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나영희 음식 평론가가 제일 먼저 탕수육을 입에 넣었다.
“어떻게 볶았는데도 아직 바삭함을 유지하고 있죠? 정말 신기하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을 하던 나영희의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갔다.
“난 고기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은데, 냄새를 잡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한 인우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신선한 고기는 그 향과 육즙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최소한의 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고기가 신선해서 다른 작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처럼 고기향이 많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요?”
그랬다.
고기를 좋아해서, 특히 육즙과 그 향을 좋아해서 고기 요리를 찾는다고만 생각했다.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중화요리의 대표 메뉴가 바로 탕수육이다.
그 말은 고기를 많이 좋아하지 않아도, 고기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메뉴가 탕수육이라는 걸 거다.
고객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못했다.
육즙은 잘 살리되 고기 냄새는 어느 정도 없앤 후 요리를 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빠의 뒤를 잇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한 대회다.
이렇게 2차전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 대회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반성이 앞섰다.
그런 인우의 눈에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정복 대가의 모습이 보였다.
다음 참가자에게로 발을 옮기던 이정복 대가가 다시 서인우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지난번에 요리를 사부님한테 배웠다고 했죠?”
“네, 그랬습니다.”
“1차전의 백 짬뽕, 오늘 탕수육까지 내가 아는 누군가의 요리와 거의 흡사합니다. 아니, 백 짬뽕은 완전 똑같았어요. 그런데, 오늘 탕수육은 모양까지 완전 똑같은데…. 고기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향이 달라. 참 재미있는 일이네요.”
재미있는 일?
‘이정복 대가는 아빠의 요리를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저 입에서 서동수라는 이름이 먼저 나올 때까지 절대 말하지 않을 거다.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봐 주고 인정해줄 때까지….’
인우는 고개를 깍듯하게 숙여 심사평에 대한 감사 인사를 했다.
역시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심사평을 듣고 있던 김원상의 앞에 선 심사위원들이 하얗게 잘 튀겨진 찹쌀 탕수육을 작게 잘라 입에 넣었다.
“찹쌀이 잘 부풀어 올라 쫄깃하고, 바삭하네요. 고기 냄새도 잘 잡았어요. 훌륭합니다.”
심사평을 듣던 김원상은 금요일 저녁 방송을 보게 될 아버지 김형식의 표정이 떠올라 연신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끌어낸 요리는 박지훈의 사천 탕수육이었다.
다른 탕수육과 다르게 넓적하게 튀긴 등심위에 매콤달콤한 소스가 뿌려진 모습이 마치 돈가스처럼 보였다.
박정원 요리전문가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시식하기 좋게 잘랐다.
“이건 발상의 전환이네요. 사실 탕수육이나 돈가스나 돼지고기를 튀긴 건 똑같으니까요. 박지훈 참가자가 아주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러다 어깨에 딱 담 결리기 좋겠다 싶게 박지훈의 어깨가 한껏 위로 치솟았다.
드디어 열다섯 명의 요리에 대한 심사가 끝이 났다.
“네, 이제 모든 심사는 끝났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회의를 거쳐 3차전에 나갈 단 일곱 명의 참가자가 결정될 것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다음에 또 요리경연대회 사회자로 섭외가 들어오면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눈, 코, 입 심지어 귀까지 다 고문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요리들이 쫙 펼쳐져 있는데, 먹어보지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시청자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사회자의 웃음 섞인 투정에 잠시 긴장을 내려놓았던 참가자들이 심사위원들이 무대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얼어붙었다.
“이제 최종 판결이 난 것 같습니다. 여기 열다섯 명의 참가자 중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 긴장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발표는 어느 분이?”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이 유경동 대가가 무대 앞으로 나왔다.
“3차전에 참가할 일곱 명의 이름이 정해졌나요?”
“네, 심사위원들의 회의 끝에 선별된 이름이 바로 여기 일곱 장의 카드에 적혀 있습니다.”
“떨리는 순간인데요. 오늘 여기 참가하신 분들 모두 정말 멋진 요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경쟁이라는 게 내가 못 해서 보다 나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보여준 사람이 이기게 되는 거니까요.”
유경동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기 있는 열다섯 명의 참가자들은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린 그중에서 고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최고 실력자를 뽑으려고 하는 겁니다.”
사회자의 시선을 따라온 카메라가 참가자들의 얼굴을 마지막이라는 듯이 하나하나 천천히 담았다.
“그럼 이제 카드를 공개해야겠죠? 저도 떨리는데요…. 다음 주에 있을 3차전을 준비할 일곱 명 중에 첫 번째는 바로…. 박지훈 참가자입니다. 축하합니다.”
심사위원과 다른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박지훈이 앞으로 나왔다.
“바로 이어서 호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합격한 참가자는 김원상 참가자입니다. 축하합니다.”
김원상이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대로 나왔다.
“다음은 이번 대회 노익장의 힘을 보여주신 최만수 참가자입니다. 역시 축하합니다.”
이어서 한지숙, 유다인, 안정훈의 이름이 불렸다.
지금까지 호명된 사람은 여섯 명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진 서인우는 조금 전 나영희 음식 평론가의 날카로운 심사평이 계속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끝까지 살아남아 아빠의 이름을, 그리고 [서풍]의 이름을 온 국민 앞에서 부르고 싶었는데….
하염없이 내려가던 인우의 시선에 중식도를 넣어둔 가방이 보였다.
아빠의 선물.
그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속상한 생각에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마지막 한자리는 볶음 탕수육을 선보였던 서인우 참가자입니다. 축하합니다.”
나? 나라고?
인우는 자기 이름을 부른 것이 맞는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공개적으로 독설을 내뱉었던 나영희 음식 평론가가 웃음을 보였다.
일곱 명의 3차전 참가자의 이름이 전부 호명되었다.
아슬아슬하게 합격한 인우는 지금 상황이 꿈만 같았다.
“일곱 명의 합격자분들 정말 축하드립니다. 예고했던 것처럼 다음 주에 있을 3차전부터는 참가자들이 몸담은 식당명을 공개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제 개인이 아니라 각자 일하는 곳의 이름을 걸고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과연 또 어떤 요리를 보여줄지 시청자 여러분 많은 기대 바랍니다.”
카메라가 동시에 달려들며 일곱 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찍었다.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는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사회자의 마지막 멘트에 맞춰 엔딩을 알리는 화려한 음악이 온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녹화를 마치자 다리에 힘이 쫙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만 싶었다.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가던 인우의 눈에 멍하니 서 있는 최만수의 모습이 보였다.
“어르신, 2차전 합격 축하드립니다. 추운데 왜 여기 서 계세요?”
“차가 오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네. 아, 자네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전 간신히 붙었어요.”
“그런 말 말아. 오늘 떨어진 사람들 요리 실력도 대단했어. 분명 뭔가 다른 점이 있어서 합격한 거지. 훌륭해. 자신감을 가지라고.”
몇 번 보지 않았는데도 매번 칭찬을 아끼지 않는 최만수의 말에 인우는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오늘 어르신 탕수육 정말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아빠가 해주셨던 것하고 비슷해서요.”
“자네 부친도 요리사인가?”
“네. 제가 존경하는 최고의 요리사입니다.”
“피구만, 그 피를 물려받았어. 복 받은 줄 알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만수가 멀리서 다가오는 자가용을 알아보고는 데려다주겠다고 인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인우는 두 손을 흔들어가며 사양하고는 재빨리 지하철역 쪽으로 발을 옮겼다.
검은색 크고 고급스러운 자가용이 최만수 앞에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90도로 인사를 하며 차 문을 열자 최만수가 뒷좌석에 올라가 앉았다.
“회장님. 오늘도 저 청년하고 같이 계셨네요?”
“오늘은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네. 예의는 바른데 숙기가 하나도 없는 총각이야. 그래도, 요리 실력은 끝내줘.”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아직 장비서만큼은 아니야.”
장비서가 웃으며 룸미러를 힐끗 쳐다봤다.
“회장님도 참. 저도 이제 나이 오십입니다. 회장님하고 같이 한세월이 거의 25년 이란 말입니다. 표정만 봐도 알겠는데요?”
“지금 낼모레 칠십인 내 앞에서 나이 자랑하는 겐가?”
“제가 감히요?”
“허허, 으허허.”
차 안에는 최만수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뛰다시피 지하철역에 도착한 인우는 갑자기 따뜻한 지하철을 타자 패딩 속 목덜미에서 또로롱 땀이 흘러내렸다.
바퀴가 덜컹거리며 내는 굉음에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멍하니 어두운 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오늘 배운 교훈을 절대 잊지 않을 거다.
항상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할 거다.
아빠가 그랬듯이.
원룸에 도착해 가방에서 중식도를 꺼내자마자 중식도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사부, 나 머리 아픈 데 그냥 좀 얌전히 있지.”
-인우야.
중식도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인우를 불렀다.
“왜 갑자기 무게를 잡고 그래?”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거다.
“그래, 나 오늘 정말 창피했고, 많이 깨달았어.”
-내가 이런 결과를 뻔히 알고도 힘들게, 정말 말하고 싶은데 간신히 입 다물고 있었던 게 그 이유다. 이런 깨달음이 있어야 내가 알려주는 것들이 얼마나 값진 건지 느낄 수 있을 거니까.
인우의 눈이 금세 초롱초롱해졌다.
“그 말은 이제 아빠의 모든 레시피를 알려주겠다는 거야?”
-그래, 최종 관문 통과하면.
“뭐가 또 남아 있는데?
-네 말대로 저 대회에서 우승해서 서동수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면 그땐 모든 레시피를 다 공개하지.
“이건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네.”
-뭔 소리냐, 갑자기? 너 치킨 먹고 싶냐?
“아빠의 레시피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내가 그대로 죽어라 연습해 우승을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중식도가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정신없어.”
-난 이게 고민하고 사고하는 동작이야. 내 머릿속이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거라고.
순간 멈춰선 중식도가 다시 낮게 깔린 소리를 냈다.
-좋아, 딜.
“뭐?”
-남은 대회 준비는 내가 완벽히 도와주지. 정말 네 말대로 우승을 거머쥔다면 서동수의 나머지 레시피도 다 알려주도록 하겠다.
“좋아, 딜 성공.”
-잠깐, 잠깐만. 내가 너무 손핸가? 이거 손익계산을 좀 더 따져보고...
“물리기 없기. 오늘 고생 많았어. 난 잔다.”
-이게 뭔가 찜찜한데….
* * *
2차전 방송이 있는 금요일 저녁.
일찍 회사에서 나온 김형식이 아내 이영주, 아들 김원상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 혼자 본다니까 굳이 집까지 찾아와서는….”
“아버지, 내가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니까요. 이런 건 다 같이 봐야 해요.”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김원상이 이영주가 내려놓은 과일을 먹으며 히죽히죽 웃어댔다.
“여보, 우리 원상이가 오랜만에 칭찬 듣고 싶어서 그런 건데 같이 봅시다. 난 좋기만 한데….”
드디어 방송이 시작되었다.
사회자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끝나자 경쾌한 음악과 함께 참가자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김원상의 모습이 보이자 김형식이 힐끔 아들을 쳐다봤다.
3차전부터는 [만가복] 마포지점의 점장이라는 소개가 붙게 된다.
다시 말해 아들의 요리가 [만가복]의 평가를 대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김원상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온 국민이 보는 방송에서 전국 최고의 중화요리 맛집은 바로 [만가복]이라는 증명을 하게 된단 말이다.
빠르게 돌아가던 머릿속 계산을 끝낸 김형식은 다른 참가자의 요리하는 장면을 꼼꼼히 모니터했다.
중식도를 사용하는 스킬이나 웍을 움직이는 손목 스냅을 보면 그 요리사의 실력을 대충 알 수 있었다.
“다들 실력이 만만치 않군.”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만 모인 자리니까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정말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요.”
방송에 흘러나오는 서인우의 요리를 보던 김형식의 눈에서 순간 작은 지진이 일었다.
“왜…. 아버지, 갑자기 왜 그러세요?”
“저 요리법하고 모양은….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저, 저자 이름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