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40화 (53/68)

제1장.

“…커, 커헉!”

셀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셀린의 목을 움켜쥔 채 들어올린 탓이다. 이유를 물어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히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반 횡설수설하며 장난기로 가득했던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살기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탈리온이라고 했지? 탈리온이라고 했어. 맞아.”

흰 머리카락의 노인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자리하고 있던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음침한 목소리로 셀린에게 물었다.

“네년, 탈리온이란 녀석을 아느냐?”

셀린이 신음했다.

“커흐허….”

숨통을 틀어막아서 말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흰 머리카락의 노인은 셀린의 목을 움켜잡은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맞으면 눈을 한 번 깜빡이고, 아니면 두 번 깜빡여라. 서둘러 대답해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질식해 죽을 테니.”

셀린이 눈을 깜빡였다.

“착하군. 탈리온을 아느냐?”

셀린이 다시 눈을 깜빡였다.

“탈리온이 아직 살아 있나? 흠… 녀석이라면 살아 있을 수 있겠군. 아마 녀석의 능력이라면 현경을 능히 넘어섰을 터이니, 못해도 오백 년은 더 살겠지…. 탈리온이 너를 이곳에 보낸 건가?”

셀린의 눈이 두 번 깜빡였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 그럼 누가 보냈지?”

셀린이 눈을 미친 듯이 깜빡였다. 그 와중 머릿속으로 산소가 전달되지 않은 탓일까.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정신을 잃었다.

뒤늦게 셀린이 정신을 잃었음을 깨달은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혀를 차며 흰 머리카락의 노인에게 말했다.

“풀어줘.”

“탈리온이라고 했어. 탈리온이라고 했어.”

“그만 풀어줘. 그러다 정말 죽어버린다고.”

“탈리온이라고 했어. 탈리온이라고 했어.”

“그년이 죽어버리면 죽도 밥도 안 돼. 천년만년 이곳에 계속 갇혀 있을 테냐?”

그 말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화들짝 놀라서 움켜쥐고 있던 셀린의 목을 풀어줬다.

셀린은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맥없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것을 본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죽었나 봐. 죽었나 봐.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혀를 찼다.

“그러게 진작 좀 내려놓으라니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정신 사나우니까 옆으로 가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말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어물쩍거리며 옆으로 물러섰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몸을 숙여 셀린의 맥을 짚고 번거롭다는 듯 다시 혀를 찼다.

“쯧! 심장도 멈췄군. 골로 가기 일보 직전인가?”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자신의 장심에 기운을 불어넣고 셀린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순간, 셀린의 심장이 강하게 수축했다. 움켜쥔 손을 펴자 심장이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렇게 가슴을 쥐었다 폈다 하자 곧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셀린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손을 뗐다.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에게 물었다.

“살았어? 산 거야?”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다. 그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미안하다. 잘못했다. 화내지 마라. 무섭다.”

그때, 셀린이 깊은 호흡을 하며 눈을 떴다.

“하악! 하악! 하악….”

셀린은 다급히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둠만이 자리했다. 셀린이 정신을 잃으면서 그녀가 일으켰던 라이트 마법이 함께 사라진 탓이었다.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목소리였다.

셀린은 흠칫 놀랐다. 그리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기로 인한 떨림이 아니다. 두려움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포. 지금 셀린은 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 어둠 속에 있을 두 존재로 인해 말이다.

저벅저벅.

셀린은 근처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했다. 하지만 곧 바닥의 이끼에 손바닥이 미끄러져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딱!

누군가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튕겨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허공에 불똥이 튀듯 불빛이 반짝였다.

화르르륵!

이글거리는 불빛이 허공에 혼불과 같이 떠올랐다.

그 불빛에서 흘러나온 빛으로 인해 동굴 안이 환하게 비춰졌다. 조금 전 자신이 만들어낸 라이트 마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밝기였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말했다.

“이 정도 밝기였던가?”

셀린이 자신도 모르게 고갯짓을 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마법이 아니라는 것.

의문이 깊어지기도 전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셀린의 앞에 섰다.

셀린은 고개를 들어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지. 탈리온을 어떻게 알지?”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베리오스 대륙 절대 강자이자 초인인데 말이에요.”

그 말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얼마나 성급한 행동을 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약간 제정신이 아니긴 했지만, 그 정도 판단 능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 말에 셀린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럼 누가 너를 이곳에 보냈지?”

“제 스승님이요.”

“네 스승이 누구지?”

“헤르만 왕국의 대마법사 안드레이 공작님이 제 스승님이세요.”

“안드레이?”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목소리가 작은 반응을 보였다.

“혹시 저의 스승님을 아시나요?”

“글쎄… 모른다고 할 수도, 안다고 할 수도 없겠군.”

셀린의 머릿속에 많은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가 왜 너를 이곳에 보냈지?”

셀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른다?”

“저도 이유는 알 수가 없어요. 무작정 밀쳐지다시피 오게 되었으니까요. 이곳에 오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는 말만 들었어요.”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물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나?”

“혼자 짐작하게 된 것은 있어요.”

“뭐지?”

“바로 두 분을 모시고 나오라는 것 같아요.”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과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서로를 보며 의아한 몸짓을 보였다.

“우리 둘을?”

“예.”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탈리온 공작님이 한 말 때문예요.”

순간, 다시 살기가 셀린의 전신을 옭매어왔다.

“아까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더냐.”

갑갑한 살기 속에서 셀린이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 공포도 공포지만, 자신을 자꾸 억누르려 하는 저 노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 치밀어 언성이 자연히 높아졌다.

“제가 언제 모른다고 했죠?

“조금 전에 분명….”

말도 잘랐다.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셀린의 말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고민을 해봤다.

따져 보니 셀린은 정말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륙 최강의 무인을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 말을 했던 것뿐이다.

그 말을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 혼자 지레짐작하여  ‘그는 자신을 모르지만, 자신이 그자의 이름을 어찌 모를 수 있냐.’고 해석했던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스승님은 쿠렌트 제국으로 가면 자연히 알게 된다는 말만 하고 저를 보내셨어요. 뭘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고 국경을 넘었고, 탈리온 공작을 만나게 되었죠. 탈리온 공작은 저에게 스승님께서 보낸 이유를 아냐고 물었고, 저는 모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러자 탈리온 공작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신에게 스승님이 계시는데, 그 두 분을 세상 밖으로 모시고 나와달라고 말이죠.”

“그 녀석이 그렇게 말하더란 말이냐?”

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하하하하하!”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미친 듯이 웃었다.

그 속에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광기와 분노가 담겨 있음을 셀린은 모를 수가 없었다.

이런 노골적인 살의를 어떻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셀린은 그 살의를 최대한 무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 상황을 전환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저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곱씹을 시간을 주지 않는 데 있었다.

“스승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무슨 말이지?”

셀린은 탈리온 공작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었지만, 자신이 직접 들은 것처럼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기 위해 어떤 분들이 필요하다고요.”

“그들이 우리다?”

“우리? 우리가 뭔데?”

셀린은 흰 머리카락의 노인의 질문에 웃으며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말에 대답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잠시 입을 다물고 셀린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자신을 죽일 뻔했던 사람에 대한 감정을 지우고 진심으로 우러나온 미소를 짓는 셀린이 놀라웠던 것이다.

잠시 셀린을 보던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말문을 열었다.

“너, 재미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예?”

“큭큭! 설마 심연의 눈인가?”

“심연의 눈? 그게 뭐야? 그게 뭔데 그래?”

셀린이 흠칫 놀랐다.

“이 녀석이나 나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분노도 잊고 네 이야기에 끌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군.”

“….”

“뭐, 그렇게 얼굴 굳힐 필요 없어.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돼. 너라고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 그건 그렇고, 네 스승의 선택이 옳았던 모양이군.”

“예? 무슨 선택 말이신가요?”

“네 스승이 너를 보낸 이유를 알겠군. 그는 우리를 생각보다 잘 알고 있어.”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눈을 반개하고 깊은 숨을 흘리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흰 머리카락의 노인도 분위기의 심각함을 파악했음인지 어느덧 호들갑 떨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셀린은 숨을 죽이고 분위기를 살폈다.

그때,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다.”

“예?”

“너를 보니 갑자기 세상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가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가? 나간다구?”

“그래, 나가자.”

“어딜 나가? 집 놔두고.”

“밖에. 오랜만에 외출이나 좀 하자.”

“와! 외출! 외출 너무 좋다! 이히히히히!”

“큭큭큭! 이번 외출은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붉은 눈빛이 검은 머리카락 더미 사이에서 다시 번뜩였다.

2

“뭐?”

앤디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해터슨이라고?’

녀석에게 궁금한 것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물론 하고 있는 꼴을 보니 녀석은 쉽게 대답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스걱!

싸늘한 검날이 앤디의 긴 앞머리 끝을 스쳤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파묻혀 사라졌다.

앤디의 신형이 옆으로 빠졌다.

바람 같은 몸놀림.

머리카락이 바람에 파묻혀 사라지듯 앤디의 신형도 사라졌다. 녀석은 당황한 듯 잠시 시야를 굴리다가 검날을 뒤로 밀어 넣었다.

순간, 앤디가 다시 녀석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늦어.”

녀석이 그 말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나 전혀 웃음 같지 않았다. 녀석의 기운이 분노로 가득한 탓이었다.

“기대에 부응해주지.”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갑자기 녀석의 전신에서 기운이 폭사하기 시작했다. 앤디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저건 혹시 역혈신공? 설마….’

역혈신

부작용이 강하지만, 진기를 거꾸로 돌려서 평소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을 몇 배 이상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은 무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앤디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을 때 녀석이 입을 열었다.

“파시엘.”

“뭐?”

“네 녀석을 죽일 자의 이름은 알아야겠지.”

파시엘의 말에 앤디가 웃었다.

“난 앤디다.”

“안다.”

“네 녀석을 죽일 자의 이름이지.”

앤디의 말에 파시엘의 표정이 이죽거림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파시엘의 팔이 들림과 동시에 갑자기 터져 나온 파공음.

파시엘의 검이 허공에 날개처럼 펼쳐졌다. 은의 장막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그 장막에서 검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보는 이들을 압도할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모두들 그 아름다움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았다.

콰과과과과!

바다가 갈라질 것처럼 강맹한 기운이 쏟아졌다.

앤디가 검을 종으로 내리그었다. 태극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앤디의 검이 파시엘의 검기와 충돌했다.

파파파파파파팡!

앤디의 검에 충돌한 파시엘의 검기가 푸른 섬광을 내며 터져 나갔다. 파시엘이 혀를 찼다. 자신의 기술이 앤디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한 탓이다.

어느덧 해적선 망루에 올라선 앤디가 여유 어린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을 본 파시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몰라도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앤디와 자신의 능력 차를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 자존심은 뒤를 돌보지 않는 파상공격으로 돌변했다. 파시엘의 검이 순식간에 망루에 자리하고 있던 앤디를 향해 찍어 내렸다.

앤디가 미련 없이 몸을 피했다.

그것을 목격한 해적들이 양손을 휘저으며 비명처럼 외쳤다.

“두, 두목! 안 돼요!”

“두목! 두목!”

모두가 정신없이 외쳤지만, 이미 휘둘러진 검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콰광! 콰과과광!

파시엘의 검이 해적선의 망루와 돛대를 그대로 아작 냈다. 폭발한 배에서 터져 나온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해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갑판 위에 엎어졌다.

파시엘이 인상을 구겼다.

“칫!”

파시엘에게는 수하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앤디의 위치를 찾아 다시 검을 휘둘렀다. 눈앞의 공간이라도 베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앤디는 흠칫했다. 이번의 공격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걸어오는 도전까지 피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단순한 오러가 아닌 강력한 화기가 가득한 공격이었다.

앤디의 눈에 의심이 어렸다. 저 검식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화령검법?’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화기가 가득한 검식이 앤디를 덮쳤다. 앤디를 중심으로 갈라진 화기가 바다로 날아갔다.

화르르르륵!

치이이이이이!

바다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더니 증기가 올라왔다.

여객선과 해적선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놀라운 광경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떴다.

앤디가 그 화기의 중심에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검식을 취하고 있는 파시엘을 향해 공격을 던졌다. 앤디의 검이 매끄럽게 아래를 훑으며 위로 그어 올려졌다.

순간, 앤디의 검에서 터진 기운이 한 줄기의 섬전처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쿠르르릉!

시야를 마비시킬 정도로 밝은 은빛 섬광.

그것은 벼락이었다.

땅에서 하늘로 올려치는 벼락!

파시엘이 공격을 하다 말고 놀라 검을 양손으로 잡고 막았다. 하지만 허공에 있던 파시엘의 몸이 하늘로 쭈욱 올라가다가 튕겨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앤디가 뿜어낸 벼락과도 같은 검기는 하늘을 뚫기라도 할 것처럼 아직도 솟구쳐 올라갔다. 파시엘이 민첩하게 검을 틀어 공격을 흘리지 않았으면 얼마나 더 날아 올라갔을지 알 수 없었다.

“크흐으으윽!”

파시엘의 입에서 고통이 가득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앤디가 해적선 선상 위 갑판을 오른발로 굴렀다.

쿠웅!

갑판이 크게 출렁였다. 앤디의 몸이 화살처럼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뒤늦게 출렁거리던 갑판이 한계점까지 휘어지다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뿌둑! 우두두두둑!

“히이이익!”

해적들이 사방에서 허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자신들을 지탱하고 있던 바닥이 갑자기 무너지며 가라앉은 탓이다.

갑판 위의 해적들이 어찌 되든 앤디는 공기의 결을 가르며 파시엘 곁으로 다가갔다.

쉬이익!

파시엘은 허공에서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앤디의 존재를 파악하고 자세를 잡았다.

파팡!

그리고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앤디는 파시엘의 전투 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자신이 드래곤 하트라는 기연을 만나서 유운신공이 10성에 올라 현경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파시엘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체 이런 존재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지? 해터슨이라는 녀석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거야? 마하역혼환과 역혈신공… 이건 대체….’

뻐억!

“커흑!”

세 번의 공방이 오가고 파시엘이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앤디의 오묘한 손놀림이 파시엘의 손목을 강하게 내지른 탓이다.

파시엘의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충격의 강도를 예상해보니 못해도 5분 이상은 손목이 자연스러운 감각을 찾지 못할 듯싶었다.

파시엘이 이를 갈았다.

으득!

조금 전 부작용을 각오하면서까지 비장의 기술을 꺼냈는데, 앤디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시엘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도 앤디가 파시엘을 봐주면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앤디로서는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파시엘이 정말 역혈신공을 사용한 것이라면 급격한 신체 능력 저하로 이어지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강한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지금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파시엘이 죽으면 지금 일어난 수많은 의문이 다시 어둠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앤디가 약간 망설이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그때, 파시엘의 눈빛이 반짝였다. 앤디가 자신의 공격에 내상을 입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크큭! 조금 전 내가 가한 공격에 내상을 입긴 입었나 보군. 그 공격을 막았다 해도 멀쩡할 수가 없지.’

파시엘은 지금 앤디가 화령검법이라고 생각한 그 검식을 떠올리고 있었다.

파시엘은 다시 재차 공격을 감행하려 마음을 먹고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때, 가슴이 욱신거렸다.

‘제길! 벌써 온 건가?’

부작용이 가져온 몸의 붕괴가 생각보다 컸다. 앞으로 10분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처음에 그 비장의 기술을 사용했던 것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한 방에 앤디가 무너질 것을 확신했다.

앤디가 그 공격에 적중하여 쓰러지면 재빨리 자신은 물러나고, 그 비장의 기술을 해제하여 몸을 원상태로 돌릴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앤디는 그 공격을 막아낸 것을 넘어 아무런 충격도 없어 보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격한 실망감과 자신감 상실은 곧 페이스 하락으로 변했고, 그 결과 파시엘의 손발이 어지러워져 앤디에게 손목 공격을 허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공격이 전혀 효용이 없지 않았다는 생각에 페이스가 어느 정도 돌아왔다.

순간 파시엘의 눈빛이 변했다.

이대로 가다간 죽음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냥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앤디와 함께 죽고 싶었다.

그 결심이 들어서자 파시엘의 손이 거침없이 자신의 가슴속 주머니를 향해 뻗어갔다.

앤디는 파시엘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파시엘이 꺼낸 단약이 그의 목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순간, 파시엘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폭사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마나의 아지랑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유형화된 강력한 기운이었다.

앤디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 파시엘을 잡아서 무슨 수를 써도, 수명을 모조리 갉아먹은 그를 살려 내 자신의 의문을 풀어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갑자기 허탈감과 동시에 분노가 일었다.

앤디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면 진작 녀석을 무리해서라도 잡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괜히 자신의 의문과 호기심을 위해 녀석의 움직임이나 기술과 행동을 관찰하겠다고 시간을 질질 끌어 이런 상황을 오게 했다는 사실에 한숨만 터져 나올 뿐이었다.

그때, 파시엘의 신형이 번쩍이며 앤디를 향해 날아왔다.

슈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

앤디는 검을 휘두르며 상체를 뒤로 뺐다.

파칭!

파시엘이 앤디의 반격에 히죽 웃었다. 자신의 힘이 앤디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앤디와 부딪친 검을 그대로 힘을 사용해 눌러 내렸다. 앤디의 몸이 그 힘에 밀려 바다로 떨어졌다.

슈우우웅!

바다가 폭발하며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조금 전의 그 물기둥은 감히 상대도 안 될 정도였다.

콰과과과광!

퍼퍼펑!

한순간 바다가 마른 듯 맨바닥이 보였다.

앤디가 그 바다의 바닥에 중심을 잡고 선 순간, 바다가 맨바닥이 드러난 자신의 치부를 재빨리 감추고자 빈 공간에 밀려들었다.

촤아아아악! 촤악!

빈 공간이 메워지며 순간적으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한참 떨어져 있는 여객선과 해적선이 그 소용돌이에 이끌려 질 정도로 강력했다.

바로 그때,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검은 덩어리가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바로 앤디였다.

“크크큭!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즐겨 주도록 하지.”

그 말을 마친 순간 앤디의 신형이 허공을 박차고 파시엘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3

여객선 내에 있던 사람들과 해적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리고, 눈을 껌뻑거리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성 없는 현실을 주시하고 있었다.

“….”

그 모습들은 마치 단체로 혼이 나간 듯 보였다. 최소한의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정도는 했다.

파칭!

둘의 신형이 허공에서 사라지고, 격돌 예상 지역이었던 중간 지점에서 푸른 불꽃이 터졌다.

그것은 한 수의 교환이 아니었다. 한 수로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수십 합이 오갔던 것이다.

음속을 넘어서는 속도.

사방에서 불꽃이 터지듯 번쩍였다.

파파파팡!

이들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대기가 압축되어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2개의 빛줄기가 튕겨져 나오고 허공에 멈췄다. 그 빛줄기의 주인공은 앤디와 파시엘이었다.

파시엘의 굳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를 악물며 그립을 꽈악 꼬나 쥐었다. 검의 그립이 파여 손자국이 날 정도로 강하게 말이다.

앤디의 입이 작게 움직이며 말했다.

“추운보.”

눈을 깜빡한 것도 아니다. 보고 있는데 앤디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파시엘의 앞에 나타났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다급히 몸을 뺐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도저히 떨어뜨릴 수 없었다.

순간 눈앞이 번쩍하며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맞은 것이다.

파시엘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유화난권!”

앤디는 전신의 모든 타격이 가능한 공격 부위를 이용하여 공격에 들어갔다. 주먹과 발을 비롯하여 머리, 팔꿈치, 발꿈치, 무릎과 어깨 등등. 움직임이 가능한 모든 부위를 이용하여 다양한 전신 공격을 했다.

모든 공격이 물이 흐르듯 매끄러운 흐름을 보이며 연계적으로 이어졌고, 파시엘은 거의 대응하지 못하고 그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공격이 또 공격으로 이어지니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파시엘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파시엘은 주먹을 뻗기 시작했다.

하지만 앤디는 고개를 틀어 피하고, 몸을 돌려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했다.

뻐어억!

“…!”

파시엘의 몸이 새우처럼 굽어지고,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그런데 앤디는 그 떨어지는 파시엘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파시엘을 조금 전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곤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에 걷어찼다.

“크헉!”

명치를 가격 당해 숨을 쉬지 못하다가, 겨우 응어리를 풀고 들이마셨던 공기가 허무하게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파시엘은 해적선의 선체에 거대한 구멍을 내며 뚫고 들어갔다.

콰쾅!

“미, 믿을 수가 없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생각을 했다. 저들이 과연 인간이 맞는지에 대해 말이다.

앤디를 따르고 있던 쉐리와 렐리, 루슬란과 클라우저를 비롯해 그에게 무공을 직접 전수받고 있던 안젤른과 파프 역시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존재들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저런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강한 존재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니, 새삼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들은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레오나 공주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놀라긴 했지만, 놀람보다 감동에 대한 감정이 더 컸다.

그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나 자신의 남자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공주이니 공주병이라는 말은 무의미했으니 뭐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레오나 공주는 열심히 응원했다.

“우리 자기 파이팅!”

사람들이 환호하며 레오나 공주를 따라 응원했다.

배에 타고 있던 평민, 귀족, 기사 할 것 없이 모두 환호성을 터트렸다.

“우아아아아아!”

“대, 대단하다!”

“힘내세요! 해적들을 무찔러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날벼락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해적들이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배가 완전히 아작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콱! 믿고 있던 자신들의 두목이 당하고 있는 상황에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평소에 인간 같지 않은 자신들의 두목을 우습게 상대하는 또 다른 괴물 같은 놈에게 질린 것이다.

바보라도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자신들의 생과 사를 두목을 가지고 놀고 있는 저 괴물 같은 놈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파시엘이 무너져 내린 선박의 나뭇더미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파시엘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부서진 더미를 치우고 선미에 올라섰다.

앤디는 오연한 시선으로 일어서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파시엘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파시엘이 기침을 했다. 기침하며 무의식중에 막아선 손이 붉게 물들었다. 각혈을 한 것이다.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해적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파시엘의 눈빛도 흔들렸다. 하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고, 피가 흥건한 주먹을 꾸욱 움켜쥐었다. 이제 정말로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파시엘은 덜덜덜 떨었다.

몸을 진정시키고자 눈을 감았다.

그 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을 뜨더니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쫓기는 자의 표정이었는데 말이다. 어째서인지 조금은 기뻐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파시엘이 앤디에게 말했다.

“고맙다.”

“….”

“나를 완전히 태울 수 있도록 해주어서. 영광이다. 네 손에 죽는다면 결코 허망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겠지.”

앤디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미친놈.”

“….”

“혼자 죽겠다고 달려들고, 내 손에 죽으니 영광이라니. 정말 제대로 미쳤구나. 혼자 그렇게 마음의 위안을 하고 나면 행복하냐?”

앤디의 말이 끝나자 평온하게 변했던 파시엘의 표정이 다시 싸늘하게 굳었다. 그리고 앤디를 향해 날아들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슈욱!

파시엘이 선공했다.

퓻!

날아가던 파시엘이 사라졌다. 조금 전 앤디처럼 말이다.

앤디도 사라졌다. 그리고 허공에 푸른빛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이어진 굉음!

콰광! 콰광 쾅쾅!

대기가 찢어지며 발생한 충격파.

주위에 마나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들이 일으키는 파장은 엄청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어느새 그들이 일으키는 잔영도 보이지 않았다. 더 빨라졌다는 것이다.

순간, 바다가 좌악 갈라지며 굉음이 터졌다.

허공에서 의연히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앤디였다.

앤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바다 위로 축 처진 인형 하나가 떠올랐다. 파시엘이었다.

바다 위로 떠오른 파시엘은 미동도 없이 파도에 둥실둥실 떠다녔다.

두 번 볼 것도 없다. 이미 죽은 것이다.

해적들이 경악했다. 설마설마했던 것이 현실로 일어난 탓이다.

모두 두려운 시선으로 앤디를 올려다보았다.

파시엘을 내려다보고 있던 앤디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레오나 공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레오나 공주는 붉어진 두 뺨을 감추지 못하고 앤디의 시선을 수줍게 받았다.

레오나 공주의 입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치! 그래도 너무한 거 아냐? 신혼여행인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아가씨께서 이해하세요.”

쉐리를 비롯한 호위들은 모두 레오나 공주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쉐리의 말에 레오나 공주가 대꾸했다.

“아무리 일이 생겼다고 해도 그렇지, 세상에 신혼여행 중에 부인을 팽개치는 경우가 어디에 있냐구!”

쉐리와 나머지 일행들은 토라질 대로 토라진 레오나 공주를 달래기 위해 진땀을 쏟았다.

사실 그들로서도 사실 앤디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설마 그런 식으로 훌쩍 떠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일이 생겼어. 나 잠시 다녀올게.’

뭐, 멋은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앤디가 했기에 멋이 있었던 것이다.

앤디는 그 거의 유령선에 가깝도록 폐선이 된 해적선을 타고 본거지로 떠나간 것이다.

해적들은 목숨을 걸고 노를 저었다. 돛대가 모조리 부러져 나간 탓이다.

돈벌레가 수많은 발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듯, 해적선이 돈벌레 발 같은 노를 빨빨거리며 바다 위를 수놓았다.

쉐리가 의문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서 가신 거지?”

“글쎄….”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클라우저가 조심스럽게 의문을 드러냈다.

“해적의 섬에 간다는 거죠?”

“그렇겠지?”

루슬란이 대답하자 클라우저가 말을 이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클라우저의 말에 레오나 공주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

누구를 시작으로 일어난 것일까?

“푸훗!”

“푸하하하하!”

레오나 공주를 비롯한 일행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웃음이 가라앉자 렐리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리’ 앤디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사람으로 보여?”

일행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물론 아니죠.”

“누가 그런 걱정을 하겠습니까?”

“흥! 우리 앤디가 최고야!”

레오나 공주의 한마디에 모두가 긍정했다.

“물론입니다, 레오나 공… 아니, 아가씨.”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영주님이 최고시죠.”

연이어 터진 앤디를 향한 찬사에 레오나 공주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지금까지 꿀꿀해하던 기분이 많이 풀어진 듯 보였다.

레오나 공주가 한마디를 더 했다.

“지금 우리는 오히려 해적들을 걱정해야 해.”

순간, 일행들의 입에서 웃음이 빵! 하고 터졌다.

“파하하하! 맞습니다.”

일행들뿐만이 아니었다. 갑판에 함께 나와 레오나 공주들의 이야기를 훔쳐 듣고 있던 승객들도 함께 웃음이 터졌으니 말이다.

그때 저 멀리 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하늘 아래 하늘의 축복을 받은 듯 시원한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섬.

깨끗하다 못해 투명한 바닷물 아래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가득하고, 그 사이로 헤엄치고 다니는 아름다운 물고기 무리의 춤과 같은 유영도 볼 수 있었다.

“어머! 아가씨, 저기가 홀린드 섬인가 봐요.”

“어머! 정말 아름답다.”

렐리의 말에 시선을 돌린 레오나 공주의 눈이 하트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겉모습과 달리 아름다운 레오나 공주의 주먹이 꼬옥 쥐어졌다.

지금 이 손을 앤디가 잡아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이로써 더 이상의 아쉬움을 감추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앤디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왔을 때 자신이 침울해 있다면 힘든 일을 마치고 온 앤디가 얼마나 마음이 무겁겠는가.

“공주님, 정말 오길 잘했어요.”

“그러게.”

푸른 하늘 아래 레오나 공주는 정말 티 없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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