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26화 (26/68)

제5장. 영지전 (1)

1

두 번째 첩자가 있는 영지 마르디가에 들러 간단하게 정리하고, 세 번째 첩자가 있는 카르오네 영지를 향해 왕실 기사단은 당당한 보무로 이동을 시작했다.

왕실군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도 자신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들떴다. 자신들 앞에 안드레이와 앤디라는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둘만 있으면 그 누가 와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최연소 소드마스터라는 이름만 들었던 기사들도 앤디의 신위를 보고 감탄하고, 경외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르만 왕국의 첫 번째 소드마스터이며, 최연소 소드마스터이기까지 한 앤디.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의 자랑, 아니 헤르만 왕국의 자랑이 되어버렸다.

“이제 곧 이 쥐 잡기 놀이도 끝나겠군.”

안드레이의 말에 앤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두 놈이나 더 남았잖아요. 이번에 잡고 또 한 놈.”

“그렇지.”

“그런데 곧 끝나다니, 무슨 말이에요?”

“지금 두 놈이 연합을 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다.”

“잘됐네요.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안드레이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앤디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앤디가 말했다.

“뭐예요, 그 눈은?”

“네 징글맞은 속 좀 읽어보려고 그랬다.”

“제가 숨기는 게 뭐가 있다고 읽고 말고가 어딨어요. 그건 그렇고, 제가 어디가 징그럽다는 말입니까?”

앤디가 애써 귀여운 척을 하며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드레이가 말했다.

“그런 꼴이 징그럽다는 말이다.”

앤디가 울컥했다.

그때 셀린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둘이 또 싸우신다.”

“아냐. 이번에는 요 녀석이 먼저….”

“아니에요. 이번에는 스승님이 먼저….”

서로 마주 보는 앤디와 안드레이의 두 눈이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아이 참, 그만 좀 하라구요.”

셀린의 목소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왠지 움찔한 앤디와 안드레이가 대답했다.

“네.”

“그, 그럴까?”

그리고 둘은 입맛을 쩍 다시며 시선을 회피했다.

이로써 38차 사제 전쟁이 개시도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왠지 아쉬운 두 사제였다.

왕실군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좁은 협곡 반대편에 5천에 가까운 병사들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최고의 장소군.”

“저들로서 할 수 있는 최후의 발악이라 볼 수 있지. 물러설 곳도 없고, 그대로 있다간 대놓고 목을 줘야 한다고 판단을 했을 테니 말이야.”

앤디와 안드레이의 대화에 셀린이 질문했다.

“저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그녀의 의문에 앤디가 반응했다.

“뭐가 말이죠?”

“자신들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더 안에 숨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할 만도 하죠. 사실 그게 틀린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왜 나온 거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여러 가지 이유요? 그게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까요?”

“어리석은 이야기죠. 그 여러 가지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엮여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 테니까요.”

“저 시간 많아요.”

셀린은 그 한마디로 자신의 호기심을 잔뜩 드러냈다.

앤디는 안드레이를 한 번 보고는 귀찮은 듯 시선을 회피하는 스승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시작은 저들이 우리의 존재에 두려움에 떨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저들을 뒤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이 이번 상황을 기회로 잡았다는 것이죠.”

“어떤 기회를 잡았다는 말이죠?”

“생각해보세요. 우리 왕국과 적대적 감정을 유지하고 있을 나라들에게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보일지를 말이에요. 맛깔스러운 먹이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다 정도일 거예요. 헤르만 왕국을 헤르만 왕국의 국력으로 친다. 이 이상의 계략이 어디에 있겠어요. 손 안 대고 코 푸는 형식인 거죠.”

“그렇… 겠군요.”

셀린이 조금은 납득하기 힘들어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 첩자를 잡겠다고 나선 왕국군이 분노에 눈이 멀어 검을 들고 일어났어요. 첩자들은 살겠다고 발악을 하고 있고요. 이때 약간의 충돌질만 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어요?”

“아! 이제 이해를 하겠어요!”

“자신들의 첩자들의 불안감을 최대한 조성하여 우선 힘을 다해 막고 있어라, 그러면 구해주겠다, 라는 식으로 꼬였겠죠. 가만히 숨어 있겠다고 하면 두 번째 첩자가 잡힌 상황을 예시로 들어, ‘앞의 녀석을 봐라. 잡히면 죽는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을 것이냐?’라고 말을 했을 거예요. 그럼 첩자들이 질문했겠죠.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고. 대답은 뻔하죠. ‘도망치기엔 늦었다. 이미 국경선 쪽은 강화되어 너희가 빠져나올 틈이 없다. 차라리 왕국 내부에 군대를 일으켜라. 그 군대로 왕국군을 막아라. 그렇게 되면 나라 안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혼란을 만들면 우리가 너희만은 빼내는 방법을 강행하겠다.’”

“그 말을 믿을까요?”

“믿을 거예요. 아니, 정확하게는 믿지는 않겠지만, 믿어보려고 하겠죠. 그 결과가 저것이죠.”

저 반대쪽에 우글거리고 있는 5천여 명의 병사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스스로를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가만히 있다간 죽는 것이 확실할 것 같고, 왠지 저들이 말하는 혼란을 만들어 틈을 봐 빼돌려 주겠다는 말은 그럴듯하거든요.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일을 하고자 하겠죠. 누구에게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셀린은 앤디의 말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셀린이 앤디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저들과 싸우실 건가요?”

“어쩔 수 없잖아요. 왜요? 다른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그건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게 이용을 당해 이런 상황까지 온 저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싶어서요. 같은 식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피를 흘려야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파서요.”

셀린의 말에 앤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무슨 대책이라도 있으세요?”

“뭐, 대책 비슷한 것은 있죠.”

셀린이 기쁜 표정으로 앤디에게 되물었다.

“그게 뭐죠?”

앤디는 팔을 안쪽으로 굽힌 후,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 사인을 이해하지 못한 셀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저요.”

“앤디요?”

“예, 제가 바로 대책이에요.”

“그, 그게 대체 무슨….”

씨익.

“지켜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스승님! 지원 부탁드릴게요!”

앤디의 이야기에 언제 다가왔는지 양팔을 걷어붙이고 있던 안드레이가 대답했다.

“걱정 말아라!”

“지원하신다고 쏘시다가 괜히 저 맞히실 것 같으면 그냥 계시는 것도….”

안드레이가 울컥했다.

“이 자식이 나를 뭐로 보고!”

“하하핫!”

순식간에 앤디의 신형이 눈앞에서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안드레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최소의 피해를 위해 택한 방법이긴 했지만, 자신의

제자의 목숨이 위태로운 이 작전을 실행한다는 것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다 피식 웃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걱정을 덜어주

기 위해 ‘배려’를 한 앤디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던 탓이다.

안드레이의 입에서 조용하지만 힘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뒤는 걱정 말아라.”

그리고 그의 팔이 처음으로 허공을 휘어 감으며 수결을 맺어 보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엄청난 마나가 안드레이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2

첩자들이 끌어 모은 병사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반란 제압을 위한

연합군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에 대립해 서 있는 거대 병력을 오히려 반란군으로

착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 이런 병력을 어떻게 모을 수 있다는 말인가.

대병력이 자신들의 앞을 막고 있었지만, 왕을 지키기 위해 모두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들이 순간 웅성이기 시작했다.

“저, 저건 뭐야?”

“사람 같은데?”

“설마 혼자 여기로 뛰어오는 건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건 불가능하지. 죽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럼 전령인가?”

“깃대가 없잖아.”

“그런데 아무리 봐도 호의적인 몸짓은 아닌데?”

분명히 그의 말대로였다.

호의 어린 자가 달려오면서 검을 뽑아들고 오러를 밀어 넣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적대적인 존재임은 확실했다.

대응을 하기 위해 병사들도 착검을 시도했다. 그러다 하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멀리서 오는 것이라 정확한 거리 감각이 없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는데, 그 존재가 가까워질수록 지금 저기서 달려오고 있는 존재가 얼마나 대책 없는 속도로 달려들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속도에 놀라 대응하는 것도 잊고 입만 벌릴 뿐이었다.

그때 정신을 차린 한 병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오, 온다!”

모두가 허둥거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바로 그때 날아든 신형은 그런 병사들의 머리 위로 부웅 떠서 스쳐 지나갔다.

순간 엄청난 풍압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병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히익!”

병사들은 모르고 있다고 해도 수뇌부에 속하는 이들까지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명분도, 군력도 자신들이 모든 조건에서 불리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상황을 살폈다.

여차하면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꿍꿍이속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떨어진 콩고물을 다 주워 먹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단 말이오!”

“그럼 어쩌자는 말입니까! 정말 이대로 다 죽자는 말입니까!”

“죽긴 왜 죽는단 말이오! 조금만 버티면 그들이 온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그 조금이 대체 언제냔 말이지요!”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안에서 대책 회의를 하고 있던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체 어떤 녀석이 불길하게 비명을 지르고 지랄이야!”

모두가 분노 어린 눈빛으로 살기를 번뜩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상황에 의아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한 사내를 중심으로 자신 측 기사들이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검을 뻗은 채 견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이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단장의 외침에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기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저자가 이곳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저희가 막는 중이었습니다.”

“응? 갑자기 나타나다니?”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단장은 직접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네 녀석은 누구냐!”

본능적으로 나온 한마디에 사내가 대답했다.

“나? 앤디.”

“누가 그따위 것을 물었느냐! 정체가 무엇이냔 말이다!”

“첩자 잡으려고 온 사람이라고 하면 충분할까.”

순간, 몇몇 사람들이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다.

앤디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모두 체크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네 녀석들만 잡으면 된다는 뜻이군.”

그 말뜻을 알아들은 녀석들이 인상을 구겼다. 마치 저 사내 혼자서 자신들을 모두 잡을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어째서인지 눈앞의 사내가 하는 말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때 가장 소스라치게 놀라던 퉁퉁한 체구의 동글동글하게 생긴 귀족이 다급하게 외쳤다.

“다, 당장 저 녀석을 쳐라!”

순간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명이 떨어진 탓이다.

물론 그 전부터 잡을 생각으로 덤볐다가 피해를 입고 견제를 하던 중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명이 떨어졌다.

기사라면 목숨을 걸고 그 명을 이행해야 하는 법이다.

앤디는 그런 기사들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이번에는 손에 사정을 둘 생각이 없었다. 그만큼의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술에 능력이 있는 이들이 한 걸음씩 앤디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앤디가 입을 열었다.

“사정을 두지 않는 내 손속을 야속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모두 네 녀석들의 어리석음이 가져온 결과일지니.”

앤디는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능력을 해방할 생각이었다.

누군가를 봐주면서 자신까지 보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앤디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기사들이 움찔하며 반응하긴 했지만, 결코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그 상태로 다시 대립이 진행되었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앤디가 자신의 검을 움켜쥐고 오러를 밀어 넣기 시작한 탓이다.

쿠오오오오!

그의 검에서 완벽하게 정제된 순수한 오러의 검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푸른 광채를 내뿜으며 3미터 이상으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몸서리를 치며 경악 어린 시선으로 눈을 부릅떴다.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 공격하라!”

기사단장이 다급하게 외치자 기사들이 자신의 모든 진력을 짜내어 검에 오러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이미 앤디의 검은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웅!

쩌저저저정!

“크악!”

“으아아악!”

앤디의 검이 스쳐 지나는 곳의 모든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막아도 소용없었다.

“크아아아악! 내 팔!”

“괴, 괴물이다! 피해!”

검이 막고 있으면 검이 베어졌고, 나무가 막고 있으면 나무가 동강났으며, 그 범위 내에 사람이 있었다면 갑옷과 함께 통째로 몸을 베어 넘겼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쾌검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검속보다도 검을 휘두르고 있는 앤디의 신형이 더욱 빨랐다는 점이었다.

소름 끼치는 파공성을 만들어낸 앤디의 검은 순식간에 십수 명의 기사들을 도륙했다. 이곳에 있는가 싶으면 벌써 저곳에 가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서걱! 서걱!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지독할 정도의 오러 덩어리로 뭉쳐진 날카로운 검은 말이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손속이었다. 그가 조금 전 내린 경고는 추호의 빈말도 없는 진심이었던 것이다.

앤디의 정제된 오러를 싣고 있는 검은 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선불 맞은 멧돼지들처럼 앤디의 검을 피해 사방으로 움직였지만, 앤디의 폭풍과도 같은 검격을 피할 수 있는 이는 이들 중에 아무도 없었다.

앤디의 검은 인간의 힘으로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것이었다.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서 터졌다. 저항도 못하고 휩쓸린 기사들이 피를 흘리며 생을 마감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란지 앤디의 검은 허공을 수놓으며 다시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날아들었다.

기사들은 경악했다.

세상에 이런 힘이 있다니!

이것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허무맹랑할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막강한 파워를 접하게 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반란군 기사단을 이끌고 있던 단장이 이를 악물었다. 치아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말이다.

혼자서 치고 들어올 만도 했다. 단장은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을 내릴 정도였다.

“모두 한곳에 뭉쳐서 저 검에 대항하라! 두렵다 하여 내 뒤로 가는 자는 가차 없이 벨 것이다!”

흩어지던 기사들이 전신을 덜덜덜 떨면서 뭉치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휘둘러지는 앤디의 검!

처쩌저저저저저정!

6개의 검날이 부러지고, 앤디의 검이 멈춰 섰다.

“마, 막았다!”

기사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앤디가 그 모습을 보며 이죽거렸다.

“그래서?”

“응?”

다시 휘둘러진 앤디의 검.

슈카가가가가!

처적! 처적! 처저저적!

찰진 소음을 내며 앤디의 검이 자신의 검을 한 번 막아섰던 기사들의 몸을 가르며 날아갔다.

잠시 후, 육중한 소음이 울리며 기사들의 몸이 토막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그들은 숨을 거두면서도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사들은 지금에야 눈앞의 사내가 누군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소문이 자자한 헤르만 왕국의 자랑인 대마도사 안드레이의 제자 앤디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헤르만 왕국에 그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어째서 자신들을 습격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3

겁에 질린 귀족들이 턱을 덜덜 떨며 뒷걸음질 쳤다. 그 와중에도 용케 입을 놀려 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대, 대체 뭣들 하고 있단 말이냐! 어서 저 녀석을 막지 않고!”

“마, 막아라!”

하지만 누가 앤디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앤디의 모습은 닭장 안에 뛰어든 사자와도 같았다.

앤디가 움직이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닭들은 앤디라는 사자의 앞발과 이빨에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지금 닭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꼬꼬댁!’ 하며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으아악!”

“사람 살려!”

무엇보다 앤디가 다른 수를 쓰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뒤로 빠지고, 병사들을 앤디에게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앤디는 그 엄청난 수에 압도적으로 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릿수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는가.

베어도, 베어도 보충되는 엄청난 수의 병력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지치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앤디의 머릿속에 순간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다수를 섬멸하는 공격법이 그려진 것이다.

바로 파검술이 그것이었다.

파검술이란 마나를 버티지 못할 정도로 검에 밀어 넣어 폭파시키는 수법이었다.

그럼 그 폭발력의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간다.

죽지 않아도 전투력을 상실시키기에, 이처럼 떼로 덤벼들 때에는 최고의 공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앤디가 바닥에서 주운 검이 푸른빛을 머금다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오러가 과할 정도로 맺혀서 검이 반응하는 것이다.

“파!!”

쩌쩡!

순간, 가공할 파워를 지닌 검 조각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앤디를 인해전술로 둘러싸던 병사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커커컥!”

“크어허어헉!”

그렇게 밀려들던 병사들이 주춤하면 몸을 빼자, 귀족들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기사들이 막아섰다.

그런 기사들을 정제된 오러 블레이드로 상대를 하다 보면 다시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악순환이 계속 이어졌다.

“치잇!”

이대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앤디도 사람인지라 조금씩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꾸준히 틈을 노리고 덤벼드는 기사의 집요함은 앤디에게 생명의 위협을 줄 지경이었다.

앤디의 옷도 어느 순간 넝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수련과 실전의 경험이 몸에 남아 있어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봐라! 저 괴물도 피를 흘린다! 조금만 더 공격해라! 그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앤디의 이가 갈렸다.

“더러운 자식들! 일반 병사들은 그만하고 네 녀석들이나 앞으로 나오란 말이다!”

앤디의 발악과도 같은 외침에 일반 병사들이 주춤했다.

그것을 느낀 앤디가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우리는 왕실군이다! 첩자를 잡으러 왔다! 너희가 지금 도와주고 있는 저 귀족들은 바로 나라를 팔아먹은 녀석들이다! 반역자라는 말이다! 너희가 몰랐던 상태였다면 모르겠지만, 이제 알게 되었음에도 저들의 편을 든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뒤로 물러선다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다!”

그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병사들이 주춤하면서 조금씩 뒤로 몸을 빼기 시작했다.

사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앤디에게 학을 뗀 상태였다.

더 이상 앤디라는 괴물과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반응을 한 것이다.

예상의 상황에 앤디도, 첩자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앤디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 첩자란 말에 반응을 보이던 녀석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앤디와 같은 위용을 보여 준 고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앤디는 그 경고 후 더욱더 손속에 사정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막으려 드는 이들은 가차 없이 쓰러트렸다.

그때, 앤디의 검이 누군가의 검에 가로막혔다.

챙! 파칭!

앤디의 눈빛에 이채가 어렸다.

자신이 아무리 지쳤다 해도 자신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 검을 막았다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오러의 기질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5명의 사내가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앤디를 마주 보는 중이었다.

앤디를 포함한 총 6명을 가운데 둔 병사들과 기사들이 뒤로 한참을 물러서기 시작했다.

누구의 명령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음에도 몸을 피하는 것이다. 괜한 개죽음이 싫었던 탓이다. 이대로 조금 떨어져서 나름 사태를 파악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앤디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 떨어진 병사와 기사들 사이로 안드레이와 기사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안드레이가 강력한 마법으로 무혈의 길을 만들어 파고든 것이다. 외부로는 병사들이 가득히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자칭 반란 제압 연합군이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트렸다.

자신들을 이끌고 있던 귀족들의 반응과 분위기를 보니 저 괴물 같은 사내가 했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기에, 더 이상 전투를 할 이유도, 책임 의식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첩자를 위해 검을 들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자신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반역자를 돕고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병사들은 모두 순순히 왕실군의 명에 따르기 시작했다.

모든 승기가 한순간에 왕실군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앤디가 적들의 신경을 끌어준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때, 왕실 기사단의 총단장이 말을 걸었다.

“수고가 많았네. 자네 덕에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었네. 이제 이후의 일은 우리에게 맡기게.”

그러자 앤디가 말했다.

“제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앤디의 말에 모든 왕실군의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알겠네. 그리해주겠네. 모두 퇴각한다!”

“충!”

곧이어 퇴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장내를 덮었다. 모든 병력이 우르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남아 있는 것은 앤디와 5명의 기사, 그리고 그들 뒤에 떨고 있는 첩자들이었다.

앤디가 검을 고쳐 쥐자, 5명의 기사가 함께 검을 고쳐 쥐며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때 발악하듯 한 귀족이 외쳤다.

“네 녀석이 모든 것을 망쳤다!”

“흥! 너희를 망친 것은 너희 스스로다! 스스로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시끄럽다! 네 녀석을 기필코 저승의 길동무로 삼겠다!”

“능력껏 해봐라.”

앤디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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