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42화 (55/68)

제3장. 무림에서 왔수다

1

콰광!

엄청난 폭음이 터지며 거친 바람이 사방에 뿜어졌다. 거친 바람이 방 안을 온통 휘저으며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중심에서 앤디와 얀이 검극을 마주한 채로 서로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제시카가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꺄악! 캡틴!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요! 내가 어떻게 청소를 했는데!”

그 말에 얀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나보다 배가 걱정되는 거야?”

“빨리 나가지 못해욧!”

“제시카는 나한테 너무 야박한 것 같아.”

“시끄러우니까 헛소리 그만하시고 계속 싸울 거면 빨리 나가라고요!”

얀이 앤디를 주시했다. 앤디도 얀을 주시했다.

앤디가 한숨을 내쉬고는 창을 부수며 밖으로 몸을 뺐다. 얀은 앤디가 부순 그 창 옆을 부수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제시카가 다시 한 번 비명 같은 외침을 터트렸다.

“문 놔두고 대체 창은 왜 부수냐고!”

창밖은 당연히 허공이었다. 앤디와 얀은 그 허공에 떠 있었다.

주위는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발아래는 거친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며 옷이 미친 듯이 펄럭이고 있었지만, 앤디와 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앤디가 얀에게 말했다.

“피곤하게 사는군.”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

“긍정적인 마인드가 보기 좋군.”

“자네에게 보기 좋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네만.”

“그렇군. 후후! 그럼 다시 하지?”

“좋지.”

꾸욱!

얀이 자신의 검을 꼬나 쥐는 소리가 들렸다. 앤디는 얀의 공격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팟!

앤디의 발끝에서 거대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얀의 눈빛이 반짝였다. 앤디의 검광이 얀의 눈동자 속에 맺힌 것이다.

얀의 고개가 옆으로 틀어지고, 앤디의 검이 그 자리를 스쳤다.

얀의 몸이 뱅글 돌며 앤디의 허리를 베어 들어갔다. 앤디의 검은 얀의 검이 날아올 것을 대비라도 한 듯 대기하고 있었다.

챙!

검과 검의 충돌에 불똥이 튀었다.

그 상태로 둘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옷깃이 터질 듯이 사방에 흩날렸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 자세로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었다.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탓에 눈이 따라가질 못하여 멈춰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때 둘의 신형이 뒤로 튕겨났다. 동시에 굉음이 터졌다.

쿠구궁!

상식을 초월하는 기운이 응축되었다가 폭발한 것이다.

그것은 마나의 폭풍이었다.

뒤로 튕겨지듯 멀어지던 앤디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얀의 신형도 지워지듯 사라졌다.

콰광! 퍼펑! 퍼퍼퍼펑!

검과 검, 주먹과 주먹.

둘이 충돌할 때마다 엄청난 폭음과 빛이 터져 나왔다.

서로의 마나가 충돌하며 형성되는 충격파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이 이 엄청난 굉음에 놀라 우르르 해안가로 밀려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웅성거리며 허공에서 터지는 빛의 향연을 지켜보았다.

“저게 무슨 일이지?”

“글쎄?”

그들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빈 허공에서 폭죽이 터지는 정도로밖에 인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의 표정은 이유도 모르고 밝게 구경하는 사람들과 달랐다.

“설마 했었는데….”

케산의 말에 바이널이 뒷말을 이었다.

“그의 실력이 선장과 비견될 정도라니.”

앤디는 자신의 인중을 찍어낼 듯 밀려오는 검극을 손가락으로 튕겨 냈다.

얀의 팔이 그 반동에 중심을 잃었다.

얀은 곧 앤디를 향해 검극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몸을 뒤로 빼지 않을 수 없었다. 앤디의 손날이 얀의 검면을 훑으며 품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얀의 가슴이 푹 파인 것처럼 쑥 들어가며 앤디의 공격을 흘렸다.

앤디는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면서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얀은 더 이상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앤디의 손등에 어깨를 내주고 말았다.

퍼억!

얀은 어깨가 탈골되는 듯한 통증에 인상을 구겼다.

그때, 앤디의 신형이 낮아지며 하반신을 노리는 공격을 시도했다.

얀이 발바닥으로 앤디의 공격을 막았다.

얀의 발바닥과 부딪친 앤디의 다리. 앤디는 힘으로 얀의 발바닥을 밀어냈다. 아직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못했던 얀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앤디의 검이 얀의 허벅지를 파고들어갔다.

서억!

“크흑!”

얀의 오른쪽 다리에서 손가락 깊이의 상처가 쩌억 벌어지며 피가 튀었다.

얀은 화끈거리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앤디를 노려보았다.

“좋아. 그럼 끝장을 봐주지.”

“진작 그랬어야지.”

앤디의 말에 얀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정말로 화가 났다는 뜻이다.

“풍우화신의 묘를 보여 주지.”

“풍우화신?”

“보면 안다.”

얀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동시에 얀의 몸을 중심으로 공기가 회전했다. 바다에서 일렁이던 파도가 그 공기를 따라 춤을 추었다.

이윽고 그것은 물기둥이 되어 솟구쳤다. 마치 용오름 현상과도 같았다.

얀의 신형이 그 물기둥 중심에 잔상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앤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형검?”

“무형검을 아는가?”

히죽!

얀의 손길이 앤디를 향해 뻗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바다에서 솟구친 물기둥이 앤디를 향해 속사포처럼 뻗어나갔다.

앤디는 놀라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과도 같은 물줄기, 정확히는 무형의 검을 막기 위해 검막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쿠웅!

앤디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무형검의 기운이었다.

아무리 앤디라 해도 급습처럼 날아온 그 기운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앤디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얀이 말했다.

“어때? 조금 마음에 드는가?”

앤디는 창백해진 안색을 했음에도 여유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야 조금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군.”

얀은 왠지 그런 앤디의 목소리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아쉬운걸? 그럼 어떻게든 충족을 시켜 줘야겠군.”

“그 정도로는 충족시키기 힘들걸?”

“흥! 두고 보면 알겠지.”

“두고 봐도 모를 듯한데?”

앤디의 대꾸가 끝나는 순간 얀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신과 앤디의 사이에 날카로운 예기가 잔뜩 벼린 채 자리하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앤디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재미난 걸 보여 주지.”

휘유우우!

앤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풍이 불었다.

얀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너덜너덜해진 옷 사이로 피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현상은 즉 자신이 만들어낸 무형검의 기운을 뚫고 들어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앤디가 어떤 수를 썼다는 사실 말이다.

불현듯 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동시에 얀의 전신이 가볍게 떨려 왔다.

“서, 설마….”

얀이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가 사람 많이 잡았지.”

“믿을 수 없다.”

얀이 도리질을 쳤다. 앤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믿게 만들어주지.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

얀의 전신이 가볍게 움찔했다.

“나도 그 정도는 한다고.”

앤디가 가볍게 손을 들어올렸다.

고오오오오오!

예기가 더욱 날카로워지며 살기가 되고, 그 살기를 넘어서 얀의 의지를 꺾기 시작했다.

얀이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숙였다. 그의 주위를 휘감고 있던 거대한 기운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꺾이지 않을 수 없었다. 꺾이지 않으면 뿌리째 뽑힐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앤디가 흘리고 있는 기운이 상식을 초월했다.

얀이 씹어 내뱉듯 한마디를 던졌다.

“…졌다.”

2

앤디가 말문을 열었다.

“현경인가.”

“아마도….”

“대단하군.”

앤디의 말에 얀이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놀리는 거냐?”

“헛! 어떻게 알았지?”

얀의 얼굴에 울컥하며 분노의 힘줄이 돋아났다.

앤디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장난이다.”

“그 말이 더 열 받는군.”

“흠… 그럼….”

“멈춰. 그만둬. 거기서 무슨 말을 해도 열 받을 것 같으니까.”

“그러지.”

“….”

앤디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얀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씨익 웃으며 입술을 슬쩍 벌렸다.

그 순간 얀이 말했다.

“하지 말라고 했다.”

“….”

앤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들어보고 평가하면 안 될까?”

얀의 이마에 힘줄이 바딱바딱 일어섰다. 앤디가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렸다.

“치사해서 안 한다, 안 해.”

얀은 기가 찬 표정으로 앤디를 봤다. 마치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조금 전의 그 절대적인 강함을 보여 줬던 존재의 어마어마했던 위압감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고 다시 덤빌 생각은 없었다. 저런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이 언제나 저런 웃음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원하는 게 뭐지?”

“말이 짧군.”

“원하시는 게 뭡니까.”

“아하하! 말귀가 밝은 친구군. 그럼 안에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해볼까?”

앤디의 몸이 둥둥 떠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얀이 인상을 구긴 채 그 뒤를 따르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참 세상 엿 같구만…. 쳇!”

조금 전까지만 해도 툴툴거리며 얀과 앤디를 내쫓던 제시카.

지금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얀과 앤디 앞에 조심스럽게 차를 내렸다.

앤디는 얀 뒤에 시립해 있는 사내들을 주시했다.

얀의 뒤에는 케산, 바이널, 패르스와 처음 보는 두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앤디가 케산과 바이널, 패르스에게 알은척을 했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군.”

“….”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 하나같이 적개심 어린 시선으로 앤디를 볼 뿐이었다.

앤디가 케산을 돌아봤다.

“몸은 조금 괜찮아졌나?”

가슴을 붕대로 동여매고 있던 케산이 콧방귀를 뀌며 시선을 피했다.

“하하! 건방 떠는 것을 보니 많이 좋아진 모양이군.”

케산이 눈에 띄게 움찔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얀이 입에서 찻잔을 떼며 말했다.

“장난이 조금 지나치군.”

“아, 아하하하! 기다리기 조금 지루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앤디의 어색한 웃음과 동시에 케산이 쓰러지듯 한쪽 무릎을 굽히며, 푸르스름해진 안색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으윽!”

바이널이 케산을 부축했다.

앤디가 얀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첫 번째 질문. 네 정체가 뭐지?”

“정체?”

얀은 의아한 고갯짓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앤디의 질문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무슨 다른 뜻이 있는가 싶어 수하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들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앤디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부릅!

앤디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자 얀이 움찔하며 뒷말을 변경했다.

“…입니까?”

“네가 사용하는 무공.”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얀이 모두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무슨 말이지?”

“여기 있는 모두가 당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

3

셀린이 물었다.

“나가시겠다고요? 어떻게요?”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쎄다. 좀 고생을 해야지.”

“고생을 한다면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라면서요?”

“못 나갈 건 또 뭐 있느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말은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것에 관련된 사실을 모르는 자신이 바보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째서 지금까지 나가지 않으셨던 것이죠?”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나갈 만한 이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나갈 만한 이유가 없었다고요?”

“뭐, 말하자면 그렇지.”

“탈리온 공작에게 원한이 있으셨잖아요.”

셀린의 말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눈앞에 있으면 찢어 죽이긴 하겠지.”

“이름만 듣고도 화를 내셨던 건….”

“이름만 들어도 화가 났으니까.”

간단한 대답이었다. 이런 대답을 듣고 보니 뭔가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딱히 뭐라고 흠을 잡을 만한 부분이 없었다.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제삼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굳이 찾아 나가서 죽일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군요.”

“그것도 아니다.”

“히히히히! 아니다. 아니다.”

구석에서 벽에 구멍을 뚫으며 놀고 있던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어느새 곁에 와서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과 셀린의 대화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흰 머리카락의 노인에게 말했다.

“저리 가.”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따라서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에게 같은 행동을 했다.

“저리 가.”

“그러지.”

그러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리를 벗어났다.

흰 머리카락의 노인은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멀어지자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하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을 보고 다가가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셀린은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행동이 혼자 있고 싶거나,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귀찮게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괜히 나서지 않고 조용히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을 따라갔다.

그 와중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괜한 측은지심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을 봤다간,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달려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과의 조용한 대화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에게 다가간 셀린이 다시 물었다.

“그럼 뭔데요?”

“그 녀석 하나 잡겠다고 이곳을 나가려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험한가요?”

의문을 드러낸 셀린은 속으로 차원을 넘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당연하지. 저 녀석이 어디 보통 녀석이냐?”

“안테르트 님 말씀이세요?”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낮췄지만, 저 멀리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벌써 반응을 보였다.

잠시 대화를 멈춘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과 셀린.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과 셀린이 다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 녀석 말이다.”

눈치가 생긴 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이 왜요?”

“이곳을 나가려면 저 녀석과 한판 해야 하는데, 그게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저분과 왜 한판을 하셔야 되는데요?”

“인위적으로 저 녀석을 제정신으로 만들려면 그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셀린이 놀라서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어머! 그럼 저분의 정신이 돌아오나요?”

“간혹 돌아오긴 하지.”

뜻밖의 말에 셀린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정신이 돌아오시면 어떠세요?”

“입을 다물고 있다. 조용해지지.”

“조용해지신다고요?”

“그래.”

“조용해지시는데 어떻게 정신이 돌아왔는지를 알 수 있죠?”

“눈빛이 맑아지거든.”

“아아!”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다.”

셀린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이 겨루시면 어떤데요?”

“전투를 하다가 몰아지경에 빠지면 정신이 바로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거의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쉽지는 않지. 괜히 힘만 빼고 죽도 밥도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야.”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어째서 저분의 정신을 돌리시려고 하시는 거죠?”

“이곳을 나가려면 저 녀석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저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그래. 저 녀석이라면 알고 있을 거다.”

“예? 무엇을 알고 계시는데요?”

셀린의 질문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뜻밖의 말을 했다.

“이 공간을 만든 녀석이 바로 저 녀석이거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번거로운 녀석.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말 그대로 저 녀석이 이곳을 만들었다는 말이지. 그러니 저 녀석이라면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겠느냐.”

“저분이 여길 만들었다고요?”

구석에서 뭔가를 주섬주섬하며 즐거워하고 있는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그런 흰 머리카락의 노인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 녀석이 어떻게 보이냐?”

“미친, 아니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신 분으로 보이는데요.”

“왜 미쳤다고 생각을 하지?”

“그게… 저….”

셀린이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말을 이었다.

“뭐, 하는 행동이 그러니까 그렇게 보이겠지.”

“….”

“사실 저 녀석은 희대의 천재다.”

“그런데 어째서 저런….”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 녀석의 머릿속에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그 생각이 정리가 되지 못해 단순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아!”

“원래 똑똑한 놈과 미친놈은 별로 차이가 없어. 물론 똑똑해서 미친 것과 그냥 미쳐서 미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뭔가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흰 머리카락의 노인의 정신을 깨우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셀린은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안테르트 님의 정신을 깨우면 되는 건가요?”

“그래.”

셀린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말했다.

“자, 시작해라.”

“예?”

“뭐하느냐?”

“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느냐?”

셀린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뭘 시작하라는 말씀이시죠?”

“뭘 시작하긴. 뻔하지 않느냐.”

셀린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