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혼자 남은 인우는 다시 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서풍]에서 먹어 본 것과 거의 흡사해.”
준형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넌 잠도 없냐?
중식도가 투덜거리는 소리는 가볍게 무시하고, 기억 속의 그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비슷하게 흉내는 냈지만, 이건 정확히 아빠의 맛이, [서풍]의 맛이 아니야. 뭐가 문제일까?”
-그걸 찾아내야만 진정으로 서동수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거지.
“찾아낼 거다. 반드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난 인우는 여느 때보다 더 정성을 들여 짜장을 만들어 네모난 스테인리스 통에 담아 쇼핑백에 넣었다.
핸드폰으로 예약해 둔 기차표를 확인하고 문단속을 한 후 집을 나섰다.
대전에 있는 이모 집으로 향하는 인우의 발걸음은 긴장과 설렘이 섞여 무거우면서 가벼웠다.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모네 집은 초입부터 공기가 달랐다.
“엄마, 잘 지냈어요?”
인우 엄마 이지희는 오른쪽으로 길게 내려진 앞머리 사이로 인우를 잠시 쓱 보더니 바로 창가로 시선을 옮겼다.
텅 빈 눈동자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전혀 담기지 못했다.
인우는 온몸을 다해 엄마를 끌어안았다.
한쪽 팔에 다 들어오는 엄마를 안으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참아내기 힘들었다.
그런 자신을 항상 그랬듯이 귀찮다는 듯 잡아떼며 결국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인우야. 오랜만이다.”
언제 봐도 밝게 통통 튀는 인우 이모가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악수를 청했다.
“이사는 잘했지? 혼자 지내기 괜찮아? 내가 가서 정리 도와준다니까….”
“이사 잘 했구요, 이미 적응 완료입니다.”
인우는 일부러 더 목소리를 밝게 하며 말을 했다.
“이모. 내가 짜장 만들어 왔어요, 면만 삶으면 되니까 물만 올려주세요.”
“뭘 만들어?”
“짜장면이요.”
“네가? 이 더운 날씨에 또 솜씨 발휘한 거야?”
“물만 올려주세요.”
인우 이모는 인우 손에 들려있던 쇼핑백을 받으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인우는 면을 삶아 큰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았다.
인우 이모는 그새 김치와 밑반찬을 꺼내 놓고 인우가 좋아하는 갈비찜과 전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우와. 맛있는 거 많이 하셨네요.”
“너 어렸을 때 언니한테 네가 좋아하는 음식 종류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었다.”
인우는 너무나 달라진 엄마의 표정이 3년이 지난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럼 이모랑 엄마는 내가 만든 짜장면 맛보시고, 나는 갈비찜과 전을 먹겠습니다.”
인우가 엄마의 짜장면을 먹기 좋게 비벼서 엄마 앞에 내려놓았다.
내내 아들에게 눈빛 한 번 주지 않던 인우 엄마 이지희는 짜장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더니 천천히 오물오물 음미하며 먹었다.
인우 엄마 이지희가 아주 잠깐이지만 인우의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더니 또 한 젓가락을 입에 넣고 아무 말이 없었다.
“언니, 왜 그래?”
인우 이모가 의아해하며 짜장면을 한 젓가락 먹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인우를 쳐다봤다.
“인우야. 이거 형부 레시피 맞지? 어떻게 된 거야?”
“이모, 어때? 아빠가 한 거랑 비슷한 맛이 나는 것 같아?”
인우 이모는 다시 한번 더 먹더니 말을 이었다.
“응, 이건 형부가 만들었던 그 맛인 것 같은데.”
그때였다.
인우 엄마 이지희가 조금씩 고개를 가로젓는 게 보였다.
“엄마! 왜?”
“아니야. 이건.”
엄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던진 한마디에 인우는 가슴이 훅 파인 것처럼 쓰라렸다.
아빠가 요리 연구할 때마다 냉철한 심사위원이 되었던 엄마가 인정한 맛이라야 진정으로 아빠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것이다.
인우는 다시 표정 없는 얼굴로 음식을 먹고 있는 엄마의 두 손을 잡고 식탁 아래로 키를 낮춰 앉아 엄마와 눈을 맞대고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아빠의 [서풍]을 이어갈 거야. 내가 잘할 수 있게 엄마는 그저 믿어만 주세요. 내가 꼭 엄마에게 아빠의 맛을, 아빠의 명성을 되돌려 줄게.”
이지희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벽에 있는 시계만 지루한 듯 쳐다봤다.
“엄마, 사랑해!”
* * *
10층짜리 빌딩 맨 꼭대기 층에서 직원들의 보고를 듣고 있던 김형식은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다들, 이 정도밖에 못 하나? 서울에 있는 12개 지점 다 실적이 별로던데, 멀리서도 찾아오는 그런 곳으로 만들라는 말이야!”
김형식의 목소리가 커지자 직원들은 잔뜩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3시간, 4시간씩 차를 타고 와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곳이 우리 목표라고! 그게 내가 서울에만 지점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고, 알아들 들어?”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의 회의가 끝나고 회장실로 돌아온 김형식은 컴퓨터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엔 유명 연예인이 자신의 인생 맛집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벌써 3년이 지났는데도 왜 아직 이 맛을 못 내는 거지? 도대체 무슨 비법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화면엔 하얀 셰프복을 입은 서동수가 커다란 중식도를 들고 각종 해물과 채소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히 썰어 보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이어진 다음 장면에서는 웍에 불이 크게 피어오르더니 이내 해물과 채소에 윤기가 흘러넘쳤다.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우리가 하는 방법하고 전혀 다른 것이 없어. 그런데 왜 저자의 맛을 못 내는 것인지. 멍청한 새끼들.’
화면을 노려보는 눈에 조금씩 분노가 더 자리 잡기 시작할 때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분석팀에 있는 차성철 팀장이었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곤색 슈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차성철 팀장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게 빗어 넘겨놓은 앞머리를 살짝 만졌다.
“차 팀장.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셰프들은 죄다 두 배, 세 배의 몸값을 주고 불러왔는데 다들 평가가 그저 그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똑같은 질문을 올해만 벌써 3번째 듣는 차성철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국 최고의 셰프들이 가장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12개 지점 다 어느 정도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차성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형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어느 정도의 성과면 만족한다고 그랬나? 중식 요리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맛집이 되어야 한다고!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오고, 몇 시간씩 기다려서 먹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곳 말이야. 못 알아들어?”
차 팀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용산, 여의도, 마포, 강남점은 보통 30분 이상씩 대기가 기본입니다.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더 알려질 수 있도록 홍보팀장과 의논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형식이 차성철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더니 말을 했다.
“차 팀장, 우리 회사 들어온 지 이제 몇 년 됐나?”
“유통 쪽에서 3년, [만가복] 프랜차이즈 쪽에서 4년, 총 7년 됐습니다.”
“그럼 자네도 [서풍] 서동수가 만든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있겠구만. ”
“네, 제가 이쪽으로 옮겨오고 바로 인기 지점 6개 셰프들하고 염탐하러 갔었지요.”
차성철은 방금 자기가 뱉은 염탐이라는 단어가 영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염탐이 아니라 회장님 지시로 우리 쪽 셰프들에게 맛보이러 갔던 거지요.”
김형식의 얼굴이 있는 대로 찌그러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럼 그 맛을 아직 기억하나?”
“솔직한 답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그러면 좋겠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확히 기억합니다. 정말 잊을 수가 없는 맛이었으니까요.”
김형식은 자기 앞에서도 거침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차성철이 얄미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기에 더 속이 쓰린듯했다.
“좋아, 솔직하게 말한다고 했으니, 그럼 우리 셰프들이 만든 요리와의 차이점도 한 번 솔직하고 신랄하게 말해보지 그래.”
차성철은 자기 말이 김형식의 심기를 건드릴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위를 맞추고 싶지도 않은듯했다.
“우리 지점 셰프들의 요리도 아주 훌륭합니다. 당연히 맛도 최고로 좋고요. 하지만 딱 그 정도입니다. ”
“무슨 말이야?”
“다시 말해서 딱 맛만 있다는 겁니다. [서풍]의 서동수 셰프의 요리는 맛있는 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맛이 있으면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건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느낌이었고, 한 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이 뇌리에 그리고 가슴속 깊이 박혀 버립니다.”
차성철의 말을 듣고 있던 김형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그 차이가 뭐냐고? 그걸 밝혀내라고 너희들한테 내가 월급을 주는 거잖아? 다들 내 돈만 꼬박꼬박 챙겨 먹고는 뭣들하고 있는 거야? 이런 무능력한 버러지들 같으니라고!”
차성철은 입을 꽉 다물었다.
어느새 불끈 쥔 주먹에 힘을 주고 있었다.
차성철은 유독 죽은 서동수 얘기만 나오면 흥분해서 욕지거리를 뱉어내는 김형식을 이해할 수가 없는 듯 보였다.
어깨를 들썩이기까지 하면서 큰 심호흡을 하고 난 차성철은 김형식을 보고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각 지점 요리들을 다시 점검하고 홍보에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매번 같은 소리. 나가봐!”
김형식은 회장실 문이 닫히고도 한참을 씩씩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 * *
엄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인우의 눈빛은 전보다 더 강렬하게 빛났다.
중식도를 손에 들고 해물용 도마에 각종 해물을 보기 좋게 씻어 놓았다.
-이번엔 뭘 해보려고? 짬뽕? 해물로 하는 요리가 워낙 많아서.
“사부, 오늘부터는 해물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하나씩 연습해 봐야겠어.”
-음, 해물로 할 수 있는 중국 요리 정말 많지. 우선은 기본적으로 짬뽕 맛을 낼 수 있어야 다른 요리에 도전해 볼 수 있어.
인우는 잠시 추억에 젖은 눈빛을 보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나 대학 합격하고 처음 술에 취해서 들어온 다음 날 아빠가 끓여주신 짬뽕 국물을 잊을 수가 없어.”
-어쭈, 어린 것이 술은 일찍 배워서.
“사실 술이야 고등학교 때 이미 배웠지. 그때는 티 안 나게 마시고 다녔고, 대학 합격하고는 합법적으로 마셨달까?”중식도가 갑자기 인우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왜, 또?”
-야, 너희 아빠 서동수가 자기 아들은 순진해서 대학 갈 때까지는 술을 입에도 안 댄다고 그렇게 자랑했는데, 이걸 알려줄 방법이 없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 반만 아는 거라니까.
“우리 아빠가 그랬어, 사부?”
-이렇게 속인 줄도 모르고 아들이 대학 붙어서 성인 된 기념으로 처음 술 마시고 왔다고 싱글벙글하며 짬뽕 국물을 특히 더 신경 써서 시원하게 만들었었는데, 아! 알려주고 싶어 미치겠네.
“다 그러고 사는 거지. 됐고, 오늘은 아빠의 그 시원한 국물에 도전해보겠어.”중식도는 인우 눈앞에 멈춰서 말을 했다.
또 목소리가 한껏 낮아져 있었다.
-고수의 국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준비는 됐겠지?
“시끄럽고, 아빠의 짬뽕 도전!”
-아이씨, 나 진짜 작게 말했는데...
다시 인우의 손에 들린 중식도는 현란한 칼솜씨로 먼저 채소들을 손질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다음 해물들을 각자의 맛을 최고로 낼 수 있게 손질해 정리해 놓았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불맛이나 재료의 양 조절은 인우 너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거야.
그날부터 꼬박 열흘을 밤낮으로 국물맛을 내기 위해, 정확히는 아빠 서동수의 국물맛을 내기 위해 연습에 또 연습했다.
그렇게 짬뽕 국물을 완성하고는 그다음 요리에 도전하고 또 무수히 연습하고 그런 날들을 보내며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오늘도 아르바이트하러 간 인우는 제법 쌀쌀해진 날씨를 통해 계절이 바뀐 걸 실감하고 있었다.
“날씨가 꽤 쌀쌀해졌어요.”중화요리 [양자강] 사장 최영만은 벌써 목까지 올라오는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지.”
들어오자마자 테이블에 놓인 빈 그릇들을 주방으로 옮겨 놓으며 정리를 하는 인우에게 최영만이 다가왔다.
“인우야.”
“네, 아저씨.”
“정말 복학 안 할 거냐? 맨날 요리 연습만 하고.”
“지금 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이에요.”
“알지, 네가 우리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네 아빠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아 내가 깜짝깜짝 놀라는데.”
“내년에는 아빠 가게를 다시 열고 싶어요.”
“그래, 네 생각을 한 번 더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알았다, 일해라.”
인우는 쌀쌀한 날씨에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는 배달을 나섰다.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던 최영만은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굳게 꽉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