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인우가 아르바이트하는 중화요리 점 [양자강]의 사장 최영만은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나서 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 인우 왔냐?”
“네, 아저씨. 이제 식사하세요?”
“다 먹었어. 이사는 잘하고? 며칠 더 쉬고 나오지.”
“정리도 다 했고, 이제 다시 일해야죠.”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리며 배달 전화가 들어왔다.
“제가 다녀올게요.”
최영만은 잘 포장된 음식을 오토바이에 싣고 바로 출발하는 인우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 굳이 배달까지 마다치 않고. 이제는 복학해야 할 텐데...’
최영만은 벽에 붙어있는 셰프복을 입은 8명이 각자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봐 동생. 내가 인우를 계속 붙잡고 있어도 되는 걸까? 저 녀석 이제 공부해야 할텐데...”
땀 냄새와 바람 냄새를 같이 풍기며 인우가 가게로 돌아오자, 최영만은 인우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인우야. 너 학교 다시 가야지?”
“아저씨, 저 안 그래도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최영만은 인우의 평상시와 다르게 진지한 눈빛을 보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 뭐든지 말해봐.”
“저 복학 안 하려고요.”
“뭐? 왜?”
“복학 대신 아빠의 가게를 다시 열고 싶습니다.”
“[서풍]을 말이냐?”
“네.”
“대학 졸업하고 하면 될 텐데…. 학비 때문이면 아저씨가 도와줄게.”
“그게 아니라, 벌써 3년인데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준비되면 다시 가게를 열려고 합니다.”
최영만은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봤다.
“네가 아빠 뒤를 이어 [서풍]을 여는 게 아빠가 바라는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빠는 항상 요리하시는 일에 자부심이 강했어요. 아빠도 반드시 응원해 주실 겁니다.”
“내가 지켜본 너는 끈기도 있고 잘 해내리라 믿지만, 중국 요리가 쉬운 게 아니라서.”
“그래서 제가 아저씨 밑에서 배우고 있잖아요. 무슨 일에든 진심은 통하는 거니까요. 앞으로 한가한 시간에 요리도 더 배우고 싶어요.”
최영만은 인우의 눈을 한참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 눈이 아빠를 참 많이 닮았구나.”
“우리 아빠가 젊었을 때 그렇게 미남이었습니까?”
“허허 녀석. 그래 네가 훨씬 잘생겼다. 됐냐?”
인우는 계속해서 홀 테이블을 닦고 수저통을 정리했다.
5시가 넘어가면서 손님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인우는 재빠른 동작으로 주문을 받고, 음식 써빙을 하며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인우는 집을 나와 큰 찻길 쪽으로 바로 보이는 24시간 해장국 집에서 뼈다귀해장국으로 시장기를 달랬다.
‘해장에는 아빠가 해주시는 짬뽕 국물이 최고였는데.’
인우의 눈동자에 커다란 그리움이 서리며, 동시에 인우의 미각은 그때의 그 맛을 애타게 찾고 싶어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쓰레기봉투와 감자, 양파 한 뭉텅이씩을 샀다.
인우는 우선 양파를 하나 집어서 껍질을 벗겼다.
중식도를 손에 들고 종일 연습한 대로 양파를 썰기 시작했다.
네모반듯한 모양에서 가는 채 썰기까지 양파 하나를 다 썰고 두 번째 양파를 집는 순간 인우는 눈이 매워 참을 수가 없었다.
-인우야. 슬프냐? 나도 슬프다.
중식도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을 했다.인우는 빨개진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사부, 나 사부가 맘에 들어. 우리 잘 지내보자고.”
-나 남자야, 그래서 같은 남자는 별로. 사실 네가 잡고 있는 그 부분이 내 거기야.
“아이씨.”
인우는 깜짝 놀라서 중식도를 도마 위에 내려놨다.
-하하, 그걸 또 믿네. 나도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봐서 너랑 친해질지 말지 결정하도록 하지.
인우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가며 양파 열 개를 각종 모양대로 썰어놓았다.
휴지로 눈물을 닦고 코를 힘껏 풀어 버리고는 다시 감자를 채썰기 시작했다.
여름 태양이 강한 열기를 내뿜을수록 서인우의 칼질하는 소리는 점점 더 경쾌해져 갔다.
일주일을 꼬박 중식도를 수련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중식도를 다루는 폼이 이제 제법 전문가 같은 포스를 풍겼다.
-오늘 드디어 요리를 해보는 건가?
인우는 중식도를 손에 들고 가지런히 준비해 놓은 재료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재료를 보니 짜장면을 해볼 생각이군.
중식도가 인우의 손에서 꿈틀하며 말을 했다.
“그래, 사부. 이제부터는 사부의 평가가 필요해.”
-지난 일주일간 내 친구 서동수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내게 안겨줬으니, 이제 내 실력을 믿어보라고.
“[서풍] 반드시 내 손으로 다시 바람을 일으킬 거야.”
인우의 눈이 강하게 반짝였다.
-좋아, 서인우. 우선 감자부터 준비.
인우는 깨끗하게 껍질을 벗겨 준비해 놓은 감자에 중식도를 올려놓았다.
순간 인우는 그저 중식도를 잡고만 있을 뿐 중식도가 저절로 움직이며 감자를 정확한 크기로 잘라 놓았다.
-서인우, 지금 이 크기 이 모양이 네 아버지 서동수가 항상 자르던 방법이야. 고기와 다른 채소들의 식감을 생각해서 수없이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만들어 놓은 방법이지.
“단순한 채소들의 크기 모양까지 연구하고 고민해서 만들었는지 전혀 몰랐어.”
-네 아버지 서동수는 춘장을 볶을 때의 기름양과 온도까지 다 연구해서 만들었어.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맛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얘기야.
“사부. 내가 반드시 아빠의 명성을 되찾을 거야. 사부님 덕에 가능해졌어,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
-야, 헷갈리게 자꾸 사부 했다가, 사부님 했다가 하나로 통일하지?
“그럼 사부!”
-에라이, 물어본 내가 바보지.
인우는 도마 위에 올려있는 감자의 크기와 모양을 머릿속에 저장하고는 양파와 양배추 등을 순서대로 잘랐다.
-채소들을 큰 접시에 섞이지 않게 놓고, 이번에는 고기를 준비한다, 실시!
“실시!”
인우가 크게 외치며 그릇에 담아놓았던 돼지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으려 하자 중식도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잠깐 스톱!
“어, 왜?”
-고기를 써는 도마와 채소를 써는 도마 그리고 해물류를 써는 도마 이렇게 세 개를 준비해서 반드시 구분해서 쓰도록!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럼 오늘만 쓰고 내일 당장 준비해 놓을게.”
-서동수는 절대 채소에서 고기 냄새가 나지 않게, 고기에서 해물 냄새가 섞이지 않게 도마를 따로 쓰는 걸 철칙으로 여겼어, 명심해.
인우는 핸드폰에 내일 구매할 목록을 적어서 저장해 놓았다.
고기를 포함한 모든 재료를 가지런히 썰어 준비해 두고 어제 사놓은 커다란 웍을 꺼내 들었다.
어느새 중식도가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멈춰서는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네 능력을 보여줘. 난 아는 걸 얘기해 줄 수는 있지만, 맛을 내는 건 오롯이 네 능력으로만 가능하니까.
인우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래, 사부. 아빠처럼 몇십 번 몇백 번이라도 연습해서 그 맛을 찾아낼 거야.”
인우는 중식도가 알려주는 대로 웍에 기름을 부었다.
거기에 춘장을 튀기듯이 볶아서 큰 그릇에 준비해 두고, 고기를 볶기 시작했다.
벌써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이제 딱딱한 채소부터 하나씩 내가 말하면 넣어서 같이 볶아.
인우는 중식도의 지시에 따라 하나씩 채소를 볶다가 미리 볶아둔 춘장을 넣어 볶기 시작했다.
“아빠의 짜장면은 불맛이 일품이었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입맛은 정확 하구만. 일반 가정집 화력으로는 쉽지 않은데, 지금처럼 최대한 센 불에 웍을 기울여서 재료에 불이 붙었다가 꺼지게, 할 수 있겠어?
인우가 바로 웍을 이쪽저쪽 한참을 기울이자 재료들에 있는 기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아뜨거, 놀래라.”
인우는 뜨거운 불에 하마터면 웍을 놓칠 뻔하자 소리를 질렀다.
-아이씨, 네 소리에 더 놀랐잖아. 불이 붙으면 재빨리 휘저어서 타지 않게 해야 해.
인우는 뜨거움에 고개를 뒤로 쑥 빼고는 재료를 휘저었다.
불을 끄고 숟가락을 하나 들어 잔뜩 긴장한 채로 맛을 본 인우는 눈이 두 배나 커다랗게 변했다.
-어때? 네 아빠 서동수의 그 맛이 나와? 빨리 얘기해봐, 빨리! 나 현기증 난단 말이야.
인우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아, 진짜 답답하게, 맛이 어떤데?
“완전...”
-응, 응 완전 뭐? 너무 맛있어?
“완전 탄 맛인데?”
-에잇, 불붙이기 전까진 완벽했는데, 네가 놀라서 멍 때리고 있는 동안 탄 거 아니야? 서동수는 얼마나 있다가 불을 꺼서 불맛을 조절할지도 숱하게 연구했다고. 아, 참... 김새네.
인우는 도마와 웍을 다시 깨끗하게 정리했다.
“내가 보기는 많이 봤는데 직접 해본 건 처음이라. 그래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다시 해봐야겠어. 사부, 준비!”
아침 점심 저녁을 아빠의 짜장 맛을 내기 위해 연습한 지 꼬박 닷새가 지났다.
인우는 오늘쯤은 누군가에게 테스트를 받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준형. 토요일인데 뭐하냐?”
-데이트한다. 인마.
“강아지랑 산책 중이구나.”
-자식, 눈치 한번 빠르네. 여자 친구 생기게 해달라고 물 떠 놓고 기도하는 중이었다. 어쩔래?
“저녁 먹으러 와라.”
-내가 요즘 더워서 입맛 없는 건 어떻게 알고. 다시 말하지만, 나랑 결혼하자.
“더위 먹었냐? 늦지 않게 와.”
-알았다, 이따가 보자고.
인우는 그동안 연습한 대로 불맛에 신경을 써가며 짜장을 만들어 놓고는 면 삶을 물을 올려놓고 잠시 창밖을 내려봤다.
‘와, 이 동네에만도 중화요리 집이 여러 개네. [자금성],[만리장성], [용화춘] 이름만 들어도 딱 짜장면 집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 준형인데, 맛있는 거 해준다면서 너 왜 놀고 있냐?
“너 어딘데? 왔으면 들어와.”
-이 근처 짜장면집 새로 생겼나 본데, 그거나 먹으러 가자, 맛있는 냄새 나는데.
“그 집이 우리 집이다.”
통화 끝내기가 무섭게 준형이 인터폰을 눌렀다.
준형은 계단을 걸어오느라 숨이 찼는지 잠시 헉헉거리더니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야, 정말 너희 집에서 나는 냄새였네. 갑자기 확 식욕 돋는데.”
“다 됐으니까 손 씻고 조금만 기다려.”
배추김치와 단무지를 작은 접시에 덜어 놓고는 큰 냉면 그릇에 짜장면을 만들어 준형의 앞에 내려놓았다.
“우와, 이 비쥬얼 보소. 내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거지?”
“그래, 먹어 보고 솔직하게 평가해 줘라.”
준형은 우선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어 면에 짜장이 골고루 스며들도록 잘 비벼서 크게 들어 입에 넣었다.
입에 넣은 짜장면을 채 삼키지도 않은 준형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준형은 입에 담고 있던 자장면을 삼키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한번 젓가락으로 가득 들어 입에 넣었다.
“맛이 어때? 먹을 만하지?”
“인우야! 이거…. 이거 맞지?”
준형은 두 배는 더 커진 눈으로 인우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가?”
“너희 아빠 레시피 맞지?”
인우는 긴장한 얼굴로 그제야 한 젓가락 먹기 시작했다.
준형은 인우에게 더 바짝 다가가 앉으며 다시 물었다.
“너희 아빠 레시피 맞냐고? [서풍]에서 먹어 본 것과 거의 흡사해.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너 아빠한테 전수 받았었던 거야?”
인우는 붙어있는 준형의 이마를 두 손가락으로 살짝 밀쳤다.
“거의 흡사하다는 말은 어딘가 다르다는 얘기인 거지?”
“이 정도면 비슷해, 맛있어.”
“아니, 그냥 맛있는 것으로는 안 돼. 반드시 아빠가 했던 요리와 똑같은 맛을 재현해 낼 거란 말이야.”
준형은 다시 한번 짜장면을 크게 집어 후루룩 먹고는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어딘가 조금 다르지만, 아주 맛있어. 훌륭하다고.”
“나 [서풍]의 서동수 아들이다. 아빠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고. 나는...”
준형은 심각해진 인우의 표정을 말없이 살폈다.
“나는 3년간 사라졌던 아빠의 요리를 다시 만들고 싶은 거다.”
인우는 아무리 가장 친한 준형이지만 중식도에 관해서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혼자만 알고 있을 비밀이라고.
“나 이사하고 계속 이거 하나만 연습했어. 아빠의 맛을 내기 위해.”
“야, 너 정말. 이거 진짜 네 아버지가 해주시던 그 맛이랑 아주 비슷해. 어떻게 이게 가능해? 너 진짜 타고난 거였어?”
인우는 준형의 반응에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준형아!”
“왜 인마. 왜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 그래, 무섭게.”
“나 우리 아빠의 명성을 되찾을 거야. 아빠의 [서풍]을 다시 이어갈 거라고.”
준형은 인우의 웃음기 빠진 얼굴을 보고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네 계획은 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인우는 멍하니 다 먹은 짜장면 그릇만 한참을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서 아빠의 요리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야. 내일은 더 맛있게 만들어서 엄마 만나러 가려고.”
“아, 어머니…. 어머닌 잘 계시지?”준형은 조금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인우는 한참을 식탁 위에 놓인 물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