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학살
1
타락한 날개는 밀턴에게서 신경을 끄고 열심히 실험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밀턴이 브라키우드와 싸우는 사이에 드래곤을 열두 마리나 더 잡아서 마족으로 변이 시킨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나오질 않았고 그것은 곧 실망어린 표정으로 변해갔다.
드래곤을 실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와중 한 가지 생각이 미쳤다.
‘드래곤 로드인 브라키우드로 실험을 하면 어떻게 될까?’
순간 구미가 확 당겼다.
실험을 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키우드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퍼벅! 파박!
퍼버벅! 퍼버버벅!
허공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오가며 사방을 밝힌다.
거대한 빛이 폭발하고 그 파장으로 충격파가 형성이 되어 대기를 흔든다. 맑던 하늘에 어느새 구름이 잔뜩 끼었고 사방에서 천둥 번개가 내리친다.
쿠궁!
콰과과광!
땅이 흔들리고 대지에 균열이 일어난다.
바로 브라키우드와 밀턴의 기운이 충돌하며 생겨난 현상이었다.
밀턴의 인상이 구겨진다.
본신으로 돌아가면 쉽게 해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브라키우드는 역시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이 조금 우월하긴 했지만, 브라키우드의 노련한 공방의 기술은 그 우월함을 균등하게 맞추는 것도 모자라 틈틈이 위협적인 기습을 가행했다.
브라키우드의 거대한 앞발이 휘둘러진다.
부우웅!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중량감이 밀턴의 등골을 오싹하게 자극한다.
무엇보다 그 궤적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이번 공격도 급격히 방향을 전환시키며 허를 찌른다.
밀턴은 도무지 피할 수 없었다.
팡!
‘크흣!’
단순한 기압의 충격 때문에 밀턴의 상체가 욱신거릴 정도였다.
정통으로 맞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 한 대 맞을 것 같았다.
지금 말한 언젠가란 1초 후가 될 수도 있고 1분 후가 될 수도 있었다.
수세에 몰리고 있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해야 한다.
그것을 떠올림과 동시에 밀턴이 순식간에 하나의 수를 썼다.
마나를 중심에 모으고 폭발 시킨 것이다.
붐!
기압의 차이로 인해 밀턴과 브라키우드가 튕겨나간다.
하지만 브라키우드는 자신이 잡은 기회를 어떻게든 포기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뒤로 날아가던 브라키우드의 손끝에서 뿜어진 전기장이 밀턴의 발목을 말아 쥔다.
콰직!
콰지직!
밀턴은 찌릿한 기운과 동시에 브라키우드에게 끌려갔다. 그리곤 휘둘러졌다.
바닥과 충돌하기 바로 직전 손끝으로 밀어낸 어둠의 마나로 뭉쳐진 강기로 잘라냈다.
그러나 이미 날아가는 운동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밀턴은 그 힘을 이용해 그대로 날아가서는 반대쪽에서 서성이고 있던 드래곤 한 마리의 목을 썰었다.
그때 드래곤 세 마리가 달려들어 밀턴을 공략했다.
밀턴은 드래곤 세 마리가 가하는 마법의 범위에서 다급히 몸을 빼려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마리의 공격은 피했지만 두 마리의 범위 마법은 피할 수 없었다.
콰광!
큰 충격에 몸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노리고 다른 드래곤들이 연사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쿠과광!
산맥이 날아갈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대지가 수십 킬로미터내의 사방까지 잔금이 쩍쩍 갔다.
그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밀턴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한 것일까?
“허억! 허억!”
피하긴 피했다. 그러나 완전하게 피하진 못한 모양이다.
기세등등했던 밀턴의 본신이 넝마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밀턴이 이를 가는 듯한 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징그러운 도마뱀 새끼들!”
드래곤들도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미친.”
“지랄.”
“옘병.”
자신은 한마디를 내뱉었는데 순식간에 수십 마디가 되돌아 왔다.
차마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욕도 수두룩했다.
인간들에게 배운 욕을 실컷 쏘아주는 드래곤들이었다.
밀턴은 말 그대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이다.
밀턴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필패다.
자신은 마계로 강제 귀환 따위는 당하고 싶지 않았다.
드래곤들을 다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특히나 자신을 이렇게까지 만든 브라키우드와 파이온이란 두 녀석만큼은 아니었다.
자신이 마계로 강제 귀환 당한다 치더라도 이 두 녀석만큼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다.
이래서 원한이란 돌고 돈다고 하는 모양이다.
브라키우드 역시 이런 마음으로 밀턴을 공격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밀턴의 시야에 자신의 주인 타락한 날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밀턴은 기뻤다.
주인이 자신을 구해주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타락한 날개의 목적지는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타락한 날개는 밀턴을 없는 존재 취급 하듯 지나치고 곧장 브라키우드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밀턴은 조금 허탈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뭐 어떤가.
살았으면 된 거지.
“…씨발.”
2
브라키우드는 당황했다.
타락한 날개가 자신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것을 목격한 탓이다.
갑자기 떠오른 불안감에 본능적으로 지금까지 그를 막아서고 있던 동료 드래곤들이 있을 방향을 돌아보았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50마리나 되었던 드래곤 무리가 체 열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그 사이에 그 많은 드래곤들이 죽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살아 있는 드래곤들도 멀쩡한 이들은 다섯도 되지 못했다.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120마리였던 드래곤이 지금은 마흔두 마리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사실은 마흔두 마리라도 살아 날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절망이다.
그나마 멸종은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나?
아직 성룡이 되지 못한 헤즐링 두 마리가 레어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될 수 없었다.
크오오오오옹!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브라키우드의 피어가 터져 나왔다.
깊은 슬픔과 분노가 담겨 있는 브라키우드의 목소리에 드래곤들이 이를 악물었다.
자신들의 심정도 브라키우드와 같았기 때문이다.
“대체 우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토록 잔인한 짓을 한단 말이냐!”
그 말에 브라키우드의 공격 범위 내에 들어온 타락한 날개가 대답했다.
“지금 자네의 말은 모순투성이군.”
“그게 무슨 말이냐!”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나를 죽이겠다고 찾아 온 것은 너희들이었으니 말이다.”
타락한 날개의 말에 브라키우드가 언성을 높여 항변했다.
“네 녀석들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유도 한 것이 아니냐!”
“계획을 짜든 짜지 않았든 살의를 품고 다가 온 것은 네 녀석들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지. 무엇보다 내 존재를 파악함으로 인해 나를 알기도 전부터 살의를 품고 있지 않았다고 맹세 할 수 있나?”
“….”
“밀턴이 짠 계획은 네 녀석들이 우리를 향해 드러낸 살의를 베이스로 깔고 만들어 낸 것이다.”
브라키우드는 억울했지만 뭐라고 변명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타락한 날개의 말대로 라고 하면 자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어를 한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니 말이다.
눈물이 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좋다 알겠다. 하지만 나도 순순히 죽어 줄 생각은 없다.”
“여부가 있겠는가?”
타락한 날개가 자식의 투정을 받아주는 듯한 온화한 미소로 브라키우드를 바라보았다.
우웅. 우우웅!
브라키우드의 양 손에 마나의 덩어리인 푸르스름한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타락한 날개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말을 걸었다.
“오호. 오러를 손 끝에 모은다? 재밌는 기술이군.”
“인간들에게 배웠지”
“인간들에게?”
브라키우드는 왠지 지금 이 순간 타락한 날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키우드는 자신의 할 말을 마저 내뱉었다.
“기운을 폭사하여 면을 파괴하는 마법과 달리 그 기운을 하나로 응축하여 점을 꿰뚫는 기술. 나로서는 사실 정말로 쓸모없는 기술이라고 생각해서 지금껏 쓴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이 기술 밖에 생각이 나지 않더군.”
“어째서지?”
“육탄전을 할 생각이니까.”
“육탄전?”
“당신에게 마법이 통하지 않으니 육탄전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어? 물론 육탄전이나 이 기술이 통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그 어떤 기술이 당신에게 통하겠어? 이미 신에 다다른 당신에게 말이야.”
“신에 다다랐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아닌가?”
“글쎄. 나도 모르겠군.”
“….”
“….”
브라키우드는 왠지 지금 이 한마디가 처음으로 드러낸 타락한 날개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다보니 자신의 착각일 확률이 높겠지만 말이다.
브라키우드가 자조적인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기대는 걸고 있지.”
“어떤 기대 말인가?”
타락한 날개의 질문에 브라키우드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붉은 눈동자로 주시하며 대답해 주었다.
“죽기 전에 내 주먹으로 네 녀석의 그 징그럽고 지긋지긋한 면상을 한 대 후려 갈기리라는 그런 기대 말이다.”
브라키우드의 그 한마디에 타락한 날개는 정말 행복해 미치겠다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그래. 나도 기대 되는군. 힘내보게나.”
대화가 끝나자 타락한 날개의 등에 달려 있는 촉수 날개가 뱀의 혓바닥마냥 요사스럽게 꿈틀거리며 사이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파팟!
브라키우드의 신형이 하나의 선이 되듯 쏘아나간다.
브라키우드의 양 손에 맺힌 강기와 타락한 날개의 촉수 날개가 부딪혔다.
타탕!
환한 섬광이 폭죽처럼 터진다.
타탕 타탕! 탕탕타당 탕탕탕!
공수가 교환되면 될수록 압축된 에너지가 사방에 휘몰아친다.
고오오오오오!
사방에 뻗어나가는 강력한 에너지에 모두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놀라운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브라키우드였다.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데 말이다.
자신의 앞발에 맺혀 있는 오러는 지금까지 퍼 붇기가 무섭게 사그라졌던 마법과 달리 사라지지 않고 충분한 공수교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법이 통하지 않기에 사라졌던 희망에 작은 불씨가 피어 올랐다.
물론 압도적이다 못해 초월적인 힘의 차이로 인해 공수가 오갈 때마다 브라키우드의 손에 맺혀 있는 오러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빛을 바래고 있었지만 말이다.
“….”
브라키우드는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타락한 날개와 맞서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미 죽을 것을 각오했다지만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 오자 그 압박감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원초적인 공포감.
지금껏 자신은 삶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생각보다 삶과 목숨에 대한 미련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제 힘이 거의 다 소진하여 몇 번의 공수조차 버티지 못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죽음에 다다른 바로 그 순간 브라키우드의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다.
앤디라는 인간의 얼굴이다.
‘어째서….’
이해 할 수 없었다.
막다른 지점에서 인간의 모습이 떠오르다니.
그러고보니 이곳에 오기 전에도 앤디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던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본능이 자신에게 뭔가 말해주려고 하는 것일까?
퍼벅!
“크흣!”
엄청난 충격에 왼쪽 어깨가 부서졌다.
힐링을 하고 싶지만 사용할 틈을 주지 않는다.
움직일 때마다 부서진 뼈가 부대끼며 일어나는 날카로운 통증이 척추를 타고 전신을 엄습한다.
호흡이 거칠어 졌다.
타락한 날개가 말을 건다.
“이제 마지막인 모양이군.”
“흥! 웃기지마라. 아직 거뜬하다.”
“큭큭. 그래야지. 그렇게 꿈틀거려야 밟는 맛도 나는 법이니까.”
브라키우드가 이를 꽉 물고 다시 덤벼든다.
어떻게든 한 대만이라도 돌려주고 싶었지만 저 지랄 같은 촉수 날개에 막혀 한발 전진도 불가능하다.
다른 드래곤들이 사방에서 지원 공격을 해주고 있었지만, 역시나 있으나 마나한 공격이었다.
콰광!
쿠구궁!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 할지라도 타락한 날개의 일정 범위 내에 도달하면 사그라드는 것이다.
타락한 날개에게 마법이라는 것은 브라키우드의 짐작대로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브라키우드는 드래곤들이 도망치기를 바랐다.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 할 수도 있었다.
저기 체력을 회복하고 있는 밀턴만 하더라도 만만한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드래곤들이 이대로 전멸당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드래곤들이 두려움에 덜덜 떨며 사형 순서를 기다리다 죽어가는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다.
개 죽음일 뿐이다.
도망치는 것도 작전이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는 나중에 기회를 보고 전력을 다듬고 힘을 기른 후 다시 공략하는 것이다.
브라키우드는 결국 마음을 굳혔다.
모두들 도망치게 하기로 말이다.
하지만 소리쳐서 도망치라고 외칠 수 없었다.
타락한 날개나 밀턴이 눈치 차리면 생존 확률이 더 줄어 들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도망치는 순간까지 아무도 눈치를 차려서는 안 된다.
브라키우드는 자신의 힘을 적당히 갈무리 했다.
대놓고 갈무리 한 것이 아니다.
공방을 주고 받을 때마다 조금씩 빼돌린 것이다.
어차피 한 번씩 공방을 하며 충돌 할 때마다 사라지는 오러다.
적당하게 빼돌리면 타락한 날개가 알아 차릴 일이 없단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힘을 빼돌리는 것이 미친 짓처럼 생각되겠지만 이런 작전을 사용하는 것은 타락한 날개가 자신을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죽였을 테니 말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꿈틀거려줄 생각이다.
최대한 꿈틀거려서 작은 바람이라도 일으켜볼 생각이다.
그 작은 바람에 큰 기대를 걸진 않는다.
그래도 그 바람이 움직여 큰 바람이 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면 충분하다.
미풍이나마 저 능글맞은 타락한 날개의 안면을 갈겨줄 수 있다면….
3
움찔.
짧은 순간이었다.
자리하고 있는 모든 드래곤들이 눈 여겨 보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반응한 것은 말이다.
모두들 부정하고 싶었고 무시하고 싶었다.
퍼퍽!
“크학!”
타락한 날개의 공격에 결국 브라키우드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그들의 뇌리에 브라키우드의 목소리가 스친다.
살아라. 부탁한다.
타락한 날개가 브라키우드의 사지를 촉수 날개로 붙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남아 있는 촉수 날개를 이용하여 상처를 후빈다.
“크아아아악!”
브라키우드의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진다.
도망쳐!
순간 드래곤이 동시에 전혀 다른 루트를 이용하여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응? 뭐지?”
타락한 날개가 의아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드래곤들의 뒷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이동을 못하도록 마나를 부동시켜놨으니 날아서 도망치는 것이리라.
타락한 날개가 의아한 시선으로 브라키우드를 돌아보았다.
기쁘기 그지없다는 듯 브라키우드가 환하게 웃는다.
타락한 날개도 브라키우드의 미소를 따라 함께 웃는다.
“네 녀석이 한 짓이군. 그 와중에도 마나를 빼돌려서 수작을 부린 건가?”
“부정하지는 않겠네.”
“똑똑하군. 저렇게 흩어지면 모두 잡아들이기가 쉽지 않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몇 놈은 놓칠 거야. 하지만 굳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지? 한 놈이 살게 해서 나중에 기습이라도 시킬 생각인가? 그런 기습 따위가 나에게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타락한 날개는 고개를 꺄웃거렸다.
“큭큭큭.”
브라키우드의 웃음에 타락한 날개가 기분이 상한 듯 한, 혹은 짜증이 어려 있는 미소를 짓는다.
브라키우드의 웃음이 왠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듯한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브라키우드는 속으로 빌었다.
제발 모두들 무사하게 도망치길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탁을 이행해 주길 말이다.
그 부탁이란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자신은 모아놓은 마나를 이용하여 기억전이 마법을 드래곤들에게 시전 했다.
그 전이 된 기억을 앤디라는 인간을 찾아서 그대로 전해주라는 것이었다.
부탁을 받은 드래곤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사실 브라키우드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이 전쟁은 드래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계 모든 생명이 함께 싸워야 한다.
가능하다면 자신들이 해결하고 싶었지만 이미 실패하지 않았는가.
개미가 모여 거대한 나무를 쓰러트리는 법이다.
그들이 예상외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그 희망에 걸어 본 것이다.
타락한 날개가 브라키우드에게 말했다.
“아, 정말 모르겠군. 조금 짜증나긴 하지만 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래봤자 변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푸푹!
“끄아아아악!”
명치를 뚫고 들어간 타락한 날개의 촉수에 브라키우드의 전신이 덜덜덜 떨렸다.
그 진동을 즐기기라도 하듯 한참동안 멈춰있던 타락한 날개가 눈을 떴다.
그리고 명치에 박혀 들어갔던 촉수를 뽑았다.
팍!
“컥!”
브라키우드가 모든 힘을 잃고 물먹은 솜 마냥 축 늘어졌다.
타락한 날개는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 두 배 가량 큰 브라키우드의 드래곤 하트를 바라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놀라울 정도로 크게 입을 벌린 타락한 날개가 한 입에 브라키우드의 드래곤 하트를 밀어 넣었다.
우적우적!
꿀꺽.
이번에도 다른 드래곤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브라키우드의 몸이 모래 탑처럼 무너지며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리고 곧 타락한 날개의 등 뒤에서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타락한 날개는 기대어린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드래곤들이 암흑의 드래곤이 된 것과 달리 브라키우드는 브라키우드 그대로의 원형을 가지고 등장했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전체적인 음영이 조금 더 어두워 졌을 뿐이라는 점이었다.
아, 또 하나 있었다.
날개가 하나 더 달렸다는 것이다.
원래 좌우에 날개가 두 개 있었으니 그것으로 인해 그는 세 개의 날개를 지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 달리 자신에게 충성어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적개심이 아닌 살기였다.
자신이 만들어낸 녀석이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 뿜다니!
수 십 억년을 살아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크크크크크!”
절로 웃음이 나온다.
재밌지 않은가!
너무너무 신이난다.
흥분되고 유쾌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기쁨에 겨워 세상을 다 파괴하고 싶을 정도다.
모든 것을 원하고 원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 되었으며 자신의 지식은 모든 것의 지식이고 모든 것의 지식은 자신의 지식이었다.
그 결과 삶이 너무 무미건조해졌다.
재미가 없다.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이기에 자신이 알 수 없는 결과의 등장은 그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험하여 하나의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브라키우드 아니지. 드래곤 21호. 나를 죽이고 싶나?”
“크르르르.”
원래의 지식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데 자신에게 살기를 드러내다니 정말 흥미로워서 해부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관찰을 해야 했다.
천천히 천천히 관찰을 해서 살펴봐야만 했다.
어째서 이런 녀석이 탄생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해나갈지를 말이다.
그리고 저런 짜릿한 살기를 흘리면서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도 말이다.
여하튼 그건 모두 나중에 할 일이고 지금은 지금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바로 도망치고 있는 드래곤들의 처리 문제였다.
타락한 날개가 웃으며 드래곤 21호를 향해 말했다.
“네 녀석이 한 짓이니 네 녀석이 거둬야겠지?”
크르르르.
드래곤 21호가 타락한 날개의 명령에 고개를 하늘로 돌렸다.
4
밀턴과 드래곤 21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푸쉿!
둘 다 허공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드래곤 21호가 도망치고 있던 한 드래곤의 앞에 순간이동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도망치던 드래곤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드래곤 21호를 보고 당황하며 멈춰 섰다.
“로드….”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드래곤 21호가 팔을 거침없이 휘둘러 머리를 내려찍은 탓이다.
파삭!
드래곤은 그 어떤 방비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린 체 즉사하고 말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드래곤 21호는 하나하나 도망치는 드래곤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드래곤은 폭사하여 죽었고, 어떤 드래곤은 팔 다리가 뜯어진 체 죽었으며, 어떤 드래곤은 뭉개져서 죽었다.
이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명색이 드래곤들이 작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드래곤 21호의 능력은 단순히 수치로 계산했을 때 과거 브라키우드였을 적과 비교하여 다섯 배 이상 강했다.
드래곤들이 막지 못할 만도 했다.
수치상으로는 드래곤 21호의 힘이 마왕인 밀턴 위에 속해 있었으니 말이다.
파팟!
“로드 정신 차리십시오!”
크르르르.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 드래곤 21호는 입을 쩍 벌려 브레스를 토했다.
쿠쾅!
거대한 빛줄기가 대기를 가르며 쭉 뻗어 나간다.
드래곤은 피한다고 피했지만 신체의 오른쪽 절반을 상실한 체 경악어린 표정으로 죽었다.
드래곤 21호는 저 앞쪽에 도망치는 블루 드래곤이 보이자 순간이동이 아닌 직접 날아서 쫓았다. 그리고 날개 죽지를 잡고 그대로 부욱 찢었다.
“커허허허허헉!”
두 날개가 팔랑거리며 땅 아래로 처박혔다.
날개를 잃은 드래곤의 척추를 잡고 그대로 비틀었다.
우드득!
몸이 꽈배기처럼 틀어지며 목이 등 뒤로 돌아갔다.
그러자 얼굴이 드래곤 21호와 정면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 얼굴이 슬픈 눈빛으로 드래곤 21호를 바라보며 눈물을 떨궜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로드….”
블루드래곤의 수장 베르카였다.
순간 분노에 휩싸인 표정으로 폭주라도 하듯 학살을 자행하던 드래곤 21호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드래곤 21호의 입에서 신음같은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베르…카…?”
드래곤 21호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슬픔으로 물들어 있는 울부짖음이었다.
폐부가 찢어져라 울어댔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 넝마가 되어 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때 저 멀리 밀턴이 다른 드래곤을 공격하려고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밀턴도 드래곤 21호와 같이 드래곤들을 처리하던 중이었다.
순간 드래곤 21호의 신형이 팟하고 사라진다.
밀턴이 엄청난 속도로 대기를 가로지른다.
슈우웃!
“크크크. 네 녀석은 어떻게 죽여줄까?”
밀턴이 입맛을 다시며 막 여덟 번째 드래곤을 공격하려던 찰나 자신의 앞에 거대한 기운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밀턴은 공격을 멈추고 재빨리 몸을 피했다.
바로 밀턴이 멈춘 그 앞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터져 나왔다.
밀턴이 그대로 공격을 가했다면 그 빛의 기둥에 당했을 것이란 말이다.
밀턴은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마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꼬리를 볼 수 있었다.
부웅!
밀턴은 몸을 숙여 그 꼬리를 피하며 몸의 주체가 있을 위치에 파이어 브레이크를 날렸다.
퍼퍼펑!
서둘러 블링크를 사용하여 몸을 뒤로 이동시켰다.
대체 어떤 드래곤이 자신을 공격하는지 보려 했던 것이다.
“21호?”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마신의 수하가 된 브라키우드가 자신을 공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밀턴은 놀라서 타락한 날개를 돌아봤다.
타락한 날개가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면 드래곤 21호가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죽이라고 했다면 어째서인지 잠시 고민한 순간 타락한 날개와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바뀌었다.
타락한 날개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눈으로 밀턴 자신과 드래곤 21호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주인님이 시킨 일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설마 녀석이 혼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건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거지?’
의문을 더 진행 할 수 없었다.
드래곤 21호의 공격이 더욱 집요하고 거칠어 졌기 때문이다.
“젠장 할 자식. 나도 네 녀석이 처음부터 싫었어.”
밀턴이 대놓고 드래곤 21호와 손속을 겨뤘다.
환영처럼 드래곤 21호의 앞발이 쏘아져 나왔다.
밀턴이 팔을 들어 공격을 흘리기 위해 가볍게 틀었다.
‘큿!’
기술은 성공했지만, 튕겨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만만치 않다.
적중했다면 마왕이란 호칭이 부끄럽게도 팔이 부러졌을 것이다.
밀턴이 이를 악물고 몸을 빙글 돌려서 드래곤 21호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팔꿈치로 가격했다.
퍽!
두들겨 맞은 드래곤 21호가 몸을 휘청였다.
밀턴은 기세를 몰아 연속 공격을 시도하려던 찰나.
휘리릭!
드래곤 21호의 꼬리가 채찍처럼 휘감겨 날아온다.
밀턴이 다리를 들어 막았다.
쩌억!
정강이가 묵직하게 아릿하다.
이가 절로 갈린다.
이쯤 되자 다른 드래곤이 도망을 치던 말던 눈앞의 이 녀석을 찢어 죽여야 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죽여도 자신의 주인인 타락한 날개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불량품인 것 같으니 말이다.
쉬이익!
드래곤 21호가 몸통박치기를 하며 다가오자 밀턴이 몸을 회전시켜 뒷다리를 쭈욱 뻗었다.
마왕이 꼴사납게 육탄전이라니 라는 푸념이 한숨으로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드래곤 주제에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달라붙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하튼 이번 공격은 상당히 자신했다.
가슴을 노렸던 것과 달리 드래곤 21호의 오른쪽 어깨에 맞았지만 말이다.
뻐억!
드래곤 21호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밀턴에게 달려든다.
지긋지긋한 공방이 이어졌다.
밀턴은 공격과 방어를 번갈아 하며 노출 된 팔뚝과 정강이와 장딴지 부분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드래곤 21호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선명해졌다.
“죽일거다. 죽일테다. 네 녀석을 필히 죽이고 말리라.”
“뭐?”
“죽인다. 죽인다.”
잘못들은 말이 아니었다.
퍼걱!
로우킥에 옆구리를 허용당한 밀턴의 몸이 뒤로 쭈욱 날아갔다.
“제길. 명색이 마왕이거늘 이런 혼도 없는 꼭두각시 같은 녀석에게 당할 줄이야.”
결국 팔이 부러져 덜렁거려 재빨리 치료했다.
그리고 너 죽고 나 죽어보자는 식으로 무리를 하여 헬 플레어를 발동시키려던 순간 등 뒤에서 타락한 날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1호. 기억이 돌아왔나? 언제 돌아왔지?”
놀랍게도 지금까지 광기에 씌어 씩씩거리던 드래곤 21호가 언제 흥분했었냐는 듯 차분한 어투로 대답했다.
“조금 전에…. 그리고 난 21호 따위가 아니오.”
“그럼 브라키우드인가?”
“…아련한 이름이군. 하지만 그 이름도 아니오.”
“그럼 뭐지?”
“이름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소.”
“무슨 소리냐? 누가 너에게 허락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냐?”
“….”
타락한 날개는 의아한 표정을 넘어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드래곤 21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만들어냈다. 아닌가?”
“맞소. 확실하오.”
“그런데 허락이라니 무슨 소리냐?”
타락한 날개의 의문에 밀턴도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드래곤 21호는 입을 다물었다.
타락한 날개가 다시 질문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기억은 모두 돌아온 모양이군. 그런가?”
“맞소.”
“그래서 밀턴을 죽이려고 했나?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
드래곤 21호가 물끄러미 타락한 날개를 봤다.
“난 이 세상에 미련 따윈 없소.”
“미련이 없다고?”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세상이 멸망해도 관심 없소. 어차피 일어날 것이니 말이오.”
타락한 날개가 호기심으로 인해 속이 타는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질문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당신이 말하지 않았소.”
“아니야. 아니야. 지금 네 녀석의 말은 확신에 차있었다고. 단지 들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는 말이지.”
“당신의 한 말을 한 것일 뿐이요.”
“말하기 싫은가 보군. 그렇다치지. 세상에 미련도 없고 내가 네 녀석을 만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밀턴을 공격한 것이지?”
그 말에 드래곤 21호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대답했다.
“당신과 저 자만큼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분노인가?”
“….”
타락한 날개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반면에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큭큭. 신기하군. 전생의 모든 기억에 미련이 없음에도 분노만은 계승이 되었고, 내가 만들어낸 생명체에게 나조차도 모르는 어떤 존재에 관한 이야기도 듣게 되다니….”
“….”
“이젠 어쩔 건가? 나를 공격 할 것인가? 네가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오. 나는 아니 내 힘으로는 당신을 죽일 수 없소.”
“나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말은 안하는 군.”
“….”
드래곤 21호는 입을 닫고 공격의 의지를 보였다.
그러자 타락한 날개가 손벽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것도 좋군. 한동안 지루하지는 않겠어.”
“나를 죽이지 않겠다는 말이오?”
“왜? 지금 죽여줄까?”
“….”
“걱정마라. 안 죽일 테니. 네 녀석을 죽이는 것은 개미 죽이는 것만큼 쉽다. 하지만 네 녀석처럼 재밌는 연구거리를 그냥 죽일 수는 없지. 따라 올 것이냐?”
“어째서 따라오라는 말이오?”
“따라와야 나를 공략할 기회를 더 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제야 드래곤 21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타락한 날개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밀턴.”
“예, 주인님.”
“한동안 뒤통수 관리 잘해야겠어. 조심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생겼으니 말이야. 크하하하하하!”
“….”
타락한 날개가 이동을 시작하자 밀턴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타락한 날개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드래곤 21호가 살기등등한 눈초리로 자신의 뒤에 붙어 오는 것을 느낀 밀턴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져갔다.
‘후환을 남겨두는 것도 모자라 아지트로 끌고 가다니…. 그냥 속 시원하게 지금 처리해 버릴까?’
하지만 생각과 달리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긴다해도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결국 밀턴은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바로 적과의 동침이라는 건가 보군.’
뒤를 잔뜩 경계하며 날아오른 밀턴은 아지트로 돌아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