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10화 (10/200)

제10화.

이정복 대가의 반응에 다른 심사위원들도 서둘러 인우의 짬뽕을 시식했다.

심사위원들의 표정에 만족스러움과 놀라움이 담겨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이정복 대가의 표정은 너무 심각해 보여 속마음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서인우 참가자. 이 짬뽕은 누구한테 배웠나요?”

“제 사부님께 배웠습니다.”

이정복 대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시식을 위해 덜어 놓은 작은 그릇에 담긴 짬뽕 국물을 전부 들이켰다.

다른 참가자들의 시선이 인우에게 몰리는 것을 의식한 이정복 대가가 급히 옆에 있는 최만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참가자에 비해 해물 양보다 채소량이 눈에 띄게 많은 빨간 짬뽕은 유독 맑은 국물 색을 자랑했다.

“채수가 제대로 우러나서 정말 너무 깔끔하고 시원합니다. 특히 배추의 단맛을 아주 잘 살렸네요.”

유경동 대가의 심사평이었다.

마지막 1조에서도 서인우와 최만수를 포함해 다섯 명이 2차전으로 가는 티켓을 거머쥐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실 여기저기서 나는 맛있는 냄새에 뱃속에서 요동치는 걸 참느라 내가 제일 수고가 많았던 것 같긴 합니다. 이거 정말 고문이 따로 없네요.”

심사위원들과 열다섯 명의 1차전 합격자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은 특별 방송으로 장장 두 시간에 걸쳐 1차전의 경합을 펼쳤습니다. 합격한 열다섯 명의 참가자들은 일주일 후에 있을 2차전을 열심히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가 사회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1차전 합격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담았다.

“과연 2차전의 대결 과제는 뭐가 될지 정말 궁금한데요. 또 얼마나 멋진 요리로 저와 시청자분들을 괴롭힐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궁금해도 일주일만 꾹 참고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는 계속됩니다.”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리며 숨 막히는 듯한 1차전의 막이 내렸다.

스튜디오를 막 빠져나가려는데 최만수가 빠른 걸음으로 서인우의 뒤를 따라왔다.

“거기 서인우 씨.”

“네, 어르신.”

“내가 원래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데, 오늘 긴장되고 정신없는 와중에 그쪽 요리에 팔려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수. 그래서 다음엔 절대 같은 조 안 하려고 이름을 외웠지.”

인우는 말없이 작은 웃음으로 답했다.

“젊은 사람이 중식도를 쓰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비장의 무기인듯한 그 육수가 정말 궁금했다우. 내 죽기 전에 언제 기회가 되면 꼭 맛보고 싶은 그런 향이었어.”

“쑥스럽지만 언제든 기회가 되면 꼭 만들어서 맛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어디 사람이유? 가게는 어디에 있고?”

잠시 멈칫했던 인우가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저는 서울 마포에 살고 있습니다. 가게는 이번 대회 마치고 곧 시작할 겁니다.”

“그럼 나한테 잊지 말고 알려주슈. 내가 개업하는 날 꼭 가지. 백 짬뽕 먹으러.”

“네, 어르신. 잊지 않고 초대하겠습니다.”

“궁금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멀리 서산에서 왔수. 손주 놈이 하도 나가보라고 해서.”

인우는 그렇게 멀리서 왔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거의 70이 다 되어가는 듯한 연세에 이런 대회에 참가한 그 열정이 부러웠다.

‘저 나이에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너무나 먼 훗날이기에 막연하기만 한 인우는 한겨울 찬바람이 훅 패딩 속으로 밀고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어르신. 그럼 다시 서산으로 내려가시는 건가요?”

“오늘은 서울 사는 아들놈 집에서 자고 내일 내려가야지. 차 타면 몇 시간 안 걸려.”

“날씨도 추운데 아드님 집은 어떻게 가는지 아세요?”

“에끼, 날 시골 노인네 취급하지 말게. 서울 지리는 빠삭해. 난 저쪽으로 가면 되네. 다음 주에 보세나.”

“예, 어르신.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지하철을 타고 원룸으로 돌아온 인우는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 짬뽕을 맛보던 이정복 대가의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분명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다음 과제가 뭐가 될지 기대와 걱정이 한데 섞여 복잡한 밤이었다.

수요일에 녹화하고 금요일 저녁에 전국으로 방송이 나갔다.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인우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엄마와 대전에 있는 이모네 식구, 친구 준형과 대학 동기들, 그리고 아르바이트 하는 최영만 아저씨네 가게 사람들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방송이 나간 다음 날부터 알 수 있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동창부터 잊고만 싶었던 군대 선임들까지, 심지어는 고등학교 때 같은 학원 다녔다는 여학생한테까지 연락이 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몇 년간 그 흔한 SNS도 하지 않는 그를 용케도 찾아 연락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번 그들의 정보력에 놀람을 표하는 순간이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요리 연습을 위해 찾아간 최영만 아저씨네 가게 [양자강]에는 점심시간이 지나 두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사람들 외엔 한가한 모습이었다.

“우리 서스타 왔어?”

“아저씨 창피하게 왜 그러세요?”

“나 아는 사람들이 방송 보고 난리가 났어. 저 인물에 요리하니까 꼭 무슨 드라마 보는 것 같다나? 사인받아달라고 장난도 아니다.”

최영만의 목소리가 컸는지, 식사하고 있던 사람들이 인우를 힐끗 쳐다보더니 자기들끼리 수군대기 시작했다.

“맞네, 맞아. 실물이 더 잘생겼네.”

“엄마, 들리겠어. 좀 작게 말해.”

인우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인우를 지켜보고 있던 주방장 안복동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형, 손목은 좀 어때요?”

“계속 써서 그런지 빨리 낫지를 않네.”

“제가 대회만 끝나면 바로 와서 일 도울게요. 확실히 치료하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해요.”

“나 돕는다고 괜히 빨리 떨어지지는 말아라.”

“네. 끝까지 갈 겁니다.”

안복동이 피식 웃어 보였다.

“다음 과제는 뭔지 힌트도 없냐?”

“네. 중식 요리사라면 누구나 아는 메뉴일 겁니다. 요리라는 게 똑같은 이름이라도 가게마다 셰프마다 다 맛이 다르니까요.”

대한민국에 알려진 모든 중식 메뉴는 다 연습해 본 인우였다.

어떻게 보면 흔한 기본 메뉴를 가장 맛있게 만드는 거 그게 진짜 실력일 것이다.

인우는 요리 연습이 허락된 주방 벽 쪽 조리대로 걸음을 옮겨 가방에 챙겨온 각종 재료와 중식도를 꺼냈다.

안복동이 홀에 나간 틈에 중식도가 또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치, 실물이 잘생겼다고? 그런 소리도 듣고 좋겠다?

‘별루.’

-잘 생겼다는 데 별루?

‘어려서부터 워낙 자주 들어서.’

-잘생긴 건 모르겠지만, 너 잘났다.

‘사부. 오늘 할 거 많아. 집중하라고.’

-어쭈, 이보세요? 내가 사부야, 네가 아니고.

인우는 주말 내내 집에서 연습했던 요리 들을 제대로 된 화력으로 문제점들을 생각해가며 다시금 요리했다.

웍 위에까지 올라오는 화력의 차이는 확실히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튀김은 더욱 바삭했고, 불맛 또한 확실히 더 살릴 수 있었다.

본선 2차전이 열리는 수요일, 스튜디오는 열다섯 명의 1차전 합격자가 동시에 경쟁할 수 있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웅장한 음악 소리와 함께 사회자 전민규가 무대에 모습을 나타냈다.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아서] 본선 2차전의 시작을 알립니다. 지난 1차전에 합격한 총 열다섯 명 참가자의 얼굴이 지금 화면에 잡히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카메라가 동시에 2차전을 준비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찍어댔다.

“이 중에 최고의 고수로 남을 1인은 과연 누가 될지 시청자 여러분들도 한 번 맞춰 보시길 바랍니다.”

카메라에 잡힌 참가자들의 얼굴에 열정과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2차전 대결과제가 뭐가 될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심사위원으로 수고해 주시는 박정원 요리전문가에게 마이크를 잠시 넘기겠습니다.”

심사위원석에 있던 박정원 요리전문가가 특유의 눈웃음을 잠시 지어 보이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2차전의 대결과제는 바로 가장 기본 요리인 탕수육입니다.”

“탕수육이라고요?”

사회자 전민규의 질문에 박정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1차전 때처럼 탕수육이 쓰여있는 하얀색 휘장이 펼쳐졌다.

“네, 모든 참가자한테 똑같은 돼지고기 등심을 제공할 겁니다. 탕수육에도 종류가 많이 있죠?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부먹이냐 찍먹이냐 하는 일반 탕수육부터 찹쌀 탕수육, 사천 탕수육, 그리고 최근에 유행이 된 꿔바로우까지 다 크게 잡아 오늘 대결과제에 포함됩니다.”

“그럼, 오늘 전국에 있는 여러 종류의 탕수육을 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전민규씨도 알겠지만, 동네 중화요리 집마다 탕수육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똑같은 고기와 같은 조리법으로 요리를 해도 저마다 다른 맛을 내고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이기 때문에 대결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게 2차전까지의 심사 포인트입니다. 비싼 재료에 희귀한 요리법이 아닌 철저히 맛으로 승부를 겨루는 거죠.”

“네, 박정원 님의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럼 참가자들은 지금 바로 팬트리로 가서 각자 필요한 재료를 가져와 주시길 바랍니다.”

인우는 대결 주제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탕수육이라면 가장 많이 연습했던 메뉴라 특히 자신이 있었다.

모든 참가자가 필요한 재료를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자 지금부터 60분 동안 최고의 탕수육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3차전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단 일곱 명. 참가자분들 모두 최선을 다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2차전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시작을 알리는 우렁찬 목소리에 참가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인우는 제일 먼저 큰 볼에 감자전분과 옥수수 전분을 섞어 넣고 물을 부어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사부, 오늘도 잘해보자고.’

-난 항상 완벽해. 다시 말해 너나 잘하세요.

소스에 들어갈 채소와 파인애플을 아빠의 레시피 대로 정확하게 썰어 준비했다.

신선한 고기도 먹기 좋게 썰어 육즙과 향을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가볍게 간만 해놓았다.

전분이 딱딱하게 굳자 위에 투명한 물을 따라내고, 거기에 식용유를 넉넉하게 부었다.

잘 녹은 치즈처럼 반죽이 부드러워지자 손질한 고기를 넣고 바싹하게 튀겨 건져 놓고, 다른 웍에 소스를 만드는 동안 공기와 접촉한 고기를 다시 한번 튀겼다.

마지막으로 잘 튀겨진 고기를 소스웍에 부어 골고루 소스가 밸 수 있게 빠르게 볶아 접시에 올렸다.

극강의 바삭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서풍]의 서동수 셰프의 레시피였다.

한편 대각선 방향에서 찹쌀탕수육을 만들고 있던 김원상이 가자미눈이 되어 인우의 요리를 노려봤다.

‘소스를 붓거나 따로 내놓지 않고 볶아서 내놓으면 눅눅해 질 텐데...저거 완전 초자 아냐?’

지난번 백 짬뽕을 맛본 이정복 대가의 심상치 않은 표정과 코를 자극하는 불 향에 인우를 경계 대상으로 찍어놨던 김원상은 얼굴에 자신감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제한 시간을 10분 남겨놓고 하나씩 벨을 누르며 완성된 요리를 내놓았다.

날카로운 눈으로 요리 과정을 꼼꼼하게 살피던 심사위원들이 벨소리에 맞춰 우르르 몰려가 시식을 시작했다.

“이거 고기를 뭐로 잰 겁니까? 자기가 만든 요리를 맛도 안 보고 지금 우리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고기향은 다 사라지고 향신료 맛만 강해서 난 도저히 못 삼키겠네요.”

처음부터 난도질을 당한 참가자의 얼굴이 한겨울 홍시처럼 붉게 물들었다.

심사위원들이 최만수 앞에 서서 서로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본 인우는 처음 보는 탕수육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야, 저거 진짜 추억 돋는다.

중식도의 감탄 섞인 말이 들렸다.

‘난 저런 탕수육은 처음 보는데?’

-너 세, 네 살 때 가끔 네 아빠가 옛날 탕수육이라고 만들어 줬었는데... 하긴 그걸 기억하면 네가 천재 소리 들었겠지.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앞에서 구라치다 걸리면 죽는 수가 있다.

인우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심사평에 귀를 기울였다.

콰삭. 콰사삭.

마치 봉지 과자를 씹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박하지만, 엄청난 기술이 들어간 탕수육입니다. 정말 고소하고 맛있네요.”

유경동의 심사평에 옆에 있던 심사위원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제 인우의 탕수육을 맛볼 차례였다.

“서인우 씨. 이건 부먹 찍먹도 아니고 볶먹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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