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61화 (32/68)

제2장. 광기

1.

“커헉!”

카토가 허공으로 붕 날아오른다.

자신의 의지로 난 것이 아니다.

리쿤의 강력한 주먹이 카토의 복부를 강하게 올려친 탓이었다.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는 카토의 상체는 시휘가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상태였다.

송곳으로 복부를 찔린 듯한 아릿한 통증에 카토의 인상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것은 첫 번째 공격에 불과했다.

파팟!

차창!

리쿤이 블링크(근거리 순간이동)를 사용한 듯 카토가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초고속 이동을 하며 검을 휘두른다.

카토가 다급히 손을 쓴다.

“워터 커터!”

쉴드 대신 공격용 마법을 일으킨 것이다.

리쿤이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압력에 맞서지 않고 몸을 회전하여 카토의 공격을 해소했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휘둘러 공격을 시도했다.

리쿤의 어둠의 오러가 실린 검은 대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카토가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소리친다.

“크흣! 워터 브레이커!”

촹!

퍼버벙!

카토는 공격기술로 방어를 대신하고자 했지만, 단순히 실드를 치는 것보다 반응이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장단점이 있었다.

실드마법은 주변을 광범위하게 방어하지만 힘의 집약이 모자랐기에 깨질 수 있었고, 공격마법은 힘이 집약 되어 있어서 강력한 힘으로 반격을 유도할 수 있지만, 정확한 궤도를 읽고 정해서 내질러야 했기 때문에 짧은 딜레이가 없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몸으로 폴리모프가 되어 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에 한계가 있었고, 본신의 힘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없다는 단점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자신이 폴리모프를 풀고 본신으로 돌아갈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리쿤의 거침없는 공격은 잠시의 턴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의 능력은 비슷해 보였다.

지켜보고 있던 마르체스와 베아르카제 그리고 미토무스가 주먹을 꽉 쥐며 카토를 응원했다. 카토가 본신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저 마족 녀석 따위를 가루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체스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타락한 날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타락한 날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마주 미소를 짓는다.

마르체스는 그런 타락한 날개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유를 부리는 저 모습이 불쾌했다.

카토는 숨을 헐떡였다.

조금씩 지쳐간다.

큰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지만, 리쿤의 어망과도 같은 촘촘한 공격에 방어하고 반격하며 몸이 지치고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여온 것이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근육통.

나약한 인간의 몸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린다.

어떻게든 변신을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시간을 벌어야 했다.

폴리모프를 풀고 본신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눈 깜짝할 순간이면 된다.

그 시간을 벌지 못해서 지금까지 밀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리를 하기로 했다.

작은 공격쯤은 그냥 맞아주기로 한 것이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본신으로 돌아가 재빨리 정비하고 녀석을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 하기로 마음을 굳힌 카토가 양손을 펼쳐든다.

그러자 카토 주위에 물방울이 몽실몽실 떠오른다.

맑고 투명한 물방울들이 중력을 거부한 체 모이며 뭉쳐든다.

나직하게 외는 한마디.

“워터 에로우.”

순간 뭉쳐든 수십여개의 물방울들이 기다란 모양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날아간다.

공격력이 크지는 않지만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기술이다.

리쿤은 무슨 생각인지 잠시 몸을 늘어트리고 카토의 기술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느긋하게 여유라도 부리는 듯한 모습이다.

카토는 화가 치밀었다.

녀석의 행동이 드래곤을 무시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감히 이름도 없는 마족 나부랭이 주제에….’

으득.

하지만 굳이 화낼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비릿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가라.”

그 한마디에 수십여개의 물로 형성된 화살이 쏘아진다.

그제야 리쿤이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쏘아져 나가는 화살이 아니다.

마치 살아있는, 하늘을 유영하는 뱀처럼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리쿤은 가볍게 공격을 피한다.

워터 에로우는 리쿤의 등 뒤로 날아간다.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워터 에로우를 피한 리쿤은 그대로 카토를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리쿤은 카토의 비릿한 웃음을 보고 다급히 등을 돌렸다.

조금 전 자신이 피했던 그 워터 에로우가 다시 돌아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리쿤은 피해서는 저 공격을 넘길 수 없음을 깨닫고 검을 사방에 휘두르기 시작했다.

팟팟팟!

쾅! 쾅! 쾅!

대기가 쩌렁쩌렁 울린다.

리쿤의 힘도 힘이지만 약간은 우습게 봤던 워터 에로우 자체의 실린 힘도 무시할 수준의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문제는 리쿤이 너무나 빨리 워터 에로우를 모두 처리했기 때문에 카토가 시간을 벌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카토는 폴리모프를 해체하기 바로 직전 다급하게 몸을 뒤로 뺄 수 밖에 없었다.

공간을 격하며 리쿤의 검이 카토의 목을 향해 쭉 뻗어 왔기 때문이다.

카토는 아릿한 감각을 느끼며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 왔다간 기분이었다.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히쭉 웃던 리쿤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동시에 카토는 위기감을 느끼고 실드 마법을 다섯 겹이나 겹쳤다.

그때 날카롭게 실드가 깨지는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텅텅텅텅텅!

파고 들어오는 검극의 압력에 밀려 다섯 겹의 실드가 네 개 나 무너졌지만 가까스로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카토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무겁게 입을 연다.

“볼텍스(vortex).”

바로 그때 카토의 주위에서 거대한 기운이 들끓더니 물방울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리쿤이 당황한 표정으로 카토를 향해 어둠의 마나를 쏘아 보낸다.

하지만 어둠의 마나는 카토의 볼텍스에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리쿤이 몸을 뒤를 뺀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비춰지는 그림자를 바라본 것이다.

서서히 거대해지는 거대한 그림자 말이다.

그곳에서 거대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크와아아아앙!

바로 드래곤 피어였다.

푸른 비늘로 감싸여 있는 거대한 손이 미친 듯이 회오리치는 볼텍스를 가르고 나온다.

미친 듯이 회전하던 볼텍스가 미풍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사그라든 볼텍스 속에서 거대한 블루 드래곤 카토의 본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신으로 돌아간 카토가 난폭하며 광기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타락한 날개를 보며 히쭉 웃더니 시선을 돌려 리쿤을 향해 말했다.

“크르르. 이제 진짜 힘이 뭔지 보여주마.”

2

“…큭큭큭큭큭.”

타락한 날개가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마르체스가 타락한 날개의 웃음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그런 것까지 대답을 해줘야 하나?”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지요. 뭐, 내기에서 지신 것에 대해서 일어난 화를 웃음으로 표현 한 것 가지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에 타락한 날개가 대답했다.

“져? 누가?”

“보고도 모르십니까?”

“뭘 말이지?”

타락한 날개의 딴청에 마르체스와 베아르카제 그리고 미토무스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대놓고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의 순수한 표정을 보자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 싸움에서 진 마르체스가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됐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시는 분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후후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눈이 있으면 잘 보라는 뜻이지.”

“예?”

이해 할 수 없는 말에 마르체스가 두 눈을 껌뻑였다.

바로 그때 육중한 소음과 진동이 울렸다.

쿠웅!

다급히 시선을 돌리니 거대한 뭔가가 자신들 근처에 떨어져 바닥에 박힌 것을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푸른 빛을 띄고 있는 잘려나간 드래곤의 팔이었다.

그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위에서 드래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워어어어!

“카토!”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블루 드래곤 카토가 잘린 팔을 부여잡고 고통에 비명하고 있는 모습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태연하게 자신의 검을 의아한 시선으로 내려보고 있는 리쿤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토는 기가 막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지금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자신의 팔이 잘려나갔고, 그 부위에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크워어어어!

하지만 고통에 몸부림만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고통을 누르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장본인 리쿤이 정작 자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런 껍데기 같은 녀석에게 당했단 말인가! 내가!’

눈을 부라리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리쿤이 자신에게 밀려오는 거대한 살기를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카토가 멀쩡한 한 쪽 팔을 들어 올렸다.

순간 주위가 습기로 가득차더니 물 덩어리가 자리를 잡는다.

조금 전에 보여준 워터 에로우와 비슷한 것 같았지만, 그 크기는 드래곤 킬러라 불리는 공성용 무기와 흡사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다.

오십 여 개가 위풍당당하게 허공에 떠있다.

“죽어라.”

카토의 한마디에 워터 에로우 아니 물기둥 하나가 쏘아져 나간다.

리쿤은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물기둥이 폭발했다.

사방에 비산하는 물방울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물방울이 아니다.

엄청난 속도와 압력을 지닌 그것은 바로 총탄과 진배없었다.

퓽! 퓽! 퓽! 퓽! 퓽!

쾅! 쾅! 쾅! 쾅! 쾅!

하나의 물기둥이 폭발함으로 사방이 폐허가 되었다.

쿠콰과과과!

하지만 카토와 리쿤은 그것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주변이 처참하게 훼손 되었을 뿐이었다.

그것을 보며 타락한 날개가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참으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기술이군.”

그런 타락한 날개의 태연한 한마디에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마르체스들은 울컥했다.

카토는 열불 받았다.

자신의 회심의 일격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해보자.”

물기둥들이 쏘아진다.

리쿤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하나하나 맞서며 파쇄 했다.

이 공격은 피해도 다시 자신을 덮치는 공격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토는 하나하나 깨어지는 자신의 공격을 볼 때마다 이를 으득 갈았다.

“익스플로시브 워터.”

순간 리쿤의 주위를 공략하기 위해 남아 있던 물기둥들이 단숨에 폭발하며 리쿤을 휩쓴다. 리쿤은 피할 틈도 없이 그 폭발 속에 갖히며 모습이 사라진다. 동시에 폭발한 곳을 중심으로 뜨거운 증기와 후끈하다못해 피부가 익어버릴 정도의 거대한 열기가 사방에 내뿜어졌다.

쿠와아아앙!

성 외각이 3분의 1이나 날아갔다.

지금 이 마법은 헬 파이어급 이상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블루 드래곤만의 특화된 기술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카토는 급격한 마나의 사용으로 전신의 기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마무리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온 힘을 토해 내 사용한 기술이다.

무엇보다 직접 저 거대 폭풍에 휘말린 것을 보지 않았던가.

“망할 녀석. 이젠 죽었겠지?”

카토는 폭발의 중심을 주시하며 시선을 돌렸다.

바로 그때 휭휭휭휭휭! 대기가 갈리는 거대한 굉음이 고막을 자극했다.

카토가 놀라 다급하게 반응을 했지만 이미 그 소리가 들렸을 때는 자신의 날개가 잘려나간 후였다.

크와아아아아앙!

카토가 비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한쪽 날개가 잘렸음에도 카토는 추락하지 않았다.

드래곤은 날개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 거대한 몸은 날개로 어떻게 날아오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못날 것도 없지만 순수한 근력으로 몸을 띄웠을 경우 주위에 발생하는 파장은 3급 폭풍이 불었을 때와 맞먹는다.

거대한 몸을 띄우기 위해 그에 맞는 압력이 지상에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렇고 힘도 든다.

때문에 마나를 사용하여 마법으로 몸을 가볍게 띄우는 것이다.

날개가 아닌 마나로 떠있는 몸이다.

그러니 추락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카토가 잘려나간 날개로 인해 무너진 중심을 힘겹게 잡으며 정면을 주시했다.

리쿤이 넝마가 된 옷 외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슴이 막막하다. 울분이 터진다.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으득.

이를 갈았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자신의 날개가 잘려나간 것을 보며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던 것이다.

“감히 내 날개를! 내 기필코 네 녀석을 찢어 죽이고 말리… 컥!”

하지만 그 말은 끝을 이을 수 없었다.

리쿤의 신형이 카토의 앞으로 날아와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전신을 낭자하기 시작한 탓이다.

서걱서걱.

묵직한 고기가 뭉텅이로 썰리는 소름끼치는 소음이 비명과 울려 퍼진다.

카토는 리쿤의 공격에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사방에 자신의 피와 살을 흩뿌렸다.

넝마가 된 거대한 카토의 육신이 뭉텅이로 바닥에 처박혀 흙먼지와 함께 뒹굴었다.

마르체스와 베아르카제, 미토무스는 눈을 부릅뜨고 올려다보았다.

뭔가 현실감 없는 사실에 놀라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카토가 전신이 낭자되어 죽어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본 것이다.

마르체스들이 정신을 차린 것이 현실적인 시간으로는 그렇게 늦지는 않았지만, 이미 카토는 죽은 후였다.

허공에 떠있는 리쿤이 카토의 가슴에서 뽑아낸 붉은 드래곤 하트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는 중이었다.

마르체스들은 그것을 보니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카토!”

마나로 떠있던 아니 리쿤의 공격의 영향으로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있던 카토의 낭자된 육신이 쿵하는 소음을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쿠궁!

하늘에서 떨어진 그 덩어리는 카토라고 감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손도 팔도 다리도 꼬리도 흉부도 날개도 정상적으로 남은 부위가 없다.

두개골도 흉측하게 열려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것일까?

그토록 엉망인 와중에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카토의 처참한 모습에 마르체스들이 분노했다.

“크으흐흐흑!”

주먹을 꽉 움켜쥐며 눈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카토를 이렇게 만들어낸 원흉인 리쿤을 올려다보았다.

리쿤은 한참동안 주시하던 아기 머리통만한 드래곤 하트를 자신의 입가에 가져갔다.

아작!

마치 사과라도 먹듯 거침없이 베어 물었다.

아그작 아그작.

붉은 선혈을 얼굴에 잔 뜩 묻히고 입가로 연신 흘리며 씹어 먹는다.

순간 마르체스들 사이에서 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그 자리를 거대한 존재들이 가득히 메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마르체스들이 본신으로 돌아간 것이다.

블루드래곤의 사체를 중심으로 블랙 드래곤 마르체스와 레드 드래곤 베아르카제 그리고 그린 드래곤 미토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모두 죽여버리겠다.”

드래곤들이 후웅! 하는 소음과 동시에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마르체스는 리쿤을 향해, 베아르카제와 미토무스는 타락한 날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타락한 날개가 히쭉 웃었다.

“큭큭큭큭. 그래. 그렇게 나와야 재미있지.”

타락한 날개의 웃음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그 뒤에 시립해 있던 네 명의 마족이 반쪽짜리 날개를 펄럭이며 베아르카제와 미토무스를 향해 날아갔다.

3

서걱! 서걱!

“큭큭.”

마족들이 웃으며 더욱 잔인하게 검을 휘두른다.

그들의 검 끝 에는 어린 드래곤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걱서걱서걱!

차마 눈뜨고 보지 못 할 참관이다.

거대한 드래곤들이 타락한 날개도 아닌 그의  몸종들에 불과한 녀석들에게 조차 아무런 수를 쓰지 못하고 처절하고 처참하게 당했다.

최강의 존재라 불리는 드래곤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눈꺼풀이 한번 껌뻑일 때마다 신체가 하나 둘 육신에서 떨어져 나간다.

크와아아악!

첫 번 째로 그린 드래곤 미토무스가 카토와 같은 상태가 되어 바닥에 나뒹군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해 줄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블랙 드래곤 마르체스나 레드 드래곤 베아르카제도 지금 겨우겨우  버티고 서있을 뿐이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두 드래곤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피눈물이다.

분노와 허무가 어린 눈물이 빗방울처럼 몽울져 떨어져 내린다.

그와 동시에 두 어린 드래곤의 목도 함께 지상으로 떨궈져 내려갔다.

그 두 어린 드래곤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심장을 꺼내서 씹어 먹고 있는 마족들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쿠궁!

드래곤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어린 드래곤들이 타락한 날개의 수하들에게 농락을 당하듯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모두 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원해서 본 것도 아니다.

타락한 날개가 드래곤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무슨 의도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 형성된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브라키우드의 동공 안에 하루도 안 되어 떠났던 드래곤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모두들 침묵하며 조용하게 브라키우드를 바라보았다.

조용하다곤 하지만 분위기는 어제와 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불과 몇 시간 전과 달랐다.

폭발하기 바로 전의 폭탄과 같다고 해야 하나?

일촉즉발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상태였다.

으득.

누군가가 이를 가는 소리로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둘 것입니까?”

“절대로 용서 할 수 없습니다.”

흘러나오고 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적의와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그때 한 드래곤이 질문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어쩌기는요. 아니, 지금 그런 식으로 물어보는 저의는 뭡니까?”

“겁나서 몸이 오들오들 떨리나보지?”

“드래곤의 수치 같은 놈.”

“….”

모든 드래곤들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결국 그 질문을 던진 드래곤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런 뜻으로 던진 질문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따져봤자 무시만 당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두 집중해 주시오.”

브라키우드의 한마디에 모두들 다시 침묵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경청하기 위해서였다.

“모두의 분노어린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흥분해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도 어떻게 침착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말과 달리 지금까지 드래곤들이 보여준 행동은 이기적일 정도로 개인주의가 강했다.

얼마나 이기적이냐 하면 다른 드래곤이 죽었다는 이야길 들어도 복수를 해주겠다는 마음은 없고 단지 비웃을 뿐이다.

그가 약해서 죽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누가 죽고 살고는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들이 눈을 뒤집고 합심하여 달려드는 경우가 하나 있다.

바로 해즐링(500살 미만의 드래곤)이 죽었을 경우다.

드래곤 종족 보존을 위해 어린 새끼들을 부모가 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학살된 네 마리의 드래곤은 해즐링을 넘어선 성룡이었다.

자신의 뜻과 판단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며 모든 이들의 보호의 시기를 지난 존재란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분노했다.

아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죽었다면 신경은 쓰였겠지만 이렇게까지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농락을 하며 죽였다는 것에 있었다.

흥미로운 장난감이라도 발견 한 것처럼 가지고 놀다가 장난치듯 처참하게 도륙을 했단 말이다.

“저 역시 피가 끓고 몸이 분노로 떨립니다. 그렇다고 지금 분노에 이끌려 행동하게 되면 실수를 하게 될 것입니다. 냉정을 찾아야 합니다. 타락한 날개가 무슨 생각으로 그 영상을 우리에게 보냈는지 판단하고….”

블랙 드래곤의 수장 파이온이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판단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에 대한 도발입니다.”

블루 드래곤의 수장 베르카가 대신 대답했다.

“파이온님. 도발을 한다는 이야기는 단순하게 우리들을 상대하기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다른 어떤 계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분노에 휩싸여 상황파악도 하지 못하고 죽겠다고 달려가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상황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는 무식한 녀석이라는 뜻이오?”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일수록 오히려 냉정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난 지금 충분히 냉정하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냉정해지자는 말이지요.”

베르카는 도발적인 어투로 딴죽 거는 파이온의 대꾸를 유연하게 받으며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 덕에 드래곤들의 분위기가 조금 차분해졌다.

모두들 한번쯤 다시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탓이다.

도발은 도발인 것이고 정말 타락한 날개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왜 그렇게 자신들을 도발을 하고자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도발한다고 이득이 되는 일이 있을까?

다른 드래곤들처럼 브라키우드도 함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브라키우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스치듯 떠올랐다.

자신을 그냥 순순히 보내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고 말이다.

‘설마….’

브라키우드의 뛰어난 머리는 순식간에 그럴듯한 가설 하나를 만들어 본다.

‘혹시 나를 풀어준 이유가 드래곤들을 모두 끌어내기 위해서는 아닐까?’

자신을 순순히 풀어준다. 자신은 경계를 위해 숨어 있는 모든  드래곤들을 불러 모아 대책회의를 한다. 호기심을 가진 녀석들이 타락한 날개를 보기 위해 간다. 그들을 처참하게 죽여서 드래곤들을 도발하여 모든 드래곤들의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호기심가진 녀석들이 찾아가지 않았다면?

드래곤들에게 도발이 통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일종의 경우의 수에 불과하다.

파이온이 말한다.

“냉정을 찾던 뭘하던 결론은 같소. 타락한 날개에게 우리를 농락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오.”

파이온과 그의 말에 동조하는 드래곤들의 반응에 베르카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베르카님은 걱정이 너무 많소. 우리 드래곤들은 최강의 존재요. 개인이 움직인다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힘을 합해서 녀석을 공략한다면 충분히 가능성도 있소. 내 말이 틀렸소?”

“….”

틀렸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파이온의 말마따나 자신들이 모두 힘을 하나로 모아서 상대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상 드래곤들이 힘을 모아 뭔가를 해본 적이 있긴 했던가?

없다.

그럼에도 드래곤들이 나서서 해결하지 못한 일은 없었다.

정말 강대한 적이 나타났다곤 하지만, 그의 힘이 얼마큼 대단할지는 몰라도 자신들 모두의 힘을 합한 것 보다 크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베르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이온이 그런 베르카의 모습을 만족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베르카의 머릿속에서는 불길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파이온이 브라키우드를 향해 말했다.

“결론은 난 것 같고 생각은 충분하다고 판단합니다. 드래곤을 깔본 녀석들에게 피의 보복을 해야 한다는 제 생각에 찬동하십니까?”

브라키우드가 한숨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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