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부활
1
모두의 슬픔 속에 앤디의 죽은 시체가 파도에 쓸려나간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설마 이렇게 앤디가 죽을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검황이라 불리는 그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말이다.
허탈해서 웃음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오히려 타락한 날개의 벽을 느꼈다고나 할까?
마왕을 죽였을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자신감들을 회복했었는데, 그 자신감들이 다시 모두 사라졌다.
그때 사라졌던 앤디의 형체가 신기루처럼 타락한 날개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들이 모두 바짝 긴장을 했다.
지금 저 앤디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앤디의 등에 나있는 반쪽짜리 날개.
그것은 타락한 날개로 인해 마족이 된 존재들에게서 나타나는 동일한 현상이었다.
무엇보다 저렇게 마족화가 되면 원래 능력의 수 배 이상의 힘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 브라키우드의 기억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여기에 있는 이들 중 아무도 앤디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정말 여기가 이 순간이 끝이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그냥 죽을 생각은 없었다.
앤디가 보여줬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다.
그 죽기 전의 상황에서 조차 촉수를 움켜잡고 타락한 날개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던 그 모습 말이다.
그것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이다.
어차피 죽는다면 그렇게 죽고 싶었다.
자신이 죽어서도 부끄럽지 않게 모두 태우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 이를 악물고 타락한 날개와 마족이 된 앤디를 번갈아가며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견제하는 것은 마족이 된 앤디였다.
타락한 날개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 때문이다.
그는 어째서인지 마족으로 수하를 만들면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만들어진 마족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니 이번에도 분명 타락한 날개는 직접 움직이지 않고 앤디를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어낸 앤디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119,405호. 저들을 처리해라.”
“….”
“음?”
타락한 날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119,405호는 듣지 못한 것처럼 자신의 몸을 샅샅이 흩어 보는데 여념 없었다.
마치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더듬고 살피는 중이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어깨에 날개가 달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때 다시 타락한 날개가 명령했다.
“119,405호. 저들을 처리해라.”
하지만 119,405호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꺄웃거리며 다시 자신이 하던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타락한 날개가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파하하하하하!”
그리고는 열심히 자신의 몸을 수색하는 119,405호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잠시 화가 났었지만, 또 나타난 새로운 현상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대체 무슨 현상이지? 자아가 강한건가? 그래서 내 명령을 무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타락한 날개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브라키우드로 만든 드래곤 21호가 자신에게 보이는 적의(敵意)도 흥미로웠지만 이것은 더욱 흥미로웠다.
마치 하는 행동이 아기와 같지 않는가.
타락한 날개가 피식 웃으며 안드레이들을 향해 말했다.
“네 녀석들. 운이 좋군. 큭큭.”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타락한 날개가 119,405호의 허리를 자신의 촉수를 감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자신의 또 다른 흥밋거리이자 관찰 대장자인 21호를 불렀다.
“이제 돌아간다.”
그 말에 파이온을 비롯한 드래곤 아홉 마리와 전투를 위해서 대치하고 있던 21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따라나섰다.
드래곤들은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당황했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놓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걱정과 달리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파이온이 의문을 드러냈다.
“뭐, 뭐지?”
자신들을 처리하기 위해 온 이들이 싸우다 말고 돌아갔으니 의문이 들 수 밖에.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모두들 안드레이를 내려 보았다.
그렇지만 안드레이에게 무엇인가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안드레이 시선의 끝은 한참 전에 사라진 자신의 제자 앤디가 날아간 방향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안드레이가 빈 하늘에서 시선을 때고 눈을 감은 채 바닥을 향해 속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의 황실로 돌아와 119,405호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꺄웃거리던 119,405호가 다시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기 신기한지 물고 빨고 더듬으며 쉬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졸린지 그대로 누워서 골아 떨어지기까지 했다.
마족이 자다니.
타락한 날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웃긴 녀석이지 않는가.
119,405호를 3일 정도 관찰하던 타락한 날개는 결국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지?”
다음날이 돼서 다시 봤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119,405호는 그냥 열심히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머리카락도 만지작거리고 전신 구석구석을 살피고 또 살폈다.
타락한 날개는 질리지도 않는지 심심할 때마다 119,405호를 관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타락한 날개는 자신의 삶을 다시 찾아 돌아갔다.
앤디를 관찰하는 시간을 재외하고는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그의 주위에서 여인의 신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나름 조율하던 밀턴이 없어지자 더욱 노골적이 된 타락한 날개였다.
그것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건 뭐지?”
“그러게? 하늘이 왜 저모양이야?”
“금이라도 간 것 같잖아?”
“그래? 내가 보기에는 뭔가 일그러진 것 같은데….”
타락한 날개가 보란 듯이 뿌리는 그의 존재감으로 인해 대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거뭇거뭇한 주름들이 온 대륙을 뒤덮듯이 허공에 자리 잡더니 결국 그 주름이 갈라졌다.
그러자 그 갈라진 주름 속에서 온갖 마계의 마물들이 기어 나왔다.
“끼끼끼!”
“케케케케케케!”
그 마물들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고 대륙은 순식간에 마계의 마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마물들로 인해 생태계는 파괴되었고, 결국 인간들은 그 마물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기에 이르렀다.
밀려드는 마물들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생김새는 정말이지 오한이 일 정도로 흉측했다.
몬스터들은 그들에 비하면 강아지들이었다.
작은 마을을 시작으로 서서히 인간의 흔적은 마물들의 발길에 의해 지워져 나갔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자국의 왕국을 향해 피난 행렬을 이어나갔고 대륙은 황폐해져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존재들이 마물들과 싸우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들의 절반은 드래곤이라는 황당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2
안드레이는 지도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그리고는 한 왕국에 팬으로 엑스표시를 했다.
오늘 마물들에 의해 사라진 왕국이다.
답답했다.
절로 한숨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대륙은 엉망이었다.
자신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손이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하늘에 열린 저 마계의 문을 닫지 않는 이상 답이 안 나온다는 말이다.
문제는 저 문을 닫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단 것이었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있긴 있다.
타락한 날개가 죽으면 된다.
그런데 그가 죽겠는가?
죽지 않는다면 죽여야 한다는 말인데, 누가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불가능 하다는 말이다.
지금 자신들이 하는 행동은 단지 시간을 버는 행동인 것이다.
본질을 외면하고 현상에만 치우쳐 행동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셀린이 찻잔을 들고 다가온 것이다.
“조금 쉬었다가 하세요.”
안드레이는 차를 내려놓으며 말을 거는 셀린을 바라보며 미소지어줬다.
“그래야겠다.”
“제가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니다. 네가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힘이 된단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레오나 공주님은?”
안드레이의 질문에 셀린이 슬픔에 의해 흔들리는 눈동자로 대답했다.
“정원에 계세요.”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부터였다.
앤디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날 레오나는 펑펑 울었다.
울다가 지쳐 결국 쓰러졌다.
다음날 정신을 차린 레오나는 아무 말 없이 정원에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종이 있었다.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앤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앤디의 죽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앤디가 없을 때마다 그러했든지 정원에 나가는 것이다.
정원에 있으면 왠지 앤디가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드실 것이다. 네가 공주님을 잘 챙겨드리도록 해라.”
“걱정마세요.”
안드레이가 셀린의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 쓸어 내려주었다.
“후, 그럼 다시 일을 해야겠구나.”
대륙은 빠르게 변화했다.
연합전선이 구축되거나 통합되는 식으로 과거 대륙의 그림자가 조금씩 지워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곳이 한군데 있었다.
바로 마신이 자리하고 있는 구 쿠렌트 제국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을 꺼렸다.
이 모든 현상이 마신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그곳이 안전하다지만, 정말 안전한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모으려는 어떤 술수일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대륙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면 그때 어떤 잔혹한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타락한 날개는 오늘도 119,405호를 관찰하기 위해 밖에 나왔다.
그리고는 눈빛을 반짝였다.
119,405호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만지작거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날개가 혹시나 싶어 119,405호를 불러보았다.
“119,405호.”
“….”
멀뚱히 있던 119,405호가 타락한 날개의 부름에 돌아본 것이다.
그런데 그냥 돌아본게 아니다.
귀찮은데 왜 부르냐는 듯한 도발적인 눈빛이었다.
“허, 뭐 저런 게 다 있지?”
타락한 날개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자 119,405호가 따라서 혀를 찼다.
순간 타락한 날개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119,405호가 인간의 유아기 행동을 했던 것이라면 이제 다음 단계인 따라하기 단계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드래곤 21호를 불렀다.
“저 녀석을 혼내줘라. 죽이지는 말고.”
그 말에 21호가 119,405호를 향해 달려들며 주먹을 곧게 뻗었다.
그러자 119,405호가 멍하니 그 주먹을 바라보다가 한 대 맞아서 뒤로 날아갔다.
쿠당탕!
119,405호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순식간에 21호를 향해 달려들더니 주먹을 곧게 뻗엇다.
21호가 했던 공격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21호는 맞질 알았다.
119,405호 팔을 탁 쳐서 튕겨내고 오히려 몸통으로 박아서 튕겨낸 것이다.
119,405호 다시 일어나 똑같은 수로 덤볐다.
21호가 팔을 다시 튕겨내자 몸을 회전하여 돌려차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맞지 않기 위해 순식간에 기술을 습득한 것이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의 판단이 맞았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119,405호는 역시 물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공격을 허용하는 횟수가 줄더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더 이상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21호와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21호가 119,405호에게 밀려 수세에 처했다.
결국 21호는 마나를 사용하며 기술을 썼고, 다시 119,405호는 처음 보는 기술에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21호가 쓰는 기술을 따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21호가 오러를 사용하자 119,405호도 오러를 사용했다.
이제는 21호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어떤 기술도 119,405호에게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가하는 변칙 공격에 당하게 된 것이다.
21호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119,405호의 기기묘묘한 공격은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자신을 노렸기 때문이다.
21호가 결국 몸을 뒤로 피하더니 브레스를 내질렀다.
쿠와아아앙!
거대한 어둠의 기둥이 119,405호를 향해 쏘아져 날아온다.
하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119,405호는 자신이 오러의 기운을 뭉쳐서 만들어낸 기다린 기운으로 21호의 브레스를 반으로 잘라낸 것이다.
서걱!
브레스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대로 브레스를 가르고 달려 들어가며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
21호는 다급하게 몸을 피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그대로 몸이 쪼개져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콰과과과광!
21호의 브레스가 더 이상 자신을 지원하는 에너지 원을 잃자 붕괴되어 거대한 압력을 토하며 폭발했다.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주먹질도 하지 못했던 119,405호에게 21호가 패하고 만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119,405호가 다시 21호에게 달려들자 그것을 본 타락한 날개가 명했다.
“그만!”
순간 119,405호와 맞서려던 21호가 멈춰 섰다.
둘은 상대방에서 쏟아 붙던 분노의 시선을 타락한 날개에게 돌렸다.
타락한 날개는 둘의 분노를 받아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19,405호가 얼마나 더 강해질지 궁금했다.
그때 119,405호 전생의 동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이라면 119,405호를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 이유 때문에 그때 그 녀석들을 살려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곤 해도 아직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시험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타락한 날개는 119,405호에게 명을 내렸다.
마물들을 죽이라고.
119,405호는 거침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마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똑같은 공격으로 죽는 마물은 하나도 없었다.
비슷해 보여도 모두 다른 수를 사용하여 쓰러트린 것이다.
119,405호는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대륙에 득시글거리는 마물을 죽였는데 그 수는 무려 50만 마리에 달했다.
조금도 쉬지 않고 제트기류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보이는 족족 죽인 결과였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았다.
타락한 날개가 말리지 않았다면 119,405호는 아직도 뛰어다니며 마물들을 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타락한 날개는 119,405호가 너무나 기특했다.
‘응?’
타락한 날개가 멈칫했다.
그리곤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기특?’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람과 동시에 의심을 품은 것이다.
기특하다라니.
그것은 남을 인정했다는 뜻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가 담긴 단어가 아닌가.
이기적인 자신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생각인 것이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이 어째서 저런 단어를 떠올렸는지에 대핸 한참을 고심하다가 결국 착각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3
안드레이와 일행들은 인간들을 도우며 최대한 대륙의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을 해왔다. 그게 조금 결실을 맺어 이제 인간들이 스스로 마물들에게서 어느 정도 방어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안드레이들도 그들을 안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우습게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나라의 붕괴 덕이었다.
처음에는 나라의 수가 많아서 어느 한 곳만 보호 할 수 없어 피해가 컸다.
왕국의 왕들이 자신의 자리를 버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집을 부린다해도 그들을 버릴 수 없었다.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수를 쓴다는 것이 마물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이는 곳을 도와주고 해결되면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하는 마음이 앞서서 벌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자위를 했다.
그러나 결국 왕국은 하나 둘 무너지거나 버티지 못하고 근처 왕국과 합쳐졌고, 지금은 왕국이 아닌 세 개의 지구(地區)로 불리며 사람들이 똘똘 뭉쳐지게 되었다.
그게 현재의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정말이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기뻐했다.
사람들이 그것에 기뻐하는 것을 보며 안드레이와 일행들을 아픈 가슴을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평민과 귀족의 선이 많이 흐려졌다.
그냥 다 사람인 세상이 된 것이다.
모두 살기위해 뭉쳐야 했고, 살기위해 서로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변한 것은 신관들이었다.
마계의 문이 열림으로 인해 신성력은 거의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들이 자랑하던 치유마법이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한동안 신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자신들이 지금껏 신의 이름을 팔아 만들어낸 권력와 부에 집착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변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식량을 얻을 수 없었고, 싸우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지금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나태하고 타락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결국 반성에 반성을 하며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가 자신들은 어째서 신을 믿고 있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신관들은 모두 변했다.
과거 신관들은 돼지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누구들보다 열심히 뛰고 움직이며 사람들을 도우 는데 앞장서는 이들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적응해 나가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지쳐가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방비를 잘한다 해도 매일 같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달팠다.
이렇게 살아서 무얼하나 싶기도 했다.
매 하루를 자신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라니.
끔찍했다.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원성이 커져만 갔다.
이것은 단순히 일반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 3지구.
이곳은 헤르만 왕국과 앤디의 기사단과 영주민들이 주축으로 움직여 형성된 방어형 요새였다.
지금 이곳에 지구 회의를 위해 각 지구의 대표들과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 중에 있었다.
그렇게 한참의 의견이 오가던 중에 바이널이 안드레이에게 질문했다.
“안드레이님.”
“말해보게.”
안드레이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푸념을 토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방어하며 마물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까?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까? 끝은 나는 것입니까?”
그 질문에 안드레이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은 다들 더 확실한 대답을 원한다는 뜻이다.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할 대답은 한정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바로 그 대답 말이다.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마치 채찍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서히 어깨가 무거워졌다.
자신의 어깨에 누가 돌이라도 얹어 놓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이 또한 모두 자신이 감내야 할 짐들이었으니까.
마음을 다스린 안드레이가 정말 힙겹게 대답했다.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자 2지구 대표가 버럭 대꾸했다.
“대체 언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내일? 모래? 1년 후? 10년 후? 저희에게 이 싸움이 승산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2지구 대표의 질문에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탈리온 공작이 대답했다.
“설마 너희는 지금 이 싸움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냐?”
그 한마디에 모두가 침묵했다.
다시 탈리온 공작이 말했다.
“그것 참 신기하군. 이 저주 받은 싸움을 하며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니. 하하.”
탈리온 공작의 웃음은 짐승의 으르렁거림보다 더욱 음침했다.
“대답해 보게. 정말 모르고서 묻는 것인지 궁금해서 말이네.”
“….”
사람들이 단체로 죄인처럼 고개를 깊이 숙이고 말았다.
안드레이의 잘못도 없는데 아니 오히려 은인에 가까운 그에게 힐책과도 같은 발언을 했으니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탈리온 공작이 다시 말했다.
“우리는 오히려 안드레이 경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그 최악의 상황에서 이미 죽었다고 할 수 있었던 우리들에게 이길 수도 있다는 착각을 심어줄 정도로 믿음을 준 그에게 말이다. 안드레이 경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탈리온 공작이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하나 시선을 맞췄다.
그 누구도 탈리온 공작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드래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다리자.”
“….”
“모두 한번 기다려보자. 안드레이 경이 말한 그 때가 오는 그 날을 기다려보자. 언제가 되든 말이다. 더 이상 떨어질 최악의 상황이 있는가? 죽음을 경험했던 그 순간보다 더 끔찍했던 기억이 있는가? 기다려보자. 이제 더 이상 떨어질 곳은 없으니 이제는 올라갈 것만 남지 않았겠는가. 만일 이기지 못하면 어떤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약 올린 것만으로도 통쾌하지 않는가.”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하루하루 더 살아가는 것이 저 마신을 엿 먹이는 일이었다니.
그렇게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이 모두 가신다.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삶에 가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마치, 부활이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들 죄책감 어린 모습으로 안드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 안드레이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의 막연한 믿음에 기뻐 어찌 해야 할 줄 몰랐다.
안드레이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십쇼. 분명 여러분들께서 흘리는 피와 땀만큼 분명히 기회는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필코 이길 것입니다.”
동시에 회의실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우리는 이길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