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계획
1
앤디는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안드레이의 말대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중에 자신에게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고 하는데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거기까지는 아직 모르겠고, 그로 인해 많은 이야기를 건질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앤디는 생각했다.
앤디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모두 안드레이에게 보냈다.
반트레오 백작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내용이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이처럼 많은 미움을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이러했다.
‘추잡하다.’
반트레오 백작의 성격과 인품, 행동과 사소한 버릇, 여성 편력, 그가 비밀리 진행하고 있는 좋지 않은 사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잔뜩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비밀도 아니었다. 모두가 공공연하게 떠들어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실인가?
문제는 그것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증거라 할 수 있는 그 비밀 사업장의 위치. 그곳이 어디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이면 백작을 향해서 그렇게 나쁜 놈이라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 하더라.’의 추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뭔가 정확한 증거로 딱 집어서 말하는 이들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겠지만, 그 장소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의 성격이 어쨌든 간에 나쁜 모략에 가까운 소문에 불과한 것밖에 되지 못한다.
그사이에도 앤디는 귀를 기울이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작은 것 하나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앤디는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의 수,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성격은 어떠한지, 가치관, 가족관 등등 모든 것을 수집했다. 이곳 반트레오 백작의 막내딸에 관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었다.
이제 더 이상 파헤칠 것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구상은 끝났다. 하지만 아직 움직일 수 없었다.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흔적을 나타 낼 때를 말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모든 상황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앤디의 그 촉각에 뭔가 걸려들었다.
반트레오 백작의 침실에서 때 아닌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앤디가 마나를 귀쪽으로 끌어들여 소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안쪽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뭐야! 이 무능한 쓰레기 같은 녀석들! 아직도 일 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냐!”
반트레오 백작의 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침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앤디의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었다.
‘손님? 무슨 손님? 그건 그렇고 안에서 백작과 대화를 나누는 저 녀석은 누구지?’
앤디는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는 오갔으나,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대부분이 반트레오 백작가 사내에게 던지는 욕설뿐이었으니 말이다.
“가자! 이 무능한 것들에게 내 단매를 보여야겠다!”
“죄송합니다, 백작 나리.”
“흥! 쓸모없는 녀석들!”
“대기하고 있습니다.”
“…가자.”
그 말이 들리고 곧 방안에서 인기척이 사라졌다. 앤디는 당황하여 재빨리 방안을 훔쳐보았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앤디는 뭔가 깨달았다.
방안에 자신이 찾지 못한 비밀 문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안드레이에게 연락을 했다.
은밀한 곳에서 수정구를 꺼낸 앤디가 마나를 불어 넣자 반응을 드러냈다.
수정구에서 작은 진동이 일어나더니 화면이 떠오름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앤디냐?”
“예. 스승님.”
수정구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안드레이였던 것이다.
앤디는 지금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안드레이가 짧은 침묵 후에 말문을 열었다.
“우선 반트레오 백작의 관심을 끌도록해라.”
“관심은 왜요?”
“반트레오 백작과 네가 마주칠 수 있는 접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접선이요?”
설명을 해줄수록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드레이는 그런 앤디에게 조바심을 보이지 않으며 차분하게 하나하나 설명을 시도했다.
“그래. 스쳐 가는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단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럼 그냥 아작을 내는 것이….”
“그렇다고 앞에 나서서 아작을 내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설마 지금 무식하게 주먹다짐이라도 걸면 어떨까요, 라고 말하려던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니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잘난 제자가 그렇게 무식하고 생각 없는 짓을 할 리가 없지. 암!”
“….”
안드레이에 의해서 말이 잘린 앤디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앤디가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수정구안의 안드레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앤디가 씨익 웃었다.
안드레이도 의미심장하게 마주 웃었다.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힘으로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없다. 물론 그 힘이 우리가 감히 올려다볼 수 없을 정도의 위치에 있다면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의 한계는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네가 그 백작 놈을 지지고 볶았다고 해보자. 그러나 그 후에는 어쩔 셈이냐. 네가 수백의 기사단과 맞서 싸워 이길 수는 없지 않겠느냐?”
앤디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할 수도 있었다. 전생에 수만의 황군도 자신을 어쩔 수 없음을 황제도 알았기에, 그에게만 특별히 자신의 앞에서 검을 착용해도 된다는 윤허를 내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힘을 길러나가는 단계다.
그 기사단의 힘을 모르기에 우선 수긍한 것이다.
안드레이는 앤디가 자신의 말에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에 만족스러웠다.
“사회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네가 살아나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힘이 있어도 참아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힘이 없다면 없는 대로 이겨야 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둘의 뜻은 다르지만 같기도 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결론은 참는 자가 이긴다는 것이니 말이다.”
마음에 안 드는 말이었다.
참는 자가 이긴다니.
이긴 자가 옳은 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앤디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안드레이가 앤디에게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구나.”
“약간요.”
“그런데 어째서 반론을 하지 않았지?”
“틀린 말은 아닌 것을 알아서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각자의 해결 방식은 있겠지만, 답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서로의 사상이 다른 것을 억지로 따지고 들 생각이 없다는 말이지요.”
안드레이는 앤디의 말에 감탄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거늘,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눌렀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만도 힘든데, 그것을 듣고 실천하려고 하는 아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아이로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앤디는 울창한 잎을 지닌 나무로 자라 있던 것이다.
얼마나 더 자랄지 기대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안드레이는 이런 아이가 자신을 따라주다니 다시 한 번 선황의 덕이라 생각하며, 지그시 눈을 감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래, 그것으로 됐다. 네가 내 생각을 따라주겠다고 말을 했으니, 나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어야겠지. 그런 놈이라면 분명히 구린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내 나름 알아본바 그에게 구린 이야기가 많이 흘러나오더구나.”
“그럼 신고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신고라는 것은 많은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에 충분히 발뺌할 수 있는 작업을 한다, 이 말씀이시죠?”
“그렇지. 잘 아는구나.”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모를 수 있나요.”
“기특하다. 네 말대로 신고 절차가 끝나는 것도 끝나는 것이지만, 조사 팀을 꾸려서 진상 조사를 하기까지 그가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소요된다. 한마디로 우리가 직접 증거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 증거를 어떻게 잡으란 말입니까?”
“아까 말했다시피 그를 끌어들여라.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어떻게 움직이게 하라는 말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면서요?”
“내가 언제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고 했더냐? 내 기억으로는 네가 힘으로 누르면 안 된다고 한 이야기 밖에 기억나지 않는데 말이다.“
앤디가 움질하더니 말을 돌렸다.
“그냥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것은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
“참 친절하게도 가르쳐 주시는 군요.”
“너는 나와 달리 착하게도 안 꼬아서 듣는구나.”
안드레이의 이죽거리는 어투에 앤디가 욱했다.
앤디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안드레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힘으로 누르게 되면 녀석에게 힘에 치여 강제로 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뺄 수가 있다. 반론의 여지를 줄 수가 있단 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절대로 무슨 말을 하든지 반론의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야 우리의 움직임이 명분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뭔말인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해야겠어요? 그냥 어떻게 하라고 방법을 말해주세요. 그게 저도 편하고 스승님도 편하잖아요.”
“상황은 언제든지 변하기 마련이다. 큰 맥을 마련해줬으면 줄기는 네가 따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안드레이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정말 모르겠느냐?”
“네.”
“그렇다면 힌트를 주마.”
앤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드레이를 바라보았다.
지금 힌트 같은 걸로 사람을 놀릴 때가 아닌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힌트요?”
“지금 일하는 것도 바쁜 저에게 스무고개까지 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안드레이가 토라진 말투로 대꾸했다.
“싫음 말거라.”
“젠장. 스승 잘 만나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앤디의 투덜거림에 안드레이가 푸근하게 대답해주었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하나의 기회를 엿볼 계기를 주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말한 대로 세상이 모두 돌아간다면 내가 점쟁이를 하고 있지, 이 자리에 있겠느냐?”
“그것도 그렇네요. 그거라도 알려 주세요. 그게 뭔데요?”
“허! 그것 참, 정나미가 잘도 달라붙을 말투구나.”
“장난 말고 어서요.”
‘있던 정나미도 떨어지겠다.’라고 말을 이으려던 안드레이가 입맛을 쩍! 다시며 대답해줬다.
“아리엘을 이용해보거라.”
“아리엘을요?”
“그래. 반트레오 백작의 착한 셋째 딸 말이다.”
“어떻게 이용하란 말이죠? 그녀를 제가 직접 만나러 갈 수는 없잖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네가 준 그녀의 자료를 종합해보건대, 가까운 시일에 기회가 다가올 확률이 높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거라.”
“기회를 놓치지 말라니요? 안드레이 님께서 말한 확률은 어느 정도나 되는데요?”
“28.8퍼센트.”
“….”
2
그렇게 앤디가 하이에나마냥 눈치를 살피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와중에 아리엘을 보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고맙게도 그녀가 알아서 식당에 직접 자리해줬다.
안드레이와 그 이야기를 나눈 지 이틀도 되지 않아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녀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아리엘을 본 순간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입에서 말이 술술 나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곳에서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며 듣게 된 이야기를 통해서 아리엘에 대해서 너무나 잘 파악 할 수 있게 된 탓이었다.
앤디는 말을 하면서 안드레이가 그토록 강조한 정보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만일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만났다면 이렇게까지 자신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봐 친구.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거야?”
“어? 무슨 말 했는데?”
앤디가 뒤늦게 반응을 하자 주위의 청년들이 답답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제야 잠시 생각에서 벗어나 주위를 보게 되었다.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앤디를 중심으로 잔뜩 몰려들은 상태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마디씩 앤디에게 건넸다.
걱정스러운 탓이다.
“어쩌자고 그랬어.”
“아가씨는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니야. 나쁜 놈은 백자악… 흠흠!”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봐.”
그들이 떠드는 말을 듣고 앤디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다른 아줌마가 사내들의 말에 반박했다.
“너라면 사과하러 찾아갈 수 있겠냐?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좋게 넘어가면 모르겠지만, 지금 찾아가 봤자 안 좋은 꼴만 당할걸?”
아줌마의 말에 젊은 사내가 대꾸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가씨에게 약간 핀잔을 듣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영주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앤디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가 없잖아요. 영주님이 막내 아가씨를 얼마나 아끼는지 여기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트레오 백작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그들이었다.
그들이라고 좋아서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반트레오 백작에게 좋지 않은 꼴을 당하고 빚을 지게 되어 하인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말이 좋아 하인이지,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 보듬어주었기에 버텨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앤디는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되고 있음에 만족스러웠다. 생각보다 빠르게 결과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하튼 최선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드러낸 적이 없던 기세까지 사용해가며 그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분위기를 조성해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했다.
여린 여자아이를 놀린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목적이 우선이었다.
사실 그 아이가 죄가 없다곤 하지만, 그 애비의 죄가 컸다. 그녀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자라난 것은 그녀의 아버지인 반트레오 백작이 남들을 착취하며 부를 축적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것 가지고 그녀에게 미안해해서는 안 됐다. 아직 그녀의 일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것보다, 아니 이것은 힘든 축에도 끼지 못하는 힘든 일이 그녀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렇다는 거지….”
“응? 앤디, 무슨 말이야? 그렇다니?”
앤디의 혼잣말을 들은 한 사내가 질문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일하러 가야겠다.”
“이런 상황에도 일이 생각나냐? 난 다리가 다 후들거리는데.”
앤디가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잘났다.”
“킥! 그럼 모두 맛있게 먹고 나와.”
그 말을 남긴 앤디는 모여 있는 사람들의 틈을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서둘러서 나온 이유는 하인들이 알고 있을 청소 때문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건을 마무리 지을 때다.
하지만 이 사건을 클라이맥스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준비가 필요했던 탓이다.
앤디가 밖으로 나섰음에도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를 마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웅성웅성.
“뭐, 뭣이라! 우리 예쁜 막내가 울었다고! 어, 어, 어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반트레오 백작의 귀까지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상대로 반트레오 백작은 크게 분개했다. 자신이 어떻게 키운 딸인데, 천하디천한 하인 따위가 울린단 말인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그놈을 잡아다가 당장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반트레오 백작의 분기 어린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얼어붙어 버렸다.
그때, 그의 앞에 마주하고 있던 검은 옷을 입은 덩치가 큰 자가 나직하게 말했다.
“백작님, 지금은 우선 일이 급합니다.”
“하지만 내 딸이….”
“백작님!”
덩치의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힘이 담겨 있었다.
반트레오 백작이 이를 악다물고 말했다.
“그래. 내가 갔다 온다고 늦지 않겠지. 노옴! 운이 좋군. 급한 일만 아니었다면 네 녀석은 당장 죽었다. 그렇다고 안심하지 마라. 갔다 와서 살아서 지옥을 맛보게 해줄 테니까.”
“백작님, 늦었습니다.”
반트레오 백작은 덩치를 대놓고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으득!
“어서 가자.”
그 말에 덩치가 백작의 방에 붙어 있는 책장을 밀었다. 그 뒤로 좁고 어두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그곳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들의 육중한 몸이 어둠 속에 사라지자, 책장이 조용히 닫히며 원래 상태로 복귀되었다.
텅!
비밀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음영이 져서 어두운 벽 쪽 공간에서 한 발이 쓰윽 나왔다.
귀신이라도 되는 것일까?
곧 전신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모습은 딱 벽에서 사람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는 앤디였다.
앤디가 백작이 사라진 곳을 주시하며 웃고 있었다.
“저런 곳에도 문이 있었군. 어쩐지 찾아도 안보이더라니.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지옥을 맛보여 준다고?”
앤디의 눈빛이 매섭게 빛을 뿜어냈다.
앤디는 저 앞으로 가는 마차를 보며 결단을 내렸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게 될 지 짐작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앤디는 안드레이에게 설명할 시간도 없음에 아쉬운 마음을 안고 은밀히 움직이고 있는 마차의 뒤를 더 은밀하고 조용하게 따라 움직였다.
뒷문으로 대기하고 있던 마차를 탄 그는 한참을 움직여, 몬스터 출몰 지역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 결국 폐쇄되었다고 알려진 폐광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폐광의 안쪽에서 일렁일렁 빛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그곳에 있다는 뜻이다.
앤디가 생각했다.
‘저곳이 그 장소인 모양이군. 이런 곳에 있으니 그렇게 찾아도 없지.’
이곳을 찾기 위해 저택 구석구석을 뒤지며 모든 곳을 돌아다녔던 앤디였다. 입맛이 썼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앤디가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놀랍게도 안드레이와 셀린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앤디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안드레이와 셀린도 앤디를 발견하고 반가움을 표현했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앤디가 안드레이와 셀린에게 질문했다.
“대체 스승님하고 셀린이 여길 어떻게 온 거예요”
“어떻게 오긴 그럼 우린 놀고 있었겠느냐?”
안드레이의 대답에 앤디가 입술을 내밀고 삐쭉거렸다.
“평소엔 안 그러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이 녀석이!”
“그건 그렇고 정말 어떻게 오셨냐니까요?”
앤디가 잠도 못자면서 수를 써가지고 이곳을 찾아낸 사실이 억울한 모양이었다.
“셀린이 찾았다.”
“셀린이요?”
안드레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너 혼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비밀로 하고 움직였던 것 같다.”
앤디가 자신을 돌아보자 셀린은 부끄러운 듯 수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도둑길드를 통해서 인신매매를 하는 녀석들을 소개 받았어요.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위치를 찾아냈는데, 바로 이곳이었죠.”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빨리 저한테 알렸어야죠.”
“그러려고 했는데, 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앤디님에게까지 연락할 만한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재빨리 안드레이님에게 모든 사실을 고하고 함께 나오게 된 것이었죠. 우리 둘이서 뭔가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확실하게 확인을 한 후에 앤디님께 알려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다지 틀린 말은 없었다.
그렇다고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앤디는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셀린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그리 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앤디의 고개가 조심스럽게 끄덕여지며 수긍을 표하자 힘을 얻은 듯 셀린의 표정이 환해졌다.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안드레이가 말문을 열었다.
“나도 원래는 그냥 관찰만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만 지금 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구나.”
넌지시 던지는 질문에 앤디가 씨익 웃었다.
“그걸 말이라고 물어보세요? 우리들이 이렇게 만난 걸 우연이라고 생각하세요?”
셀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앤디는 셀린의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 생각도 셀린과 같아요. 하늘도 우리를 돕나 보군요.”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안드레이의 질문에 앤디가 대답했다.
“우선 상대를 살펴야죠. 안의 분위기와 상황이 어떤지 보고 올게요. 작전은 그 이후에 짜도록하죠.”
“그러자꾸나.”
“그럼 잠시만 다녀오겠습니다.”
앤디는 그 말을 남기고 신형을 날려 단숨에 입구까지 가더니 곧 은신의 묘를 발휘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현실을 목격하고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사업이 소문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뿌드득.
“쓰레기 같은 자식.”
지금부터 앤디는 저 망할 반트레오 백작을 어떻게 혼을 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앤디가 밖을 향해 몸을 돌렸다.
빨리 이 모든 상황을 안드레이에게 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3
감금용으로 제작된 마차에서 내려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이들이 공포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여인이었는데 하나같이 소녀에 가까웠다.
아이들도 있었다.
남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동들이었다. 반트레오 백작이 눈을 반짝이며 그들을 살폈다.
“상품의 질이 좋군.”
그의 흡족한 미소에 간사하게 생긴 말라깽이 사내가 양손을 모아 비비며 대답했다.
“헤헤헤! 백작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다 보니 늦은 것입니다요.”
“그래. 이번 한 번은 내 용서를 해주지.”
“감사합니다. 헤헤!”
“상품의 수는 총 얼마나 되지?”
“열두 명입니다.”
“조금 적군. 사내아이는?”
“저번에 말씀하신 바가 있어서 챙겨 왔습니다만, 인기가 많은 반면에 수요 공급이 어려운 터라….”
말라깽이 사내의 망설이는 듯 늘어지는 말투에 반트레오 백작이 인상을 구기며 다그쳤다.
“그러니까 몇이냔 말이다!”
“셋입니다.”
반트레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 정도면 그럭저럭…. 하지만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써주게.”
“알겠사옵나이다.”
반트레오 백작의 비밀 사업은 바로 인신매매였던 것이다. 인신매매는 헤르만 왕국만이 아닌 전 대륙이 불법으로 행하는 범죄였다.
타인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상품으로 사고판 존재들은 반인도적인 행위에 사용되는 탓이기도 했다. 누가 자랑스럽게 납치된 존재를 샀다고 드러낼 수 있겠는가.
그런 존재들은 대부분 성 노예로서 귀족들의 추악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팔리는 것이었다.
음지의 존재들로서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구입하는 귀족들은 구입한 상품을 성적 학대와 폭행, 거기에 고문에 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르며, 하다못해 인육을 먹기 위해 구입하기까지 했다.
그런 악행을 막기 위해 대륙법으로 정할 정도였던 것이다.
인신매매는 중범죄로, 만일 인신매매를 하다가 잡히면 못해도 사형이었다.
하지만 인신매매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났다. 이 이상의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잡히면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들이 무슨 죄냐고 말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물론 그게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그 어떤 말을 떠들어도 사형선고가 철회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막말이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잡히면 우선 혀를 자르는 것이 보편화가 되었다. 누가 자신들의 물건을 사갔다며 고래고래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그들이 떠드는 수요와 공급의 상관관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도 그 말에 수긍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자국의 귀족들 얼굴에 먹칠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빈틈을 노려 반트레오 백작은 큰 시장을 형성해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대다수의 고객이 이름 높은 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파는 경우도 문제가 되지만, 사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사고파는 거래 시장을 만들어놨기에 아무리 조사단이 나온다 해도 현장이 걸릴 일은 거의 없었다.
“헤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가봐라.”
“헤헤헤….”
녀석이 곰살맞게 웃으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반트레오 백작이 인상을 썼다.
“뭐냐?”
“상품 가격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요.”
반트레오 백작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얼마를 원하나?”
“이번에는 정말 저희도 힘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상품의 품질도 저번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고, 요즘 검문도 강화되어서….”
“시끄럽다. 네 녀석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찔끔 겁먹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녀석은 비굴한 웃음을 입에서 지우질 않았다.
“삼백 골드 정도는 주셔야….”
“이런 미친 녀석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이하는 어렵습니다.”
비굴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반트레오 백작은 알고 있었다. 이들이 그냥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녀석들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성 노예가 한 명당 얼마에 팔리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생각했다.
‘치사한 도둑놈의 자식!’
그 수익에 비하면 3백 골드는 푼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트레오 백작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 싫었다. 한 번 넘어가면 앞으로 거래가 이런 식으로 되기 때문에 힘들어지는 탓이다.
“삼백은 말도 안 된다.”
“그럼 이백칠십만 받겠습니다. 정말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주 거래 고객이시기에 이 가격에 넘기는 겁니다. 못 주시겠다면 다른 곳에 가겠습니다.”
그 말에 반트레오 백작이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로서도 이게 최대한 깎았음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말 이 녀석들은 다른 곳에 이 물건들을 넘기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무엇보다 몇 골드 때문에 질질 늘어질 필요는 없었다.
“알겠다. 여기 받아라.”
“이게 뭡니까요?”
“선금이다. 지금 당장 돈을 챙기지 못했다. 우선 오십 골드만 받아라. 나머지는 내일 너희가 있는 곳으로 보내겠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뒤로 물러서는 말라깽이였다. 그 말라깽이의 뒤로 5명의 부하가 따라붙었다.
밖에 나온 말라깽이가 바닥에 가래침을 뱉었다.
“카아악! 퉤! 더러운 새끼!”
“끅끅! 그래도 오늘 수입은 나쁘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아니다.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이곳에다 물건을 풀지 않았다. 저 물건들은 못해도 삼백 골드 이상은 받아야 했다고. 퉤!”
“어떻습니까. 우선 가서 목 좀 축이죠? 끅끅끅!”
“크크크! 그래. 너희도 이번에 수고가 많았다. 가서 진탕 놀아보자꾸나.”
그 말에 가운데 머리가 빈 중년의 사내가 히죽거리며 대꾸했다.
“저년들을 앞에 놔두고 건드릴 수가 없어서 사타구니가 근질거렸습니다요. 흠! 하….”
녀석은 자신의 사타구니를 비비적거리고는 그 손을 코밑에 가져가더니 냄새를 맡으며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동료들이 구역질 난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더러운 새꺄! 그 짓 좀 작작해라!”
“이게 중독성이 심합니다. 보스도 한번 해보시죠.”
“때려치워라. 그 더러운 짓은 네놈이나 해라.”
“이 좋은 걸… 흠! 하아아아아….”
동료들이 한마디씩 했다.
“으으으! 구역질 나.”
“더러운 새끼! 저리 꺼져!”
부하들의 말에 힘입어 말라깽이 녀석이 한마디 더 했다.
“이런 더러운 걸 부하로 두고 있다니! 퉤! 어서 가자!”
녀석들이 어둠을 틈타 그 속에 파묻힌 채 마을로 내려갔다.
부스럭!
그 순간, 풀숲이 움직이며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엉부엉!
저 멀리서 은은한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녀석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인신매매단 녀석들은 자신들의 뒤를 10여 명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음을 아직까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반트레오 백작이 말했다.
“상태는 어떻느냐?”
“멍도, 흉터도, 상처도 없습니다. 약간 지쳐 보이는 것 빼면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저년들을 씻기고 치장시켜 놔라.”
“예, 알겠습니다.”
“서둘러라. 손님들이 올 시간이 다 됐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족스러우시도록 일 처리를 해놓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믿네. 난 먼저 내려가 봐야겠군. 못난 녀석들이 물건을 늦게 가져와서 촉박하게 준비를 하니 머리가 다 아프군. 쯧!”
반트레오 백작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동굴 안으로 더 들어갔다. 그곳에 지하실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자 넓고 화려한 홀이 나타났다.
온갖 그림과 장식.
그리고 화려한 양탄자와 고풍스러운 가구들, 천장에 자리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까지. 재상의 무도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크기와 화려함이었다.
반트레오 백작은 꼼꼼하게 상태를 살피며 만족감 어린 모습을 보였다. 곧 손님들이 오는데 미흡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굴의 입구에서 내려온 지하실은 하나였는데, 반대편에 문이 9개나 더 있었다.
지금 반트레오 백작이 말하고 있는 그 손님들이 저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 산맥에는 수많은 동굴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동굴들을 통해 비밀리에 들어오면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듯 보였다.
반트레오 백작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도착한 것이다.
그 손님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꺼려 한다는 뜻이리라. 반트레오 백작이 후덕하게 웃으며 그 손님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내가 너무 늦었소?”
“아닙니다. 지금 곧 시작할 것입니다. 안에 들어가셔서 저희 측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만찬을 즐기며 경매 전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수고가 많구려.”
“감사합니다.”
그 말에 그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뒤에 따르던 수행원들이 함께 우르르 따라 들어갔다.
그때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반트레오 백작은 최대한 푸근한 모습을 보이며 최선의 예를 다해 인사를 올렸다.
“잘 오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속은 음탕하기 그지 없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짭짤하겠군. 크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