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37화 (50/68)

제8장. 신혼여행지에서 생긴 일

1

“당장 이 녀석을 죽여라!”

음흉 돼지 녀석을 호위하던 기사 10명이 싸늘한 표정으로 앤디를 둘러싼 채 검을 겨누었다.

기사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운도 없는 녀석. 상대를 봐가면서 까불어야지.”

그러자 앤디가 대답해주었다.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고 울려?”

으득!

앤디가 살기충천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이미 앤디는 녀석들의 능력을 다 파악한 상태였다. 좋게 봐줘야 익스퍼트 초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때, 한 녀석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퍼억!

“커억!”

하지만 검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안면을 강타 당하고는 뒤로 떼굴떼굴 굴러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이 눈을 끔벅거렸다. 그리고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두 의혹 어린 눈빛으로 앤디를 주시했다. 그러다 기사들이 동시에 앤디를 향해 몸을 날렸다.

휘리리릭!

앤디의 팔에서 은빛의 소용돌이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먹이 만들어낸 오러였다.

타당! 탕타당!

공격을 강행하던 녀석들이 그 오러의 막을 어쩌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리곤 볼썽사납게 나자빠졌다.

검을 들고 기세 좋게 뛰쳐나가던 기사 아홉이 동시에 검을 떨어뜨린 채 바닥에서 나뒹굴며 신음성을 흘렸다. 그러면서 뒷발질을 하며 눈치껏 몸을 일으켰다.

“뭐, 뭐지?”

크게 술렁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앤디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입가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는 도발이라도 하듯 한마디 내뱉었다.

“졸았냐?”

앤디의 이죽거림의 효과는 탁월했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처음에 맞고 나자빠진 녀석이 머리를 털며 일행들에게 합류했다. 아직도 어찔한지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이를 드러냈다.

“너, 이 비겁한 자식! 감히 기습을 하다니!”

빠드득!

그때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쿠엑! 케헥!”

녀석이 갑자기 사레들린 듯 기침을 토했다.

그 순간이었다.

“케엑!”

기사의 입에서 하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어금니였다.

앤디에게 얼굴을 맞아서 금이 간 어금니가 이를 가는 순간 부러지고, 또한 목에 걸려서 기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헉! 내 어금니!”

동료 기사들조차 녀석을 외면하고 검을 들었다. 왠지 녀석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앤디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다음.”

기사들이 다시 한 번 욱했다.

앤디의 이죽거림은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뭐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부터 쌓여 온 스킬인 것이다. 전생 당시에도 부처도 쌍욕을 내뱉을 정도의 효력을 자랑했다.

그 기술이 어디 가겠는가?

“죽여주마!”

한 녀석이 갈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앤디가 대꾸하며 함께 주먹을 뻗었다.

“그래, 죽여 봐라!”

기사가 땅을 박차고 신형을 앞으로 날렸다. 마치 바람을 연상시킬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앤디의 주먹이 더 빨랐다.

슈우욱! 퍼억!

주먹은 달려들던 기사의 안면에 제대로 꽂혔다.

“꾸억!”

쿠당탕!

이번 녀석은 조금 전 녀석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꺄아! 우리 자기 파이팅!”

등 뒤에서 들려오는 레오나 공주의 응원의 목소리에 앤디가 방긋 웃었다.

이번에는 이죽거리는 것이 아닌데도 짜증이 났다. 눈꼴이 시렸던 것이다.

저 녀석은 저렇게 예쁜 여자가 등 뒤에서 응원을 해주고 있는데, 자신들은 저 못생긴 돼지가 욕설을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병신 새끼들아! 뭣들 하는 거냐! 너희에게 투자한 돈이 아깝다! 돈이!”

울컥!

우습게도 이들에게는 상황 자체가 도발이 되었다. 가슴에 악이 쌓이기 시작했다.

기사 8명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앤디가 마주 나아갔다. 그의 팔이 사방에 휘둘러지며 녀석들의 검과 맞닿았다.

차창!

챙챙챙!

손바닥과 검이 부딪친 소리로는 도저히 들리지 않았다. 기사들은 잠시 놀랐지만, 검을 멈추지는 않았다. 상대가 엄청난 고수임을 이미 생각하고 덤빈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 녀석이 앤디의 경력을 이기지 못하고 쥐고 있던 검을 놓쳤다. 앤디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이 놓친 검면을 잡고 손목으로 튕겼다. 검이 백팔십도 회전하며 손잡이가 앤디의 손에 안착했다.

모두가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녀석이 검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앤디가 웃으며 기사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기대해도 좋아.”

마치 기사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 어투였다.

앤디가 검을 휘둘렀다. 순간, 검이 있을 수 없는 검로를 타고 폭풍우에 휘둘리는 거친 파도처럼 몰아치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으, 으악!”

“크허허헉!”

앤디의 검은 거침없는 율동을 선보이며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거침없이 깨뜨려 버렸다.

사내들이 검을 휘두르며 변화무쌍한 앤디의 검을 막아보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했으나 끝내 역부족이었다.

마나가 달리는 몇몇은 부서지며 산개하는 검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고, 그나마 검에 내력을 실어 방어한 자는 검이 부서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피를 뿜으며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단 한 수에 불과했지만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두가 쓰러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가슴, 복부, 옆구리, 귀, 코, 입 어디 한 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앤디가 레오나 공주를 보며 물었다.

“공주, 나 잘했져?”

“응! 우리 자기 최고야!”

“움홧홧홧!”

한참을 웃어젖히던 앤디가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기 시작했다.

서벅서벅.

부드러운 모래가 앤디의 발을 반겼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지. 네 죄를 네가 알고 있으렷다!”

‘사, 살려….’

너무 무서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움찔움찔.

앤디의 눈이 번쩍이며 음흉 돼지 녀석을 노려보았다. 음흉 돼지 녀석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그때, 음흉 돼지 녀석에게 다가서던 앤디가 잠시 멈춰 섰다.

“아 참! 공주, 잠시만 시선을 돌려줘.”

“응? 왜 그러는데?”

앤디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공주 정신 건강에 해로운 장면이 연출될 것 같거든.”

그 말은 레오나 공주를 향한 말이라기보다는 음흉 돼지 녀석이 들으라고 한 말에 가까웠다. 감히 자신의 여자를 건드린 녀석을 조금이라도 더 괴롭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앤디의 뜻대로 그 말을 들은 음흉 돼지 녀석이 마른침을 삼켰다.

녀석은 지금 상황이 꿈일 거라고 생각했다.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 그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하늘이 선물을 내려 주었다. 바로 앤디의 발바닥이었다.

앤디가 음흉 돼지 녀석의 안면에 드롭킥을 날린 것이다.

뿌억!

“…!”

비명도 없었다. 그 고통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음흉 돼지 녀석은 다시금 앤디의 발이 자신의 안면을 향해 날아오고 있음을 몸으로 확인했다.

퍼억!

음흉 돼지 녀석의 모가지가 휙 돌아가며 몸이 들리더니, 그대로 한 바퀴 회전하여 바닥에 엎어졌다.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랐는지 앤디는 어디서 주워온 몽둥이를 양손에 들고 다가왔다.

“나는 여자를 괴롭히는 놈들이 정말 싫어. 그런데 그런 내 앞에서 내 여자를 건드리다니. 흐흐흐흐! 네 썩어빠진 정신이 개조될 때까지만 패주마. 괜히 피하지 말고 잘 맞아라. 안 그러면 예상치 못한 곳 맞고 병신 될지도 모른다!”

번쩍!

앤디의 눈빛이 빛을 뿌린 순간, 몽둥이를 들고 있던 양손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퍼버버버버버버거버거버거! 퍽퍽퍽퍽!

“…!”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아픈데 아파서 아프다고 말도 못할 정도였다. 기절을 할 것만 같은데 너무 아파서 기절도 할 수가 없었다. 죽을 것만 같은데, 빠져나가야 할 혼이 몽둥이찜질에 붙잡혀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이, 이것이 뼈와 살이 분리된다는 것인가….’

조금 전부터 다가와서 손짓하던 사신이 기다리기 지루한지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치 그 전에는 끝나겠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음흉 돼지 녀석의 모든 분노가 눈앞의 사신에게 향했다.

‘뭐, 저런 쌍쏠레이션 같은 새끼가 다 있어! 사신이 저래도 돼? 저거 직무 유기 아냐!’

순간 눈앞에서 사신이 사라졌다. 확실히 정신을 잃은 것이다.

“…꽥!”

2

“아니, 누가 감히 내 아들을!”

레비탄 백작의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자신의 사랑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니라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맞았다. 전신에서 멀쩡한 곳을 찾는 것보다 멀쩡하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더 쉬워 보일 지경이었다.

막말로 개걸레가 돼서 돌아온 것이다.

너무 화가 난 탓에 혈압이 올라 쓰러지고야 말았다.

신관이 와서 손을 써준 후에야 레비탄 백작은 겨우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신관은 레비탄 백작이 제정신을 차리자, 그의 자제인 도나르도 준백작에게 다가가 치료 마법을 전개했다.

몸 상태가 워낙 개판인지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사이에 레비탄 백작이 이를 갈고, 또 갈았다.

“절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신관이 땀을 흘리며 말했다.

“치료가 끝났습니다.”

“수고했네. 헌금은 집사에게 받아가게.”

“샤이하드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신관이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 쓰러져 있던 도나르도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 으음.”

다급하게 다가간 레비탄 백작이 말을 걸었다.

“아, 아들아! 정신이 드느냐?”

“….”

도나르도가 멀뚱히 아버지 레비탄 백작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이게 웬일인가! 자신의 아들 도나르도가 화들짝 놀라 이불 속으로 파고들더니,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닌가!

“크아악!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어헝! 어헝!”

뜻밖의 상황에 모두가 당황했다.

평소 당당하다 못해 건방지기까지 한 도나르도의 나약한 모습 때문이었다.

“아들아! 왜 그러느냐!”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엉엉엉!”

“아들아! 여긴 아무도 없다!”

“저, 정말인가요?”

“그렇단다.”

“믿을 수 없어요! 히익! 그 녀석 발소리가 들려요! 녀석이 몽둥이를 휘두르는 소리도 들려요! 살려 주세요! 어서 빨리 저 녀석을 쫓아주세요!”

“알았다! 알았다! 이놈아! 썩 꺼져라! 됐다. 녀석이 갔다.”

그 연기가 효과가 있었던 것인가. 그제야 잠잠해진 도나르도였다.

뒤늦게야 이불 밖으로 눈만 동그랗게 내놓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기가 찼으나, 얼마나 끔찍한 봉변을 당했으면 이럴까 싶어 걱정스럽기도 했다.

함께 나갔던 호위 기사 10명도 떡이 되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레비탄 백작은 화가 났다.

‘쓸모없는 자식들!’

그런 녀석들에게 봉급을 주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아들이 우선이었다.

“봐라. 이제 없지 않느냐.”

“으으!”

덜덜덜덜덜덜!

도나르도는 아직도 불안해 보였다.

곧 그 괴물 같은 녀석이 주위에 없음을 확신한 후, 조금씩 몸을 밖으로 뺐다.

도나르도는 갑자기 억울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우우!”

자신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그런 치욕을 당해야 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도나르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보며 레비탄 백작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울다가 지친 도나르도를 방에 놔두고 레비탄 백작이 분을 터트렸다.

“우리 아들을 건드린 불한당 녀석을 당장 찾아내 잡아들여라! 당장!”

밥을 먹으면서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던 와중, 레오나 공주의 이야기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클라우저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 우리가 없는 사이에 그런 재미난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물론 쉐리에게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안젤른과 파프도 한마디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어떻게든 보필을 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모두가 한마디씩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앤디와 레오나 공주는 양손을 가로저었다.

“별일 없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번 일로 저들이 다시 자신들에게 달라붙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붙게 되면 둘이 노는 데 방해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괜히 신경 쓰인다.

분위기가 약간 무거워진 듯하자, 상황을 전환하기 위해 레오나 공주가 렐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어땠어요? 마느웰 제과점, 그곳의 쇼트케이크는 정말로 맛있던가요?”

순간, 렐리와 쉐리의 표정이 몽롱하게 변했다.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그런 맛이 나올 수 있는지, 아직도 그 맛이 잊히지 않아요.”

“완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데… 그 달콤함과 촉촉함은…. 꺄아!”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는 표정이었다.

레오나 공주는 단지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렐리와 쉐리의 반응을 보고 회가 동하고 말았다. 내일 앤디를 데리고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렐리와 쉐리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 갔으니 내일은 가지 않겠지?’

사실 모두 어울려서 노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앤디와 단둘만이 즐기고 싶었다.

여자의 마음이란….

식당 문이 열렸다. 식당 주인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응?”

식당 주인이 당황했다. 전신에 깁스를 한 사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내는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식당 주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물었다. 이렇게 생긴 녀석들 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어느덧 가게 안으로 들어찬 사내들. 아무리 봐도 밥 먹으러 들어온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식당 주인은 자신의 목 아래를 겨누고 있는 단검의 예기를 느끼며, 최대한 신경을 거슬리지 않도록 천천히 손가락을 펴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앤디와 일행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신에 깁스를 한 사내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더니 웃음을 흘렸다.

이어, 뻣뻣한 움직임으로 걸어서 앤디들의 뒤로 갔다. 그리곤 안젤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오호! 모두 여기 계셨었구만. 큭큭큭! 찾느라 힘들었다고.”

전신 깁스의 사내는 국경 근처 영지 골목에서 안젤른과 파프에게 두들겨 맞았던 루사벨이었다.

루사벨은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안젤른과 앤디들을 내려다보았다.

안젤른은 자신의 어깨에 올라온 손을 보고는 다짜고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은 정확하게 루사벨의 안면을 강타했다.

뻐억!

“꾸웩!”

쿠당탕탕!

전신 깁스를 하고 있던 루사벨이 종이 인형처럼 펄럭이며 날아가, 식당 바닥 한가운데에 비참한 모습으로 찌그러졌다.

한순간의 정적.

모두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눈만 껌뻑였다.

그때, 루사벨이 벌떡 일어나 고통을 호소했다.

“으아아아악! 아이구! 아파! 아파 뒤지겠네! 이 망할 놈아!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기습을 해!”

안젤른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 미안. 난 때려 달라고 얼굴을 들이댄 줄 알았지. 그럼 지금은 네가 말을 꺼냈으니 패도 되는 건가?”

움찔.

루사벨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주위에 자리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았는데, 어느새 원래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저런 것들을 수하라고….’

갑갑했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저놈들이 없으면 피곤한 일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말이다.

루사벨이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보였던 위압적인 자세를 지우고, 약간 낮아진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내가 볼일이 있는 게 아니다. 높으신 분께서 네 녀석 옆에 있는 놈을 찾아오라고 하셨다.”

안젤른은 그놈이 누군지 고개를 돌린 후, 그놈이 앤디를 지칭하는 것임을 깨닫고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감히 주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젤른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 앤디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 나를 데리고 오라 했다고? 그게 누군데?”

“흥! 몰라도 된다!”

“그럼 안 가.”

앤디가 그렇게 말하고 음식을 들자, 모두 다시 자리에 앉아서 먹던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욱한 루사벨이 언성을 높였다.

“따라오라니까!”

앤디가 귀찮은 표정으로 안젤른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듯 말이다.

안젤른이 각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맞고 갈래, 그냥 갈래?”

그러자 루사벨이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바보라 해도 저들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몸으로 깨달은 상태가 아닌가.

차릉!

그때, 문이 열리고 땅딸만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놈이 이곳에 있다고?”

루사벨이 힘겹게 몸을 숙이며 대답했다.

“오셨습니까!”

“어디에 있느냐.”

“저기, 저기에 있습니다.”

“오냐. 수고했다.”

저벅저벅!

사내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서 앤디의 뒤로 갔다.

“큭큭큭! 뒤통수만 봐도 네 녀석인 것을 알겠도다!”

사내는 조금 전 루사벨이 안젤른 뒤에 가서 어깨에 손을 올린 것처럼 앤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어디서 대본이라도 읽고 온 것처럼 같은 대사를 읊었다.

“오호! 모두 여기 계셨었구만. 큭큭큭! 찾느라 힘들었다고.”

사내는 여유 어린 표정으로 앤디와 레오나 공주를 내려다보았다.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레오나 공주의 얼굴에 불쾌감이 어렸다.

“앗! 음흉 돼지!”

사내는 바로 어제 자신을 추행하던 그 음흉 돼지였기 때문이다.

음흉 돼지 녀석이 레오나 공주를 향해 화를 냈다.

“누가 음흉 돼지냐! 난 도나르도라는 이름이 있다!”

앤디가 도나르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은 정확하게 도나르도의 넙대대한 얼굴을 강타했다.

뻐억!

“꾸웩!”

쿠당탕탕!

넙대대한 얼굴을 맞은 도나르도가 양배추 인형처럼 데굴데굴 굴러가, 식당 바닥 한가운데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찌그러졌다.

앤디가 한마디 했다.

“뭐가 잘났다고 떠드는 거야? 쯧!”

한순간의 정적.

사람들은 의아했다. 이 장면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사람들이 ‘이런 걸 데자뷰라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장면을 연상하고 있기가 무섭게,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도나르도가 벌떡 일어나 고통을 호소했다.

“으아아아악! 아이구! 아파! 아파 뒤지겠네! 이 망할 놈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기습을 해?”

앤디가 심드렁하게 대꾸해줬다.

“아, 미안. 네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 마! 내 얼굴은 보지도 않았잖아! 그리고 그게 미안한 사람의 표정이냐!”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도나르도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 자식이!”

화를 터트리던 와중에 앤디가 슬쩍 움직이자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는 변명을 했다.

“아, 다, 다리에 쥐 났다. 쥐가 나서 뒷걸음질을 했네.”

어색하기 그지없는 어투.

마치 막 연기자가 되겠다고 지망하는 사람이 대본을 국어책 읽듯이 읽어 내려가는 것과 같은 어투였다.

“지, 진짜다. 아이구! 다리 저려.”

“….”

뭐라고 대꾸해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저럴 기세인지라 앤디가 한마디 해줬다.

“어, 알겠어. 다리가 저렸구나.”

“겨, 결코 네 녀석이 무서워서 뒷걸음질 친 것이 아니, 아니다!”

“그래그래.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냐? 또 맞을라고?”

순간, 도나르도가 무시하는 것처럼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오나 공주를 슬쩍 본 후에,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벗어서 앤디의 안면을 향해 던졌다.

앤디가 목이라도 푸는 것처럼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장갑이 앤디를 스치지도 못하고 바닥에 뚝 떨어졌다.

도나르도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로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내뱉을 말은 내뱉었다.

“겨, 겨, 겨, 결투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라고 했던가?’

레비탄 백작은 생각했다. 그리고 억지스럽게 감았던 눈을 떴다.

눈물이다.

바로 후회의 눈물.

어째서일까? 레비탄 백작의 눈에 후회와 두려움이 가득히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며 녀석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전까지는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망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채챙!

“으아아악! 살려 줘!”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

처음에 아들의 대타로 나선 기사가 패배했을 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자신을 모시는 기사들과 병사들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어떻게 해도 저들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칼도 방패도, 하다못해 오러조차도 저들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단 8명밖에 되지 않는 저들을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문밖에서 도망치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레비탄 백작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도망칠 곳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석에서 떨고 있는 망할 아들놈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킥을 날리고 말았다.

“크헥!”

“뭐가 잘났다고 비명이냐! 뭘 잘했다고 아프고 지랄이냐!”

“끄악!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고정은 개뿔! 망할 놈의 자식새끼!”

“아, 아버님께서 시키신 대로 한 것 아닙니까!”

“이 자식이 뭘 잘했다고 큰 소리냐! 큰 소리가!”

그때, 문이 굉음을 내며 들썩거렸다. 벌써 그들이 밖에서 문을 부수고 있는 것이리라.

쿵! 쿵! 와지직!

문이 단숨에 박살나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살기와 함께 음침한 웃음소리가 등 뒤를 엄습해왔다.

“큭큭큭큭큭!”

“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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