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63화 (34/68)

제4장. 실험재료

1

쿠과과과과과광!

섬광과 굉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지금 당장 세상이 무너진다면 그 중심은 바로 이곳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충격파가 대기를 뒤흔들었다. 그토록 평범하지 못한 장소에 걸맞게 백여마리의 드래곤들이 사방을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기회를 노리며 충격음이 터지는 곳을 향해 한번이라도 더 공격 마법을 쏘아보낼 준비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집중 포화가 멈췄다.

브라키우드가 멈추라 지시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흔들리는 시선으로 중앙을 주시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토록 강력한 집중포화를 퍼부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상처의 흔적도 아니 옷깃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웃으며 서있는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끝났나? 그럼 이젠 내 차롄가?”

타락한 날개의 한마디에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니 무슨 말을 꺼낸다 했더라도 한 단어도 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타락한 날개가 자신의 차례냐고 묻기가 무섭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붉은 섬광이 길게 쭉 이어졌다.

퍼벙!

붉은 섬광과 충돌한 드래곤이 갑자기 풍선이라도 터진 것처럼 폭발했다.

원래 드래곤이었음을 증명할 수도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고기조각들이 비산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무도 파악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 마리의 드래곤이 더 죽기 전까진 말이다.

“모두 피해!”

한 드래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드래곤들이 모두들 다급히 블링크를 사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변경했다.

그러자 붉은 섬광이 사라지고 타락한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락한 날개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열심히 도망쳐 보라구. 친구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의 촉수와도 같은 날개를 흔들며 날개 짓을 했다.

사방에서 연신 드래곤 최고의 마법이라 할 수 있는 특정 종족을 드러내는 브레스와 온갖 마법이 쏘아졌다.

타락한 날개의 날개가 사방을 휘몰아치며 그 마법을 모두 상쇄했다.

단순히 상쇄한 것을 넘어 갑자기 쭉 늘어지며 뻗어나간 날개 촉수 한 가닥이 드래곤 한마리의 발목을 잡고 그대로 끌어 들였다.

드래곤은 반항도 못하고 그대로 쭉 끌려 들어갔다.

타락한 날개가 팔을 뻗어 자신의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드래곤의 명치를 뚫었다.

푸푹!

“커헉!”

타락한 날개가 팔을 뽑자 붉은 선혈이 사방에 튄다.

타락한 날개의 손에 뭔가 쥐어져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심장크기의 커다란 보석 같은 것이 말이다.

드래곤 하트였다.

타락한 날개는 그것을 보고는 맛깔스러운 음식이라도 본 것처럼 한입에 우겨 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순간 자신의 심장이 타락한 날개의 입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숨을 거둔 드래곤이 허공에서 파도를 만난 모래성처럼 스러졌다.

그리고 타락한 날개의 뒤에서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드래곤들은 경악을 했다.

“저, 저럴수가!”

드래곤의 심장을 먹어서 마족으로 변이를 시켰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또 다른 차원의 공포가 전신을 엄습해 왔다.

자신들도 여차하면 저런 꼭두각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은 탓이다.

죽으면 죽었지 마족의 장난감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타락한 날개가 자신이 만들어낸 칠흑 같은 빛을 드러내고 있는 어둠의 마족으로 태어난 드래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 이 녀석은 나를 조금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타락한 날개는 혼잣말을 한 후 잠시 키득거리며 즐거워했다.

“드래곤 1호. 네 실력을 마음껏 뽐내봐라.”

어둠의 드래곤이 타락한 날개의 명을 받고 날아 올랐다.

어둠의 드래곤은 블랙 드래곤과 그 색의 깊이가 달랐다.

블랙 드래곤의 색이 단순한 검은 색이라면 어둠의 드래곤은 마치 빛을 빨아들이고 있는 듯한 깊은 느낌의 것이었다.

어둠의 드래곤이 암흑의 브래스를 터트렸다.

쿠와아아!

진득한 기운의 브래스가 사방으로 퍼진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드래곤들이 몸을 피하자 어둠의 드래곤이 육탄 돌격을 가행했다.

어둠의 드래곤이 가하는 공격에 드래곤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첩함과 공격력 모든 것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일대 일이라면 졌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는 많은 드래곤이 포진해 있었다.

공격을 당하는 드래곤의 도움에 모두들 달려들어 합공을 시작했다.

이 사이에 타락한 날개가 끼어들어 공략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타락한 날개는 가만히 어둠의 드래곤과 자신들의 전투를 구경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드래곤들은 암흑의 드래곤을 잡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강한 녀석이라곤 하지만 드래곤들의 전술적인 움직임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드래곤들은 녀석을 죽이기가 무섭게 타락한 날개를 견제했다.

하지만 드래곤들의 걱정과 다르게 타락한 날개는 고개를 꺄웃거리기만 할 뿐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둠의 드래곤이 죽고 사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흠, 이상하군. 왜 이러지?”

타락한 날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자신이 원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탓이다.

어둠의 드래곤은 타락한 날개가 원했던 것처럼 또 다른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평범하게 그냥 자신의 수족이 되었을 뿐이다.

처음 만들었던 다섯 마족들은 스스로 강해지면서 수하라는 굴레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의견을 드러낼 정도로 성장하며 타락한 날개에게 은은한 즐거움을 선사했었는데, 기대했던 드래곤의 반응이 시원치않자 실망감이 컸던 것이다.

타락한 날개는 한참을 고심했다.

“대체 뭐가 문젠거지?”

어둠의 드래곤을 죽인 드래곤들이 잔뜩 긴장하여 자신을 견제하며 포진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얼마 전 자신은 특별한 녀석들을 만들어 냈었다.

바로 다섯 명의 기사로 만들어낸 마족 말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단순한 수족이 아닌 과거 인간이었을 적의 자아를 찾아 스스로의 행동을 일삼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준 힘 이상의 것을 끌어내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여러 실험체로 실험을 해본 결과 대충 인간들의 수련을 통해 강해진 정신력이 그런 결과를 이끌어 냈을 수도 있다는 짐작을 하게는 되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가에 대한 이유까지는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생각을 돌려보았다.

단순히 자아가 강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분명 인간보다 더 강력한 존재인 드래곤은 더욱 쉽게 자아를 찾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결과는 자신을 실망시켰다.

지금 죽은 드래곤 1호는 자신이 인간으로 만들었던 다섯 마족들과 달리 능동적이지 못한 명령에만 충실한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흠, 이 녀석만 그런 것은 아닐까? 그 다섯 마족 외에 실험했던 인간들도 모두 실험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었으니까 말이야.”

타락한 날개는 실험을 위해 다른 녀석들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타락한 날개가 멈춰서 있는 것을 보고 기습을 위해 다가왔던 드래곤 다섯 마리가 날개 촉수에 휘감겨 그대로 포박당하고 말았다.

츄리릭!

“뭐, 뭐야!”

“으아악!”

드래곤들이 비명을 토했다.

공포감에 물들어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조금 전에 봤던 그 장면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풀려나기 위해 온갖 수를 써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남아 놀던 촉수들이 스믈스믈 드래곤들의 명치를 향해 다가갔다.

“안 돼! 안 돼!”

하지만 촉수들은 드래곤들의 비명을 즐기기라도 하듯 꿈틀거렸다.

드래곤들은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순간이동마법을 사용하려했지만 마나가 동결이라도 된 것처럼 마법을 사용 할 수 없었다.

그제야 다른 동료 드래곤들이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

범위 밖에 대기하고 있던 드래곤들이 다급하게 마법으로 공격했다.

그러자 촉수들이 자신이 붙잡고 있던 드래곤을 방패삼아 방어했다.

동료들의 공격을 고스라니 받은 포박당한 드래곤들이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그냥 죽여라!”

타락한 날개가 그 말을 듣고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순 없지.”

순간 촉수들이 잡고 있던 드래곤들의 명치를 향해 날아갔다.

퍽퍽퍽퍽퍽!

명치를 뚫고 들어간 촉수들이 드래곤 하트를 말아 쥐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드래곤 하트 다섯 개가 영롱한 붉은 빛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2

드래곤들이 모두 공황상태에 빠졌다.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둘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드래곤들은 자신들이 여기에 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신들은 사형을 당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분명 처음에는 득의양양하게 복수를 하겠다고 왔었다.

중간계를 지키기 위해 마신을 처치하기 위해 왔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말이다.

자신들의 합공이라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자신들은 터무니없게도 행복한 환상을 넘어 망상에 가까운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마신은 상식을 넘어서는 엄청난 신위를 보여주었다.

중간계로 왔기에 힘이 일정부분 봉인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기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사용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사용해도 타락한 날개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넘어 농락까지 당하고 있다.

보라.

마치 자신들을 장난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지고 노는 듯하지 않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 마신의 능력이라면 벌써 자신들을 다 죽였어도 시간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냥 죽이는 것이 심심했는지 드래곤을 잡아 마족으로 만들어 다시 싸움을 붙인다.

그것을 보니 피눈물이 흘렀다.

자신들의 존재가 이렇게 허무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인간들에게 위대한 존재라 불리며 중간계를 다스렸던 자신들이 이토록 나약하게 느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그냥 저 마신의 손에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타락한 날개는 심장을 하나 하나 입에 밀어 넣었다.

우득우득.

꿀꺽.

드래곤 한 마리의 형체가 공기 중에 스러진다.

그때 몇몇 드래곤들이 타락한 날개를 향해 브레스를 내 뿜었다.

“이 잔혹한 놈!”

타락한 날개는 드래곤들의 공격에도 계념치 않고 하던 작업을 마저 진행했다.

아득아득. 쩝쩝.

꿀꺽.

폭사 된 마법들이 타락한 날개를 강타하려던 순간 타락한 날개에 의해 심장이 먹혔던 드래곤들이 처음 녀석처럼 어둠의 드래곤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 그 공격을 막아섰다.

콰광! 콰과광!

뭔가 특별한 대책이랄 것도 없이 전신으로 막은 것이다.

드래곤 두 마리가 반대쪽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부상을 입은 몸을 스스로 힐링하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타락한 날개는 그렇게 마족이 된 드래곤들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또 실팬가?”

타락한 날개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입맛을 한 번 쩍 다시더니 명령을 내렸다.

“적들을 물리쳐라.”

다섯 마리의 어둠의 드래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사방으로 마법을 갈겨댔다.

드래곤들은 마족이 된 어둠의 드래곤들과 맞섰다.

어둠의 드래곤들로 인해 난전이 벌어졌다.

드래곤들도 타락한 날개에게 신경을 끄고 어둠의 드래곤들과 싸웠다.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지만 이제 현실을 조금 파악 할 수 있게 된 탓이다.

타락한 날개가 자신들을 조롱하든 뭘하든 지금 자신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수가 많았던 드래곤들은 가뿐하게 어둠의 드래곤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누구도 타락한 날개에게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확실한 자살행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안 오지? 겁먹은 건가? 시시하군. 조금 더 덤벼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뭐 어쩔 수 없지. 오지 않겠다면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결국 타락한 날개가 자리를 박차고 움직였다.

드래곤들이 늑대 만난 양 때 마냥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을 보며 타락한 날개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용하군. 도망치지는 않는 것을 보니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의 촉수 날개를 사방 좌우로 휘두르며 드래곤들과 손속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니 손속을 나눈다는 것은 뭔가 공방이 있다는 뜻인 것이고, 현실은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휘리릭! 서걱!

“커헉!”

“크악!”

타락한 날개의 촉수 날개에 적중당하면 어떤 보호막도 쓸모가 없었다.

그대로 이등분이 되어 죽었으니까.

드래곤들은 절망했다.

타락한 날개에게 자신들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공격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니 당하지 않으려면 뿔뿔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절대자로서 중간계를 지배했던 자신들의 나약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직 구십여마리의 드래곤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전투의지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미 패배에 대한 마음이 가슴 깊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공포와 패배의식에 대한 분노의 화살이 구석에서 멀뚱히 구경하고 있던 밀턴에게 돌아선 것이다.

아무리 싸워도 답이 나오지 않는 타락한 날개를 상대하느니 밀턴을 상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간계의 파괴를 막을 수 없겠지만, 이 일을 만들어낸 원흉 녀석을 죽여 분풀이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행동을 시작했다.

오십 마리의 드래곤들이 죽겠다는 각오로 타락한 날개를 견제했다.

타락한 날개는 다시 미소어린 눈빛으로 기쁨을 숨기지 않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가만히 있는 상대를 처리하는 것은 지루할 뿐이다.

꿈틀거리는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건드릴 맛이 나는 법이니까.

그런데 녀석들이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타락한 날개는 자신을 견제하는 녀석들 외에 나머지 녀석들로 밀턴을 처리하고자 하는 드래곤들의 수를 읽었다.

그리고 속으로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독기와 악에 받쳐있는 드래곤들과 밀턴이 어떻게 싸울지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마왕이니 말이다.

3

밀턴도 분위기를 읽었다.

지금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도움을 바라는 시선으로 타락한 날개를 바라보았지만 재수없게도 연신 빙글거리며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로인해 타락한 날개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도움을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밀턴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있다가 죽어서 마계로 강제 귀환 당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이거 위험하군.’

밀턴은 긴장했다.

아무리 자신이 마왕이라곤 하지만 드래곤 수십 마리와 싸워 이길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전지전능한 타락한 날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보지 않았으면 하던 녀석이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키우드였다.

브라키우드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조금 전 못 다한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지.”

“내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일방적으로 수다를 떠는 수 밖에.”

브라키우드의 손끝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칫!”

밀턴이 블링크를 사용하여 브라키우드의 등을 점했다.

하지만 거친 풍압과 동시에 거대한 주먹이 뻗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이온이다.

밀턴의 행동을 미리 파악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땅히 도망칠 곳이 없었다.

모든 방위를 드래곤들이 점해놓고 기다리고 있음을 파악한 탓이다.

팔을 들어 실드를 치고 방어했다.

뻐엉!

파이온의 주먹이 실드를 치고 있는 밀턴의 방어벽을 강타했다.

실드가 한순간에 깨졌다.

밀턴이 신형을 S자로 파이온의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크 스트라이커를 쏘았다.

파이온의 앞에 거대한 벽이 생겼다.

드래곤들이 앞 다투어 실드를 걸어준 것이다.

“젠장. 비겁한 녀석들.”

“누가 비겁한지 나열해 볼까?”

파이온의 대꾸에 밀턴이 대답대신 팔을 휘둘렀다.

잔영이 퍼지며 화려한 가루가 분사되는 것처럼 보였다.

안티 마나 이젝터 라는 기술이다.

파이온 앞에 쌓인 거대한 마나의 벽이 바람만난 먼지처럼 흩어졌다.

밀턴은 파이온과 육탄전으로 들어갔다.

주먹과 주먹이 오가고 신체의 모든 부위로 전투를 벌였다.

둘만의 싸움이 전개 되었다.

다른 드래곤들이 마법으로 지원을 해줄 수 없었다.

여차하면 파이온이 그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둘의 공방은 치열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파이온이 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파이온이 짜증어린 목소리로 외친다.

“입만 살아 있는 줄 알았는데 조금 하는 군.”

“흥! 마왕이라는 직위를 땅따먹기로 따먹은 줄 알느냐?”

“주둥이로 따먹은 줄 알았다!”

퍼버벅! 퉁!

밀턴의 어깨 차지에 밀려 몸이 뒤로 떠오르자 파이온이 입을 벌려 브레스를 덩어리로 쏘아보낸다.

크와아악! 쿠왕!

그 모습이 마치 입에서 대포알이 터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밀턴은 다급히 왼손으로 각을 잡아 쉴드를 활용하여 그 공격을 튕겨내고 오른 팔을 쭉 뻗어 아이스 스피어를 쏘아 보냈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에 파이온이 적중 당했는지 혹은 막았는지를 보지 못했다.

브라키우드가 밀턴을 머리로 박아서 내리쳤기 때문이다.

퍼억!

“크흣!”

충격을 받은 밀턴이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브라키우드에게도 아이스 스피어를 쏘았다.

다음 공격을 시도하기 위해 날아오던 브라키우드가 우뚝 멈춰 섰다.

우선 시간을 벌어야만했다.

인간의 형체를 지닌 자신과 드래곤의 사이즈는 개미와 코끼리의 수준이었다.

아무리 마법컨트롤을 중심으로 하는 싸움이라 해도 육탄전이 없을 수 없다.

개별전투의 상황이라면 자신이 인간의 형태로도 충분이 드래곤 한 마리 쯤은 바를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마리의 드래곤과 싸움에서는 무리다.

본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시간을 벌어야했다.

지금 상태에서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은 육탄전을 벌이는 시간뿐이다.

빈 허공에 떠있는 순간은 눈을 번뜩이고 있는 드래곤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밀턴은 파이온과 브라키우드를 피해 다른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이온이나 브라키우드보다 약한 것은 확실했다.

만일 그들보다 강했다면 멀리 자리를 잡고 마법 지원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퍼퍽!

“크흣!”

밀턴과 상대하는 드래곤의 인상이 구겨졌다.

밀턴이 가한 공격의 충격이 상상이상으로 컷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밀턴의 스피드는 자신이 겨우 쫓을 정도였다.

그로인해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다른 드래곤의 신속한 지원만 있다면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짧은 방심이 머릿속에 스친 순간 밀턴을 놓쳤고 동시에 복부가 뜨끔했다.

뭐지 싶어 배를 내려보니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정확하게 인간 크기의 구멍이 말이다.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과 상대하던 마왕이 복부를 뚫고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거렸다.

다른 드래곤들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밀턴이 뱃속에 들어간 드래곤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배가 빵빵해지더니 펑하고 터졌다.

퍼벙!

몸이 수 갈래로 갈라지며 내부 기관이 쏟아져 내렸다.

떨어져 나간 상체에 달린 머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터져나가는 몸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낮선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마지막을 숨을 거뒀다.

트위스터처럼 말아 올라간 네 개의 뿔과 푸른 색 피부.

풍선처럼 빵빵한 근육들.

본신으로 현신한 밀턴이었다.

모두들 본신으로 돌아간 밀턴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을 잃은 탓이다.

본신으로 돌아갈 시간을 벌기 위해 드래곤의 뱃속으로 들아갈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어떻게 보면 탁월한 선택이고 상대의 허를 찌를 놀라운 수였지만, 드래곤들로서는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밀턴이 자신의 전신을 내려다보았다.

만족스런 표정이 밀턴의 얼굴에 어렸다.

“후우. 오랜 만에 보는 내 몸이군.”

밀턴이 자신의 주먹을 꾸우욱 움켜쥐며 몸을 가볍게 풀었다.

전신 가득히 힘이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브라키우드와 파이온등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2라운드를 뛰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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