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김형식의 중화요리 전문점 [만가복]의 마포지점.
토요일 오후라 벌써 예약이 다 끝난 상태였다.
“이제 겨우 7시인데 자리가 없어요?”
부부가 네, 다섯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안내를 맡은 직원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주말은 일찍 다 예약이 차서요. 조금 대기해 주시면 자리가 나는 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대기시간은 30분 정도로 예상됩니다. 죄송합니다.”
부부는 몇 걸음 떨어져서 한참 얘기하더니 안내 직원에게 번호표를 받아 입구 쪽 대기석에 앉았다.
“오늘은 예약이 꽉 찬 건가?”
마포지점을 맡은 김원상이 안내 직원에게 물었다.
“아, 네. 점장님. 주말은 항상 일찍 예약이 차니까요.”
김원상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비싼 돈 주고 인기 있는 셰프를 데려오길 잘했네. 이대로만 쭉 가준다면 노인네도 더 꾸중하진 않겠지.’
주방에선 올 1월에 새로 영입한 차은석 셰프가 주문지를 보면서 보조 셰프 둘과 같이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벽 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여러 개의 웍에서 불길이 크게 일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화끈한 열기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
“채소를 센 불로 더 빨리 볶아야지. 이렇게 숨이 죽으면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가 없다고!”
차은석 셰프가 옆에서 청경채와 죽순 양파 등을 볶고 있는 보조셰프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방을 힐끔 들여다보던 김원상은 아버지 김형식에게 처음 요리를 배웠을 때가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파르타식 요리 수업은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출전한 상하이 중국 요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는 칭찬 한마디 듣지 못했지만, 연꽃 씨로 장식한 찰밥에 광동식 홍샤오로우를 먹음직스럽게 장식해 맛과 모양을 잡았다는 호평을 받았었다.
한때 요리에 빠졌었던 지난날을 잠시 회상하던 김원상은 윤기 나게 잘 볶아지고 있는 해물과 채소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층에는 양쪽으로 원형 테이블이 있는 룸이 두 개씩 자리 잡고 있고, 홀에는 4인 테이블 8개와 6인 테이블 6개가 고풍스러운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2층에는 10명 이상 앉을 수 있는 단체 룸이 2개 준비되어 있었다.
넓은 홀에 손님이 꽉 차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김원상의 입꼬리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하얗게 부풀어 오른 누룽지 위에 각종 해물과 여러 가지 버섯 그리고 죽순, 청경채 등이 들어있는 걸쭉한 소스를 부으며 홀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했다.
“여기 맛있어. 얼른 먹어봐!”
치이익 소리가 가라앉자 맞은 편에 앉은 남자가 누룽지 조각 위에 새우를 하나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짜지 않고, 느끼하지도 않고 맛있네.”
“그렇지? 여기 진짜 맛집이라니까.”
“응, 그래도 [서풍]에서 먹었던 그 맛은 따라갈 수가 없지.”
“자기는 거기가 없어진 지 몇 년인데, 아직도 [서풍] 타령이야.”
“그게 아니고, 워낙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어서.”
둘의 대화가 귀에 들려오자 김원상의 입꼬리가 내려가다 찌그러졌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정말 아직도 [서풍]하고 비교가 된다니. 사람들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지우기 위해 내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
김원상의 눈썹 사이에 얇은 주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 * *
“너 진짜 복학 안 할 거야? 너 더 휴학하면 그냥 대학 중퇴로 끝난다고.”
모의 면접을 하고 왔다고 양복을 차려입은 준형이 인우를 붙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나 이제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었다. 아빠의 [서풍]이 다시 불어오는 걸 곧 볼 수 있을 거야.”
준형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너 전에 한 말이 진심이었어? 아빠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했던 말이?”
인우는 준형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했다.
“나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다. 이제 아빠의 [서풍]을 이어 나 서인우의 [서풍]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내 인생을 걸었어.”
준형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정말? 초등학교부터 자그마치 12년을 잠 못 자가며 들어간 대학인데, 아쉽지 않겠어?”
인우는 준형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난 이미 결심했다. 더는 망설이지 않으려고.”
준형은 인우의 눈에서 느껴지는 진정한 열정을 보았기에 더 묻거나 말하지 않았다.
준형이 다녀간 주말에 대전에 사는 인우의 이모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우야, 주말인데 오늘 약속 없어?”
“주말이라고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 아르바이트는 몇 시에 끝난다고 했지?”
“여덟 시에 끝나요.”
“그럼 그 시간에 오랜만에 이모부랑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
“좋죠. 점심부터 굶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돼지 한 마리 잡자 그냥.”
인우는 갑자기 걸려온 이모부의 전화를 끊고는 무슨 일인지 몹시 궁금했다.
아빠를 유독 잘 따랐던 이모부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누가 보면 친형제 간인 줄 착각할 정도로 장례식에서 오열했었다.
실의에 빠져 웃음을 잃은 인우 엄마를 같이 살자고 모셔 간 것도 이모부였다.
토요일이라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 손님이 많았다.
일하며 인우는 계속해서 시계를 쳐다봤다.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상시와 달라서였을까?
약속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긴장되었다.
토요일 저녁의 삼겹살집은 문을 열자마자 뿌연 연기가 가득했고, 30분만 앉아 있어도 뭐 먹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인우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둥그런 테이블에 쉬익 소리가 나는 연통을 사이에 두고 이모부와 마주 보고 앉았다.
상추와 깻잎이 가득 담겨있는 접시 옆으로 세 개의 나눔 접시 위에 참기름 소금장과 쌈장, 그리고 보랏빛을 띠는 굵은 죽염이 놓여있었다.
인우 이모부는 소주 한 병에 맥주 두 병을 시켜서 요즘 은행원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폭탄주 제조법이라며 소맥을 만들어 주었다.
“이모부, 이 소맥 제조하는 솜씨로 승진하신 거 아닙니까?”
“자식, 눈치 한번 빠르네, 마셔 인마!”
대전에서 가장 잘나가는 은행에서 남들보다 승진도 빨리 되어 이미 안정된 생활을 하는 인우 이모부였다.
인우가 막 제대했을 때 등록금 걱정하지 말고 빨리 복학하라고 인우 통장에 넣어준 등록금은 아직 그대로 있는 상태였다.
“인우야. 학교는 정말 안 갈 거야? 이모한테 듣자 하니 아빠의 [서풍]을 이어 나갈 생각이라고?”
“네, 제대하고 오후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도 안 자고 아빠의 맛을 내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하고 있고요.”
“그럼 준비를 마치면 가게를 시작해 보려고?”
“네, 계획은 그렇지만 월세며 보증금 등을 내려면 돈부터 모아야죠.”
“네가 정말 진심이면 이제 내가 나서야겠구나.”
갑자기 심각해진 이모부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인우 이모부가 그가 다니는 은행 상호가 찍혀있는 통장과 도장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이모부, 이게 뭐예요?”
“안에 열어서 봐봐!”
통장의 첫 장을 열어본 인우는 자기의 이름이 인쇄된 것에 놀라 물었다.
“이건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인데요?”
소주를 잔에 가득 채워 단숨에 마셔버린 인우 이모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형님이 너 초등학교 들어갈 때 우리 은행에 찾아와서 만들어 놓은 통장이야. 형님 사고 나기 두 달쯤 전에 갑자기 날 찾아와서 이걸 맡겨 놓으셨어.”
인우는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 연신 눈을 깜빡였다.
“형님이 혹시라도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꼭 필요할 때 이걸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셨지.”
“아빠가요?”
“응, 난 별걱정을 다한다고 생각하며 부탁이라 받아만 둔 거였는데…. 형님은 꼭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길 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한테 맡겨놨었지.”
인우는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술이 잔뜩 취한 이모부가 부검해야 했다고 울부짖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부! 이모부는 아직 아빠의 죽음이 실족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인우 이모부는 다시 빈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는 인우를 보고 웃어 보였다.
“나는 말이다. 아니다….”
“뭔데요. 이모부?”
인우 이모부는 묵묵히 앞에 놓인 잔을 비웠다.
“다 지난 일이다. 인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 형님은 이미 가고 없는데…. 그 얘긴 그만하고 네가 정말 아빠의 [서풍]을 이어갈 자신이 있다면 이 돈으로 작게 시작해 보자!”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저 진짜 자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냥 장사해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아빠의 [서풍]을 다시 일으키고 싶은 겁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 맛을 똑같이 만들고 싶은 거라고요.”
인우 이모부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인우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열심히 할 자신은 있는데, 아직 그 맛을 똑같이 만들어 내지는 못했어요. 거의 비슷하게 따라왔는데….”
인우는 앞에 놓인 잔을 말없이 비웠다.
“반드시 해낼 겁니다. 가게는 그때 가서 시작할 거고요.”
“알아들었다.”
“제 이름뿐 아니라 아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거니까 정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자, 한잔해. 우리 인우 이제 다 컸다. 형님이 좋아하시겠다. 아! 나도 진짜 기분 좋다.”
인우 이모부는 인우에게 술을 따라주며 좀 전보다 커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준비되면 이 이모부가 가게 알아보고 계약까지는 도와줄 테니 한 번 날개를 펼쳐봐!”
소주 반병이 주량인 인우 이모부는 거의 한 병을 다 비우고 기분 좋다는 말만 반복하며 인우를 여러 번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이모부! [서풍] 이제 다시 불 겁니다.”
인우는 아빠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잔에 담긴 소주로 꾹꾹 눌러 보았다.
며칠째 아버지가 남긴 통장을 보고 또 보았다.
아버지 서동수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왔다.
뭔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의 인우는 냉장고를 열어 새벽에 수산시장에서 사 온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중식도가 다시 꿈틀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뭔가 비장해 보인다. 왜 그래?
“사부, 이제 우리 아빠의 인기 요리였던 양장피를 도전해보고 싶어.”
-그건 쉽지 않은데….
“그래도 지난번 아르바이트 가서 배운 양장피에 아빠만의 비법을 더하면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치, 아빠만의 비법을 나만 알고 있지. 아 능력 쩐다.
“사람들이 아빠의 양장피는 특별하다고 정말 좋아했었어. 배우 송혜미도 아빠의 요리 중 양장피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게 기억나.”
-아, 송혜미 진짜 예뻤는데, 내가 그때 네 아빠 서동수한테 송혜미 손 한번 만져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네 아빠만 악수하고 사진까지 찍고, 내가 정말 얼마나 부러웠는지.
“내가 꼭 성공해서 사부를 손에 들고 송혜미랑 같이 기념사진 찍도록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이거 녹음해놔, 각서를 쓰든지, 아니 공증을 받아놔야 하나?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걱정하지 말고, 사부 준비!”
인우는 중식도를 손에 들고는 빠른 속도로 채소들과 해물들을 보기 좋게 손질했다.
-[서풍]의 양장피가 특별했던 건 각 재료의 온도가 달랐기 때문이지.
“내 기억에도 여러 가지가 섞이면서 오묘한 맛을 냈던 것 같은데, 그걸 재현해 보고 싶어.”
-차가운 요리를 바깥쪽으로, 그리고 따뜻한 요리를 그 안쪽에 플레이팅을 해서 또 각각에 맞는 소스를 뿌려 주고, 그걸 재빨리 섞어 먹는 거지.
“알았어, 내가 해볼게.”
인우는 편으로 썰어놓은 오이와 벌집 모양의 오징어, 편육 등을 가지런히 접시의 가장자리 쪽으로 둥글게 깔아 놓았다.
그 가운데에 굴 소스와 여러 향신료 등을 넣어 화력을 최대로 해 볶은 각종 해물과 채소를 올렸다.
차가운 오이와 오징어 등의 재료와 가운데 따뜻한 해물 채소볶음의 경계에 양장피를 올려 마치 화려한 꽃처럼 플레이팅을 했다.
-이제 재빨리 섞어!
인우는 예전에 아빠가 했던 것처럼 하얀 꽃잎 같은 양장피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빠른 속도로 섞었다.
조심스럽게 한 입 먹어 본 인우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어때? 보기엔 제법 근사한데, 서동수의 맛이 나오냐?
“사부, 소스가 뭔가 2프로 부족한 느낌인데. 뭔지 모르겠어.”
-흠, 각종 채소와 해물, 편육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썰었어. 다시 말해 난 완벽했다는 거지.
“맞아, 사부. 식감은 아빠가 해줬을 때랑 똑같았어. 문제는 소스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서인우! 난 당연히 답을 알고 있지만, 이건 네 몫이니까 그 차이를 찾아내 봐. 그 부족한 2프로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좋아, 내가 꼭 찾아내지.”
인우는 다시 한번 골고루 섞어서 한입 가득 입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