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7화 (7/200)

제7화.

삼지창 같은 닭발을 양손에 든 인우의 눈에서 묘한 빛이 뿜어나왔다.

“사부?”

-왜 그런 눈으로 부르는데?

“재료는 완벽하다고 했지? 그런데, 국물맛이 미묘하게 달라. 그렇다면 육수가 차이점이라는 거겠지?”

-요놈. 제법인데?

닭발을 심하게 노려보던 인우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이걸 지지고 볶고 튀기고 다 해볼 거야. 그러다 보면 비법을 찾아낼 수 있겠지.”

-자네의 성공을 기원하네. 물론 난 또 밤새는 거겠지? 후학양성이라는 게 참으로 고되고 지루한 길이지. 하지만, 이 몸이 앞장서서 그 길을….

“시끄럽고! 준비!”

-이번에도 작게 말했는데….

닭발을 볶은 후에 육수를 우려냈다.

다시 구운 후에, 또 튀긴 후에 육수를 우려내 구분해 만들어 놓은 인우는 밤을 꼬박 새워 세 가지 버전의 짬뽕 국물을 만들었다.

주방의 작은 창 안으로 어슴푸레 새벽하늘이 쓱 고개를 내밀었다.

빨간 국물을 계속해서 먹어서인지 속이 싸르르 쓰렸다.

정말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든다더니.

같은 닭발로 만든 육수라도 닭발을 어떻게 요리해서 육수를 만드는지에 따라 맛에 차이가 느껴졌다.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확인이 필요했다.

아니, [서풍]의 이름을 걸고 대회에 나갈 확신이 필요했다.

친구 준영과 엄마 이지희가 같은 육수로 만든 짬뽕을 선택했다.

아빠의 그 맛이라고.

드디어 [서풍]의 맛을 조금씩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낮에는 집에서, 밤에는 최영만 아저씨네 가게에서 요리를 연습했다.

1차전의 메뉴만 알려졌을 뿐, 그다음엔 어떤 메뉴로 경쟁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우는 처음 중식도를 만나서부터 시작한 요리들에 아빠의 맛을 내기 위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연습에 몰두했다.

* * *

7시가 조금 넘어간 시간의 [만가복] 마포지점은 테이블마다 손님이 꽉 차 정신이 없었다.

심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애써 감추며 김원상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8시? 어디라고? 알았어. 내가 아주 바쁜 몸이긴 한데 시간 한 번 내보지.”

친구들과 한잔할 생각에 기분이 더 좋아진 김원상의 핸드폰이 심통을 부리듯 울어댔다.

지이이잉.

액정에 떠오른 아버지 김형식의 이름을 보자 짓고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네, 아버지.”

-지금 바로 회사로 들어와.

“지금이요?”

-30분 안에.

뚝.

전화는 가차 없이 끊겼다.

‘괴팍한 노인네,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바로 끊어버리네. 내가 정말 저 노인네가 앉은 자리 때문에 참는다.’

속으로 씩씩거리던 김원상은 매니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난달에 새로 뽑은 외제 차가 반짝반짝 빛을 뿜어내며 반기는 것 같았다.

“요 이쁜 것. 형 기다렸어?”

손바닥으로 차를 가볍게 툭툭 두 번 치고는 바로 운전석에 앉아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승차감 아주 맘에 들어, 내가 1년은 타 줄게. 영광이지?”

창밖에서 보면 마치 누군가와 통화라도 하는 듯 혼자 중얼거리며 본사 건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멈춰서고 김원상이 모습을 나타내자 앉아 있던 비서 둘이 일어나 깍듯이 인사했다.

그중 한 명이 문 앞에 서서 노크하자 안에서 김형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단정히 한 김원상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던 김형식의 시선은 데스크 위 모니터에 꽂혀 있었다.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니터에는 [서풍]의 김동수가 요리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아니 회장님은 이 사람한테 왜 이렇게 집착하세요? 옛날 친구라면서요?”

“집착? 어찌 보면 집착이지.”

다시 화면을 뒤로 돌려 인터뷰 영상을 말없이 지켜보던 김형식이 화면을 멈췄다.

“넌 평생 이런 소리 듣는 요리를 만들 수 있겠냐?”

“뭐 별거 아닌데요? 난 더 대단한 평가를 받을 자신 있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요리, 한번 먹어보면 평생 잊지 못할 맛…. 이게 바로 저자가 만든 음식에 대한 평가다.”

“그래서요?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뭔데요? 나 약속 있는데….”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 제일 바쁜 금요일 저녁에 약속이나 잡고….”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한숨과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김형식이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좀 전에 봤던 화면과 다른 내용이 펼쳐져 있었다.

“이거 요리 경연대회 광고네요?”

“그냥 경연이 아니라 중화요리 최고의 고수를 찾는 대회다. 이미 알려진 대가가 아니라 숨어있는 고수를 찾겠다는 취지지. 다시 말해 앞으로 이 대한민국 중식계를 손안에 쥐게 될 인물을 찾는 거라고.”

김원상은 갑자기 바쁜 사람을 불러서 이 얘기를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새로 스카우트 해온 셰프한테 대회 준비를 시키라는 얘기인가?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던 김원상의 귀에 믿지 못할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도전해봐.”

“네? 우리 지점 차 셰프가 아니고요?”

“네가 도전해서 좀 전에 보여준 저자가 들었던 것보다 더 대단한 평가를 들어보라고.”

“이렇게 갑자기….”

“계속 배우고 열심히 연습한다면서? 한때는 세계대회에서 상도 받았던 놈이 막상 실력을 평가받으려니까 자신 없나 보군.”

이 말이 김원상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래 봬도 평생 요리만 하며 살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한테서 잘했다는, 맛있다는 그 한마디만 들을 수 있었다면...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중화요리 체인점을 운영하는 회장의 외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김형식이 요리하는 것을 직접 보고 맞아가며 호되게 배우며 자란 김원상은 제일 인기 많은 [만가복] 마포지점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중화요리의 숨어있는 고수?

정 찾고 싶다면 드러내 주지.

“못할 것도 없죠. 저도 요리 인생 1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입지도 다시 굳히고, 뭔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기회다. ‘역시는 역시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하란 말이야! 알아들어?”

“걱정하지 마세요. 우승은 이미 정해진 거니까요.”

회장실을 나온 뒤에도 한참 흥분해 있던 김원상은 핸드폰으로 다시 한번 경연대회 공고를 확인했다.

‘내 자리를 굳건하게 할 수 있는 기회다. 어차피 심사위원들도 다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알아서들 기겠지.’

벌써 8시도 30분이나 지난 걸 확인한 김원상은 주차장으로 급하게 발을 움직였다.

* * *

대회 전에 다시 엄마 이지희를 찾은 인우는 그가 만든 요리를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먹기만 하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힘없이 야윈 손을 맞잡은 채 몸을 낮춰 천천히 눈을 맞추었다.

“엄마, 이제 내가 아빠의 뒤를 이어도 되겠어? 그 맛이, 아빠의 맛이 느껴져?”

“...”

“아빠의 그 이름이 다시 불리는 날이 곧 올 거야.”

이지희는 아들이 잡은 손을 빼고는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커피와 과일을 들고 모자 곁으로 다가온 인우 이모가 테이블에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대회가 언제라고?”

“2주 후에 예선전부터 있어요.”

“그럼 너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야?”

“예선전을 제외하고는 방송으로 진행되고, 결승에서는 인기 투표도 실시간 문자 투표로 한다고 들었어요.”

“오늘 먹어 보니까 자신감 가져도 되겠어. 형부가 해준 맛이 거의 그대로 느껴져. 우리 인우 정말 대단하다.”

인우는 아빠가 남겨주신 선물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느꼈다.

“인우야. 지난번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뭔데요, 이모?”

“형부도 수타면을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뭔가 느낌이 달라. 이건 네가 개발한 방법이야?”

인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모를 쳐다봤다.

“그건 제 영업 비밀인데요?”

“뭔가 너만의 비결이 있긴 있구나.”

“농담이에요. 그냥 인터넷으로 영상 보면서 밤낮으로 연습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해준 것과 똑같이 안 돼서 고민이에요. 혹시 이모, 무슨 차이인지 아시겠어요?”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 그저 내 입맛에는 형부 거가 좀 더 부드러웠던 것 같달까?”

조용히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지희가 포크로 사과를 찍어 불쑥 내밀었다.

“언니가 너 먹으라잖니?”

“아니.”

인우와 인우 이모는 동시에 사과와 이지희를 번갈아 쳐다봤다.

“엄마. 이 사과가 뭐? 혹시 면 만드는 거랑 사과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거예요?”

이지희는 그 뒤로 또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사과?

그래, 그거였어.

사과로 면을 탱탱하면서도 부드럽게 하는 거였어.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인우는 냉장고에 있는 사과를 꺼내고 커다란 스테인레스 볼과 밀가루를 준비해 면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사과는 뭐에 쓰려고?

인우 눈앞에 둥둥 떠 있던 중식도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사과와 밀가루가 같이 있는 것만 봐도 내가 뭘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사과파이?

“장난해?”

-다 알면서 말하지 못하는 내 심정을 너는 알까? 아, 이 사나이의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끝까지 알려줄 생각은 없군. 좋아, 이번에도 내가 알아내지.”

인우는 사과를 깨끗이 씻어서 믹서기에 잘라 넣고 갈았다.

밀가루에 곱게 간 사과즙을 넣고 정성스럽게 반죽을 했다.

다음 날 24시간 숙성된 면을 길게 치대 면을 만들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먹어 본 면은 과연 밀가루 냄새도 나지 않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어때? 네가 원하는 맛이 나오냐?

“아빠가 만들어 준 면에서는 이렇게 사과 향이 진하게 나오지 않았는데…. 그저 밀가루 냄새만 없애줬을 뿐이었어.”

-그럼 다시 방법을 찾아야겠지?

실망한 인우는 중식도를 노려봤다.

-뭐? 왜? 그러다 한 대 치겠다.

“정말 한 대 때리고 싶다. 간단한 방법만 좀 알려주면 안 돼?”

-응, 안돼.

“좋아. 오늘부터 잠잘 생각은 하지 말라고. 내가 어떻게든 비법을 찾아낼 거야.”

그날 이후로 인우의 주방은 불이 꺼질 날이 없었다.

* * *

[만가복] 마포 지점의 주방에서 오랜만에 셰프복을 입은 김원상은 커다란 웍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1차전 메뉴인 짬뽕을 연습한 지 1주일.

모양은 아주 흡족했지만, 뭔가 맛이 맘에 들지 않았다.

“점장님.”

“어, 왔어? 요 며칠 내가 만든 요리 솔직히 다 지켜봤지?”

“네.”

“뭐 해줄 얘기 없어?”

“뭐 딱히….”

김원상은 차은석 셰프의 잘난척하는 듯한 말투가 영 거슬렸다.

“그 정도로 완벽하다는 얘긴가?”

“솔직히 모양은 제법 그럴싸했습니다. 중요한 건 맛이니까요.”

“내가 그래서 차셰프를 오라 한 거야. 오늘 이 자리에서 평가를 한 번 해달라고.”

차은석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평가만 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그럼 뭐 또 할 게 있나?”

“아, 저는 대회 준비를 도와드려야 하는 건가 해서 묻는 겁니다.”

“내 실력을 우습게 아는군. 그런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다른 놈들보다 이정복 대가 수제자라는 그쪽 평가를 들어보고 싶을 뿐이라고.”

입꼬리를 살짝 틀어 작은 웃음소리를 내뱉은 김원상이 팔팔 끓는 물에 면을 넣어 삶기 시작했다.

그릇에 면을 넣고 웍에 만들어 놓은 각종 채소와 해물, 짬뽕 국물을 골고루 담았다.

차은석은 우선 냄새를 깊게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는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솔직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진하고 깊은 맛에 놀란 차은석은 한 번 더 국물을 먹고 나서는 면과 해물, 채소를 골고루 섞어 먹었다.

“어때? 이 정도면 우승하겠지?”

“점장님. 솔직하게 말씀드려요?”

“그래야겠지.”

“이 짬뽕 한 그릇을 얼마에 팔아야 합니까?”

김원상은 대답 대신 얼굴을 찡그렸다.

“이렇게 비싼 해물을 잔뜩 넣고 만들었다가는 황제짬뽕이라고 불리기 딱 좋겠습니다. 재료는 어마어마한데 만약 정해진 재료로만 대결해야 한다면요?”

“요리 좀 배웠다고 어디서 시건방을 떨어? 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래?”

“그럼 왜 나한테 평가를 부탁했습니까? 다 내 실력을 알고 부른 걸 텐데요?”

김원상은 차은석 또한 이번 대회에 참가할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형식 회장으로부터 참가를 거부당한 이후로 불만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이번 대회에서는 [만가복]의 차기 대권주자 김원상이 반드시 수면에 떠 올라야 하니까...

그 누구도 걸리적거리는 건 다 치워버려야 했다.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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