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33화 (46/68)

제3장. 브라키우드

1

“영주님.”

“말하십시오.”

앤디의 반응에  엘버트가 말문을 열었다.

“혹시 ‘브라키우드’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브라키우드?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그가 왜요?”

“바론 산맥에 관해 개인적으로 조사를 하다가, 영주님께서 호기심을 가지신 부근에 과거 드래곤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내용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드래곤?”

앤디가 몸을 틀며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드래곤이 지금 사태와 뭔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정보 하나하나가 힘이 되는 법입니다.”

앤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군요. 경의 말이 옳습니다. 그런데 브라키우드라는 자가 누굽니까?”

“천여 년 전에 그 부근에 둥지를 틀었던 드래곤의 이름입니다.”

“흠….”

“만일 정말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면 지금의 현상에 대해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드래곤에게는 생명을 지닌 존재들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드래곤 피어라는 기술입니다. 만일 그 기술을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면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그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 설명이 됩니다.”

엘버트의 말에 앤디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은 드래곤이 정말로 자리했다면 몬스터 무리가 산맥에 살고 있는 것보다 인간들에게 더 위험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드래곤이 있다는 가정하에 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만일 드래곤이 자리를 하고 있다면 해결할 방도는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드래곤은 금과 보석류를 좋아하는 종족으로….”

“백성들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을 그따위 거대 몬스터에게 바치라는 말인가요?”

“제가 말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오라….”

앤디가 말을 막았다.

“무슨 뜻인지 이해합니다. 경의 뜻을 오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하튼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버트가 몸을 숙이며 예를 주고받았다.

“언제 출발하실 예정입니까?”

“내일 오전 중에 출발할 것입니다.”

“정말 열 명으로 충분하시겠습니까?”

“전투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조사를 하러 가는 것입니다. 빠르게 움직이려면 최소의 인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앤디는 일행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내려갔다. 저택 앞에 자리하고 있던 10명의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10명의 일행에 쉐리와 렐리, 루슬란과 클라우저가 포함되어 있었다.

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왕실에서 온 기사 둘과 산맥을 돌며 약초를 캐는 약초꾼 둘, 사냥꾼 한 명과 발이 빠른 전령 하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앤디는 모두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기다렸다고, 앤디 군!”

쉐리가 기쁜 표정으로 앤디를 반겼다. 그러다 주위의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을 느끼고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기사들과 영지민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들이 어째서 저런 눈빛을 던지는지 깨달은 쉐리가 말을 재빨리 정정했다.

“여, 영주님.”

그런 쉐리의 모습에 앤디가 하하! 웃었다.

“그렇게 딱딱하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자 뒤에 자리하고 있던 집사가 대답했다.

“각자의 위치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영주님께서는 너무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러다 수하들이 영주님을 우습게 볼 수도 있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스스로를 높이실 필요가 있습니다.”

앤디가 머쓱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을 쓰도록 하지요.”

집사는 조금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는 않았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일행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바론 산맥 입구에 들어선 앤디가 약초꾼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약초꾼들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아이구! 영주님, 말씀 놓으십시오. 소인이 불편합니다.”

“알겠네.”

그제야 약초꾼들이 말문을 열었다.

“저희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이곳은 지도에 그려진 것과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쉐리의 물음에 약초꾼 하나가 대답해주었다.

“저희가 가는 길은 일반로와 다르지만 지름길입니다.

지도에는 미처 그려지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지도로 봤을 경우 길인 듯하지만 직접 가보면 길이 아닌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그 한마디에 모두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나갔다.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졌다. 모두들 주변을 둘러본 후에 노숙할 자리를 잡았다.

“여기 어때요?”쉐리의 말에 루슬란이 대답했다.

“그래. 여기가 괜찮겠군.”

산지로 둘러싸여 주변보다 낮은 지형의 분지로, 넓은 공터로 시

야가 확보되며, 저녁의 싸늘한 산바람이 흘러들어오지 않을 좋은 장소였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리가 잡히자 약초꾼들은 먹을 만한 것을 캐왔고, 전령들은 주위의 보초를 섰다.

앤디 역시 손수 몸을 움직여 고구마 같은 것을 캤다. 모두들 앤디의 그런 모습에 사색이 되어 말렸지만, 앤디는 웃으며 넘어갈 뿐이었다.

반면에 기사들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결코 편하지 않은 바늘방석이었다. 영주도 직접 움직이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치를 살피다가 루슬란과 클라우저가 주워오는 장작을 보고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하나씩 일을 맡은 덕에 빨리 정리가 되었다.

충분한 식사를 하고, 앤디가 어디선가 캐온 고구마로 후식까지 마치자, 모두 행복하기 그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주 앤디와 동석에서 식사를 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맛있는 후식까지 먹다니.

“그날이 생각나네.”

클라우저의 말에 쉐리와 렐리, 그리고 루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날도 고구마를 먹었었지.”

쉐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앤디를 향했다. 앤디는 어깨를 으쓱이며 들고 있던 고구마를 베어 물었다.

“그런데 앤디 군, 아니 영주님은 어떻게 이런 고구마를 이토록 잘 캐는 거지?”

“그러게. 냠냠!”

노골적으로 주시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척하는 쉐리와 일행들이었다.

앤디는 그 노골적인 시선을 받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새벽이 왔다.

앤디와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천천히 이동해나갔다.

돌아가며 보초를 섰지만, 몬스터의 터럭 하나 구경하지 못했다.

정말 바론 산맥에 몬스터들의 씨가 마른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군. 이 산맥에서 몬스터 흔적도 볼 수 없다는 게.”

클라우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약초꾼들이 공감했다. 지금까지 반평생을 바론 산맥에서 약초를 캐고 살아왔기에,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정오가 지났다.

기사 하나가 특정한 누구를 지칭하지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얼마나 더 가면 되지?”

그러자 약초꾼과 같이 길을 안내하던 사냥꾼이 대답했다.

“지금 속도로 치면 이틀 정도 지나봐야 도착 예정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가?”

“지금 저희가 걷고 있는 위치는 바론 산맥의 끝자락에 불과합니다, 기사 나으리. 거리로 따지면 어제 하루 종일 걸은 것보다 조금 긴 수준이지만, 지금부터는 길이 아예 없습니다. 만들어서 걸어 나가야 하지요. 그 시간을 따졌을 때 이틀을 잡은 것도 무리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생각 이상이로구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클라우저가 혀를 찼다.

렐리가 말했다.

“힘들어?”

“누가 힘들데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클라우저가 인상을 쓰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자, 기사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렐리가 피식 웃었다. 너무도 속이 보이는 그들의 행동이 귀엽게 느껴졌던 탓이다.

쉐리도 그런 그들의 모습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때 앤디가 말했다.

“잠시 쉬었다 가죠.”

모두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주저앉았다. 앤디들의 존재감에 놀란 새들이 푸드덕! 하며 날아 올라갔다.

정오의 강렬한 햇살이 우거진 나뭇잎을 뚫고 나왔다.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환한 빛줄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장관이었다.

적당하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마음에 들었다. 그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간지러운 소리를 흘렸다.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눈을 감고 음악과도 같은 수많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기사가 앤디에게 다가와서 지형도를 펼쳤다.

눈을 뜬 앤디가 한참 지도를 파며 대략적인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 위치가 이 정돈가 보군.”

사냥꾼과 약초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빛을 보였다.

짧은 시간 숨을 고른 앤디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시 출발하죠.”

그 한마디에 지금까지 잠시 축 처졌던 일행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2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되는 날이었다. 수색 지역에 들어서고부터 일행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지나오고 봐온 숲들과 다른 게 없는 것 같은데, 뭔가가 확실하게 달랐던 것이다.

뭐가 다른 건지 한참을 고심하다가 깨닫게 되었다.

처음으로 깨달은 쉐리가 말문을 열었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소리가 없어.”

클라우저가 질문했다.

“소리? 무슨 소리?”

“풀벌레 소리나 새소리 같은 거.”

모두가 인상을 구기고 주위에 귀를 기울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바람 소리나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 거대한 숲이 고요함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버리자 불쾌한 감으로 인해 곤두서 있던 신경이 이번에는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없는 이유와 동일한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앤디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일행 중 유일하게 앤디만이 태연한 모습이었다. 아니, 태연한 것을 넘어 호기심이 충만해 보였다.

‘호오! 이거 신기한데? 마나의 흐름이 멈춰 있다니….’

자연의 기운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기와 같이 끊임없이 흐른다.

그런 마나가 이곳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바람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의 흐름이 없으니 바람 소리조차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정체된 공간인 것 같았다. 누군가 인위적인 작업을 했다는 뜻이다.

‘정말 드래곤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앤디가 머리를 가로저으며 스스로의 생각을 비웃었다.

“드래곤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앤디의 혼잣말을 들은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렐리의 입에서 의문사가 흘러나왔다.

“드래곤이요?”

“아, 아닙니다. 혼잣말이에요.”

그러나 그 말이 나오고 나서부터 사람들의 행동이 굼떠졌다. 그들의 반응을 확인한 앤디는 혀를 찼다.

그렇게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조금씩 시야가 흐려진다 싶더니, 어느 순간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의 안개가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때, 앤디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급하게 일행들에게 주의를 던졌다.

“이건 자연적인 안개가 아닙니다. 최대한 내 근처에 붙어서 이동을 하세요.”

“자연적인 안개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사의 물음에 앤디가 대답했다.

“우리가 절진에 빠진 것 같습니다.”

낯선 단어에 모두가 의아한 모습을 보였다.

“절진이요? 그게 뭡니까?”

“함정 같은 것을 말합니다.”

“함정이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조금만 조사한다는 것을 생각보다 깊이 들어온 모양이군요.”

“그, 그럼 어떻게 합니까?”

약초꾼의 불안한 목소리에 앤디가 씨익 웃어줬다.

“크게 걱정할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눈을 현혹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위해를 가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러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드레이의 제자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앤디의 말은 거짓이었다. 일행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악질이었다. 아무리 봐도 빠져나갈 길 자체가 없었다.

마나의 흐름이 이질적으로 꼬여 있는 것을 느끼며, 확신하건대 영원히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헤매다가 죽으라는 악의가 느껴졌다.

그러나 앤디는 코웃음을 쳤다.

이미 전생에 진법에 대한 모든 공부를 섭렵하다 못해 자신만의 이론을 창안한 그다.

무엇보다 마나의 흐름을 파헤치는 데 유운신공을 익힌 앤디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가 누가 있을까.

앤디는 진법에 비하면 위험한 장난 수준에 불과한 이 안개 속을 빠져나가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앤디의 뒤를 따라 몇 걸음 옮기자, 영원할 것 같았던 희뿌연 세상이 서서히 옅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 안개 속을 벗어나게 된 일행들은 앤디가 말했던 함정이라는 말에 의문을 품었다. 괜히 별것 아닌 걸로 자신들을 겁준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두들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언제 안개가 있었냐는 듯 저 멀리까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뭐, 뭐야? 이건?”

사람들은 처음 보는 특이한 현상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때 클라우저가 일행들을 멈췄다.

“잠시만.”

“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발걸음을 뒤로 옮기는 것이었다.

클라우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다시 자신의 전신을 가득 메우는 안개를 확인하게 된 탓이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일행들은 클라우저가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해! 어서 오지 않고!”

쉐리의 외침에도 클라우저는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클라우저가 허우적거리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쉐리가 짜증을 부리며 클라우저를 향해 걸어가던 찰나, 자신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온 것을 느끼고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니 앤디였다.

“멈춰요.”

“예?”

이해하기 힘든 앤디의 말에 쉐리가 의문 어린 표정을 드러냈다.

“위험해요.”

“뭐가요?”

“그렇게 무방비로 들어가면 저 꼴이 되거든요.”

앤디의 말에 쉐리를 비롯한 일행들이 클라우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뜬장님이라도 된 것처럼 허우적거리거나,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엉뚱한 곳으로 옮기는 클라우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클라우저가 왜 저러는 거죠?”

“함정이라고 말했었잖아요.”

그 말을 남기고 앤디가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클라우저가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가더니, 그의 어깨를 잡고 자연스럽게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클라우저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루슬란의 물음에 클라우저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뭐,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저쪽으로 걸어가자 갑자기 안개가….”

“안개? 무슨 소리야? 너 저기서 혼자 허우적거리더니만.”

클라우저가 설명을 하지 못할 것 같자 앤디를 바라보았다.

“저쪽 전 지역에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일행들은 앤디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앤디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한 상황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모두들 정신이 없어서 앤디가 말한 전 지역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방향 상실 마법만을 걸었다 해도, 저 넓은 지역을 포괄할 정도라면 아무리 안드레이라 해도 힘들 것이다.

앤디가 말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뭔가는 없지만,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구에 저런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은 일종의 경고인 것 같군요.”

“그럼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렐리의 물음에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 안에 있을 존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을 환영하는 이는 아닌 것 같군요.”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앤디가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일행을 줄여 보도록 하죠.”

“일행을 줄인다고요?”

“이제 이곳이 위험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무리해서 모든 일행을 끌고 갈 수는 없죠.”

그러자 기사들이 앤디의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주인인 앤디를 놔두고 내려갈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본 쉐리와 렐리, 클라우저와 루슬란도 앤디의 뒤로 옮겼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듯 보였다.

모험을 즐기는 용병들로서 이런 흥미진진한 상황에 빠질 수가 없었다.

앤디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스스로를 지키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충!”

각자의 개성 넘치는 대답을 들은 앤디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들을 보내고 돌아오지요.”

지금까지 길 안내를 해주었던 약초꾼과 사냥꾼, 그리고 전령을 데리고 아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약초꾼과 사냥꾼, 전령은 갑작스럽게 밀려든 안개에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앤디의 안내를 받고 무사하게 자리를 벗어난 약초꾼들과 사냥꾼은 영주인 앤디에게 예를 보인 후 하산하기 시작했다. 잠시 남은 전령은 앤디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앞서 걸어가고 있는 그들의 뒤를 따라 함께 내려갔다.

3

“조심해요. 이곳을 밟으면 몸이 폭사할 것이고, 이곳을 멋모르고 그냥 지나치면 몸통이 잘릴 겁니다.”

꿀꺽!

그 말에 일행들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앤디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평소와 같이 평범한 앤디의 목소리는 흡사 장난을 치는 것 같았지만, 누구 하나 앤디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특히나 클라우저는 앤디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새겨들었다.

다른 이들처럼 반신반의하는 표정 따위는 짓지 않았다.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고, 하라는 것은 100퍼센트 실행했다. 한 번 겁을 먹은 탓이다.

지금까지 약 8백 미터를 전진하면서 지나친 6개의 트랩.

하나같이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처음 안개 마법진은 진짜 장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행들을 위협하지 못했다. 교묘하게 감춰져 있는 마법 트랩은 앤디의 고도로 발달된 신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곳의 주위를 돌며 이틀의 시간을 더 할애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방에 깔려 있는 마법 트랩 외에는 말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내려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면 이토록 방대한 범위에 마법 트랩이 깔릴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것이 앤디와 일행들의 발길을 잡았다.

앤디는 고심했다.

‘이런 트랩 마법이 깔려 있을 정도라면 다른 마법으로 숨기고 있을 수도 있지. 혹시 일루전 마법 같은 것으로 위치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거대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쉬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끄르르르르르르르!

신음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동물의 울음이라고 짚어 말하기도 힘든 소리였다.

모두들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죽이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끄르르르르르!

한참 후 다시 들리는 그 소리.

모두가 천천히 이동하며,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그런 소리가 나올 만한 자리가 없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자신들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지?”

클라우저의 한마디에 하나같이 긍정하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그런데 앤디가 자신들이 처음 쉬기 위해 올라섰던 바위로 가더니, 검을 뽑아들고 대각선으로 거침없이 내리그었다.

오러가 가득 맺힌 검이 그 거대한 바위를 쩌억! 소리가 날 정도로 매끄럽게 베어냈다.

거대한 덩어리가 퉁!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고, 그 뒤로 작은 굴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후, 기사들과 쉐리 일행들의 수고로 나머지 바윗덩어리가 치워지고, 작은 굴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끄르르르르르르르!

자신들의 오감을 자극했던 그 소리가 선명하게 고막을 울렸다.

“여기가 맞군.”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높이였다.

앤디를 시작으로 하나둘 몸을 숙이며 그 굴로 파고들어갔다.

그 굴은 생각 이상으로 깊었다. 1시간을 쭈그리고 들어갔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좁고 폐쇄된 듯한 장소에 오랜 시간 갇히자, 왠지 숨이 막히고 정신적 압박감으로 인해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참을 수 있는 것은, 군소리 없이 걷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서 힘을 얻어 나아가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저 앞에 있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소리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었기에 위안을 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굴의 넓이가 넓어지며, 상체를 꼿꼿이 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앞서던 앤디가 우뚝 멈춰 섰다.

일행들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 표정이 공포로 물들게 되었다.

거대한 생명체가 푸르스름한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들이 나오고 있는 구멍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끄오오오오!

거대한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목격한 기사가 당황하여 외쳤다.

“드, 드래곤!”

일행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드래곤이 움직이면서 동굴이 크게 흔들렸고, 그로 인해 앤디들이 들어왔던 작은 굴이 폭삭 내려앉아 무너지고 말았다.

모두들 재빠르게 이동하여 몸을 피할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야기가 갑자기 왜 이렇게 스펙터클해진 거야!”

클라우저의 한마디에 쉐리가 그놈의 주둥이 좀 다물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말을 할 겨를이 없어 해줄 수가 없었다. 피하느라 급급했던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피할 곳은 많았다. 수 시간 동안 기어 들어올 만했다.

엄청난 공동.

저 거대한 드래곤이 발광을 하고, 춤을 추고, 사방팔방 뛰어다녀도 충분한 넓이의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 공동 내부가 환했다.

녀석이 몸을 일으키며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앤디의 인상이 구겨졌다.

“저게 드래곤이라고?”

앤디의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혼잣말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들은 것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언데드? 언데드 드래곤?”

렐리의 혼잣말이 터져 나왔고, 앤디의 인상이 더욱더 구겨졌다.

드래곤은 드래곤이었지만, 제대로 된 드래곤이 아니었다.

녀석의 몸은 이곳저곳이 썩어서 문드러져 있고, 거대하고 위풍스러운 날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자신들이 들었던 그 의문의 소리는 저 언데드 드래곤의 숨소리였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언데드 드래곤이라는 말은 누군가 저 녀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닌가.

앤디의 머릿속에서 많은 가설들이 떠올랐다.

몬스터 부대와 저 언데드 드래곤이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대체 누가 저런 괴물을 만들어냈….”

렐리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녀석이 초록빛이 나는 희뿌연 눈동자를 빛내며 렐리에게 공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렐리는 특유의 민첩한 몸놀림으로 피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엄청난 위압감에 눌린 탓이었다.

“렐리!”

쉐리와 클라우저, 루슬란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터졌다.

쿠구구궁!

거대한 드래곤의 앞발에 렐리가 있던 부위가 움푹 파였다. 쉐리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레, 렐리 언니? 주, 죽은 거야?”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재빠르게 클라우저가 달려와 쉐리를 부축했다.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쉐리! 정신 차려!”

“레, 렐리 언니가… 렐리 언니가….”

“제길! 아주 넋이 나갔군.”

클라우저는 주위를 살피며 숨을 곳을 찾았다.

그러던 와중 클라우저의 눈에 앤디의 팔에 안겨 있는 렐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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