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39화 (52/68)

제10장. 해적과 춤을

1

하늘은 높고 청명했다.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선선한 바람이 선체를 휘감았다.

그때, 순항하던 배 위로 갈매기 한 쌍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끼룩! 끼루룩!

한 선원이 돛대 위에 날아올라 앉은 갈매기를 보고 망루로 올라갔다. 갈매기가 있다는 말은 육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반응을 보였다.

“여보게들, 거의 다 도착한 모양이네.”

“정말인가? 지긋지긋한 시간도 드디어 끝이 나는 건가?”

어느새 갑판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선미에 모인 사람들은 연신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며 대륙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끝도 없는 수평선뿐이었다.

약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나자, 작은 섬들이 선두 갑판 위에 선 사람들의 눈에 하나둘 띄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소란스러워질 정도로 많은 갈매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브라운, 갑판에 나가지 않을 텐가?”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는 늙은 사제가 한 사내에게 던진 말이었다.

사내는 신부의 말을 듣고도, 들떠 보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굳은 모습으로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저었다.

신부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슬쩍 미소를 지은 후, 천천히 갑판 위로 몸을 옮겼다.

배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상인에서부터 사업을 위해 발을 들인 사업가, 여행을 즐기고자 찾은 객들까지.

그때, 늙은 사제는 저 멀리서 뭔가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응? 착각인가?”

다시 확인하려 하는데, 마침 구름이 걷히고 태양빛이 너무 강렬하게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리고 눈을 떴다. 바다 위의 반사광이 눈부셔 쉽게 볼 수 없었다.

그 순간, 다시 하늘 위로 구름이 가려져 시야가 편해졌다. 그리고 늙은 사제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라? 저, 저게….”

그도 늙은 사제와 같은 것을 목격한 것이다.

잠시 후, 그의 입이 힘겹게 떨어지며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토했다.

“해적! 해적이다!”

“뭐라고? 해적! 으아악!”

“모두 피해라!”

선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선원들과 해병들은 다급히 움직이며 대포를 준비했다.

그런 다급한 상황임에도 늙은 사제는 인상을 찌푸리며 저 멀리 떠 있는 배를 주시했다.

“해적이라고?”

그때 저쪽 배에서 뭔가 거대한 것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포탄이었다.

펑! 펑! 펑!

콰직! 콰지지직!

포탄은 거대하고 튼튼한 배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부수고 있었다.

순식간에 엄청난 희생자가 생겨났다. 여객선도 대응을 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에 있던 해적선이 여객선 옆에 달라붙더니, 해적들이 쏟아지듯 침범해왔다.

“이 배는 우리가 접수한다!”

“킥킥킥킥!”

왕복 여객선 트루발 호는 전투가 벌어진 지 1시간 만에 해적들에 의해 포획당하고 말았다.

하이네스 왕국 항구에서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진 부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2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음침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

“베르커스와 안테르트라…. 큭큭큭큭!”

그 옆에 어느새 자리한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처럼 그 이름을 되뇌었다.

“안테르트? 안테르트? 안테르트? 안테르트?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왜 이렇게 입에 쩍쩍 달라붙지?”

셀린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과 흰 머리카락의 노인을 주시했다.

그러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차갑게 말했다.

“어디서 이 이름을 들었지?”

“어머니께서 자기 전에 해준 이야기에서 들었어요.”

“큭큭큭! 이야기라….”

“어르신들이 맞으시군요!”

셀린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목소리가 올라갔다.

“분명 그런 이름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지.”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수긍 어린 말에 셀린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르신 성함이 베르커스이신가요?”

“그게 중요한가?”

“그, 그건 아니지만….”

“저 친구에게 물어보지. 야, 내 이름이 뭐냐?”

“너? 네 이름도 모르냐? 바보! 바보! 바보! 베르커스잖아.”

흰 머리카락의 노인의 말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군.”

셀린은 왠지 신이 나서 또 질문했다.

“그럼 저분께서 바로 안테르트 님이시군요?”

그런데 이번 질문에는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대답하기 전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대답했다.

“나?”

“예.”

“내 이름은 그런 거 아니야.”

흰 머리카락의 노인의 말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물었다.

“네 이름은 그럼 뭔데?”

“몰라? 이 무식한 녀석! 지금까지 같이 살았으면서 내 이름도 모르고 있었냐! 그러니까 네가 바본 거야! 바보! 바보! 낄낄낄! 내 이름은 ‘야’잖아?”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할 말을 잃고 입맛을 쩍 다셨다. 그리곤 자신을 바라보는 셀린의 눈빛을 느끼고 시선을 돌려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군.”

순간, 셀린의 입에서 웃음이 빵! 하고 터졌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 꺄하하하!”

흰 머리카락의 노인과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정신없이 웃기 시작하는 셀린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에 전신이 가려져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저들의 표정이 짐작되었다.

셀린은 그래서 더욱 크게 웃었다.

잠시 후, 웃음이 멈추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책 맞게….”

“아니다. 이 ‘야’라는 녀석은 매일 처웃는데, 뭘.”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말했다.

“맞아. 난 매일 처웃어. 낄낄낄! 그런데 왜 자꾸 안테르트라는 이름이 당기지? 내가 아는 사람인가?”

그 말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대답해주었다.

“네가 아는 사람 맞아.”

“맞아.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런데 누구지?”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연신 갸웃거리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낄낄낄낄!”

그 모습이 우스워 셀린도 함께 웃었다.

“호호호홋!”

둘이 웃고 있자 흰 머리카락의 노인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킥킥킥킥킥킥!”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지만, 왠지 웃음으로 인해 분위기가 한결 편해졌다고 느끼는 셀린이었다.

뜻밖의 상황 덕에 생긴 호기였던 것이다.

셀린은 지금이라면 묻기 조금 애매했던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셀린은 속으로 눈치를 살피며 그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웃음을 멈추며 나직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웃어보는군.”

그 말에 셀린이 미소 지었다.

“웃음소리가 시원하고 좋으시던데요?”

“그런가?”

“예. 앞으로도 자주 웃어보세요.”

“그래야겠어.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 난 왜 기분이 나쁘지? 기분이 나빠.”

“넌 옛날 기억 중에 좋은 일이 별로 없었잖아.”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말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난 좋은 일이 없었어. 흑흑흑! 그래서 슬퍼.”

“기억도 다 잃어버린 녀석이 헛소린.”

“아, 맞다! 나 기억 잃어버렸지! 킥킥킥!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셀린이 둘의 대화를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안테르트라는 이름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그래서 기분 나빠?”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물음에 흰 머리카락의 노인이 대답했다.

“기분 안 나빠. 안 나빠.”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응, 그런 것 같아.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마음에 들어.”

그러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말했다.

“그럼 그 이름을 네 이름으로 해.”

“맞아. 그럼 내 이름으로 하면 돼. 그런데 내 이름으로 해도 될까?”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마음에 들면 네 이름으로 해. 누가 뭐라고 한다고 그래?”

“맞다! 그럼 내 이름으로 하면 된다! 내 이름은 야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안테르트다!”

“그래, 안테르트.”

“이히히히히히히히!”

“좋냐?”

“좋다!”

“그리 좋냐?”

“좋다! 좋아! 좋아! 좋아!”

“안테르트.”

“히히히히히히히히히!”

“안테르트.”

“히히히히히히히히히!”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이 수십 번도 넘게 그 이름을 불렀다.

흰 머리카락의 노인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 톤으로 웃음을 이었다.

셀린은 왠지 그 상황이 슬프게 느껴졌다. 마치 회안이 가득한 어떤 심정이 담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은 이름 속에서 슬픔을 찾고, 흰 머리카락의 노인은 웃음 속에 슬픔을 묻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셀린이 조심스럽게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을 불렀다.

“저기… 베르커스 님.”

“왜 그러느냐?”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의 대답에 셀린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탈리온이라는 이름도 아시나요?”

순간, 검은 머리카락의 노인과 흰 머리카락의 노인의 붉은 눈동자가 셀린을 향했다.

3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앤디의 물음에 레오나 공주가 말했다.

“이곳 홀린드 섬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둘은 그 상황을 겪고도 질리지 않는지 다음 여행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런 큰일을 겪고 난 후 진이 빠져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할 텐데 말이다. 물론 앤디나 레오나 공주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럼 이번에는 홀린드 섬에 가볼까?”

앤디의 말에 레오나 공주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꼭 가보고 싶어. 섬이라니 얼마나 귀여울까?”

레오나 공주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섬에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섬에 대한 환상이 큰 모양이었다.

섬이 귀엽다니….

일행들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 좀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때 앤디가 쉐리들과 안젤른 등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혹시 여기 있는 사람 중 섬에 어떻게 가는지 아는 사람?”

클라우저가 말했다.

“배를 타고 가야지.”

쉐리가 말했다.

“이 멍청아! 누가 그걸 몰라? 항구에서 승선표를 사야 해요.”

“아, 그렇군. 그럼 다녀올게.”

안젤른이 물었다.

“어딜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표 사러. 금방 다녀올게.”

앤디는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안젤른이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말이 끝나고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앤디는 안젤른과 둘이 걷기 시작했다.

항구가 어딘지 몰라 한참 헤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 찾기가 쉬웠고,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생각보다라는 것이지, 실제 거리가 가깝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해안가 백사장보다 조금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가는 길에 안젤른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 수련하고 있는 부분이 막힌다는 것이었다.

그냥 무작정 걷기가 지루했던 앤디가 달가운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안젤른의 이야기가 끝나자 앤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직접 봐야겠군요. 검을 들어보세요.”

“검이요?”

앤디의 말에 안젤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걸음을 전혀 멈추지 않으면서 검을 들라니.

하지만 누구의 말인데 반론하겠는가.

안젤른이 검을 고정하는 가죽 끈을 풀고 검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앤디가 말했다.

“그 검을 뽑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검을 잡아보라는 말이죠.”

안젤른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제 설명이 조금 부족했군요. 허공에 검을 든 것처럼 쥐어보라는 말입니다.”

그제야 이해한 안젤른이 검을 든 자세를 취했다.

“그럼 조금 전에 말했던 그 부분을 한번 직접 취해보세요.”

안젤른이 약간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정말 검을 들고 하는 것인 양 행동을 취했다.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가 막혔다는 말이었군요. 막힐 만하군요. 지금 그 부분은 섬세한 감각이 없이는 다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섬세한 감각 말씀이십니까?”

“예.”

앤디는 차분하게 안젤른이 이해할 때까지 수많은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이해를 한 안젤른이 탄성을 터트렸다.

앤디는 안젤른에게 질문을 던지며 정말로 이해를 했는지 확인했다.

안젤른은 성실하게 대답했고, 결국 앤디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면 된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건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차후 검술의 단계가 올라가면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을 텐데, 그때도 같은 것을 또 묻고, 듣는 것은 서로에게 피곤한 일입니다.”

안젤른이 수긍했다. 그에 앤디가 말을 이었다.

“한동안 수련 방법을 바꿔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어떻게 말이죠?”

“조금 전에 허공에 검을 잡아서 휘둘러보았죠?”

“예.”

왠지 맨손 무용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 안젤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앤디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해보니 어떻던가요?”

“어색했습니다.”

“왜 어색했을까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아서 어색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서 어색했다는 말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허공의 검을 정확하게 잡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자세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중심을 잡기까지는 검의 이해가 떨어지면 하기 힘든 행동이죠.”

그 말에 안젤른이 반론을 하려 했다. 왠지 자신을 질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검의 이해도가 떨어져서 어색하게 느껴졌다는 말이 아닌가.

“그, 그렇지만….”

“그 행위가 몸에 배면 검을 들어도, 들지 않아도 어색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앤디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안젤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검은 단순히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해서는 미세 신경과 근 신경을 시작으로 손가락과 손바닥, 손목, 팔과 팔꿈치, 어깨와 목과 시선, 척추와 허리, 그리고 다리와 무릎과 발목과 발바닥, 마지막으로 발가락까지 모든 신경이 조화롭게 움직여야 가능해집니다.”

“조화….”

“조화롭게 움직이려면 그 기관과 신경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만 하지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으면 검에 대한 반응도가 올라가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반응을 보이면 어떤 식으로 검이 흐르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검술의 흐름대로 지정된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몸의 움직임 자체가 검로가 된다는 말이지요. 내 존재 자체가 검이 되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아….”

안젤른은 지금 너무도 큰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지금 알게 된 것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진 것이다.

“저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선 한동안 검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허공에서 검을 느껴 보십시오. 허공에서 검이 온전하게 느껴지면 그때는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러움이요?”

“예, 자연스러움. 검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처럼 받아들인 검사와, 단지 검을 든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안젤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들은 이야기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둘에게서 대화가 뚝 끊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항구에 도착했다. 앤디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배표를 파는 곳을 찾았다.

“홀린드 섬에 가려고 하는데, 뱃삯이 얼맙니까?”

“이 실버인데 지금은 표가 없습니다.”

표가 없다는 말에 앤디가 다시 되물었다. 잘못 들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예?”

“배표가 없다니까요?”

“내일 것은요?”

“없어요.”

“그럼 모래 것은요?”

“앞으로 열흘 동안의 모든 배표가 없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만일 그러하다면 배를 더 늘려서라도 운행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티켓 판매원이 앤디의 질문 자체가 기가 막힌다는 듯 틱틱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홀린드 섬에 찾아가는 관광객의 수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시나요? 천국의 섬이라고까지 불리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평가를 받고 있는 홀린드섬이라구요. 그곳에 인간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서 황폐하게 만들란 말인가요? 가고자 하는 사람들 다 넣으면 그곳은 순식간에 쓰레기 섬이 될걸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제법으로도 최소의 인원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되어 있단 말이죠! 지금이 비수기라 그나마 한 달 후에 배가 있는 거예요. 그것이라도 드릴까요?

“됐어요….”

마음 같아서는 사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앤디는 가슴이 막막해 허탈한 숨을 토하고 말았다. 레오나 공주가 실망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창구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젤른은 밖으로 나온 앤디의 표정을 보고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왜 그러냐고 질문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표가 없다는군요.”

“헐! 어떻게 그런….”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앤디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표를 구하지 못해 기둥에 박치기 하는 사람,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분풀이하는 사람, 욕하는 사람 등등.

저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위로되며, 갑갑했던 감정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동시에 강한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도피일 뿐이었다.

앤디는 집게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좋지. 어디서 표를 구할 방법이 없나?”

그때, 한 대머리 중년인이 티켓을 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나갔다.

“휴! 겨우 구했군.”

꿈틀.

순간 앤디의 귀가 뒤로 움직이며 그 소리를 빨아들이듯 흡수했다.

‘구했다고? 뭐를?’

앤디는 자신의 뛰어난 기억력을 살려서 조금 전 스쳐봤던 표를 떠올리며, 그 표가 지금 자신이 구하려고 하다 못 구했던 홀린드행 승선표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앤디가 부리나케 그 대머리 중년인을 불러 세웠다.

“저기… 신사님, 실례 좀 하겠습니다.”

앤디의 부름에 대머리 중년인이 멈춰 섰다.

“음? 무슨 일이시오?”

“혹시 지금 그 표를 구하신 겁니까?”

“그렇다오. 운이 좋게도 구할 수 있었지.”

앤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저기 암표상이 있더군.”

지옥의 구덩이에서 천국행 동아줄을 구한 사람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앤디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얼마인가요?”

“일인에 십 골드를 달라고 하더군.”

“십 골드? 뿌헐….”

앤디의 표정이 보기 좋게 변했다.

1골드라 하면 1실버가 100개 모여야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1실버도 적은 돈이 아니다. 1실버 하나가 4인 가족 기준으로 일주일 생활비로 넉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원래 표 값이 2실버라고 했으니, 깔끔하게 500배 튀기 한 것이다.

대머리 중년인은 앤디의 표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히죽 웃고는 이렇게 말하며 지나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나. 좋은 선택을 하게나.”

앤디는 멍하니 서서 고민했다. 지금 1골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표 값이 얼마나 하겠어 싶은 마음에 돈을 챙겨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재빨리 숙소에 갔다 올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사이에 저 암표상들이 사라지면?

내일도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 아닌가.

앤디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골머리를 썩였다.

사실 이렇게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지만, 표를 짜잔! 하고 사가서 레오나 공주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앤디는 암표상들을 노려보듯이 주시했다.

안젤른은 앤디의 옆에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주군은 자신에게 뭐든 아낌없이 나눠주는데, 자신은 주군의 근심도 덜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암울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젤른의 눈빛이 의아하게 변했다.

“어라?”

그 비슷한 시점에 앤디의 눈빛도 그와 비슷하게 변했다.

“응?”

앤디와 안젤른은 서로의 반응에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갸웃거린 후, 다시 시선을 암표상들에게 돌렸다.

앤디가 말했다.

“이거 상당히 희한하네.”

“저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앤디가 혹시나 싶어 안젤른에게 물었다.

“뭐가 희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안젤른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들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것도 한두 번 본 게 아닌 것처럼 친숙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앤디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봤는지가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헐! 그것까지 저와 똑같으시네요.”

앤디는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안젤른과 자신의 기억이 이렇게까지 겹친다면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전신에 깁스를 한 환자와 건장한 사내 둘이 암표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암표상들이 전신에 깁스를 한 환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전신에 깁스를 한 환자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수금을 했다.

순간,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 뇌리를 자극했다.

“…그 놈!”

“골목길과 식당에서!”

“역시 그 놈이 분명하군요.”

앤디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확신했다.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바로 그였다.

자신들을 털려고 했다가 두들겨 맞았던 강도단 녀석들 말이다.

사실 이름을 듣지 않았으니 떠오를리가 있겠는가.

여하튼 녀석들이 누군지 깨닫게 되자 앤디의 입 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4

오늘 하루 수금을 마친 루사벨은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가려했다. 몸이 다친 후라 돈이 나갈 곳도 별로 없었다. 술도 여자도 만나지 않고 꼴답잖게 도박도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돈이 차곡차곡 쌓이며 본의 아니게 저축하게 되었는데, 그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벙어리 저금통이 아휴 무거버…. 룽루룬.”

바로 그때 등골이 오싹하며 식은땀이 흐르고 소름이 돋았다.

이유모를 불안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대체 뭐, 뭐지?”

거대한 파충류가 먹잇감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놀라 주위를 돌아보며 살폈다.

혹시 자객이라도 뜬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보스 왜 그러십니까?”

루사벨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모르겠다. 자꾸만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러자 수하 하나가 말했다.

“몸이 아직 쾌유도 안됐는데 싸돌아다니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그,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요즘 몸이 많이 허해진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오늘 일도 끝났는데, 빨리 들어가서 쉬시죠.”

“그래야겠군. 젠장. 그때 그 망할 것들과 엮이지만 않았어도…. 퉤!”

“그 망할 것이 우리들은 아니겠지?”

등 뒤의 살기.

안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 자식들을 만날 징조였었군….’

루사벨이 머릿속 생각과 다르게 얼굴로 반가워 죽겠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아하하하! 아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형님들 아니십니까!”

수하들도 눈치가 있었다.

“형님들을 뵙습니다!”

앤디와 안젤른이 그들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짜식들. 눈치도 행동도 빠른 게 아주 자알 오래 살겠어.”

“섭섭합니다. 항상 형님들의! 형님들에 의한! 형님들을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기에 제가 웃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그래. 그 마음 끝까지 유지하도록. 그런데 아까 이야기 하던 녀석들은 누구지?”

루사벨이 웃는 낯으로 양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형님들은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 자식들 있습니다. 욕먹어도 싼 새끼들 말이죠. 그런데 형님들께서 이 누추한 곳엔 무슨 일로….”

앤디의 품에서 나온 두 장의 승선권을 받아든 레오나 공주는 너무나 기뻐했다.

“꺄아! 이게 뭐야?”

“후후후후. 우리 공주를 위한 선물이지.”

앤디의 자신어린 대답에 레오나 공주가 말했다.

“이거 어떻게 구한거야? 알아보니까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귀한 표던데.”

앤디가 인상을 구기며 너무나 힘든 표정을 지었다.

“후우, 표를 사려면 예약이 밀려서 일 년이나 기다려야 한다잖아. 그래서 다른 곳을 알아보기 위해 그곳을 나와 돌아다녔어. 하지만 어디에서도 표를 구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선장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찾아갔지. 선장에게 내가 우리 레오나 공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야기 했더니 선장이 눈물을 흘리며 ‘아아 당신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어서 이것을 받아가십시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당신들의 사랑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승선표 밖에 없구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받아주시오! 그리고 당신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더 멀리 퍼트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의 마음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받아 온거야.”

레오나 공주의 두 눈이 하트 표시로 변했다.

“앤디. 나를 위해서 그런…. 어쩜! 너무 멋져!”

“우리 공주를 위해서라면 내가 무슨 일을 못하겠어!”

“고마워.”

“사랑해.”

“나두….”

레오나 공주의 두 뺨에 수줍게 올라선 분홍빛.

그것을 보고 있던 클라우저가 투덜거렸다.

“아주 쑈를 해라. 쑈를….”

클라우저의 말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쉐리가 눈을 부라리며 클라우저를 노려보았다.

클라우저는 괜히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쉐리는 혀를 차고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저걸 애인이라고…. 앤디 군의 절반만이라도 따라봐라!”

“내, 내가 뭐얼!”

클라우저는 억울함을 항변하며 주위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던졌지만, 모두가 외면했다.

쉐리와 척을 지는 것은 수명단축의 지름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쉐리가 화를 내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쉐리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던 클라우저가 안젤른에게 질문했다.

“저거 저 이야기 정말입니까?”

그러자 안젤른이 말했다.

“아니면 어떻게 기면 어떤가. 그 사실이 뭐가 중요한가. 공주님께서 저리 좋아하시는 데 말이네.”

그 말에 렐리가 수긍했다.

“네 실수도 있어. 너 쉐리한테 사랑한단 말 해준 적 있어?”

“어떻게 그래요. 부끄럽게.”

렐리가 고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런 정신 상태니 셀리가 화를 낼만도 하지.”

“제, 제가 뭘요.”

그때 안젤른이 클라우저를 쿡쿡 찌르더니 뭔가를 건네줬다.

“이게 뭔가요.”

물건을 건네 받은 클라우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서 닭살 짓을 하고 있는 어떤 커플이 들고 있는 티켓과 비교를 했다.

“이거 홀리드 섬 행 티켓 아닙니까? 이, 이걸 어디서?”

안젤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서 구한 게 뭐가 중요한가. 어서 가서 사과를 하게나.”

“제가 뭘 잘못한 게….”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렐리가 클라우저의 등짝을 쩌억 소리 나게 갈겼다.

“어서 나가지 못해!”

항상 어떠한 상황에도 차분한 편인 렐리가 약간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클라우저는 입술을 내밀고 구시렁거리며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뛰어 나갔다.

“쉐리야! 자기야아!”

목소리가 들뜬 것을 보니 클라우저도 이 상황이 싫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꼴에 남자라고 한번 뻐팅겨 본 것 같았다.

렐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 그래도 연인이라 이거지? 왠지 조금 서러운데? 나도 홀린드 섬에 가보고 싶었는데. 후후후.”

렐리의 말에 안젤른이 다가왔다.

“그럼 우리도 가면 돼죠.”

“어떻게요?”

안젤른이 마술과도 같은 손놀림으로 표 네 장을 쫘악 펼쳤다.

“어머?”

“어때요. 우리가 모두 가는데 충분하겠죠? 그리고 어떻게 저 분들만 보냅니까. 바늘 가는데 실도 가야죠.”

안젤른의 말이야 어쨌든 렐리가 약간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이걸 어떻게 구하셨어요?”

안젤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게 중요한가요?”

그 시각.

루사벨이 침대위에서 끙끙 알며 울며 겨자 먹듯 강탈당한 여덟 장의 티켓을 떠올랐다.

“아이구 억울해. 아이구 억울해에에! 망할 새끼들. 바다 한가운데서 벼락 맞아 죽어라!”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말에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다.

“설마 내 집문 밖에서 숨어 듣고 있을 린 없겠지. 녀석들 때문에 노이로제 걸리겠네. 아이구 아이구. 그게 다 얼마냐, 대체 얼마를 손해 본거냐….”

루사벨은 그렇게 밤이 새도록 끙끙거렸다.

저 멀리 조금 전 고개만 빼꼼 내밀던 태양이 어느새 높이 올라 새벽을 밝힌다. 시원한 아침공기와 바닷바람. 정말 화창한 날이다. 하늘을 올려보니 구름 한 점 찾아 볼 수 없었다.

여객선용 캐러벨에 올라탄 일행들의 표정이 밝았다.

“알아보니 이곳에서 홀리드 섬까지 대략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군요.”

클라우저의 말에 모두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군 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뭔가를 실어 나르더니 배가 출항을 시작했다.

처음에 모두 들뜬 마음에 뱃머리에 모여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선실로 들어가 쉬기 시작했다.

앤디들도 선실에 들어갔다.

1등급의 선실은 넓고 화려하며 쾌적했다.

물론 왕궁의 방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배의 객실로 따지자면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앤디들이 얻은 객실은 총 세 개로 하나는 앤디와 레오나 공주가, 하나는 렐리와 쉐리가 썼으며 나머지 하나는 사내 넷이 썼다.

모두 정오가 되자 객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도시의 일반적인 레스토랑 수준이었다.

식사의 수준은 높았다. 귀족들이 주로 이용하다보니 이름 있는 요리사를 초빙해서 쓴다는 것이다. 가격은 비쌌지만, 여행지에서 싼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와중에도 앤디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끼 멘트는 멈추지 않았다.

“레오나 공주.”

“응?”

“나는 지금 너무 힘드오.”

“왜 그래, 앤디.”

“지금 그대의 입가에 묻은 소스가 너무나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소.”

“아이차암, 앤디두. 몰라!”

호위고 뭐고 그냥 다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사실 앤디 같은 사람이 어디 흔한가.

자신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던 가장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앤디의 저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현재 앤디의 모습은 문화적 충격을 넘어 거의 테러 수준이었다.

렐리는 그런 모습을 부러워 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렐리의 한숨을 듣고 난 안젤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마치 쑥스러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해, 해적이다!”

밖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뛰어 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바로 그때!

콰과광!

갑자기 식당 벽을 부수며 거대한 쇠공이 날아들었다.

포탄이었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피해!”

모두 당황하며 비명을 지르고 몸을 피하는데 잠잠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피니 누군가 쇠공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지, 지금 저 사람이 들고 있는 거 포탄 맞지? 서, 설마 저 사람 포탄을 받아들은 건가?”

“말도 안 돼!”

많은 사람들 소음 속에 레오나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앤디.”

앤디는 레오나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곧 차가운 표정으로 루슬란 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레오나를 최우선 목표로 보호해라.”

모두가 바로 자리에 서서 대답했다.

“충!”

앤디는 그들의 대답을 듣고 굳은 인상으로 뚫어진 벽 전면을 주시했다.

조금 전까지 다정다감하게 레오나 공주의 소스를 부러워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엄청난 위압감으로 중무장한 사내가 의연하게 서있었다. 그때 그 뚫어진 벽 구멍으로 해적선으로 보이는 캐랙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적선에서 포탄이 쐈다.

일반적으로 해적들은 포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강탈할 물건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녀석들은 거침없이 공격을 시도했다.

퍼펑!

굉음과 동시에 저 멀리서 포탄이 날아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앤디는 들고 있던 포탄을 날아오는 포탄을 향해 마주 던졌다.

일행들을 제외한 식당내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커다란 포탄을 마치 조각돌처럼 던지는 것이 아닌가.

앤디가 던지 포탄은 녀석들이 쏘아낸 포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날아갔다.

푸슝!

그 포탄은 정확하게 지금 날아들고 있는 포탄과 충돌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해적선에서 날아오던 포탄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하지만 앤디가 던진 포탄은 그대로 쭈욱 날아가 해적선을 강타했다.

콰과광!

해적들이 놀라 허둥거리는 모습이 앤디눈에 들어왔다.

여객선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환호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난 초고수가 자신들 쪽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여하튼 앤디가 한 행동 탓일까?

해적선에서 더 이상 포탄이 날아오지 않았다.

승객들의 환호성은 더욱더 커져갔다.

그 환호성 속에서 앤디의 눈빛이 변했다.

앤디만이 아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있는 검사들이 하나같은 반응을 했다.

모두가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뭐, 뭐지? 이 기운은?”

놀랍게도 검사들을 경직하게 만들었던 그 기운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해적선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음에도 누구하나 검을 내리지 않았다.

너무나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기세가 자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들을 모두 죽이겠다.

앤디가 피식 웃었다.

“재밌군. 놀아보자는 건가?”

그러는 와중에도 해적선은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다.

여객선에 있는 호위대와 손님으로 타고 있던 기사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적선이 어느 정도 거리에 닿았을 때 누군가의 신형이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날아오르는 동안 그가 들고 있던 검이 푸른색으로 물들어갔다.

그것을 본 여객선 측의 기사 하나가 놀라 외쳤다.

“마, 마스터? 해적 중에 마스터가 있단 말야!”

그 비명 같은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해적선 측의 존재가 허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순간 엄청난 기운이 폭사했다.

고오오오!

오러의 덩어리가 그대로 여객선을 향해 날아왔다.

저 기운이 배에 충돌하면 폭탄이 터지는 이상의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 어느새 선미에 올라선 앤디가 검을 휘둘렀다.

앤디의 검에서 그와 같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슈와아아악!

양측에서 날아가던 푸른 기운이 배와 배 사이에서 충돌했다.

퍼펑! 퍼퍼펑!

엄청난 폭발력에 바다가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바다가 뒤집어 지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여파로 엄청난 파도가 일며 배가 크게 흔들렸다.

불안에 떨며 객실에 숨어 있떤 사람들의 비명이 터졌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다른 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모두 나자빠질 때 앤디만이 그 흔들림 속에서 의연하게 서있었다.

그러던 중 앤디가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앤디가 검을 대각선으로 들어 올렸다.

조금 전 자신에게 강기를 날렸던 녀석이 허공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즐겁게 한번 놀아보자.”

앤디와 사내가 충돌했다.

쩌정!

검과 검 사이에서 충격파가 터지며 두 사람의 옷이 거칠게 펄럭였다.

앤디와 충돌한 사내가 검을 경계로 서서 씨익 웃으며 말을 걸었다.

“네 녀석이었군. 헤터슨을 그렇게 만든 녀석이.”

“…!”

지금까지 웃고 있던 앤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드디어 만난 것이다.

단약과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주인공을 말이다.

쿠과과과광!

검황의 이름으로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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