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58화 (29/68)

제9장. 마신 강림

1

절대적인 힘!

말 그대로 절대적이었다.

자신만만하던 인간들은 모두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졌다.

마왕은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단순히 무섭다라고 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였다.

인간의 무기와 마법 공격 등 모든 것이 통하지 않았다.

모두 그에게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성을 부수는 포탄도, 오러가 담긴 검도, 대마법사의 마법도, 수많은 병력도….

자그마치 100만의 병력이었다.

대륙 정벌을 도모할 만큼의 거대한 전력이다.

그런 전력이 일개미보다 못하게 몰살을 당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못했던 80만이 넘는 대인원이 잔혹하게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나간 것이다.

80만 명이 죽어나간 그 전쟁, 아니 일반적인 살육의 현장은 놀랍게도 한 명의 마왕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는커녕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만일 그가 장난처럼 그 병력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면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몰살을 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손가락으로 개미를 눌러 죽이듯이 가볍게 죽였다.

그에게 인간은 개미만도 못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 말은 1천만의 병력이 몰려들어도 이길 수가 없단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의 힘이 닿을 수 없는 존재다.

마왕이 아니다. 그는 신이다.

마의 신. 마신이다.

쿠렌트 제국의 100만 병사가 몰살당했다는 그 충격적인 소식은 순식간에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모두 믿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증거가 너무 명백했다.

전 대륙이 공포에 떨었다.

악마, 마왕, 마신.

무슨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절대적인 존재가 지옥에서 세상에 현신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연합을 진행하던 왕국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연합을 할 이유가 없어진 탓이다.

머릿수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존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쿠렌트 제국의 황제인 쿠렌트 황제였다.

그는 지금까지의 당당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공포에 전신을 덜덜 떨었다.

누가 다가오는 소리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고, 자신을 놀라게 한 자를 처형시켰다.

“히익! 마, 마신이다! 마신이 짐을 죽이려 하고 있다!”

“폐하! 마신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다! 마신이 보낸 수하다! 녀석을 죽여라!”

“폐하!”

“죽이라 하지 않았더냐!”

쿠렌트 제국의 황실에서 하루 만에 그렇게 죽어나간 이의 수가 100명이 넘었다.

그중에는 시녀, 하인을 넘어 충신들과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누구든지 다 죽인 것이다.

모두 생각했다.

쿠렌트 황제가 미쳤다고.

맞다. 옳은 말이다.

쿠렌트 황제는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미치고 말았다.

누가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제 그 마신이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데 말이다.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목을 가져갈지 모르는데 말이다.

쿠렌트 황제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황제가 자신의 방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덜덜덜 떨고 있을 때, 그는 쿠렌트 제국의 성도 밖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오호! 생각보다 잘사는군.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예쁜 아이들도 많겠지?”

타락한 날개는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생각만 해도 회가 동했다.

생각보다 인간의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부합되었다.

다 몰살시키려고 했었는데, 그 생각이 미치자 계획을 변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은 성도를 4분의 1 정도 날리는 것으로 자신이 온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애꿎은 아이들이 죽을 것이기에 그 계획을 빼기로 한 것이다.

그 아이들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아이들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어떻게 옮길지를 걱정했는데, 곧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가만 있어봐. 그냥 내가 여기서 살면 되잖아?”

타락한 날개는 자신의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 기정사실이 된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운 것인가?

“그래도 와줬는데 왔다는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타락한 날개는 하늘에서 이리저리 날며 잠시 배회를 하다가 오른 주먹으로 왼 손바닥을 내리쳤다.

탁!

“눈앞에 거슬리는 벽을 없애버리면 되겠군. 그걸로 인사는 대신하자. 이 벽 덩어리에 계집들이 있을 리 만무하잖은가.”

혼잣말을 구시렁거린 타락한 날개는 손바닥 위로 기운을 모아 자신이 넘어서 날아온 성벽에 날렸다.

쾅!

“으아악!”

“무슨 일이야!”

하지만 무슨 일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고 그들은 몰살당했다.

그 건방질 정도로 높이 솟아 오른 성벽은 무른 두부처럼 무너져 내렸고, 성벽에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무너진 성벽에 파묻혀 즉사했다.

타락한 날개는 여유롭게 날아서 성벽을 통과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성안을 구경하면서 황실까지 걸어갈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를 그냥 놔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삐익!

“서라!”

순식간에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창과 검을 뽑아들고 몰려나와 타락한 날개의 앞을 막았다.

쿠렌트 제국의 경비 체제는 정말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반 마법사는 방어 마법진으로 인해 하늘을 나는 마법으로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올 수 있다고 해도 들어오기 전에 보초 병사나 마법사들에게 걸리게 되어 있었다. 만일 성곽에서 사소한 반응이라도 나오게 되면 바로 알람 마법이 울려, 대기 초소에 자리하고 있는 병력이 그곳으로 집결을 하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미 벽이 무너지기 전에 알람 시스템이 작동해 이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성벽이 무너져 내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범인으로 보이는 존재가 무너진 성벽 사이로 유유히 날아서 들어와, 태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것이 기가 찼다.

마치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듯 유유자적 말이다.

뭐, 저렇게 뻔뻔한 녀석이 다 있는가 싶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모습인지라 저자가 성벽을 어떻게 날렸는지의 의문은 뒤로 넘어가고, 우선 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게 자신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락한 날개는 전혀 개의치 않고 걸어 나갔다.

그들은 다시 외쳤다.

“멈춰라!”

“거기 서라!”

“귀찮은 벌레 녀석들.”

타락한 날개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앞에 나서던 자들의 몸이 쩌억 반으로 갈라지며 상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살아 있는 상체가 허우적거리자, 그의 갈라진 배에서 미끄덩거리며 내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내장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숨을 거뒀다.

순간, 기사와 병사들이 얼어붙었다.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이 난 탓이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콘 왕국의 마신의 이야기는 이미 전 대륙에 퍼져 있었다.

“마, 마신!”

그 한마디의 여파는 대단했다.

“마신이라고!”

“나, 나는 주, 죽 죽고 싶지 않아!”

“히이익!”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 타락한 날개의 뒤에서 사삭사삭하는 음향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사방에서 들리는 고기 썰리는 소리.

서걱서걱!

그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도망치던 병사와 기사들이 토막이 나서 죽어 나자빠졌다.

“룰루~”

타락한 날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황궁을 향해 걸어 나갔다.

타락한 날개의 평화로운 모습과 다르게 그의 주위에서는 연신 사람들이 비명을 토하며 죽었다.

이제 그의 주위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없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

황성까지 그 기다란 길이 펼쳐져 있는 곳을 모두 구경하며 걸어가는 동안 누구도 타락한 날개의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

목숨은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타락한 날개는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목적지를 향해 다가갈 뿐이었다.

이제 자신의 집이 될 그곳은 어떤 곳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이다.

2

타락한 날개가 멈춰 선 곳에 거대한 성문이 자리했다.

타락한 날개는 화려한 성을 보며 투덜거렸다.

“마계에 있는 내 본성보다 화려하군.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잠시 고심했다.

“이제 내 집이니 마음에 들어도 되지 않나?”

타락한 날개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타락한 날개의 등 뒤에서 쉭쉭거리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리고 검은 은광을 뿜어내는 촉수 같은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촉수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좌우로 넓게 펼쳐졌다.

길이가 좌우로 장장 50미터 이상까지 펼쳐지며 형상을 띠는데, 마치 날개와도 같아 보였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사람을 토막 내고 혈수로 만들어 죽이던 정체불명의 것은 바로 타락한 날개의 촉수처럼 생긴 날개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모습이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소음만 들렸던 것이다.

타락한 날개가 앞으로 나아가자 날개들이 꿈틀거리며 올려져 있던 도개교의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도개교가 거칠게 내려오며 다리를 이었다.

촉수와 같던 날개들이 이번에는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잡고 뜯어냈다.

우지직!

성문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타락한 날개는 구멍이 휑하게 뚫린 문 사이로 들어갔다.

타락한 날개가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내부가 드러났다.

그곳에 긴장으로 물들어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발사!”

성탑과 망루, 성벽, 그리고 석궁안(사격을 위해 성벽에 나 있는 구멍)에서 화살들이 퍼부어졌다.

하지만 타락한 날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촉수 날개들이 그 화살을 모두 막거나 잡아냈다.

그리고 잡아내기 무섭게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쏜 녀석들에게 그대로 돌려보내줬다.

벽 뒤에 숨어도 소용없었다.

벽을 뚫고 날아가 궁수들을 관통했으니 말이다.

“컥!”

“크학!”

서서히 날아오는 화살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때, 한 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그 더러운 발을 들이느냐!”

“이제 내 집.”

“뭐?”

기사는 기가 찬 모습으로 이를 으득 갈았다.

“네 녀석을 지옥으로 돌려보내주마!”

“큭큭! 그거 기대되는군.”

그 기사는 몰랐겠지만, 지금 타락한 날개가 인간의 말을 받아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전혀 영광스럽지 않았겠지만.

타락한 날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건 그렇고, 재밌는 녀석들이 조금 있구나?”

타락한 날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기사 주위로 15명의 기사가 방위를 잡고 섰다. 이들은 쿠렌트 제국의 최고의 고수들로 탈리온에게 밀리지만, 그래도 전 대륙이 인정하는 초강자였다.

쿠렌트 제국이 괜히 대륙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막대한 군병보다 바로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탈리온 공작에게 직접 사사를 해 화경을 넘어선 초고수들.

그들이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손에 배어나는 진땀이 신경 쓰였다.

지금 이 자리에 탈리온 공작만 있었어도,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그리고 그가 있었다면 정말 든든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탓!

그것이 시작이었다.

15명의 기사들이 타락한 날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타당! 탕탕탕! 탕탕타당탕탕탕!

기사들과 날개가 충돌하며 생기는 소음이었다.

생각보다 신이 났다.

녀석들은 예상대로 뻔한 인간 따위가 아니었다.

타락한 날개는 조금 더 즐거워졌다.

기사들이 더 이상 파고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암울해했다.

눈앞의 존재와 자신들의 갭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 존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이상한 촉수도 어쩌지 못하는데, 감히 녀석의 본신의 솜털 하나 건드릴 수 있겠는가.

모두 작은 사인을 한 후 동시에 뒤로 물러나 타락한 날개와의 거리를 벌렸다.

타락한 날개가 히죽 웃었다.

“마음에 드는군. 인간들도 이런 힘을 발휘하다니. 좋다. 핸디캡을 주지. 날개를 접겠다. 그리고 왼쪽 다리와 왼쪽 손만 사용하도록 하지. 또한 마기도 사용을 금하도록 하겠다. 이 육신의 힘만으로 상대를 해주겠다는 말이다. 어떠냐. 재밌겠지?”

타락한 날개가 한 그 말에 기사들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한 기사가 질문했다.

“그 약속 지킬 수 있겠느냐?”

“나와 같은 존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광오한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광오하게 듣지 않았다.

저 존재라면 저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저 말을 사용해도 될 존재가 있다면 지금 저 존재뿐일 테니까.

타락한 날개가 여유 어린 미소를 보이며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만일 내가 내 말을 어긴다면, 내 스스로 지옥으로 돌아가지.”

“그 약속 꼭 지키길 바란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화를 나누던 기사가 검에 오러를 최대한 밀어 넣으며 달려들었다.

그의 강맹한 공격에 타락한 날개가 상체를 숙이며 왼팔을 쭉 뻗었다.

공격을 가했던 기사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며 다급히 뒤로 피했다.

곧이어 다른 기사가 검을 휘두르며 타락한 날개의 허리 깊이 파고들었다.

타락한 날개가 왼손을 기묘한 방향으로 틀며 오러가 맺혀 있는 검면을 손등으로 튕겼다.

텅 소리와 함께 기사의 몸이 파고드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 바퀴 뱅글 돌았다.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두르려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기사가 시선을 내려 타락한 날개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붉은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급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니 휑하니 뚫려 있었다.

자신의 심장이었다.

타락한 날개가 씨익 웃더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팍!

심장이 터져 나갔다.

그 장면을 채 인식하기도 전에 가슴이 뚫린 기사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제 한 놈 처리했고….”

타락한 날개의 시선이 남은 14명을 향해 돌아갔다.

14명의 기사가 흠칫 놀라더니 곧 굳은 표정으로 검을 고쳐 쥐었다.

타락한 날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꽤 강하다고. 긴장들 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을 들으며 한 기사가 생각했다.

‘젠장! 얼마나 더 긴장하라는 거야.’

그런 나약한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는 더욱 강하게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고, 순식간에 3명의 기사가 목숨을 더 잃고 말았다.

모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친혈육보다 더 가까웠던 그들의 죽음이 사무친 탓이다.

하지만 그런 감상적인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여차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의 가슴을 사무치게 할 뿐이다.

타락한 날개가 한쪽 다리를 튕기며 앞으로 몸을 쏘았다.

타락한 날개와 마주하게 된 기사는 전신에 힘을 주고 검을 왼쪽으로 틀어 깊이 찔러 넣었다. 타락한 날개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러자 타락한 날개가 뭐가 좋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하하! 좋아, 좋아. 넌 당첨이다. 상을 주마.”

“무슨 개소리냐!”

타락한 날개는 대답 대신 그냥 짙게 웃어줬다.

바로 그때, 그 기사가 아찔한 통증에 놀라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동료들과 같이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

그는 곧 자신의 심장을 빼앗긴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 이상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타락한 날개가 자신의 심장을 한입에 삼키는 모습을 말이다.

마신이 심장을 삼키는 장면에 모두 흠칫 놀랐다.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싸우다가 배가 고팠나 보지,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짜증 났다.

대륙의 최강자 중 하나라 불리던 자신들이 저 괴물의 간식거리로 전락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5명의 기사가 합격을 시도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틈을 찾을 수 없이 매끄럽게 메워진 그들의 공격은 타락한 날개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검에서 슬픈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타락한 날개가 왼팔을 기묘한 각도로 꺾더니 검 3자루의 공격을 상쇄했다. 그리고 몸을 틀어 허공에 띄운 후 왼쪽 다리를 쭉 뻗었다.

뒤에서 찌르기를 시도하던 기사의 머리를 찍어 찬 것이다.

곧 기사의 목이 부욱 찢어지며, 뒤로 돼지 오줌보 공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그는 찢겨진 목 위로 피를 뿜어내더니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남아 있던 기사가 아직 허공에 몸을 띄우고 있는 타락한 날개를 향해 횡으로 검을 그었다.

청명한 울음소리가 들리며 타락한 날개의 전신을 훑을 듯이 날아갔다.

그러나 타락한 날개의 왼손이 상쇄한 한 기사의 검을 잡고 그대로 물구나무를 서듯 몸을 일으켰다.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예였다.

회심의 일격을 가한 기사의 공격이 안타깝게도 허공을 긋고 말았다.

그때, 타락한 날개는 자신이 잡고 있는 기사의 검을 뺏은 후 그대로 그 기사의 정수리에 틀어박았다.

푸욱!

검날은 모두 기사의 몸속으로 사라지고 손잡이만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사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덜덜덜 떨었다. 그리고 뻣뻣한 자세로 쓰러졌다.

이제 남은 기사는 8명.

모두 숨조차 들이쉬고 내뱉지 않는 긴박한 모습으로 타락한 날개를 노려보았다.

8자루의 검에서 쏟아지는 오러의 향연.

그 사이에서 춤추는 타락한 날개.

그 모습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모두 모르지 않았다.

저 아름다움 속에 담겨 있는 파괴력을.

채챙!

기사들의 검이 결국 타락한 날개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서로 부딪쳤다.

콰광!

오러들이 충돌을 일으키며 크게 폭발했다.

기사들의 흩어진 중심이 더욱 흩어졌다.

타락한 날개가 그 틈을 노리고 기사 한 명의 목을 꺾을 수 있었다.

타락한 날개도 인간의 체력으로 싸우는 것이다 보니 지친 기색이 드러난 상태였다.

처음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한 명이 아니라 셋을 죽이고도 남았을 테니까.

기사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횡으로 검을 그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전력을 토한 것일까? 강력한 오러의 폭풍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방어를 포기한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동료의 그 마음을 알았음인가. 남은 기사들이 타락한 날개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자신들의 몸을 장애물로 사용했다.

타락한 날개는 뒤에서 자신을 막고 있는 기사들을 성가시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겼다!”

누구의 입에서 터진 소리일까? 타락한 날개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 틈에 끼어서 서성였다.

마기를 일으키면 쉽게 벗어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육신의 힘만을 사용하기로.

생각보다 벅찼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재밌었다.

여인과의 잠자리보다 즐거웠다.

타락한 날개의 오른팔이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서어억!

묵직한 소음이 들림과 동시에 타락한 날개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그때, 타락한 날개가 잘려 나간 팔뚝을 들어 터져 나오는 피를 맞은편 기사들에게 뿌렸다.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에 기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퍼퍼퍽!

3명의 기사가 그대로 심장이 뚫린 채 죽었다.

그렇게 4명의 기사가 남았다.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검투사의 검투보다 더 치열하고 원초적인 전투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자신들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말이다.

타락한 날개가 자신의 오른팔을 지혈하지 않고 피를 연신 주르륵 흘리며 4명의 기사를 돌아보았다.

4명의 기사는 질린 표정으로 타락한 날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때, 타락한 날개가 입을 열었다.

“네 녀석들을 수하로 써야겠다.”

“웃기지 마라!”

“악마의 수하로 사느니 차라리 혈수가 되어 죽어버리겠다!”

그러자 타락한 날개가 대답했다.

“안 돼. 네 녀석들은 내 마음에 들어버렸다. 이미 네 녀석들의 운명은 정해졌다는 뜻이지. 후후후후!”

모두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타락한 날개가 말을 이었다.

“혼자는 외로울 테니 다섯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 말에 의문을 품은 기사가 되물었다.

“다섯?”

자신들은 넷인데 다섯이라니 무슨 뜻이냐, 라는 질문이다.

타락한 날개가 손짓을 하자 누군가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쿤!”

모두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조금 전에 분명 자신들 앞에서 심장이 뚫려 죽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태연하게 살아서 타락한 날개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리쿤! 지금 뭐하는 건가! 황제 폐하를 저버리고 그 마왕에게 무릎을 꿇다니!”

그 말에 리쿤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 주인은 타락한 날개를 지니신 위대하신 존재 한 분뿐이다. 감히 저기 구석에서 이불을 둘러싸고 덜덜 떨고 있는 허접한 인간 따위가 내 주인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게 무슨 말인가!”

기사들이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때, 타락한 날개가 말했다.

“다들 말들이 많군. 직접 이겨서 물어보면 될 것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쿤이 굽힌 무릎을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짜리 검은 날개를 펼쳤다.

펄럭!

모두 그 모습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내 심장은 주인님의 것이다. 그 심장에 담겨 있는 신념과 의지도 모두 주인님의 것이다.”

그 말에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저 타락한 날개에게 심장을 먹혀서 수하가 되었다는 뜻이다.

모두가 기겁했다.

그 말은 자신들을 수하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자신들의 심장도 먹어서 마족으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타락한 날개가 뒤로 몸을 뺐다.

“내 갓 태어난 아이의 실력이 궁금하군. 한번 놀아봐라.”

“예, 주인님.”

그 말에 기사 넷이 분노를 터트렸다.

“역시 더러운 거짓말쟁이였어!”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

“뭐가 다르지?”

타락한 날개의 나직한 어투에 기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머뭇거리게 되었다.

따지고 보니 그는 자신이 모든 힘을 접고 인간의 힘만으로 왼쪽 다리와 왼쪽 팔만 사용한다고 했지, 수하까지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사 넷이 이를 갈았다.

으드득!

“후후! 내가 너희를 이기지 못해서 뒤로 빠진 것이 아니다. 안 믿어도 상관없지만, 지금 네 녀석들은 순식간에 처리할 수가 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너희 따위는 쓰레기만도 못하다. 그래서 약속을 정정하지. 저 녀석을 이겨 봐라. 그러면 아까 그 약속을 그대로 지키도록 하지.”

순간, 기사 넷의 눈빛이 반짝였다.

사실 그의 말이 모두 옳았다.

자신들은 이미 그의 압도적인 힘에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인간의 근력만으로 싸우는 그를 오러를 사용하는 자신들이 어쩌질 못하는 사실이 너무 비참했던 것이다.

타락한 날개보다 과거 자신들의 동료였던 리쿤 저 녀석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타락한 날개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너희가 생각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내 힘을 나눠주지 않은 저 녀석은 반쪽짜리 마인이지. 하지만 우습게 생각하지 마라. 인간이었을 때 가지고 있던 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테니까.”

기사들의 가슴에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과거 리쿤의 실력과 자신들의 실력은 비슷했다.

“어때. 나쁘지 않은 계약이지?”

모두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합의한 듯 검을 들고 리쿤을 노려보았다.

곧 리쿤을 향해 넷이 달려들었다.

신속하게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쿤이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타탓!

그리고 검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으읏!”

타타타타타탕!

리쿤의 검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이 기사들을 압박했다.

4명의 기사는 의도치 않게 공격하러 들어갔다가 방어만 한 후 뒤로 밀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리쿤은 타락한 날개를 돌아봤다.

어느새 처음의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간 타락한 날개가 미소를 흘리며, 다시 생겨난 오른쪽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리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검에 오러를 밀어 넣었다.

아니, 마기라고 해야 옳은 것일까.

검은색 강기가 검을 둘러쌌다.

기사 넷이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리쿤은 검을 강하게 내리그었다.

순간, 앞에 오러의 막이 형성되었다. 리쿤은 자신이 만들어낸 오러의 막을 발로 차서 몸을 뒤로 빼며, 검을 보지도 않고 뒤로 찔러 넣었다.

푸푹!

기사 한 명이 자신의 왼쪽 가슴에 꽂힌 검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리쿤은 무신경하게 그의 몸을 뒤로 튕겨 내며 검을 뽑았다.

기사는 아무런 저항 없이 뒤로 날아간 후 숨을 헐떡였다.

폐에 기흉이 들어 공기와 피가 들어차고 있음이다.

남은 3명의 기사가 놀랐다.

리쿤이 이렇게 강했는가 싶어 당황한 것이다.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신속한 결단력과 정확한 공격.

평소 리쿤이라면 보여 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때, 리쿤이 자신의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오러 덩어리가 쏘아져 나갔다.

퍼엉!

모두가 놀라 몸을 피했다.

콰과과과광!

작지 않은 폭발이 일어났다.

리쿤이 그 폭발로 인해 일어난 먼지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두 녀석의 몸을 베어냈다.

‘얕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가 오른쪽 끝에 있던 한 기사의 가슴을 팔꿈치로 깊이 들어 쳤다.

“커헉!”

가슴을 맞은 기사가 입에서 피 화살을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쿠당탕!

단순한 팔꿈치 공격이 아니었다.

그 공격에 오러를 담아서 내지른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가슴에 검상만으로 공격을 피한 두 기사가 검을 내질렀다.

“리쿤! 순순히 죽어다오!”

“제발 부탁이다!”

그러나 리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리쿤은 오러를 가득 담은 자신의 검을 종으로 그어 두 공격을 상쇄했다.

동시에 터지는 섬광과 소음!

쿠아아앙!

리쿤과 두 기사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리쿤은 튕겨져 나가면서도 자신의 오러를 검끝에 모아 두 기사에게 쏘아 보냈다.

두 기사는 당황했지만 그 공격을 겨우 막아내긴 했다.

콰광! 콰광!

그렇지만 상태는 좋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막은 탓에 완벽하게 막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두 기사는 결국 이를 악다물고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리쿤은 조금 전 그 폭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었다.

가슴과 복부는 이미 넝마가 되어 있었다.

리쿤은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이곳저곳 이동하며 쓰러진 4명의 기사의 가슴을 도려냈다.

리쿤은 그렇게 뽑아낸 심장을 그대로 자신의 주인인 타락한 날개에게 넘겼다.

타락한 날개가 웃으며 말했다.

“재밌군. 아무리 내가 거둬들였다고 하지만, 직접 힘을 주입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본신 능력 이외의 기술을 사용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타락한 날개가 의문을 드러낸다고 리쿤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타락한 날개는 상당히 흥미로운 시선으로 리쿤을 천천히 살피며, 그가 건네는 4개의 심장을 자신의 목 뒤로 넘겼다.

꿀꺽!

그리고 잠시 후, 반쪽짜리 날개를 지닌 5명의 마족이 그의 등 뒤에 보좌하듯 자리했다.

“생각지도 않게 실험해볼 게 생겼군.”

타락한 날개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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