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마왕
1
앤디와 레오나 공주는 꿈과 같이 달콤한 신혼여행을 마치고 본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헤르만 8세를 대면해 예를 올리고 자신이 돌아왔음을 선전했다.
“수고했네.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테니 가서 쉬도록 하게.”
“망극하옵니다, 폐하.”
헤르만 8세의 배려에 앤디는 진심으로 예를 보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헤르만 8세는 그런 앤디를 든든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앤디와 레오나 공주가 쉬고 있는 방으로 안드레이가 찾아왔다.
“쯧! 제자 녀석이라는 게 먼저 와서 인사를 하는 법이 없어. 꼭 스승인 내가 이렇게 찾아와서 얼굴을 봐야겠느냐?”
“지금 찾아가려고 했다고요.”
안드레이의 표정이 대신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는 그만하시지.’
그 표정을 읽은 앤디는 욱했지만, 자신이 잘한 것이 없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말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스승이 먼저 찾아온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서둘러 찾아오셨답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름 억울한 게 있었는지 말에 가시가 있는 앤디였다.
안드레이가 말했다.
“말싸움할 때가 아니고, 급한 일이라서 그렇다.”
“무슨 일이신데요?”
“잠시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안드레이의 말에 앤디가 레오나 공주에게 고했다.
“스승님과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예, 그러세요오. 빨리 오셔야 해요오.”
앤디는 레오나 공주의 사랑스러운 애교에 헤벌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올게에에.”
안드레이는 그 눈꼴 시린 장면이 보기가 싫었는지 서둘러 밖에 나가 있었다.
앤디가 밖에 나오자 안드레이는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갔다.
안드레이의 집무실에 도착한 앤디와 안드레이.
안드레이는 잠시 부산스러운 몸짓으로 오락가락하더니 앤디에게 말했다.
“차를 마시겠느냐?”
“괜찮아요. 대체 급한 이야기가 뭔데 그러세요?”
안드레이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하역혼환 말이다.”
“예.”
“아무리 봐도 그것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인 것 같구나.”
“예에?”
앤디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갑자기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더니, 자신이 마하역혼환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성분을 분석한 결과 내가 만든 레시피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앤디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가시고 진중하게 변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싶은 일이다. 대체 어떻게 그 레시피가 유출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대체 그것을 어떻게 만드신 겁니까?”
“의뢰를 받았다.”
“의뢰요?”
“콘 왕국에서 비밀리에 의뢰가 들어왔었다. 상당히 오래전 이야기이지.”
“콘 왕국이요?”
“그래. 그곳에서 레시피에 관한 소스를 주긴 했지만, 완성이 되지 못해서 넘기지 않았거든. 부작용이 심한 탓에 말이다.”
“부작용이요?”
안드레이가 수긍했다.
“약을 먹었을 때 엄청난 힘을 얻지만, 약효가 떨어짐과 동시에 폐인이 되어버리는 부작용이었다.”
앤디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만드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스승님께서 만드신 것은 원래 그런 약이에요.”
안드레이가 의아한 시선으로 앤디를 바라보았다.
“원래 그런 약이라고? 마치 이 약이 뭔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하는구나.”
앤디가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이에게 그 말을 해야 좋을지, 하지 말아야 좋을지 고민하던 중 결론을 내린 것이다.
“예, 알고 있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말이냐?”
앤디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해나갔다.
안드레이의 표정이 놀람으로 번져 갔다.
전생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성장 과정, 그리고 신혼여행을 통해 만나게 된 해적단,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진실 등등.
안드레이가 물을 때마다 앤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전생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군.”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설명할 방도가 없었으니까요.”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앤디를 바라보았다.
“정말 흥미진진한 삶을 살았군.”
“뭐, 스승님도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도 나는 전생의 기억까지는 없지.”
“저도 전생은 전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고 말이죠.”
안드레이가 기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조금 애매한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전생에서 백 몇십 살을 살고 환생을 했으니 늙은이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앤디로 판단을 해야 하는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앤디가 선수 쳐서 말문을 열었다.
“저는 스승님의 제자라고요.”
그 한마디에 안드레이의 얼굴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고맙구나.”
“스승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다는 것을 저는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낯부끄럽게 그러냐.”
“갑자기 왜 쑥스러워하고 그러세요. 안 어울리시게.”
장난스러운 말과 달리 둘의 분위기는 푸근했다.
안드레이가 물었다.
“그럼 탈리온 공작도 너와 같은 존재로 봐야 하느냐?”
“글쎄요. 반반 아닐까요?”
“반반이라고?”
“네. 탈리온 공작이 사용하는 검술은 제가 살던 전생의 것과 닮아 있었어요. 그것만 봤을 때는 확실하다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배웠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림의 검술을 사용한다고 모두 환생을 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니까요.”
“그렇군. 그런데 누군가에게 배웠을 수도 있다고?”
앤디가 안드레이의 얼굴을 살폈다.
“짚이는 것이 있군요.”
안드레이가 대답했다.
“탈리온 공작의 스승이 두 분 계시지.”
“스승이요? 누군데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막막하군. 하지만 근래에 만나게 될 거야.”
“근래에 만난다고요? 탈리온 공작의 나이가 스승님보다 많지 않나요?”
“많지.”
“그럼 그 스승이라는 사람들은 대체 몇 살이기에….”
안드레이가 고심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군. 여하튼 탈리온 공작을 어렸을 때부터 키웠다는 것은 알고 있지.”
“그런데 셀린은 어디에 있어요?”
“셀린은 지금 그 탈리온 공작의 스승들과 함께 있을 거야.”
“뭔가 일이 있었군요.”
“탈리온 공작이 부탁을 하더군. 자신의 스승들을 다시 세상에 불러오고 싶다고. 그래서 셀린을 추천해줬지.”
앤디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들을 다시 세상에 불러와? 그런데 왜 셀린을 추천해?
얼굴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자신의 설명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짧지 않은 이야기였다.
과거 탈리온 공작을 만났을 때부터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탈리온 공작이 자신의 스승들을 다른 차원의 공간에 가둔 이야기도 해줬다.
“그러니까 그 다른 차원에 셀린을 보내서 그들을 다시 현세로 불러낸다, 이 말이죠?”
“맞다.”
앤디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승들을 다른 차원에 가뒀죠?”
“자세한 이야기는 나도 모른다.”
“자세한 이야기도 모르면서 그런 일을 도왔다고요?”
“내가 언제 도왔다고 했느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지.”
앤디가 머쓱한 듯 헤벌쭉 웃었다.
“아 참, 그랬지.”
“뭐가 아 참 그랬지냐?”
“그건 그렇고, 스승님도 탈리온 공작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군요.”
안드레이가 수긍했다.
“흐음… 따지고 보니 그렇군.”
“그런데 탈리온 공작은 무슨 이유 때문에 힘들게 가둔 스승들을 다시 풀어낸다는 거죠?”
“잘 모르겠구나.”
앤디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안드레이를 주시했다.
“혹시 스승님, 제게 뭐 숨기고 그러시는 것 아닌가요?”
안드레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별로 그런 것 없다.”
“없는 표정이 아니구만요.”
앤디의 말에 안드레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게 뭐죠?”
“뭐라고 설명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혹시 마왕에 대한 이야기를 아느냐?”
앤디가 피식거렸다.
“마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마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너는 믿겠느냐?”
2
안드레이가 뜨거운 차를 찻잔에 부었다.
쪼르르르륵!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 찻잔을 안드레이는 겁 없이 입가에 가져가더니, 후후! 불고는 호르릅! 하며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앤디가 말했다.
“마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니,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나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지 않느냐.”
“애매한 이야기면 애초에 꺼내서 궁금하게 하지 말든가요. 궁금해 죽겠네, 궁금해 죽겠어.”
앤디가 투덜거렸다.
안드레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한 대 때릴까 고민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앤디는 슬쩍 몸을 뒤로 뺐다. 안드레이는 그런 앤디를 보며 한숨을 토하고는 다시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렇게 한 잔을 모두 비우고 다시 잔을 채운 후에야 입을 떼기 시작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내 사조 이야기다.”
“예.”
“백 년 전에 이 땅에 마왕이 강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마왕은 온갖 마물을 부렸고, 절대적인 힘으로 대륙을 폐허로 만들….”
“그렇게 대단했던 일을 왜 저는 들은 적이 없죠?”
앤디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잘랐다. 그러자 안드레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계획이었지. 사람 말은 좀 끝까지 들어라.”
“아아, 계획….”
앤디가 뻘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경청을 시작했다.
“그 마왕은 운이 나쁘게도 부활하고, 힘을 얼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대 최고의 대마법사라 불리던 사조께 걸린 거였지.”
“정말 마왕 녀석, 재수가 오지게 없었군요.”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쩌다 걸린 건가요?”
“사조에게 시비를 걸고 싸우던 리치가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 리치의 몸에 마왕이 현신을 하더란다.”
“헐! 연이 그런 식으로 엮이기도 하는군요.”
“전생의 기억을 가진 사람도 환생하는 판국에 특별할 건 또 뭐가 있겠느냐.”
“하긴….”
뭔가 구시렁거리는 앤디였다.
안드레이는 못 들은 척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여하튼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해도 마왕은 마왕이었다. 물론 처음에 걸리기가 무섭게 사조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고 도망을 쳤지만 말이다.”
“마왕 체면이 많이 구겨졌군요.”
“뭐, 내가 생각해봐도 명색이 마왕인데 인간에게 위협당해 도망쳤으니 쪽팔렸을 것 같긴 하다. 흐흐흐흐!”
“큭큭큭!”
두 스승과 제자는 사이좋게 웃었다.
“사조는 놓친 마왕을 두고 편치 않은 마음이셨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보복을 감행할 것을 짐작하신 것이지. 원래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잔다고 하지 않더냐.”
“아무리 그래도 사조의 이야기인데 너무 막 이야기하시는 것 아닌가요?”
“난 얼굴 보지도 못한 분인데 어떠냐. 그리고 지금 들은 그대로 스승님께 들었던 거다. 난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일 뿐이고.”
그제야 앤디가 마음 편하게 대꾸했다.
“고사조께 사조가 억하심정이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많이 맞았다고 하더라.”
“사조께서 자신이 맞았던 이야기도 하시던가요?”
“물론 아니지. 사조의 친구 분들께서 해주신 이야기이니까. 그 말이 신뢰가 가는 것이, 항상 스승님은 사조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이를 가셨지.”
“큭큭큭큭큭!”
앤디는 자신도 모르게 낄낄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의 심각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해소되었다.
물론 그것은 겉의 모양뿐이었다. 둘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지금의 사건을 나열하고, 정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웃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얽히고설킨 내용으로 복잡해진 머리에 웃음이 유연한 사고를 가져다주었다.
“여하튼 마왕이 나온 징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더군.”
“어떤 징조였죠?”
“날씨와 기후가 급변하고, 몬스터들이 공격적으로 변하는 정도라고 들었다.”
“그렇군요.”
“사조께서는 혼자서는 불안한 까닭에 동료들을 모았고, 결국 봉인에 성공을 하셨지. 그 마왕이 봉인된 장소는 스승님을 이어 내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 봉인이 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이라면 언제를 지칭하시는 겁니까?”
“오 년 정도 되었다.”
“몬스터들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던 시기가….”
“그게 이상하단 말이지. 몬스터들이 수상한 낌새를 보인 것은 삼 년 전이거든.”
앤디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인가요?”
“내 생각도 지금의 너와 같다.”
지금에서야 안드레이가 뭔가를 숨기는 듯 이상한 모습을 보이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탈리온 공작이 어째서 스승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려는지 모르겠지만, 스승님의 마음은 조금 알겠습니다. 그 초고수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하셨군요.”
“그러하다. 그리고 드래곤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드래곤? 브라키우드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우리는 그의 도움이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그가 도와주겠습니까?”
“어떻게든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게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그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자신의 종족을 가지고 논 녀석의 정보를 내놓으라고 말이다. 그가 직접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가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가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왜 그렇죠?”
“우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요?”
“얼마 전 너에게 언데드 드래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건이 마왕과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래곤을 언데드로 만드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앤디가 신중하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두렵다. 오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힘을 비축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떤 심계를 부리고 있다는 뜻이지. 인간의 힘만으로 막기에는 힘든, 아니 모자란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너무 최악의 상황으로만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
안드레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현실을 보는 것일 뿐이다. 인간만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일이 터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이종족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오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인다.”
앤디도 깊이 고심했다.
안드레이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은 분명 뭔가 확신이 선다는 것이다. 단순한 심증만으로 이야기를 떠벌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문제는 마왕이 얼마나 힘을 얻었느냐와 이종족의 도움을 어찌 얻느냐, 그리고 마하역혼환의 레시피를 누가 유출했느냐겠군요.”
“그렇다.”
“지금 우선으로 조사해야 할 것은 정해졌군요.”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하역혼환의 레시피를 유출한 자를 찾는 거다.”
“찾는 것만으로 끝인가요?”
“당연히 그게 시작이지. 그것을 누구의 의뢰로 훔쳤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넘겼는지를 조사해야지.”
3
앤디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는 것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이곳에서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우선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머릿속으로만 정리하고 있던 무리를 정돈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앤디는 안드레이에게 말하고 연무장에 들어섰다.
개인 연무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밖에서 문이 잠기는 소음이 크게 울렸다.
철컹!
앤디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유운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사해백지로 유유히 뻗어나가는 기운. 하지만 말과 달리 그 기운은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전신이 상쾌하기 그지없는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졌다.
다시 정신을 집중하는 앤디.
머릿속에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불을 켰다. 심지 하나가 떠오르더니 넓은 공간을 빛으로 가득 메웠다.
그 바로 아래 앤디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100명의 검은 의복을 입은 무사가 앤디의 주위를 에워쌌다.
앤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뜨고 나직이 말했다.
“와라.”
순간, 100명의 무사들이 앤디를 향해 수십여 종의 특이한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앤디가 중심에서 양발을 바닥에 붙이고 그들을 반겼다.
앤디의 양손이 허공을 격하기 시작했다.
파팡! 팡팡팡!
허공을 메우는 무서운 음향이 터졌다. 그리고 살벌한 소음이 고막을 자극했다.
빠악! 뻐억!
“크악!”
다가오던 녀석들이 발과 다리가 뒤틀리고, 갈비뼈가 아작이 나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렇게 5명을 처리하였음에도 남은 녀석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결여된 듯 달려들었다.
앤디도 더 이상 자리 고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뛰쳐나가며 양팔을 사방으로 휘저었다.
파칭! 채챙!
앤디의 손바닥에 닿는 족족 그들의 무기가 깨져서 흩어졌다.
앤디는 유쾌한 웃음을 입꼬리에 머금으며, 검을 든 녀석의 팔을 금나수로 잡고 그대로 손바닥을 이용해 녀석의 손등을 내리쳤다.
우직!
녀석의 손등이 으스러지며 검을 놓쳤다. 앤디는 그가 놓친 검을 들고 종횡으로 내리그었다.
순간, 검극에서 벼락과도 같은 기운이 터져 나오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앤디의 앞에 자리하고 있던 6명의 녀석들이 전부 폭사했다. 앤디의 검에서 터져 나온 뇌기를 이겨 내지 못한 탓이다.
그때, 적들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8명의 사내가 반월도를 들고 덤벼들었다. 악귀와도 같은 살기가 앤디의 오감을 자극했다.
“좋아.”
두 녀석이 앤디를 육탄 형식으로 공략했다. 피했든, 어쨌든 앤디의 몸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되었다.
물론 그사이에 두 녀석의 목이 댕강 떨어져 나갔지만, 나머지 여섯이 기다렸다는 듯이 배후를 노렸다.
앤디는 녀석들 틈바구니에 뒤엉켜 검을 움직였다.
지금까지 공격을 했다면 이번에는 방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휘리릭!
앤디의 검이 사방을 격하며 검벽을 만들어냈다.
한데, 그 모습이 마치 검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사방을 막는 것 같은 잔상을 남겼다. 마치 채찍을 휘두른 것처럼 말이다.
터터텅!
모두가 그 검벽을 뚫지 못하고 엄청난 반탄력에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때 앤디의 앞에 거대한 살기가 엄청난 압력을 동반하며 전면을 덮쳐 왔다.
앤디가 검으로 자신의 정면을 막아냈다.
부우욱! 부욱!
앤디의 양팔을 감싸고 있던 옷이 거칠게 찢겨져 나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서억!
열십자 모양의 흉터가 앤디의 팔에 새겨졌다.
“보스가 드디어 나타났나 보군.”
앤디가 그 앞을 주시하자 짝퉁 탈리온 공작이 이죽거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짝퉁 탈리온의 눈은 눈동자가 없었다.
노란빛을 뿜어대고 있었는데, 마치 그 느낌은 빛 하나 없는 숲 속에서 마주친 호랑이의 눈빛과 진배없었다.
그 눈은 앤디를 씹어 삼키겠다는 다짐을 보여 주는 광망을 줄기줄기 뻗어내고 있었다.
“능력이 되면 씹어 삼키는 것만 아니라 분쇄를 해도 상관하지 않으마.”
앤디는 주먹을 좌우로 뻗어서 양팔을 가볍게 털었다.
팟! 파앗!
덤비려 준비 중이던 녀석들과,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제 조금 몸이 풀리는군. 그럼 한판 하실까, 공작 각하.”
“큭큭!”
짝퉁 탈리온이 앤디를 향해 검을 겨누고 바닥을 박찼다.
앤디의 지풍이 허공을 격했다. 짝퉁 탈리온은 팔을 휘두른 검풍으로 앤디의 공격을 상쇄하고, 검극으로 앤디의 요혈을 노리며 치고 들어왔다.
앤디는 막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활대처럼 튕기며 뒤로 빼냈다.
궁신탄영의 묘.
하지만 짝퉁 탈리온이 조금 더 깊게 파고든 상태였다.
“큭!”
앤디의 입에서 터진 신음.
오른 팔뚝에 짝퉁 탈리온의 검이 깊은 상흔을 만든 것이다. 검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그리 심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조금 짜증이 났다.
‘제길!’
다른 것은 둘째 치고 하나만은 확실했다. 짝퉁 탈리온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소름 끼치게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생각도 사치였던가?
짝퉁 탈리온의 검이 독사의 혓바닥처럼 사이한 움직임을 보이며, 앤디의 심장을 행해 날아오고 있었다.
앤디가 몸을 반보 틀며 공격을 빗겨 내고는, 겨드랑이로 팔을 부여잡고 그대로 몸을 틀었다. 짝퉁 탈리온의 팔을 부러트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짝퉁 탈리온은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한 당혹감과 통증을 무시하고는 앤디의 사혈을 향해 반대 팔을 뻗는 것이 아닌가!
앤디는 손목을 튕기며 짝퉁 탈리온 공작의 공격을 막아냈다.
짝퉁 탈리온은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내지 않고 연속해서 덤벼들었다.
‘지독한 놈.’
타격기에서 밀린 앤디가 혀를 찼다.
“쯧!”
앤디가 겨드랑이에서 짝퉁 탈리온의 팔을 놓음과 동시에 몸을 뒤로 젖히며 발을 깊이 뻗었다. 그 공격이 짝퉁 탈리온의 복부에 적중했다.
물론 그냥 당하기만 한 짝퉁 탈리온이 아니었다. 그대로 달려들더니 앤디에게 쌍수를 휘두르며 박투를 걸어왔다.
앤디가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타닷! 퍼펑! 쾅! 쾅! 쾅!
가볍게 부딪치는 것 같은 수족에서 공수가 일어나며 생성되는 파괴음이었다.
극쾌의 속도로 움직인 탓에 공기의 압축이 시도되고, 파괴력에 압축된 공기가 터지면서 생성된 소음인 것이다.
순식간에 1백여 합이 지나갔다.
짝퉁 탈리온이 정권을 찔러왔다. 나선의 기운이 실린 강맹한 공격이었다.
앤디가 짝퉁 탈리온의 공격 정면으로 주먹을 찔러 넣었다.
짧았다.
이미 팔을 쭈욱 뻗은 짝퉁 탈리온의 기운과 지금 막 펴지고 있는 앤디의 주먹.
무엇이 더 강할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짝퉁 탈리온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짝퉁 탈리온의 손목이 앤디의 손아귀에 잡혔다.
정확하게는 짝퉁 탈리온의 소매를 잡고 그대로 말아서 나선의 기운을 봉쇄한 것이다.
그 결과, 짝퉁 탈리온은 자신의 손목이 끊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짝퉁 탈리온의 이마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큭큭! 얼간아, 이번 공격은 먹을 만해?”
짝퉁 탈리온이 대답 대신 자신의 팔을 향해 반대 손을 내리쳤다.
파앗!
앤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접혀진 팔을 펴 짝퉁 탈리온의 중부(中府)와 문(雲門)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으며, 아래로는 발을 차올리며 발목 부근에 있는 삼음교(三陰交)를 향해 뻗었다.
무흔지와 부운각이었다.
타앗! 타핫!
짝퉁 탈리온의 손이 꿈틀거리며 검은 기운을 오른쪽 가슴을 향해 쏘아냈다.
앤디는 이대로 공격하면 짝퉁 탈리온을 무너트릴 수 있음을 확신했지만, 자신도 함께 무너지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자식! 죽을 거면 혼자 죽으란 말이야!”
앤디가 순간적으로 전신을 회전시켜 몸을 빼내고는 그대로 권경을 뿌렸다.
퍼벙! 펑펑펑!
짝퉁 탈리온의 손끝에서 강기가 기다랗게 일어나더니, 앤디의 전신을 휘감을 것처럼 날아왔다. 마치 채찍과도 같았다.
기다란 강기는 주변의 공기를 쐐에엑! 가르며, 앤디를 휘감을 것처럼 똬리를 트는 형태로 날아들었다.
앤디는 나름 대처법으로 파안장을 이용해 막아섰다.
쩌엉!
공기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소음과 엄청난 타격에 앤디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커헉!”
앤디의 입에서 피 화살이 터져 나왔다.
짝퉁 탈리온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끼끼끼끼끼!”
그리고 다 잡은 먹이를 마무리하겠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왔다.
앤디의 기분이 팍 상했다. 그는 진각을 펼치기 위해 바닥을 강하게 내디뎠다.
쿠구궁!
그리고 내기를 손바닥에 모아 녀석의 몸을 향해 뻗었다.
짝퉁 탈리온이 그 기운이 내가중수법임을 파악하고는 뒤로 몸을 빼내었다.
그러나 앤디는 마치 그렇게 행동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신형을 앞으로 뽑았다.
마치 대포알이 나가는 것처럼 앤디의 몸이 쏘아져 나갔다.
진각의 충격파를 내가중수법에 밀어 넣지 않고, 탄성을 이용해 몸을 쏘아 보낸 것이다.
“무상신검!”
앤디가 전력을 다해 쏘아내는 방어를 배제한 초식이었다.
쿠콰콰콰콰!
노도처럼 퍼지는 강렬한 기운의 검기는 짝퉁 탈리온의 심장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짝퉁 탈리온의 심장이 뚫리며 그대로 허공에서 사라졌다.
앤디가 숨을 몰아쉬며 연기처럼 사라지는 짝퉁 탈리온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연무장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앤디였다.
앤디는 가상 전투를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많이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능력을 봉인하고 육탄전을 중심적으로 싸웠다고 해도 모자란 부분이 유난스럽게 부각되었다. 모자람이 전투 중에 느껴지자 지는 것이 싫어 스스로 봉인을 해제하고 강공으로 누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앤디는 그 부분에 대한 보충 수련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한참의 고심 끝에 앤디가 히죽 웃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짝퉁 탈리온 씨, 다시 한 번 붙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