에 들어간 재료는 다 나온 겁니까?”
“네, 딱 두 가지만 빼고 다 나왔습니다.”
“푸른색의 채소 같은데…. 파 인가 부추인가요?”
한지숙 참가자의 질문에 이정복 대가가 웃으며 대답했다.
“부추입니다. 그럼 마지막 한 가지 재료는 무엇일까요?”
“참기름.”
자기도 모르게 툭 나온 소리에 인우가 말끝을 흐렸다.
“서인우 참가자. 지금 뭐라고 하신 거죠?”
“죄송합니다. 혼잣말이었습니다.”
이정복 대가가 놀란 듯 인우를 쳐다봤다.
“그 혼잣말이 정확히 뭔가요?”
“참기름이라고 했습니다. 고기에서 나오는 육즙과 섞여 있지만, 그래도 확실히 참기름 맛이 났습니다.”
“와우, 서인우 참가자 대단합니다. 무슨 맛을 감별하는 A.I인줄 알았네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정복 대가가 다른 참가자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지금 이 음식처럼 건강과 맛,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모양까지 잡을 수 있다면, 도전해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주제가 바로 발상의 전환입니다. 절대 내 요리에 갇혀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요리사가 되지 마시고, 항상 연구하는 요리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네, 여러분들의 요리 선배로서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다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요리가 있겠죠? 그럼 이제 3차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완성까지 60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드디어 3차전의 막이 올랐다.
1차전과 2차전에서는 중화요리의 기본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메뉴를 만들었다.
3차전은 낯설고 어려운 메뉴들을 선보일 것이다.
흔하지 않으면서 각자 숨겨진 기량을 최대한 보일 수 있는 요리, 그러면서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보이는 요리.
바로 그게 3차전의 핵심이었다.
인우는 이정복 대가의 음식을 맛보는 그 순간부터 떠오르는 요리가 하나 있었다.
위가 안 좋은 할머니를 위해 아빠가 자주 만들어 주셨던 음식.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고스란히 전달해 줬던 바로 그 음식.
-그걸 만들 생각이군. 오늘 내가 열일 하겠네.
‘그래, 힘 좀 써줘.’
인우는 바로 재료를 준비했다.
기다란 삼겹살 덩어리를 가져와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보였던 차민수가 비장의 눈빛을 쏘아 보이더니 요리를 시작했다.
팔팔 끓는 물에 대파, 양파, 마늘, 생강 등의 향신료와 청주를 넣고 기다란 삼겹살 한 덩이를 그대로 삶았다.
잘 삶아진 고기를 건져 잘라 흑설탕과 식용유를 넣어 조렸다.
‘동파육을 만들 생각이군.’
김원상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중국 요리를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제 제법 알려진 메뉴인 동파육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적어도 최만수는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4차전을 향한 자리는 단 다섯 명.
4차전부터가 진검승부가 될 것이다.
인우는 최만수의 요리를 보며 분명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요리는 절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이번 요리경연대회를 하며 서로 응원해 주고 위로도 해주는 사이가 된 것 같아서 감사했다.
김원상도 고기를 선택했다.
제일 먼저 찹쌀을 물에 불려 놓았다.
‘찹쌀은 왜 불리는 걸까?’
인우는 김원상이 손질하고 있는 등갈비와 불린 찹쌀로 떠올릴 수 있는 요리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분명 새로운 요리법을 배워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원상은 신선한 등갈비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집을 내준 뒤 하나씩 먹기 좋게 썰었다.
그 위에 간장, 후추, 설탕, 청주 등을 넣고 버무렸다.
‘등갈비는 보통 갈비 재는 방법과 다르지 않은데…. 분명 저 찹쌀에 비결이 있을 거야...’
인우는 중식도가 열일하는 동안 다른 참가자들의 요리를 하나라도 배우려는 생각에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실제 방송에서는 편집되어 나가기 때문에 모든 과정을 다 볼 수는 없었다.
고기 삶는 달콤하고 짭조름한 냄새와 채소가 불에 닿으며 볶아지는 불 향, 기름에 뭔가가 튀겨지는 고소한 향이 섞여 온 스튜디오가 말 그대로 음식 천국이었다.
“점점 요리의 방향이 잡혀가고 있는데요,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최고의 경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자 전민규의 멘트에 맞춰 카메라가 음식을 찍느라 정신없었다.
한 명씩 요리하는 모습을 담던 카메라가 인우의 앞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중식도를 눕혀 도마 위에 손질된 새우를 툭 한번 치자 새우가 곱게 다져졌다.
툭, 툭.
빠른 속도로 엄청난 양의 새우를 다지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찍고 있자 전민규가 한마디 말을 더했다.
“지금 새우를 한 방에 다지고 있습니다. 중식도를 다루는 속도와 힘은 정말이지 서인우씨를 따라갈 사람이 없는 듯하네요.”
잘 불린 찹쌀을 밀대로 밀고 있던 김원상의 미간에 주름이 크게 잡혔다.
‘하여튼 어린놈이라 쇼맨십만 살아 있다니까. 중요한 건 맛이고 실력이라고.’
괜히 심통이 난 김원상은 힘을 더 꾹 주어 밀대를 밀었다.
경연의 열기가 최고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요리하는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던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의 요리를 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박지훈 씨는 무슨 요리를 선보일 생각이신가요? 지금까지 요리로는 전혀 감이 오지 않는데요?”
고기와 새우를 곱게 다지고 있던 박지훈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제 영혼을 불어넣은 딤섬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네,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최만수의 요리를 지켜보던 유경동 대가가 뭔가 아쉬운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쓰읍하고 작게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뭔가 말을 하려 입을 살짝 열었다가 바로 닫고는 옆자리 김원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김원상 참가자, 등갈비 요리를 선보일 생각인 것 같은데요. 불린 찹쌀을 밀어서 어떻게 할 작정인가요?”
“맛있는 양념에 재어둔 등갈비를 이 찹쌀가루에 묻힐 겁니다.”
“찹쌀가루를 묻힌다고요? 아, 이건 처음 보는 요리가 되겠네요. 기대가 큽니다.”
“최선을 다해 멋진 요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원상의 어깨가 한껏 봉긋해진 것 같았다.
고기를 열심히 튀기고 있는 한지숙 참가자 앞에 선 나영희 요리 평론가가 튀긴 고기를 한참 쳐다보며 물었다.
“얼핏 보면 2차전 때 대결과제인 탕수육 같은데요, 이 초록색은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탕수육이 너무 달고 살찌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건강하게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든 요리입니다. 요 초록색은 부추와 양파를 갈아서 즙으로 반죽을 했습니다.”
“아, 고기 냄새도 덩달아 잡아 줄 수 있겠네요. 완성된 요리를 빨리 먹어보고 싶군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저기 웍에서는 불길이 솟아올랐고, 도마 위의 칼질 소리도 경쾌하게 울렸다.
“김원상 참가자가 아주 색다른 요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전민규의 말이 끝나자 카메라가 김원상의 요리 과정을 가까이서 촬영했다.
불린 찹쌀을 너무 곱지 않게 밀어 가루를 만들고 그 위에 양념한 갈비를 골고루 묻혔다.
그리고는 찜기에 가지런히 담아 찌기 시작했다.
고기가 잘 익는 동안 웍에 고추기름을 넣어 채소를 매콤하게 볶아냈다.
“아, 서인우씨, 지금 뭘 만들고 있는 거죠? 설마 저게 면이 되는 겁니까?”
전민규의 격앙된 목소리에 김원상을 찍고 있던 카메라가 재빨리 인우를 찍기 시작했다.
큰 웍에서는 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다진 새우에 전분과 달걀, 소금을 넣어 치댄 반죽을 단단한 비닐에 넣어 그 끝을 작게 잘랐다.
그리고는 바로 끓는 물 위쪽에 새우 반죽을 짜기 시작하자 오동통한 가락국수면 같은 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심사위원들 모두 인우의 요리에 시선을 돌렸다.
박정원 요리 전문가가 인우 앞으로 다가왔다.
“서인우 참가자. 이걸 면으로 쓸 생각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인우는 물 위에 똬리를 틀며 익어 둥둥 떠 있는 면을 건져 채반에 식혔다.
“이거 너무 궁금해서 하나 맛보겠습니다.”
박정원 요리전문가가 탱글탱글한 면을 한 가닥 집어 입에 넣었다.
후루룩.
면발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박정원의 눈도 두 배는 커져 방금 들어간 면이 눈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이거 너무 탐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