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악연
1
“믿을 수가 없다!”
안드레이는 경악 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 거대한 마의 기운.
나타나기 무섭게 사라지긴 했지만, 결코 착각이 아니다.
착각을 할 수가 없다.
이토록 선명한 기운을 어찌 착각할 수 있단 말인가!
혼자만의 착각이라면 자신의 근처에서 연구를 하던 마법사들이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건…?”
안드레이는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잠깐 느꼈던 그 기운은 분명 순수한 마계의 기운이었다.
순수한 마계의 기운을 사용하는 존재는 마왕뿐이다.
마법사들이 어둠의 마나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정제된 것에 불과하다.
순수한 마기는 인간을 마족화시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기운이 더 놀라운 이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존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안드레이는 자신이 찾는 마왕의 기운을 알고 있었다.
그의 기운도 강하지만 이렇게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그 말은 한마디로 지금 이 중간계에 전혀 다른 존재가 현신했다는 뜻이다.
정확히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찾는 마왕은 감히 마왕이라는 이름을 달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어떤 존재가 말이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안드레이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사람들을 풀어서 조사를 시도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풀어서 몬스터의 반응과 움직임을 조사하고 있던 안드레이였다.
그들에게서 다급한 메시지들이 날아왔던 것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몬스터들이 하나같이 뭐에 홀린 듯 멈춰 서서 어떤 방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방향을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안드레이가 지금까지 주시하고 있던 그 방향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메시지들이 날아왔다.
몬스터들이 그렇게 한참을 자리하고 있다가 갑자기 대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군대처럼 민첩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냥 이동이다.
무리 이동과 같은 대이동 말이다.
한두 군데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전 대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안드레이는 저 몬스터들의 이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저 몬스터들의 움직임은 바로 불을 보고 달려드는 날벌레들과 같은 것이었다.
몬스터란 존재는 원래 이성보다 본능에 더 충실하다.
멀리서 느껴졌던 거대한 마기에 본능이 이끌리듯이 그곳으로 몰리는 것이다.
안드레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르게 뭔가가 급박히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대비하며 준비하던 것들이 모두 무색해진 기분이 들었다.
안드레이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런 혼란스러움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뭘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하는 거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며 모든 계획을 짜던 그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의 변수가 나타나도 전혀 놀라지 않고 차분히 일을 진행해나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의 계산이 어긋난 수준이 아니다.
아예 다른 문제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곧 마음을 다스린 안드레이는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 처음부터 계산하자.’
지금보다 더 늦기 전에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모든 조사를 하여 다른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안드레이는 곧 우선순위를 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짧은 갈등 끝에 앤디에게 찾아오라는 연락을 남기고는 탈리온과 셀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탈리온이 있는 곳에 희망을 걸어볼 만한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탈리온의 스승인 안테르트와 베르커스가 말이다.
팟!
안드레이는 지도를 통해 중간 좌표들을 정하고 순간 이동 마법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연거푸 일곱 번의 순간 이동 마법을 하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드레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뺨도 쑥 들어가 수척하게 보일 정도였다.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무리를 한 탓이다.
이미 안드레이의 연락을 받은 탈리온과 셀린, 그리고 안테르트와 베르커스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스승님, 잘 지내셨어요?”
“그래. 너도 무탈해 보여서 기쁘구나.”
“스승님도 좋아 보이세요.”
“그러냐?”
셀린이 고양이 눈 같은 미소로 기쁨을 표현했다.
셀린의 인사를 받은 안드레이가 탈리온과 짧은 눈인사 이후, 안테르트와 베르커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드레이라고 합니다.”
베르커스가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다. 이렇게 생긴 아이였군.”
“건강하셨습니까?”
“건강이야 하지. 잘 지냈느냐면 그건 아니지만.”
뭔가 애매한 대화였다.
셀린은 이들의 관계에 뭔가 복잡한 사연이 겹쳐 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지만, 얼굴은 처음 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뭐 그런 사이가 다 있는가 싶었지만, 그런 사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들의 짧은 인사는 곧 끝났다.
급한 것은 인사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가 말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그 기운을 느끼셨습니까?”
2
“….”
안드레이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셀린은 창백해지기까지 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는 표정이다.
그것을 보건대 그들 역시 많은 이야기를 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추론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눈빛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뜬금없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다.
주어와 목적어가 빠진 질문.
셀린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어디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알아들은 표정을 지었다.
탈리온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이유로 인해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네. 대체 어떤 존재인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자네라면 혹시나 알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네.”
단순히 말뿐이 아니었다.
탈리온은 정말로 이 세상의 인간 같지 않은 두뇌를 가진 안드레이라면 당연히 이 사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상식 밖의 모습들이 그런 믿음을 안겨 준 것이다.
언제 한번 그의 말이 틀린 적이 있었던가?
마치 그의 말대로 흘러가는 세상에 소름을 넘어서 자연스럽게 느끼기까지 했다.
탈리온은 막연하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자신이나 스승이 아니라, 안드레이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어떤 기가 막힌 이야기를 전해줄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탈리온의 그런 기대를 저버렸다.
안드레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기운은 마왕이 아니었습니다.”
베르커스가 질문했다.
“마왕이 아니라고?”
“예.”
“그럼 뭐라고 생각하는가?”
“마신이 아닐까 합니다.”
“마신…. 흠,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할 정도라면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인 듯한데.”
“저는 마왕을 하나 쫓고 있었습니다.”
“마왕을 쫓았다고?”
안드레이는 과거 자신의 스승의 스승이 마왕을 봉인했는데, 그가 봉인을 파하고 나와 잠적을 한 이야기를 해줬다.
모두 신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탈리온이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밀턴이 바로 그 마왕이겠군.”
그 말에 안드레이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모든 상황이 한 번에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상황을 전혀 모르는 안드레이가 질문을 했다.
“밀턴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탈리온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사실과 자신들이 생각을 하고 있던 추론들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콘 왕국과 마령환, 그리고 그에 따른 비밀들.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 이상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뭔가 조금 실마리가 잡힌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가 신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제가 쫓던 마왕이 콘 왕국의 밀턴이라는 장로로 숨어서 지내다가 마령환의 그 힘을 깨운 것이겠군요.”
“정황상 그렇게 봐야겠지.”
탈리온의 대답에 안드레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퍼즐 조각들이 촘촘하게 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빠진 부품들이 자리를 찾아가며 큰 그림의 태를 완성해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완전한 그림은 아니었다.
아직 빠져 있는 부속들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어떤 그림인지 알아보는 것은 문제없었다.
안드레이는 눈을 감고 그 빠져 있는 부속들을 추론하며 그림을 끼워 맞춰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깊이 파고 들어가지 않았다.
추론은 그냥 추론일 뿐, 어정쩡한 확신은 언제나 뒤통수를 치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만족을 해야 했다.
안드레이가 눈을 떴다.
탈리온이 안드레이를 보고 물었다.
“혹시 뭔가 떠올랐는가?”
안드레이가 대답 대신 베르커스와 안테르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르신들께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 물어보게.”
“혹시….”
달칵.
그때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문 쪽을 향했을 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스승님!”
앤디였다.
그는 달가운 인사를 하며 들어왔던 모습과 다르게 안에 들어서자 의뭉스러운 눈길로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안드레이는 앤디를 보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모습에 놀랐다.
자신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날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타이밍이 생각보다 좋다고 생각하며 앤디를 반기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앤디의 표정이 이상했다.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과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앤디를 자신들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앤디는 안테르트와 베르커스를 주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테르트와 베르커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앤디를 주시했다.
왜 자신들을 이렇게 빤히 바라보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앤디가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꺼냈다.
“혹시 양천극과 패도성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아니면, 흑마와 백마라는 이름은?”
순간, 안테르트와 베르커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녀석이 어떻게 그 이름을 알지?”
“누구냐?”
갑작스럽게 피어오르는 살기.
생사지적을 만난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안드레이와 탈리온, 그리고 셀린은 연신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앤디는 모든 일을 마치고 왕국에 도착하기 무섭게 안드레이의 연구를 돕는 보조 마법사를 만났다. 보조 마법사는 앤디에게 안드레이의 소식을 전해줬다. 자신이 도착하기 바로 얼마 전에 떠났다는 것과 자신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는 이야길 말이다.
앤디는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그 정체불명의 마기에 관한 문제일 것임을 말이다.
앤디는 공주를 만나는 것도 뒤로하고, 안드레이의 명에 따라 곧장 순간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에서 만나게 된 뜻밖의 인물들.
처음 앤디는 급한 상황이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안드레이와 탈리온, 그리고 셀린을 떠올리며 약간 반가운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눈에 띄는 뜻밖의 인물들로 인해서 그 마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이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에서 그런 불가능한 것을 한두 번 경험했던가?
환생은 물론이거니와, 드래곤이라는 극강의 존재에서부터 지옥에서 올라온 마왕이라는 존재도 있는데 말이다.
전생에서 봤던 얼굴과 똑 닮은 인물들이 자신의 앞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설마 그들이 동일 인물이라 해도 크게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앤디가 질문했다.
“혹시 양천극과 패도성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아니면, 흑마와 백마라는 이름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응이 왔다.
안테르트와 베르커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녀석이 어떻게 그 이름을 알지?”
“누구냐?”
앤디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들의 반응은 그들이 확실하다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테르트와 베르커스, 그리고 앤디 사이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살기와 기운들.
그들은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들이 공격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했다.
안테르트와 베르커스는 저 앤디라는 사내가 누군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를 갈고 있는 저 모습만 봐도 확실했다.
앤디가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혹시 남궁용민이라는 이름을 기억할지 모르겠군.”
“헙!”
“설마!”
안테르트와 베르커스가 눈을 부릅뜨고 앤디를 바라보았다.
슈앙!
안테르트와 베르커스가 몸을 피했다.
그 사이로 앤디의 몸이 앞으로 쭉 뻗어나가며 강기를 터트렸다.
퍼벙!
“네 녀석들을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반갑군, 친구들.”
앤디가 이를 드러내며 전혀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3
안테르트와 베르커스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앤디를 주시했다.
앤디는 유운신법으로 이형환위의 묘를 펼치며 강기를 발출했다.
안테르트와 베르커스는 다급하게 몸을 피하며 빠르게 흩어졌다.
앤디의 공격은 쉴 새 없이 그들의 뒤를 쫓았고, 그들은 결국 등을 허용하고 말았다.
퍽!
그 모습을 본 탈리온이 기겁을 했다.
과거 앤디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과거라고 할 것도 안 된다.
바로 얼마 전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상대가 되지도 못했던 앤디가 자신의 괴물 스승들을 상대하며 선기를 잡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등까지 격하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잔영이었던가.
앤디에게 등을 허용당한 베르커스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지워지며 앤디의 오른쪽 측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앤디가 빈손을 털며 씹어 내뱉듯 말했다.
“쥐새끼 같은 늙은이들.”
“정말 남궁용민이란 말인가?”
“흥! 왜 이러시나.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다고.”
“크크크크!”
“큭큭큭큭! 그렇지! 네가 남궁용민이 확실하구나!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런 말들은 필요가 없지! 하도 뜻밖이라 조금 놀랐을 뿐이다!”
우웅!
베르커스와 안테르트의 손에서 무형의 검이 솟구쳐 올랐다.
앤디의 손에서도 무형의 검이 솟구쳐 올랐다.
심검(心劍)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검이 있고, 생각하는 곳에 검이 있다.
쾅!
콰광! 쾅!
베르커스와 안테르트, 그리고 앤디의 검이 충돌하며 그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안드레이나 탈리온, 셀린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앤디가 이를 아득 갈았다.
저 악마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저들의 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가.
그중에는 자신의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으드득!
“너희 노괴들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지?”
“네 녀석이 환생한 것은 궁금하지 않고?”
“그건 무슨 말이냐?”
“듣고 싶으면….”
뒷말은 필요 없다.
이긴 후 들으라는 말 아니겠는가!
슈우우웅! 쾅!
앤디의 검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며 그들의 검과 충돌했다.
엄청난 폭발이 그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강기 아니 강기를 넘어선 기운의 덩어리들끼리 상쇄되며 터지는 충격파는 그 자체가 이미 살상 병기였다.
앤디의 검이 더 빠르게 움직이며 베르커스와 안테르트의 검을 막는 것을 넘어, 공격을 주도할 정도가 되었다.
베르커스와 안테르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금 앤디의 능력이 과거 전생의 그때와 비교해도 전혀 낮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황을 보니 차원을 넘어온 자신들과 다르게 앤디는 환생을 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부터 무공을 익혀야 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말이 안 됐다.
무엇보다 얼굴을 보면 아직 30대도 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들과 맞서서 싸우는 능력이라니.
어떻게 된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 표정 지을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
앤디가 씹어 내뱉으며 다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앤디의 검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시작했다.
베르커스와 안테르트의 심검과 앤디의 검이 부딪치는 속도는 그 형상이 자리하기 전에 흩어질 정도로 빨랐다.
그런데 앤디의 검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한 후부터는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니, 느리게 보이는 것이다.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잔영이 더욱 선명해진 것이다.
그 결과 사방에 나타나는 검의 수가 지금 1천 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굉음!
쿠앙! 쿠과과과광!
마을이 붕괴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안드레이와 셀린이 마법으로 그 충격파가 마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막고 있음에도 그 모양이었다.
간접적인 여파만으로도 거의 허리케인에 육박하는 자연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안드레이가 외쳤다.
“멈추시오! 앤디! 멈추거라!”
콰광! 쾅! 쾅!
그들은 하나같이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안드레이의 메시지 마법은 확실하게 그들에게 소리를 전달했다.
하지만 멈출 리가 없었다.
철천지원수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어찌 검을 거둘 수 있단 말인가!
안테르트의 심검이 붉어지며 불의 기운을 띠기 시작했고, 베르커스의 심검이 푸르스름해지며 물의 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앤디의 검은 하얗게 백열하며 무 속성의 기운을 그렸다.
서로가 익힌 무공의 영향이 심검의 속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허공에 붉고 푸르고 하얀색 선이 수를 놓으며 거대한 기운 흩뿌렸다.
‘정말 대단하다! 아무리 남궁용민이라 하지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안테르트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베르커스도 같은 심정이었다.
적아를 넘어서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갈라진 상태였다.
아무리 남궁용민이 대단하다 해도 현재의 자신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몰아치는 공격에 놀라 조금 당황했지만, 역시나 힘의 절대량이 자신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급격하게 체력이 고갈된 것일까? 서서히 허공에 떠도는 검의 수가 줄어들었다.
파팟! 팟팟!
눈에 보일 정도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졌으니까.
앤디의 입에서 거친 호흡이 드러났다.
베르커스와 안테르트는 처음과 같이 태연한 모습으로 그런 앤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셋이 동시에 검을 거두었다.
순간, 앤디의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주르륵!
앤디가 한 푼의 힘도 없는 모습으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
“두고 보자….”
스르르르르.
앤디의 몸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다.
서 있을 힘도 없다는 뜻이다.
전신의 진력을 모두 짜내서 자신보다 강한 2명을 몰아치며 공격했는데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바로 그때, 베르커스가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나타나 쓰러지는 앤디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한숨을 토했다.
“후….”
그 모습을 보며 셀린도 한숨을 토했다.
탈리온은 충격을 먹은 경악 어린 표정으로 앤디를 내려다보았고, 안드레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눈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