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중식당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2화 (2/200)

제2화.

인우는 계속해서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중식도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럴 때마다 중식도는 인우에게 잡히지 않으려 여기저기로 통통 튕겨 나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 참, 몇 번을 말하냐? 너님이 꿈꾸는 거 아니고요, 내가 말하는 거 맞다고요.인우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귀로 정확히 듣고 있으면서도 이 상황이 너무 기가 막히고 믿기지 않았다.

커다란 칼이 맘대로 움직이는 광경에 위험을 느낀 인우는 몸을 여기저기로 피하면서 연신 칼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뭐야 이거? 안 멈춰! ”

급기야 인우는 눈을 크게 뜨고 중식도를 노려봤다.

-어쭈. 어디서 꼴아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너 뭐야? 뭔데 말을 하는 거야? 귀신이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뭐?”

-너희 아빠와 거의 20년을 넘게 같이 한 역사적인 몸이라고 나는.

“무슨 소리야? 정신없으니까 잠깐 멈춰서 차분히 말 좀 해봐.”

순간 빙글 돌던 중식도가 그대로 멈춰서 다시 말을 했다.

-[서풍]의 서동수가 그 엄청난 요리를 할 때 그 세월을 같이 울고 웃고 했던 몸이다, 이 말이야. 이제 알아듣겠냐?

인하는 그제야 항상 아빠의 손에 들려있던 중식도를 떠올렸다.

-너희 아빠가 내 얘기를 한 번도 안 해줬나 보네. 이 얼빠진 모습을 보니.

“가만히 좀 있어 봐.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래. 다시 말해서, 지금 나랑 말하고 있는 게 이 칼이라는 얘기지?”

-나 지금 완전히 멈춰 있는데, 이보다 어떻게 더 가만히 있냐?

인우는 눈앞에서 꼼짝도 안 하고 멈춰서 말을 하는 중식도를 그제야 정확히 쳐다봤다.

-아, 이 자식, 적응력 되게 느리네.

중식도는 다시 통통 튕기더니 인우의 팔을 칼등으로 찰싹 쳤다.

인우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등에 소름이 싹 돋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나를 좀 알아 모시겠냐? 내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해준 사람이 바로 너희 아빠 서동수였다. 정말 멋진 놈이었는데….

인우는 다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럼 아빠의 요리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게 다 이 칼 때문이라는 건가?’

-아니지. 그렇진 않아.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불쑥 답을 건네자 인우는 더욱 놀라 소리쳤다.

“너 뭐야?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 말은 너한테만 들리는 거고, 난 네 생각을 읽을 수 있어. 내 능력 쩔지?

인우는 계속해서 믿기지 않는 상황에 말없이 중식도만 노려봤다.

-너희 아빠는 내 능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끊임없이 연구했어.

“연구?”

-모든 재료가 어떤 각도로 어떻게 썰고 다지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다 달라지는데, 그걸 매일같이 찾아내려 밤새워가며 연습했지.

“그래서 최고의 중식 요리사가 되었다?”

-그렇지, 그럼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뭘까?

인우는 심각해진 얼굴로 중식도를 바라봤다.

-이미 나는 최고의 맛을 내는 각도와 크기를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네 아빠가 했던 모든 요리를 재료부터 요리 순서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단 말씀.

인우는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중식도를 잡으려 했다.

-어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한 것이 아니거든.

중식도는 다시 인우의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인우의 눈은 집요하게 중식도를 따라갔다.

또 그 눈을 따라 강하고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중식도를 따라 한참 눈을 정신없이 돌리더니 순간 손을 뻗어 중식도를 휙 잡아챘다.

인우의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중식도를 손아귀에 힘을 있는 대로 주고 꽉 붙잡고 말했다.

“흡, 나도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지. 이제 막 제대해 내가 아직 군기가 꽉 잡혀있거든.”

-역시, 이게 바로 대한민국 군바리의 힘인가?

“아니, 나 서인우의 힘이지.”

-그래, 나를 잡았다 이거지. 좋아! 그럼 1단계는 통과한 거로 쳐주지.

인우는 헉헉거리며 말을 했다.

“후…. 그건 아니지. 내가 너를 잡았으니, 이제 내가 조건을 걸지.”

-어쭈, 조건?

“내가 필요할 땐 곱게 내 손에 잡히는 거야. 무조건!”

-무조건? 그 단어는 별로 맘에 안 드는데?인우는 웃음기를 확 뺀 진지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응, 무조건이야. 너 말대로 1단계를 통과한 것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지. 안 그래?”-뭔가 당한 느낌이긴 한데, 좋아. 어차피 나를 손에 쥐고 있겠다고 해서 네 맘대로 되진 않을 거니까. 너무 쉽게 가면 재미없지.

“그래, 나도 쉽게 갈 생각 전혀 없다. 우리 한번 잘해보자고!”

인우의 눈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살짝 스쳐 갔다.

밤새 생각하고 고민하다 동이 튼 후에야 잠이 든 서인우는 잠시 몇 시간 눈을 붙인 후 목에 땀이 흥건해져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뭔가 결심을 한 듯 부엌에 있는 중식도를 다시 손에 쥐었다.

몇 번 꿈틀거리던 중식도는 약속한 대로 인우의 손에 얌전히 쥐어져 있었다.“나 결심했다.”

-뭐를?

“내가 아빠의 명성을 이어 나가야겠어. [서풍]을 다시 열거다.”

-뭐? 서동수가 없는 [서풍]이 과연 가능할까? 아무리 내 능력이 신과 동급이라고는 하지만 넌 영 못 미더워서.

“너 잊었냐? 내가 그 서동수 아들이라고. 네가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제 아빠의 [서풍]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은 시간문제지.”-그래? 그럼 네 실력 한번 볼까? 좀 놔봐. 답답해 죽겠다고.

인우는 조심스럽게 중식도를 잡은 손에 힘을 뺐다.

잽싸게 인우의 손아귀를 빠져나간 중식도는 다시 인우의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었다.

-밥은 안 먹냐? 뭐라도 한 번 만들어 보든지.

“지금 간단히 볶음밥을 해볼 생각이다.”

-그래? 밥하고 채소만 볶는다고 다 같은 볶음밥이 아닐 텐데.

“아직 나를 잘 모르나 본데, 나도 요리 좀 한다. 물론 중식도는 익숙하진 않지만... 잔말 말고 이리로 와!”

-어쭈, 참 기가 막혀서. 내가 지금 너랑 이렇게 마주 보고 놀고 있을 짬밥이 아닌데, 너희 아빠 봐서 놀아주고 있는 거거든.인우는 냉장고의 채소 칸을 뒤져서 감자와 당근, 파를 꺼냈다.

그리고는 술안주로 사놓은 네모난 햄도 꺼냈다.

잠시 망설이다 우선 어제까지 사용했던 주방용 식칼을 꺼내 감자와 당근의 껍질을 벗겼다.

빠르고 익숙한 솜씨로 감자와 당근을 잘게 다져 접시에 담고는 파를 다지기 시작했다.

-너 제법이다. 요리 좀 하는데?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한때는 아빠의 뒤를 잇겠다는 꿈을 꾸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해서 요리와 경영을 같이 해보려 했는데…. 아빠의 요리를 전수 받을 기회가 없어졌지.”

-그래서 유명한 말 있잖아. 있을 때 잘하라고.

“맞아, 난 우리 아빠와 한참은 더 같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우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왔다.

-이 분위기 어쩔? 난 무거운 분위기 싫은데…. 좋아, 그럼 중식도는 처음이야?

인우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몇 번 잡아볼 기회는 있었지만, 아직 익숙하지는 않다.”

-그럼 중식도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겠군. 네가 익숙해지면 그다음에 내가 능력을 하나씩 발휘해보지.

인우는 조심스럽게 중식도를 손에 쥐고 감자를 먼저 자르기 시작했다.

요리를 수없이 해본 인우지만 손에 쥐고 있는 중식도의 크기가 아직은 부담스러웠다.

감자 위에 중식도를 올려놓고 힘을 줘서 감자를 반으로 잘랐다.

-도와줄까? 내 능력이 필요해?

“필요하다고 했잖아. 열심히 연습해서 우리 아빠 가게를 내가 다시 열거라고.”

-음…. 그러면 여기에서 또 조건 하나.

“뭐? 또 뭔데?”

-이 시간 이후로 나를 ‘사부님’이라고 불러!

인우는 다시 중식도를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도 너를 그렇게 불렀냐?”

-친구. 너희 아빠는 나를 ‘친구’라고 불렀지.

“그런데 왜 나는?”

인우는 괜히 뭔가 억울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참. 내가 말했지? 이 몸이 너랑 놀 짬밥이 아니라고.

“좋아, 사부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다시 당근 한번 잘라봐.

인우는 당근 위에 중식도를 올려보았다.

조금 전에 감자를 자를 때처럼 힘을 주어 당근을 잘랐다.

-너 소 잡냐?

“응?”

-원하는 위치에 올려놓고 정확히 단칼에 자르는 거야. 손목 스냅이 중요한 거지, 힘만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아직은 맘대로 움직이기 힘든데.”-그래서 중식도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수련해야지. 양심 없이 거저 되는 줄 알았어?

인우는 중식도를 손에 들고 그 무게감을 신중히 느껴보았다.

중식도를 들고 있는 손을 위아래로 무수히 움직여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좌우로 흔들기를 반복했다.

어떻게든 중식도의 무게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백번 천번이라도 할 수 있다.”

-중식도는 무거워서 단단한 재료도 힘을 조금만 주고 정확하게 자를 수가 있지. 물론 자르는 것을 수련했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겠지?“중식도로 재료 자르는 거 말고 또 뭐 하는데?”-할 수 있는 칼질법이 100가지는 된다고. 자르고 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으깨고 저미고 또 고기에서 뼈를 발라내기도 하지.

“지금 내가 일하는 곳 사장님도 같은 얘기를 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중식도를 익히게 해주신다고 했는데... 내가 이 기회에 반드시 해내고 말 거다.”

인우는 요리하다 말고 갑자기 신발을 신었다.

-야. 어디가? 밥하다 말고 어디 가냐고?

잠시 후 큰 비닐봉지에 무를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온 인우의 목덜미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오늘부터 중식도로 단단한 채소 썰기를 연습해야겠어. 사부. 네가 잘 가르쳐 달라고.”

-아! 그새 님은 빼먹고... 좋아. 한 번 지켜보지.

인우는 무를 먼저 씻었다.

그리고는 중식도를 들어 힘을 주어 무를 잘랐다.

-칼날을 재료에 반듯하게 대고 힘은 살짝만 주는 거라고. 네가 무게를 이겨내야지. 닭이나 돼지고기 내려치는 게 아니라고!

“알았어, 사부. 다시 해볼게.”

인우는 반으로 잘린 무를 다시 얇게 썰어보기로 했다.

-힘은 살짝만 주고 반듯하게.

싹둑.

또 싹둑.

인우는 다시 잘라 놓은 무의 두께를 비교하고 있었다.

“제법 비슷하게 잘린 거 아닌가?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안 그래 사부?”

-놀고 있네. 아직 힘이 고르게 들어가지 않고 있어.

인우는 다시 중식도를 잡고 얇게 무를 썰기 시작했다.

-어이, 다시!

인우는 다른 하나를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무를 썰었다.

조금 전보다 약간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고르지 않았다.

“다시 해볼게.”

그렇게 무 5개를 다 썰고 나니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팠다.

-오늘은 그만하지. 벌써 많이 늦었는데 밥은 안 먹냐?

“아니, 오늘 반드시 사부를 내 것으로 만들고 말 거야.”

-야, 설레게 왜 그래?

인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중식도를 들었다.

“다시 가늘게 채썰기를 해볼게.”

인우는 넓적하게 썰어놓은 무를 여러 개씩 겹쳐 가지런히 정리했다.

-좋아, 최대한 가늘게 썬다. 실시.

인우는 그새 왼쪽보다 살짝 부어있는 오른쪽 손목에 손수건을 단단히 감고는 채를 썰기 시작했다.

두꺼운 감자튀김 같던 무채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좀 느낌이 오네. 사부, 적응이 되어가고 있어. 내가 다시 해볼게.”

-그 느낌을 잘 살리면서 속도를 더 내보라고.

그래도 오랜 시간 요리를 해와서인지 점점 칼질 속도가 빨라지며 무채의 두께 또한 가늘어졌다.

가늘게 잘린 무채를 보니 손목 아픈 것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남은 무를 썰었을 때는 종잇장처럼 가늘게 잘려져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납작하게 썰어놓은 무를 쉬지 않고 가늘게 채를 썰었다.

인우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가늘게 채 썰어진 무를 보고 신기하기만 했다.

“어릴 적 아빠 손에 들린 중식도를 보고 내가 무섭다고 도망간 적이 있었다.”

-나 알고 보면 몹시 부드러운데.

“그때 아빠가 나중에 내가 크면 아빠의 중식도를 꼭 물려 주시겠다고 했지. 난 무서워 싫다고 했고.”

갑자기 중식도가 목소리를 저음으로 깔며 얘기했다.

-결국 이렇게 만났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인연인 건가?

“아빠의 선물이 아닐까?”

-선물?

“그래, 그것도 너무도 소중한 선물.”

인우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앞 건물의 환한 불빛이 창문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와 인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살짝 비추고 지나갔다.

-좋아. 2단계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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