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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이유-5화 (5/79)

5화.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다들 선량하고 다정한 왕자님이라고 했는데…… 그녀 역시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똑같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데…… 그녀에게 원하는 것을 웃으며 말하는 눈앞의 다니엘은 너무나 낯설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가 거절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법무국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결혼했고, 왕가에 들어왔으면 후사를 잇는 건 당연한 의무였다.

그 앞에서 이베카는 어쨌든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동등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정체 모를 큰 그림 속에 자신은 그저 장기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알겠습니다.”

다니엘의 짙은 미소를 보고 이베카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건조한 대화였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어쨌든 혼인으로 맺어진 이상 그들은 이제 같은 편이었다. 차를 몇 모금 마신 그가 찻잔을 내려놓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침대로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

“이베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다니엘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너무 예뻐서 그녀는 살짝 입을 벌렸다.

“그렇게 결연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요. 무슨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아…….”

“싫으면 싫다고 해도 되고.”

“그, 그건 아니에요. 그냥 좀…….”

후계를 얼른 이어야 한다고 해서 그 말에 따르는 심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는 그럼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냐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두 번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는 건 최근 4년간의 기억이 전혀 없는 그녀에게는 능숙한 일이 아니었다.

“음……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면 되는데…….”

다니엘의 어조는 무언가를 가르친다기보다는 회상하는 어조였다. 본능? 그녀를 이끌고 있는 본능은 현재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생각에 잠긴 그녀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 볼게요.”

그녀는 성년과 동시에 수사국에 들어갔다. 수사국에 다닐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이전에는 남자와의 경험이 없었다. 그래도 ‘해 보겠다’라는 다니엘의 말에 그녀는 자신 역시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베카는 책에서 읽은 ‘아이가 생기는 방법’을 회상하며 스스로 침대에 누워 실내복의 치맛자락을 올리고, 무릎을 굽힌 채로 다리를 살짝 벌렸다. 다니엘은 잠시 놀란 눈으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시면…… 돼요.”

이베카가 그를 빤히 올려보며 말했다. 다니엘이 당황한 눈을 깜빡였다.

“뭘요?”

“넣으시면…… 된다고요.”

“네?”

황당하다는 듯한 다니엘의 반응에 그녀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하니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왕이 모르는 건 아니겠지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베카는 주눅 든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남자의 성기를 여자의 성기에 집어넣어…….”

백작가에는 초야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당연히 이베카에게 이런 걸 물을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체 생물학’의 ‘생식과 발생’ 부분을 읽고 온 터였다. 그녀의 자신 없는 목소리가 떨리며 이어졌다.

“정액을 주입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그 수정란이 자궁에 무사히 착상…….”

“잠깐, 잠깐. 이베카.”

다니엘은 살짝 다리를 벌린 채 그를 올려다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한 이베카의 말을 황급히 막았다. 문득 이베카는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저 남자도 저렇게 당황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기억이 열여덟이라고 하셨나요?”

왜 이 시점에 다 아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자신의 금발 머리를 한번 쓸어 올리고, 난감하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기억이 지워진 후 한 달이 흘렀지요?”

“네. 정확히 말하면 33일이 지났습니다.”

이베카의 대답에 다니엘은 몹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몸은 스물둘이어도 그녀의 기억은 아직 열여덟에 머물고 있다. 그래, 열여덟이라면 남녀의 교합에 대해 자세한 것을 모를 수도 있겠지…….

게다가 이베카는 남들보다 현격히 어린 열일곱에 대학에 들어갔다. 또래 친구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가족과 하인들에게 무시당하며 컸다고 하니 제대로 된 성교육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사국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할 정도면 2년 동안 공부만 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당연히 영리하겠지만, 그래서 저렇게 학술적인 책에 쓰인 지식으로 정확한 절차를 설명하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다니엘은 진땀마저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다 맞는 말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있는데…….”

“남자의 성기의 혈관이 부풀어 올라 팽창되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건 되어 있는걸요?”

“이, 이베카…… 그리고 또 다른 감각적인, 그러니까…….”

이베카는 표정의 변화 없이, 그의 눈을 피하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기분이 좋다고는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은 거라고는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던가요?”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 짓’이 정말 좋으니까 어머니가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으로 나를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백작 부인님은 워낙에 남자랑 하는 걸 좋아하시잖아. 백작님이 벌써 3개월째 집을 비우셨는데 어떻게 버티겠어?’

‘그 마구간지기가 좀 잘생겼어? 몸도 좋고 말이야. 나 같아도 남편 지방에 간 김에 해 보고 싶을 것 같아. 좋긴 좋았을 거야.’

하녀들이 자신의 뒤에서 떠들던 저급한 말들, 듣지 않으려고 애쓰던 말들. 이베카는 떨리는 숨으로 생각을 멈추려고 애썼다. 이 모든 것은 이제 멋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그녀의 인생에 부과된 평범한 의무일 뿐이었다.

반면 다니엘은 잠시 자신의 열여덟에 대하여 회상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우울해 보이는 보랏빛 눈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4년의 기억이 날아간 스물둘은 열여덟인가, 스물 둘인가. 물론 열여덟이면 성년이긴 하므로 지금 그가 하려는 일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이베카.”

“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내려와 그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어느새 그녀의 옆에 누워 어설픈 그녀의 자세를 고쳐 주었다.

“긴장하지 말아요. 힘 빼고.”

그는 정갈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살짝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녀를 마주보았다. 푸른 눈에 감도는 이채를 억지로 누른 채 그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대신 솔직히만 말하면 돼요. 느낌이 좋으면 좋다,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 아프면 아프다. 그러면 내가 다 맞춰 줄게요.”

문득 이베카는 누군가 자신에게 맞춰 준다는 말을 한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의 눈가에 그의 입술이 다가왔을 때 피하지 않았다. 뜨겁고 떨리는 입술의 첫 촉감은 낯설면서도 부드러워서 숨이 떨렸다. 잔뜩 긴장한 몸에 따뜻한 체온이 감기고, 곧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다가왔다.

실패한 인생의 의무 중 하나라기엔 너무 간지러운 입맞춤이었다. 그녀를 배려하는 듯한 부드러운 움직임에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눈을 감았다.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그의 손길에서 다급함을 꾹 참는 절제가 느껴졌다.

달콤한 숨결이 흘러드는 와중에 실내복이 천천히 풀어졌다. 어설프게 다리를 벌릴 때에는 이렇게 나신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부끄러움에 몸을 움츠리는 동안 그 역시 천천히 옷을 벗었고, 열기가 오른 체온이 적나라하게 겹쳐졌다. 그녀의 입 안을 꽉 채우는 혀의 움직임이 점차 거칠어질 때 즈음에 그가 간신히 입술을 떼어냈다.

“……좋아야 할 텐데.”

여유로운 어조였지만 이미 그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의 한쪽 손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침대 시트에 꽉 누르고, 목덜미에 입술을 붙인 채 다른 쪽 손으로 가슴골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 자, 잠시…….”

단단해진 그녀의 유두 근처로 가볍게 원을 그리며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천천히, 천천히 할게요.”

그녀는 부끄러워 신음을 참았으나 결국 그의 입술이 집어 삼킬 것같이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허리까지 떨고 말았다. 유두를 살짝 놓아주었다가 다시 빨아 대는 그의 혀는 부드럽고 느릿해서 감질날 정도였지만 단단히 얽힌 몸은 후퇴할 수 없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기분이었다. 느릿하게 핥다가도 또 거칠게 꾹 누르기도 하는 그의 혀끝에 온 정신이 쏠렸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사람이 쾌감 때문에 눈물이 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트를 꽉 말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참으려고 애써도 터져 나오는 신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아흑…….”

자신도 모르게 그의 등에 손을 얹자 단단히 짜인 등근육이 잔뜩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그의 한쪽 손이 천천히 그녀의 꽉 닫혀 긴장한 허벅지 사이로 들어왔다. 아까 혼자서 살짝 벌리고 기다렸던 기억이 무색하게 그녀는 덜덜 떨며 무릎을 붙였다.

“열어 줘……. 응?”

낯설면서도 낮은 속삭임이 보채듯 날아들었다. 원망스럽다는 듯이 유두를 살짝 깨물고 멀어진 그의 혀가 가슴골을 타고 핥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트에 푹 파묻힌 그녀는 어디 도망갈 곳도 없었다. 그의 느릿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각이 반응하여 아찔했다. 온몸을 타고 묘한 열기가 퍼져 전율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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