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슬레이어즈
1
앤디는 도나르도의 도전을 승낙했다. 남들을 납득시킬 만한 이유로 거절하지 못하면 겁쟁이로 낙인찍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 레오나 공주를 건드린 녀석들에게 확실한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날이 밝고 일행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정오가 되기 전까지 각자의 일을 했다.
남자들은 검을 들고 수련을 시작했고, 여자들은 쉐리가 사온 케이크와 주스와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앤디는 수다를 떨고 있는 레오나 공주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함께 케이크를 먹었다.
누구에게도 한 치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되자 그제야 주섬주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를 마친 일행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앤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지?”
그 말에 일행들이 모두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쉐리야, 너 몰라?”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안젤른 경도 몰라요?”
쉐리의 물음에 안젤른이 땀을 흘렸다.
결국 무작정 나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겨우 늦지 않은 시간에 맞춰 레비탄 백작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도나르도는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대체 저 체형에 맞는 풀 플레이트 갑옷이라니.
일행들이 헛기침을 하듯 웃음을 숨기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귀족인데, 비웃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귀족 능멸 죄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레비탄 백작은 도나르도 옆에 서서 앤디들이 오자 한명 한명을 훑어보았다.
앤디는 레비탄 백작이 뭘 하든 신경을 끄고, 풀 플레이트 갑옷을 걸치고 있는 도나르도를 보며 말을 걸었다.
“그럼 시작할까?”
그 말에 도나르도가 흠칫 놀랐다. 그러자 레비탄 백작이 도나르도를 툭 쳤다.
도나르도는 긴장을 풀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결투에 나는 나서지 않는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 대타가 대신 싸울 것이다.”
그 말에 앤디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투는 2가지 방식이 있다. 당사자들이 싸우거나 대타를 내세워 싸우는 것 말이다. 자신이 강한 것도 능력이지만, 강한 기사가 주위에 있는 것도 능력이다.
“뭐, 상관없지. 하지만 승패가 갈리면 서로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물론이다!”
도나르도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뮬란 경!”
도나르도의 호명에 키가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상태였다.
“뮬란 경, 저자가 상대요. 이길 자신이 있소?”
도나르도의 물음에 뮬란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숨에 쓰러트려 도련님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역시 든든하오. 하하!”
앤디가 질문했다.
“기마전이냐, 검투냐?”
“검투다.”
도나르도의 말에 앤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앤디와 뮬란이 마주 섰다. 뮬란이 앤디를 보고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그때, 한 사내가 외쳤다.
“시작!”
뿌우우!
시작 소리와 동시에 작은 뿔피리가 울렸다.
뮬란이 견제를 하듯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반면에 앤디는 그대로 서 있었다.
뮬란은 앤디가 자신에게 졸았다고 생각했는지 바닥을 박차며 성난 물소처럼 달려들었다.
바로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들려온 소음.
터어엉!
사람들은 그 소음에 의문을 품기도 전에 백작 저택의 벽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뜩 찌그러진 갑옷을 입은 뮬란이 벽에 반쯤 처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뮬란의 눈은 완전히 뒤집혀 흰자만 드러나 보였다.
레오나 공주를 시작으로 일행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반면에 도나르도 측 사람들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누구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수긍하는 이가 없었다.
앤디가 도나르도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겼다. 그럼 이제 내 조건을 들어라.”
“거, 거짓말.”
앤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한단 말인가?”
“이건 사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그 말에 앤디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루슬란이 한마디 했다.
“꼭 실력 없는 것들이 사술을 찾지.”
도나르도가 눈을 부라리며 루슬란을 노려보았다. 루슬란은 도나르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응시했다. 그러자 도나르도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것을 핑계 삼아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너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
“어리석은 녀석.”
“뭣이라!”
“내가 이렇게 양보를 했음에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네가 양보를 했다고? 네 녀석이 뭔가 잘못 먹은 모양이구나! 지금 누가 누구를 봐주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도나르도가 큰소리를 뻥뻥 쳤다.
“흥! 개도 자기 집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더니.”
쉐리의 말에 도나르도와 그쪽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도나르도가 자신의 아버지 레비탄 백작을 한 번 본 후,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모두 저 녀석들을 잡아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택 사각지대에서 중무장을 한 기사들과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등장을 보며 쉐리와 일행들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뻔한 일이지.”
모두가 이죽거리며 자신의 무기를 챙겼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레비탄 백작이 외쳤다.
“쳐라!”
순식간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앤디와 일행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루슬란이 다급하게 말했다.
“쉐리! 렐리! 클라우저는 가까이에서 공주님을 보호해라. 나와 안젤른 경, 그리고 파프 경은 너희 전방을 맡겠다.”
쉐리, 렐리, 클라우저가 대답했다.
“오케이! 알았어요!”
안젤른과 파프는 대답 대신 자리를 잡고 검을 꼬나 쥐었다.
그 앞에 앤디가 자리를 잡고는 한쪽 입꼬리를 잔혹하게 올렸다.
그는 그새 어디서 주워왔는지 지금까지 들고 있던 검을 갈무리하고는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앤디는 들고 있던 곡괭이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터텅! 텅!
곡괭이에 적중 당하는 녀석들은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리다가 거품을 입에 물고 정신을 잃었다.
그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기사도, 병사도 동일했다.
앤디의 오묘한 타격력의 분배는 갑옷을 착용했든, 안 했든 그들의 복부를 사정없이 가격했고, 그들이 받은 고통은 신기하게도 대동소이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숨이 턱! 막히며, 정신이 혼미해져서 결국 정신을 잃게 되는….
퍽! 푹! 팍! 빡!
“컥!”
“캑!”
“흑!”
“헉!”
다양하기 짝이 없는 독특한 비명은 나름 절묘한 하모니를 구축했다.
앤디는 한 번에 한 놈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듯 간간이 2명과 3명을 동시에 때려눕히기도 했다.
“히익!”
“조심해! 조심!”
“크허어헉!”
“괴, 괴물이다! 괴물이다!”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동료들이 주먹 한방에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자 앤디가 발끈한 표정으로 외쳤다.
“누가 괴물이란 말이냐! 이렇게 잘생긴 괴물 봤냐!”
그에 병사들의 입안에서 ‘네가.’라는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대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후한이 두렵기도 했거니와, 말을 내뱉기도 전에 해머가 복부를 파고드는 듯한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곡괭이로 저런 파괴력이 나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전설의 무기, 뭐 이런 것은 아니겠지?’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망상이 떠오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병사들이 셀 수 없이 쓰러졌다.
‘이건 뭔가 아니다.’
병사들 모두의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서, 설마 드래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 말을 듣고 무릎이 풀리는 기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또 외쳤다.
“마, 마법이다! 드래곤이 마법을 써서 우리가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앤디는 계속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퍼벅!
“크헉!”
언젠가부터 앞서서 검을 휘두르는 기사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저 뒤에서 큰소리치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를 던지는 녀석만이 있을 뿐이었다.
기사들도 저렇게 몸을 사릴 정도다. 그런데 공포에 대한 저항력이 훨씬 적은 병사들은 어떻겠는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도망칠 곳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뒤에서 견제의 모습만 보이던 안젤른과 파프, 루슬란이 앞으로 나와 앤디의 뒤에서 보조를 하기 시작한 탓이다.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물기둥이 터지고, 단검이 날아와 병사들의 팔과 다리에 합체를 시도했다.
“이거 너무 시시하구만!”
“몸을 너무 안 풀어서 굳어가려는데, 누가 기름칠 좀 도와달라고!”
안젤른과 파프의 외침에 병사들이 더욱 주눅이 들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기사들이 나타나서 병사들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헛소리들 하지 마라! 드래곤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앞으로 나가라! 그리고 저놈들을 공격해라!”
그때, 앤디 근처에 있던 병사 하나가 겁에 질려 등을 돌리더니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것을 본 기사 하나가 달려가서 병사의 목을 쳐서 날렸다. 병사의 몸이 멈칫하더니 목이 바닥에 떨어지고, 몸통 위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병사의 목을 벤 기사가 소리쳤다.
“등을 돌리는 자는 모두 목을 벨 것이다!”
그 말에 병사들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몇몇이 다른 기사들 손에 죽는 것을 보았다. 병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뒤로 가면 기사들이 자신들을 죽이지만, 적들과 싸우면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동료가 적보다 무서운 상대가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그때, 앤디가 병사들을 헤치고 지금 병사의 목을 자른 기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앤디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 검을 보며 말했다.
“늦어.”
앤디는 후발 선타의 묘리를 보이며 곡괭이를 휘둘러 기사의 플레이트 갑옷을 강하게 내쳤다.
터어어엉!
“크허헉!”
기사가 입으로 피를 토하며 쭈욱 날아가 병사들 틈에서 자빠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기사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들어올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들어올린 자가 자신에게 호의가 없음도 알 수 있었다. 호의가 있는 자가 멱살을 움켜쥐고 들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앤디였다.
“한 방으로 끝내줄 줄 알았나 보지?”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도 앤디의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나는 말이지.”
퍽!
“으윽!”
녀석이 가벼운 발길질에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떼구루루 굴러갔다. 그러자 앤디는 그 뒤를 따라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벼운 눈길만 닿았을 뿐인데, 주위를 포진해 있던 병사들이 좌우로 쫘악 벌어졌다.
그것을 보며 앤디가 말을 이었다.
“세상에서! 너! 같은! 새끼들이! 가장! 싫다고!”
퍼벅! 퍼버버벅!
“꺼으으으으으으….”
한 단어 한 단어 사이에 앤디는 발길질과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고, 기사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마무리 결정타를 맞기 전까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결국 반죽음 상태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2
지금까지 자비를 보이던 앤디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의 한방 한방에 피가 튀고, 살이 튀었다.
앤디는 병사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기사들만 찾아서 조졌다.
병사들은 안젤른과 파프, 루슬란이 상대했다.
그들은 앤디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는지, 병사들을 기절시키거나 항거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전투에 임했다.
그들 앞에서 앤디의 곡괭이가 휘둘러지면 부러진 치아가 허공을 비산하고, 누군가의 갑옷이 깨지거나 찌그러지거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잔혹한 손속에 주위의 병사들은 질린 나머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도나르도와 레비탄 백작도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뭔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병사들 틈에서 활개를 치는 앤디를 보기만 해도 오한이 밀려왔다.
앤디는 도나르도와 레비탄 백작을 보고 씨익 웃어줬다. 마치 조금만 기다리라는 뜻으로 보였다.
제 발 저린 레비탄 백작이 다급히 외쳤다.
“뭐, 뭣들 하는 거냐! 저자를 죽이란 말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함부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병사들을 독촉하지 못했다. 다른 기사들이 어째서 저렇게 처참하게 당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 3명의 기사가 검에 오러를 맺은 채 앤디에게 달려들었다. 합공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역부족임을 금세 깨닫게 되었다.
쾅!
정신이 혼미해졌다. 첫 번째 공격으로 잃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가해진 두 번째 타격에, 실이 끊어진 연처럼 흐느적거리며 날아가더니 병사들 무리에 파묻혔다.
그와 동시에 두 번째 기사의 머리가 사정없이 뒤로 젖혀졌고, 세 번째 기사는 흉갑이 납작하게 찌부러질 정도로 강한 발차기를 맞고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꺼허허어억!”
쿠당탕!
꿈틀꿈틀.
기사 셋이 순식간에 바닥에서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자잘한 경련으로 알렸다.
질릴 정도로 강한 무력이었다. 보면서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모두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꿈이라면 정말 최고로 악질적인 악몽일 것이다.
“뭐지? 이게 끝인가?”
앤디가 어깨를 으쓱였다. 눈빛이 살기로 충만했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강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저런 실력이라면 마스터가 분명했다.
그때, 어디선가 불덩어리가 날아와 앤디를 덮쳤다.
하지만 그 불덩어리는 자신의 맡은바 소임을 완수하지 못했다.
까아아앙!
앤디에게 적중하려는 순간, 알 수 없는 소음과 동시에 저 멀리 하늘 위로 솟구친 것이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화려한 불꽃을 수놓으며 터졌다.
퍼어엉!
어느새 앤디의 근처로 온 렐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사장님! 나이스 샷!”
사방에서 연신 마법이 터져 나왔는데, 앤디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하늘로 날려 주었다.
모두들 그제야 앤디가 어떻게 마법을 튕겨 냈는지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앤디는 마법을 곡괭이로 쳐서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사람인가.”
쉐리의 말에 클라우저가 대답했다.
“아무리 아는 사람이지만, 나도 의문이 든다.”
옆에 있던 안젤른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추가 병력이 현장에 난입했다. 근처 귀족에게 도움을 청한 모양이었다.
그것을 본 루슬란이 한숨을 흘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쉽게 끝날 문제를 크게 키우는군. 사과만 하면 될 것을….”
루슬란이 고개를 돌려 레오나 공주를 바라보았다.
레오나 공주의 얼굴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가득히 어려 있었다.
“어려워… 어려워….”
앤디는 추가된 병력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비릿한 미소였다. 정말로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앤디가 바닥을 박찼다. 시위를 벗어난 활처럼 맹렬하게 날아갔다.
앤디의 몸을 중심으로 돌풍 같은 것이 몰아치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처음의 움직임보다 조금 전이 더 빨랐고, 조금 전보다 지금이 더 빨랐다.
퍼벅!
퍽! 퍽! 퍽!
“크허어억!”
주위에서 얼쩡거리는 이들은 앤디의 곡괭이 맛을 보게 되었다.
추가된 기사들이 앤디를 향해 달려들었다. 앤디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 파악한 것이다.
기사 셋이 달려들었다.
푸른 오러가 넘실거리는 검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아 보통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기사 셋의 검이 각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시간과 각도로 뻗어나갔다. 피하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촘촘한 시간차 공격이었다.
하지만 팔을 교차시켜 역십자로 만들었던 앤디는 가볍게 팔을 휘둘러 허공에서 원을 그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의 검은 자석에 붙은 것처럼 역십자 사이에 걸려들었다.
앤디는 그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 팔목을 자신의 몸 안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그들은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책이었다. 단순한 착의 원리에 놀아난 것이다.
“뭐, 뭐지!”
“내 검이 저 곡괭이에 달라붙은 것 같아!”
“나도!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거야!”
그들이 당기자 앤디는 가볍게 밀었고, 그들이 앤디의 팔을 떨어트리기 위해 밀자 앤디는 가볍게 당긴 것이다.
그게 그들에게는 앤디의 팔에 달라붙은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정말 앤디의 팔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게 되었다.
달라붙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달라붙은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탓에 자기 최면에 빠져들었다.
물론 절묘한, 앤디의 신기에 가까운 손속이 그들을 그렇게 착각하도록 만들어낸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장악권을 빼앗기고, 마치 자석에 붙은 것처럼 앤디의 손속에 놀아나게 되었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앤디가 다리를 살짝 굽히며 교차된 팔의 힘을 풀어버렸다. 그러자 지지대를 잃어버린 그들은 하나같이 중심을 잃어버렸다.
앤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먹을 곧게 뻗었고, 그 주먹은 중심을 잃은 기사 하나를 가격했다. 그러자 그 기사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가 젖혀졌고, 젖혀진 머리는 가운데 있던 기사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가운데 있던 기사는 동료의 머리에 안면이 함몰된 상태로 허우적거리다가, 자신의 옆에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동료의 갑옷을 움켜잡았다.
그 결과 어정쩡하게 중심을 잡았던 기사는 절친한 친구 둘과 함께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앤디는 그대로 기사들 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양 떼 사이로 뛰어든 오우거와도 같아 보였다.
양들이 나름 반항을 하는 듯이 울어댔다.
“음메에에에에에!”
하지만 개뿔. 오우거의 곡괭이는 그들의 반항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쿠오오오오!”
“음메에에에!”
물론 이것은 보는 이들의 착각이었다. 앤디의 무자비함이 관중들에게 착시와 환청의 효과를 가져다준 것이다.
사람들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런 환영을 봤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얼마나 압도적인 힘에 눌렸으면 그런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들었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헉! 나 지금 저 녀석이 오우거로 보이고, 기사들이 양으로 보였어.”
“정말?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단 말이야?”
“나도 그랬어!”
“어떻게 이런 일이!”
병사들이 수군거리자 기사들 역시 오우거 한 마리가 자신들에게 달려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를 악다물었다.
이것은 치욕이었다. 녀석에게 얼마나 기가 눌렸으면 앤디가 오우거로 보였겠는가!
그래도 병사들과 다르게 그들은 입을 열어 수선 떨지 않고 검을 고쳐 잡았다.
빠르게 정신을 갈무리한 기사들은 미련하게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벌써 위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르던 기사 다섯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던 탓이다.
기사들은 민첩하게 자신들 틈으로 파고들어온 앤디를 중심으로 전열을 다듬으며 견제하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앤디는 녀석들의 공격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기사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기사들은 자신들이 느꼈던 두려움을 치욕이라 생각하여 이를 악물고는 검을 휘둘렀다. 전의로 똘똘 뭉쳐진 기사들의 검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앤디의 몸을 스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절망감이 전신을 눌러 내렸다.
앤디와 검을 맞대면 맞댈수록 거대한 산악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막연한 박탈감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크흐흐흐흐!”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는 검을 들고 앤디를 노리던 기사들의 간담을 싸늘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시 기사들이 뒤로 몸을 빼고 앤디를 주시했다. 이렇게 많은 기사들이 뭉쳐서 앤디 한 사람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악몽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이 많은 기사들은 지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은 지금 막 전투에 참여한 사람처럼 쌩쌩했다.
너무나 현실감이 없었다.
모두들 마른침을 삼켰다. 누가 먼저 나설 것인지 눈치를 살폈다. 언제까지 대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때 앤디가 소리쳤다.
“워!”
갑작스러운 외침에 놀란 기사 하나가 본능적으로 앞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그사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튀어나온 몸이다. 뒤로 무를 수는 없었다. 이를 악다물고 검을 휘두르는 수밖에.
한데, 자신의 검이 가는 방향에 서 있던 괴물이 가만히 있었다. 이대로, 이대로 가주기만 한다면 심장을 찌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달콤한 망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보이는 간격까지 도달한 순간…
피핏!
작은 혈선이 몸에 한 줄 더 새겨짐과 동시에, 비웃음과도 같이 짧고 비릿한 웃음이 앤디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크흑!”
그와 동시에 터진 타격음.
뻐억!
앤디의 주먹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던 기사의 갑옷을 뚫고 그대로 복부를 파고들었다. 고통과 반동으로 그의 허리가 깊숙이 숙여지자, 앤디는 그 상태로 녀석을 들어다가 동료들에게 집어던졌다.
그러자 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오는 동료를 피했다. 민첩한 그 움직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가 빠진 동료의 자리까지 메웠다. 그리고 냉정하게 검을 치켜들고 앤디를 견제했다.
동료가 당했음에도 그들은 앤디에게 달려들어 공격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그때, 저 뒤에서 일행들의 기합과 격돌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앤디는 지금에야 이들의 작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대로 자신을 묶어놓고 시간을 끌며, 다른 팀으로 레오나 공주와 일행들을 잡겠다는 뜻이었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고 했던가.
누군지 상황 파악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전술적으로는 잘한 것이지만 앤디로서는 짜증이 났다.
사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죽이면서 싸웠다면 벌써 해결되었을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과를 받으려다 벌어진 일인데 성질대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다 보니 최대한 살생을 자제하며 싸우게 된 것이었는데, 녀석들은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오히려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앤디는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야 이 사태가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을 살리겠다고 일행들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앤디가 지금까지 들고 있던 곡괭이를 버리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건드렸다. 그러자 검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오르며 앤디의 손에 안착했다.
모두가 흠칫 놀랐다. 지금까지 들고 있던 곡괭이도 무서웠는데, 검으로 바꿔들었다는 것이 부담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뭐, 몇몇은 이 상황에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저게 아티팩트가 아니라 정말로 그냥 평범한 곡괭이였던 것이란 말인가?’라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이제 슬슬 이 지루한 상황을 정리할 때가 된 듯하군.”
앤디가 검에 마나를 불어 넣자 수백 마리의 푸른색 실뱀이 똬리를 틀 듯 검신을 따라 말아 올라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 실뱀들은 검을 둥글게 감싸듯이 뭉쳐지더니, 곧 하나의 기둥으로 변했다.
푸른색을 띠고 있던 그 하나의 기둥은 가열되듯 하얀색으로 변해가더니, 검의 길이가 짧은 듯 자신들끼리 뭉쳐 위로 더욱 솟구쳤다.
그것을 본 기사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저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 하얀 섬광을 자랑하는 오러의 정체는 분명 그랜드마스터만의 전유물이라 불리는 소울 블레이드인 것이다.
눈속임이나 가짜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엄청난 마나의 압력까지 속임수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씨익!
“빨리 끝내자.”
앤디의 나직한 한마디에 주위에 있던 기사들이 자신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3
주춤주춤.
모두가 뒷걸음질을 쳤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봐도 눈앞의 것은 소울 블레이드가 확실했다.
꿀꺽!
처음으로 기사들의 표정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밑도 끝도 없는 공포만이 가져올 수 있는 표정이었다. 또 반면 어떻게 보면 초탈한 표정이기도 했다.
이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들, 바로 그것이었다.
앤디가 바닥을 박찼다. 그리고 앞으로 돌진하며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후웅!
오러가 허공에 아름다운 빛무리를 내뿜었다.
그 빛무리는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또 그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었다.
기사들은 소울 블레이드가 주는 경외와 공포에 물러났고, 앤디는 그 틈으로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단숨에 날아가 전투를 잠식시켰다.
생각보다 쉬웠다. 적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모두 잘라버리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신위에 모두들 경악했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도나르도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뭣들 하는 거냐! 왜 멈춘 거냐! 어서 잡으란 말이다!”
그 말에 모두들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으득!
병사들의 무리에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모시고 있던 이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머저리였던 것이다.
저런 머저리 밑에서 목숨을 바쳐 일하고 있던 자신들이 처량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모두들 도나르도에게 대항이라도 하듯 대놓고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하나같이 앤디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척! 척! 척! 척! 척!
그것은 정말 장관이었다.
돈 주고도 못 볼 장면에 레오나 공주와 쉐리들이 지친 표정도 지우고 감탄을 할 정도였다.
도나르도는 그것을 보며 속으로 분을 터트렸다.
‘주인의 명을 무시하다니! 개만도 못한 놈들!’
터엉!
바로 그 순간, 바닥이 크게 진동함과 동시에 앤디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곳의 상황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원흉을 손봐야 할 때인 것이다.
앤디의 신형이 정확하게 도나르도 앞에 떨어졌다. 도나르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사, 살려 줘!”
그러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기사 다섯이 앤디에게 달려들었다.
기사 하나가 도나르도를 향해 외쳤다.
“도련님! 피하십시오!”
도나르도가 재빨리 일어나 바람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앞에 아버지인 레비탄 백작의 뒷모습이 보였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도나르도는 레비탄 백작의 뒤를 따라 뛰었다.
레비탄 백작도 최악의 상황으로 종결지어지려 하자, 몸을 숨기기 위해 재빨리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도나르도만 아작 나면 자신은 멀쩡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 괴물 같은 녀석이 나까지 찾지는 않겠지?’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도나르도가 자신을 쫓아온다는 것이었다.
다른 방에 숨어도 도나르도가 쫓아왔다.
“아버지, 버리지 마세요. 엉엉엉!”
레비탄 백작은 결국 도나르도를 떨어트리는 것을 포기했다.
원수 같은 도나르도를 보며 가슴을 치고 있을 때… 문이 아작이 나고 앤디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숨어 있었군. 큭큭큭!”
앤디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도나르도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사, 살려 주세…. 커허헉!”
“이 자식이 엄살은? 어디서 때리지도 않았는데 비명질이야! 비명질은!”
퍽!
“꾸엑!”
녀석이 뒷걸음질 쳤다.
앤디가 말했다.
“너! 이리 안 와!”
“가면 때리실 거잖아요.”
앤디가 상큼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살려 주세요.”
“이리 와!”
“싫어요!”
말이 안 통해서 앤디는 자신이 가기로 마음먹고 바닥을 가볍게 찼다.
순식간에 앤디와 도나르도의 거리가 좁혀졌다.
“히, 히익!”
“네가 매를 버는 능력을 타고났구나.”
퍽! 퍼버벅! 퍽! 퍽! 퍼벅!
“커, 커어억!”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을 시작으로 리듬감 있는 타격음이 들려왔다.
전신 구석구석이 아파왔다. 도나르도는 바닥을 뒹굴며 고통을 몸으로 표현했다.
“살려! 살려! 살려 주세요!”
“아, 정말 시끄럽네!”
더 이상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앤디는 녀석이 말을 꺼내자마자 주먹으로 입을 가격했다.
녀석의 아래턱이 옆으로 틀어졌다. 안면을 지탱하던 턱뼈가 부러진 것이다.
“이제 즐겁게 어울려 볼까?”
“우어어어엉…!”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목 놓아 울어대는 도나르도였다.
우선 앤디는 처음 계획대로 가기로 했다.
각골난망. 잊지 않도록 뼈에 새겨 두겠다는 뜻이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뜻은 같지 않은가.
앤디가 도나르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뚝!
도나르도의 정강이가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으아아아아!”
“괜찮아, 괜찮아. 그 정도로는 죽지 않아.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엄살이야. 이걸 예상도 못하고 감히 나에게 덤비러 왔나 보지? 엉?”
앤디가 녀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일으켜 세웠다.
“자, 이젠 어디를 어떻게 해줄까? 뼈를 토막 내줄까? 이를 다 털어줄까? 아니면 머리카락을 가죽째 벗겨 버릴까?”
“우어어!”
“뭘 원해? 말만 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게.”
축! 사망! 삼지 선다!
무엇을 골라도 죽음을 맛본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린 도나르도가 빠진 턱으로 인해 힘들게 입을 벌릴 필요도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우어아아아!”
앤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씨익!
순간, 도나르도가 비명과 함께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앤디는 도나르도를 그대로 놔두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자리를 벗어나고 있던 레비탄 백작이 있었다.
레비탄 백작이 앤디의 시선이 닿기가 무섭게 비명을 질렀다.
“히익!”
앤디가 힘껏 도약했다.
팟!
그의 신형이 마치 바람처럼, 아니 바람을 가로지르는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쒜에에엑!
동시에 어디선가 북 터지는 소리가 났다.
“커헉! 커허헉!”
그 북 터지는 소리가 자신의 복부에서 들렸던 것임을 전신으로 깨달았다.
앤디는 레비탄 백작을 들어올리고, 입을 그의 귓가에 대며 속삭였다.
“당신도 죄가 있어. 어떻게 보면 저 녀석보다 크지.”
“자,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네. 사, 사, 살려만 주게나.”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비탄 백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거네!”
앤디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고마워할 이유가 없을 텐데.”
“아닐세. 고마운 거라네. 정말로 고마운 거라네. 흑흑!”
“뭐, 괜찮다는데도 고맙다면야, 뭐….”
앤디가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앤디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참고로 나는 여기서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둬.”
그 말의 뜻을 뒤늦게 이해한 레비탄 백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앤디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한다!”
퍼퍼퍼퍼퍽!
“꾸에에에에에엑! 사, 사람 살려!”
고막을 자극하는 시원한 타격음이 멈춘 것은 그로부터 1시간 후였다.
앤디는 기절한 도나르도와 레비탄 백작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잘못했다는 사과를 받은 후 레비탄 백작의 저택을 나왔다.
모두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거의 폐허가 된 백작 저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희희낙락하는 앤디와 레오나 공주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어?’
모두가 동시다발적으로 동일한 생각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잊으려야 평생 잊을 수 없는 블록버스터급 신혼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