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신전
1
앤디는 굳은 표정으로 루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양해 어린 몸짓으로 루스를 받았다.
루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혼절한 상태였다.
앤디는 서둘려 혈을 짚었다. 그러자 거침없이 흘러나오던 피의 양이 줄었다.
하지만 이미 적지 않은 양이 흘러나온 상태였다.
창백해진 루스의 얼굴을 보며 앤디는 자신의 소매로 그의 이마에 흘러내리고 있는 식은땀을 닦아주며 상태를 살폈다.
‘젠장! 뼈가 상한 건가?’
가벼운 상처가 아니다.
루스가 용병의 검에 뼈를 베인 것 같았다. 그것도 깊이.
이대로 가다가는 장애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빠른 처치가 필요했다.
앤디는 다시 여관 주인에게 루스를 돌려주며 말했다.
“잠시 움직이지 마시고 이대로 지탱하세요.”
여관 주인은 얼떨결에 루스를 안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앤디를 올려다보았다.
“우선 응급조치로 피는 막았으니 생명이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최대한 빨리 의사에게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 마을에는 의사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 용병이 어이가 없다는 어투로 끼어들었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닥쳐. 한마디만 더 아가리 놀리면 입을 찢어버린다.”
냉기가 흘러나오는 앤디의 한마디.
그 기운에 압도되어 말을 내뱉은 용병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앤디가 다시 여관 주인에게 질문했다.
“그럼요?”
“멀리 떨어져 있는 신전 외에는….”
“가까운 곳에 예배당도 없습니까?”
“예배당은 있지만, 치료하는 사제는 없습니다.”
여관 주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앤디는 그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관 주인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거리다.
대부분의 신전은 자신들의 신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찾아가는 사람은 고칠 만한 병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고, 큰 병이나 크게 다친 사람들은 가다가 대부분 죽는다.
#운이 좋게 큰 병을 가진 사람이 거기까지 가다가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들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신앙심을 요구하는 탓이다.
그들이 말하는 신앙심이란 바로 돈을 뜻한다.
돼지에 비견되는 신전이 돈을 한두 푼 챙기겠는가.
의사까지 없다니 더할 나위 없이 포식을 할 것이다.
가장 선을 행해야 할 신을 믿는 사제들이 돈을 섬기고, 사리사욕을 챙기고 있다.
사람의 목숨의 가치를 돈보다 낮게 생각한다.
신전에서는 이미 신을 밀어내고 그 위에 돈을 쌓는다.
하지만 그들은 더 돈을 쌓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전이 더 커져야 했다. 창고가 커져야 더 많은 곡식을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악순환.
누가 더 높이 쌓는지 겨루기라고 하는 것처럼 신전을 더욱 화려하고 방대하게 증축하며, 또 그 위에 금과 보석을 올린다.
헌금을 걷기 위해 헌금소를 차리긴 했어도, 그 속에 치료하는 사제를 포함하지는 않는단다.
앤디는 이미 그 한마디로 이곳의 열악한 사정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대부분의 도시가 이런 부조리를 겪고 있을 것이다.
“….”
앤디는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자 왠지 마왕이 와도 별로 안 무서울 것 같다.
이미 마왕이 세상에 역사하시고 계심 때문이다.
#마왕이 별건가?
으득!
썩을 대로 썩은 세상에 지옥에서 마왕 하나 기어 올라와 등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싶었다.
이미 알아서 망해가고 있는 세상이니까.
이미 알아서 미쳐 가고 있는 세상이니까.
검을 든 놈들은 쾌락과 살육에 미쳐 있고, 사제들은 허영과 돈에 미쳐 있고, 귀족들은 음주와 향락에 미쳐 있고, 백성들은 슬픔과 배고픔에 미쳐 있고, 노예들은 고통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미쳐 있다.
앤디의 머릿속에 염세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
저런 돼지들을 위해서 자신이 두 발로 뛰는 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한 번쯤 세상이 망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루스의 신음 소리가 고막을 자극했다.
“으으으음…!”
그 신음을 따라 루스를 바라본 앤디는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망하는 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우선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떠오른 것이다.
자신의 고민이 길어지고 행동이 늦어지는 만큼 고통이 길어지는 존재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곧 편안하게 해주마. 조금만 참고 있거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병들이 소리쳤다.
“감히 우리를 무시해! 여기 있는 놈들 다 죽여 버리겠다!”
용병들이 펄펄 날뛰었다.
그것을 본 레쉬가 검을 고쳐 쥐었다.
오늘 길보다 흉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저 용병 녀석들, 결코 호락호락하게 당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레쉬 앞으로 앤디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포션 있습니까?”
“있소.”
“어디.”
레쉬가 의아한 시선으로 앤디를 바라보았다.
이 긴박한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혼자 세상에 동떨어져 있는 사람과 같이 느껴졌다.
레쉬는 앤디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이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곧 상대방에게 시선을 떼서는 안 되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고개를 돌려 수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포션을 건네줘라.”
레쉬의 명령에 수하가 품 안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포션이다.
앤디가 그것을 받아들고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소.”
앤디가 포션의 뚜껑을 열고 루스에게 다가가 상처 부위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콸콸!
스르르르!
포션은 외상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포션이 닿자 상처가 아무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뼈를 치료하거나 기타 병을 치료하는 효능은 없다.
한마디로 대충 급한 불은 끈 것이다.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을 테니까.
이제 의사나 신관에게 치료만 받으면 된다.
말 그대로 급한 불을 끈 것이다. 치료를 안 받아도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냥 놔둔다면 파상풍에 걸려 썩거나, 파상풍을 넘어간다고 해도 뼈가 기형으로 뒤틀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충분했다. 루스에게 상처를 준 녀석들을 처리할 시간이 말이다.
앤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용병들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루스에게 검을 찌른 녀석의 바로 앞에 섰다.
그것을 본 레쉬가 말했다.
“위험하오!”
“내가 말입니까? 아니면 이 녀석들이 말입니까?”
“….”
앤디의 말에 레쉬가 한숨을 흘리며 거리를 벌려 주었다.
눈앞의 저 사내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런 행동을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들이 거추장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해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용병 녀석이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앤디를 내려다보고는 이를 으득 갈고 눈을 부라렸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극에 치달았다는 뜻이다.
녀석이 앤디를 향해 일언반구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후웅!
검을 휘두르는데 마치 몽둥이를 휘두른 것 같은 거친 소음이 터졌다.
앞을 막는 것은 모두 베어 넘기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했다.
하지만 앤디의 주먹이 더 빨랐다.
“느려. 굼벵이가 더 빠르겠다.”
뻐걱!
“커헉!”
코뼈가 부서졌다.
코피가 양 콧구멍으로 철철 쏟아졌다.
머리가 하얗게 질릴 정도의 충격에 녀석이 칼을 채 휘두르지 못하고 몸을 휘청거렸다.
앤디는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용병의 몸이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그대로 발을 들어올려 녀석의 왼쪽 팔뚝을 내리찍었다.
와두둑!
“끄, 끄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악!”
2
“내 팔! 내 파아아알!”
녀석이 끔찍한 비명을 토하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코뼈가 부서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끄아아악! 끄아아악!”
바닥에서 뒹구는 녀석의 팔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망치로 곤죽을 낸 고깃덩어리처럼 맥없이 말이다.
앤디는 조금 전 그 내려찍기로 녀석의 뼈를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진기를 흘려 내부를 진탕으로 만드는 내가중수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힘으로 아작을 낸 것이니까.
산산조각이 난 날카로운 뼈가 녀석의 근육을 파고들며 고통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앤디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발을 들어 녀석의 오른쪽 넓적다리를 내리찍었다.
우두두둑!
뼈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작이 났다.
인체의 뼈 중 가장 단단한 대퇴골이 작은 반항을 하지도 못한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흐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하다 못해 사무치는 고통이 불러온 처절한 외침이다.
결국 녀석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앤디는 그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정신을 깨우는 혈을 발끝으로 자극하자 눈을 까뒤집고 혼절한 녀석의 눈이 껌뻑거렸다.
앤디가 태연하게 짓이겨진 상처 부위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녀석의 입에서 다시 비명이 토해졌다.
내장을 모두 토해낼 듯한 비명이었다.
그것을 보며 앤디가 말했다.
“녀석, 엄살이 심하군.”
그 말을 들었는지 녀석의 비명이 그쳤다. 다시 혼절을 한 것이다.
입가에 물린 거품이 마치 게거품처럼 피어올랐다.
앤디의 시선이 녀석에게서 떨어졌다.
녀석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 무엇보다 녀석을 괴롭힐 시간은 앞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자신은 할 일이 남았다.
아직 도망칠 여력이 남아 있는 놈이 5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앤디는 그들을 하나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앤디의 싸늘한 눈빛에 5명의 용병들이 흠칫 떨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관 주인을 괴롭히며 흘리던 호기로운 녀석들의 웃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루스가 동료의 칼에 찔리는 것을 보면서도 단지 번거로운 쓰레기 보듯 하던 눈빛도 없었다.
그들의 시선에 담겨 있는 것은 공포뿐이었다.
상대의 그 압도적인 폭력에 눌려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모습은 뱀 앞의 개구리와 다를 바 없었다.
앤디가 한 걸음 나아갔다.
“똑같은 놈들.”
“자, 잘못했습니다.”
앤디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잘못을 아는 녀석들이 더 나쁜 놈들이지.”
그 말을 곡해해서 들은 것일까. 한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죄가 없다! 저 녀석이 귀찮게 해서 응징을 가했을 뿐이다.”
앤디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어, 그래.”
“그럼 무, 물러가라!”
“왜?”
뭔가 말이 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자 녀석이 호기롭게 외쳤다.
“우리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싫은데?”
“시, 싫다고?”
“어. 난 너희가 싫어. 그냥 싫어. 시끄럽고 귀찮아. 그러니까 좀 패줘야 될 것 같아. 죄가 없다고 했던가? 아냐. 그게 죄야. 너희의 존재가 죄야.”
앤디가 대포알처럼 신형을 앞으로 쏘며 무릎으로 한 녀석의 가슴을 찍고, 상체를 쭈욱 펴서 주먹으로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녀석의 안면을 시원하게 날려 줬다.
텅!
“뭐, 뭐냐! 캐액!”
뻐억!
“꺼흑!”
두 녀석이 쓰러지자 남아 있던 세 녀석이 겁에 질려 앤디에게 달려들었다.
사람이 대체적으로 패닉에 빠지면 2가지 행동을 보인다.
도망을 치거나 공격성을 띠거나.
녀석들은 공격성을 띤 쪽이었다.
팟!
앤디의 모습이 녀석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 녀석은 놀라 두리번거렸다.
그때, 앤디의 주먹이 한 녀석의 안면을 강타했다.
뻐어억!
“거억!”
뽀깍!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났다.
안면의 뼈가 그대로 아작이 난 듯 우직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녀석의 몸이 붕 떠올라 순식간에 다섯 바퀴나 허공에서 회전하고 바닥에 나자빠졌다.
바닥에 자빠진 녀석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죽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앤디는 남아 있는 두 녀석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녀석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앤디의 표정을 따라 입꼬리를 올리고 말았다.
앤디가 순간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뭘 쪼개, 병신들아.”
쫘악!
“캑!”
짜아악!
“어흐헉!”
앤디의 양손 따귀 공격에 녀석들이 눈을 뒤집고 흰자를 드러낸 채 쓰러지려 했다. 그러자 앤디가 재빨리 녀석들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벌써 자려고? 아직은 이른데?”
앤디가 두 녀석의 몸을 끌어당기며 머리를 충돌시켰다.
꽈앙!
골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녀석들의 코피가 촤악 터져 나왔다.
그 코피가 분출되는 힘에 의한 것인지, 그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양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자빠졌다.
털썩! 털썩!
두 녀석이 전신을 껄떡거리더니, 곧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여관 주인을 비롯해 레쉬와 일꾼들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순간에 저 강인해 보였던 용병 여섯이 반시체로 둔갑한 것을 목격한 탓이다.
숨을 쉬는 것 같기는 하지만, 결코 살아 있다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냥 죽는 게 더 편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용병 녀석들에게는 슬프게도 그것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앤디는 꼼꼼하게 반시체에 가까운 녀석들을 하나하나 들어올리며 주먹질을 시작한 것이다.
장인의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억지로 문장을 하나 만든다면 ‘주먹 장인’ 정도?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벅! 퍼거! 퍼버벅!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어억! 어어억!”
앤디의 주먹이 보이지 않았다.
운 좋으면 간혹 잔영이 비쳤다.
하지만 앤디의 주먹이 확실하게 녀석들의 전신을 난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막을 자극하는 소음과 사방에 터지듯 낭자하는 피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덩치가 하나같이 크다 보니 때릴 곳도 많았다.
앤디는 신명나게 주먹과 다리를 휘둘렀고, 녀석들은 비명조차 맘껏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 휘둘러지는 주먹과 다리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물전의 생선처럼 주인의 처분에 팔려 나가는 신세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끔찍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감히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된 채, 형용할 수 없는 고통만을 받아들이며 신음을 흘려 댈 뿐이었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어진 생고문.
구타를 마친 앤디는 반쯤 죽어 있는 녀석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내려다보더니, 발로 툭툭 쳐서 녀석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죽지는 않았다.
죽으면 안 된다.
이런 녀석들은 편안하게 죽으면 자신이 왜 맞았는가에 대해 영원히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대로 치료만 한다면 살기는 할 것이다.
장기가 상하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영원히 주먹질 좋아하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팔과 다리뼈가 아작이 났으니.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앤디가 손을 쓴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수고를 했겠는가.
녀석들에게 진정한 고통을 선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육체적인 고통만이 고통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녀석들은 앞으로 누군가를 패고 괴롭히는 짓을 못할 것이다.
이제는 당하는 자의 고통을 맛보게 되겠지.
인과응보다.
앤디는 그들의 상태를 보며 잠시 고심했다. 생각보다 녀석들의 반응이 미약한 탓이다.
사혈과 중요 장기 부분을 피하며 구타를 했지만, 충격에 의한 쇼크가 조금 온 듯 보였다.
자신의 계산과 달리 흥분하여 힘 조절에 미묘한 실수를 보인 것 같았다.
“조금 심했나? 죽으면 안 되는데.”
앤디의 중얼거림을 들은 레쉬 일행은 움찔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실컷 패놓고 후회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렇게 죽어라 패놓고 죽으면 안 된다니, 대체 무슨 소린가!
오죽하면 적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생겼겠는가.
몇몇은 죗값을 어느 정도 이승에서 치렀으니, 지옥은 조금 형편이 나은 곳으로 가길 빌어줬다.
천국에 갈 녀석들은 확실하게 아니니까.
그때, 고민을 마친 앤디가 레쉬에게 다가갔다.
“혹시 남는 포션이 더 있습니까?”
뻔뻔하게도 그 비싼 포션을 하나 더 달라고 한다.
하지만 레쉬는 왜 달라고 하는지 묻지도 않고 순순히 포션을 건네줬다.
앤디는 그 포션을 받아들고 녀석들 위에 나눠서 뿌렸다.
졸졸졸!
병 주고 약 주는 것인가?
몇몇은 그 모습을 보며 시체 위에 왜 저 비싼 것을 뿌리는 가 싶었다.
‘노잣돈 대신해서 뿌리는 건가?’
그런 의문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곧 반응이 왔다.
녀석들이 혼절해 있는 와중에도 포션이 좋은 것인 줄은 아는지 꿈틀거리며 신음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더 뿌려 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은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에게 물을 뿌린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끝까지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은 경건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저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레쉬의 몇몇 일꾼들은 흠칫 놀랐다.
그 상황을 겪고도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에 경외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앤디는 한 방울의 낭비도 없이 포션을 다 뿌린 후 녀석들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용병질 하기 힘들 거다. 그러니 먹고살려면 찬송가 몇 곡 외워라. 그럼 굶어 죽지는 않을 테니.”
녀석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한마디 주옥같은 조언을 던져 주었다.
하지만 당연히 반응이 없다.
대답하기 싫어서 대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잃은 녀석들에게 무슨 반응을 기대하란 말인가.
물론 앤디도 녀석들이 듣든지 말든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한 말이었지만….
3
앤디는 기름 먹인 종이 우비를 루스에게 씌우고 밖으로 나갔다.
주인의 지금 상태는 신전에 가다가 사고 일으키기 딱 좋았고, 다른 손님들에게 명령하듯 아이를 신전에 잘 데려가주시오,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앤디는 신전의 위치를 확인한 후 질풍금룡보를 펼쳐서 달려 나갔다.
퓨퓨퓨퓨퓻!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 앤디의 몸에서 형성된 풍압으로 인해 비가 비켜 나가 한 방울도 맞지 않을 정도였다.
저 멀리 화려하고 웅장하다 못해 경악스럽기까지 한 거대한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앤디는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루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고통의 흔적을 지워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앤디가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한걸음에 담을 뛰어오른 후, 안에 들어가서는 신전에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 저 앞에 사제복을 입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 아이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치료해주십시오.”
갑자기 나타난 앤디의 모습에 사제가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질문을 던졌다.
“어디가 어떻게 다친 것입니까?”
“용병의 검에 찔려 어깨가 뚫리고 견갑골(어깨뼈) 쪽에 깊은 상흔이 생겼습니다.”
“응급처치는 잘하셨군요. 아니, 뼈가 다쳤단 말입니까? 연골 쪽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이였다.
사제는 한참을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제 막 직위를 받은 사제인지라 신성력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누가 치료할 수 있습니까?”
“신관님 정도면 무난하게 치료를 하실 겁니다.”
“완벽하게 치료가 가능합니까?”
“확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완치가 거의 가능할 것입니다.”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관님을 어디서 뵐 수 있습니까?”
“지금 여기는 수련실입니다. 저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본관으로 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오신 겁니까? 정문으로 오셨다면 직접 안내를 받으셨을 텐데요.”
사제의 질문에 앤디가 대답했다.
“경황이 없어 정문으로 오지 못했습니다.”
앤디의 시선을 따라 뒤를 보던 사제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담을 넘어오셨단 말입니까?”
앤디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눈을 껌뻑였다.
앤디는 속으로 ‘요즘엔 성벽을 담이라고 하는 모양이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저편에서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앤디의 시선을 따라 사제도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제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확인한 후 황망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한참의 거리가 남았음에도 말이다.
사제는 어느 정도 거리가 되었을 때 인사말을 올렸다.
“미케로이스 대신관님을 뵙습니다.”
“린 사제,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었는가?”
“이제 끝나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열심이로군.”
미케로이스 대신관은 인자한 표정으로 린이라 불린 사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앤디를 발견하고 궁금한 듯 물었다.
“여기 형제분은 누구신가?”
앤디가 대답했다.
“아이를 치료해주십시오.”
“이런, 아이가 상해를 입었구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소?”
앤디의 설명이 끝나자 미케로이스 대신관이 측은한 마음으로 말했다.
“어서 치료를 해야겠구려. 응급조치는 잘되어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기형이 될 수도 있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오.”
“예.”
“이 정도 상처를 완쾌하려면 적지 않은 신앙심이 필요할 것이오.”
“신앙심 말입니까?”
앤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잠시 동안 혹시나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앤디가 고개를 들고 인자한 미케로이스 대신관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인자하기 그지없던 그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탐욕 어린 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후우….’
한번 종교 개혁이 일어나야지 싶었다.
아니면 신이 이 망할 종자들에게서 신성력을 회수하든가.
그러나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는 신실하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신이 정신 차리고 개념 없는 신관들의 힘을 회수한다고 해도, 힘을 쓸 수 있는 신실한 자들은 힘을 잃은 자들에게 이용을 당할 것이다.
신 외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신실한 자들은 신앙 외에는 거의 어린아이 수준의 사고방식, 혹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모든 이에게 힘을 주고 있을,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말한 아가페의 참뜻을 알아주겠지 하며 열심히 힘을 쓰는 신을 생각하니 불쌍할 지경이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신이 화를 내며 지상에 내려온다고 했을 때, 저 신관들 중에서 누가 그의 진실한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오히려 거짓 선지자라며 핍박할 신관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앤디는 속으로 적당히 눈치 있고, 적당히 계산적이고, 적당히 양심도 있고, 적당히 똑똑한 신관들만 있는 것은 어떠할까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쓸데없이 생각이 길어졌다.
미케로이스 대신관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변했다. 짜증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앤디가 한숨을 흘리며 품을 뒤졌다. 이미 이런 상황은 짐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보다 저 착한 아이의 미래가 더 걱정되었다.
순간, 앤디의 표정이 굳어졌다.
‘돈이… 없다.’
앤디의 표정을 읽은 것인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던 미케로이스 대신관의 온화한 표정이 무너졌다.
“설마 이토록 신앙심이 결여된 분인 줄은 몰랐소. 첫인상과 달리 이렇게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악한 존재였다니. 그리고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것이오? 혹시 담을 넘어온 것이오?”
‘지금껏 그것을 물어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
앤디는 정말 기가 막혔다.
“신의 성전에 몰래 숨어들다니. 이것은 분명 신의 성물을 훔치러 들어온 도둑일 터. 당장 저 사악한 자를 신성한 신의 성당에서 쫓아내십시오!”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장 갑옷을 걸치고 검을 착용한 신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보자 앤디는 속에서 욱 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면 아이만 잠시 맡기고 돈을 가져올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히 자신에게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다니.
그렇지 않아도 신관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앤디였다.
무엇보다 그는 오는 싸움을 막지 않는 성격이 아닌가.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한 신관이 외쳤다.
“저자를 당장 포박하라!”
검을 든 신관들이 앤디를 향해 위협을 가하며 다가왔다. 그리고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앤디를 포박하려 했다.
앤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신관을 때릴 수는 없다고 끝까지 참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우선 휘둘러지고 보는 주먹이었다.
퍽!
“억!”
앤디의 근처로 온 신관이 뒤로 날아가 진흙 구덩이에 빠졌다.
모두 굳어진 표정으로 앤디를 노려보았다.
미케로이스 대신관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역시 사마에 빠진 자가 분명하군.”
앤디는 그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 두 신관이 앤디를 향해 검을 내리쳐 왔다.
앤디는 몸을 돌려 한 신관의 팔목을 금나의 수법으로 잡고 꽉 비틀었다.
우둑!
“끄악!”
앤디는 그 신관이 고통 때문에 놓친 검을 받아들고 다른 신관의 검을 막아냈다.
챙!
검과 검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맑은 소음은 생각보다 소름이 끼친다.
앤디는 그대로 발을 뻗어 자신과 검을 맞대고 있는 신관의 복부를 걷어찼다. 신관은 놀라 다급하게 막거나 피하려 했지만, 이미 앤디의 발이 복부 깊이 파고든 후였다.
뻐억!
“컥!”
앤디는 그 신관의 복부를 발판삼아 몸을 띄우고 자신의 등을 노리고 달려드는 신관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채챙!
“크흐흑!”
“커헉!”
3명의 신관이 가한 합공이 너무나 쉽게 깨졌다.
신관은 검을 들고 있는 손을 부여잡았다. 거기서 피가 배어나왔다. 앤디의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도 손아귀가 찢어진 것이다.
앤디는 그것으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다시 검을 휘둘러 그들의 손에서 검을 날려 버렸다.
그들은 손아귀가 찢어진 탓인지 검을 쉽게 놓쳤다.
앤디는 그들이 잡고 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질풍 같은 발차기로 검을 찼다.
3자루의 검이 대기를 가르고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뒤에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3명의 다른 신관 허벅지를 뚫고 깊이 틀어박혔다.
푸푸푹! 푸푹! 푹!
“아아아악!”
“크악!”
“끄어어억!”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엄청난 고수였다니.
신관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냥 무작정 달려가서 제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늦게나마 파악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유 만만하게 있던 미케로이스 대신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앤디는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묘한 쾌감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