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14화 (14/68)

제3장. 탈출

1

앤디는 경비병이 들고 있던 검 2자루를 회수하여 하나는 자신이 쥐고, 하나는 루슬란에게 건넸다.

루슬란의 표정이 단단해졌다.

검을 잡자 막연한 두려움이 가시고 자신감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럼 가죠.”

앤디와 일행들은 쓰러진 경비병들을 피해서 계단 위로 올라갔다.

다급한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혹시나 이곳 감옥 계단과 이어진 입구에 누군가 있다면 수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감옥 입구에 도달했다.

경비병 둘이 입구 안쪽을 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쉐리와 그 어리어리했던 경비병들의 소란스러운 대화를 들었던 모양이다.

쉐리의 목소리야 조근조근해서 들렸을 확률은 거의 없었으나, 두 경비병들이 자신들이 잘났다고 떠드는 소리는 분명히 이들에게 와 닿았을 것이다.

입구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있는 것을 보니, 둘이 싸운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확실했다.

“야, 누가 이길 것 같냐?”

“빈슨이 이기겠지.”

“그럼 난 죠셉한테 걸지.”

일행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누가 죠셉이었고, 빈슨인지 모르겠지만 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녀석 다 틀렸기 때문이다.

“주위에 저 둘 외에 아무도 없나요?”

“확실하게 없어. 웬만큼 소란이 일어나도 모를 것 같아.”

쉐리의 물음에 루슬란이 대답했고, 앤디가 고갯짓으로 루슬란의 대답에 힘을 실어주었다. 쉐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위로 세우며 속삭였다.

“솟구쳐라.”

촤아아악! 촤아악!

거대한 물기둥 2개가 바닥에서 치솟더니 경비병 둘의 몸을 휘감았다. 경비병들은 물기둥에 갇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압력에 눌려 기절하고 말았다.

감옥 밖으로 몸을 뺀 일행들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고는 쓰러진 경비병 둘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밖은 이미 어둠으로 둘러싸인 깊은 저녁이었다.

“클라우저가 어디에 있을까요?”

렐리의 물음에 루슬란이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우선 고문실로 가보지.”

모두 망설임 없이 저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고문실은 저택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앤디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서 하나하나 착실하게 쓰러트렸다.

하지만 언제 자신들의 행적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쓰러트린 사람만 20명이 넘었다. 교대로 경비하는 체재이다 보니 늦어도 1시간, 빠르면 지금이라도 당장 걸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면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다. 작은 실수가 큰 상황을 야기할 수 있기에, 시간이 촉박하다고 서둘러서 오지 않을 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하일까?”

모두 잠시 고민했다. 변태적인 성향으로 인해 자신의 방에 연결된 별도의 통로에 고문실을 놔두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앤디가 말했다.

“복잡할 때는 머리를 잡는 게 속편하지요.”

그 말에 모두 수긍 어린 눈빛을 던졌다. 그리고 프린지 영주의 방을 찾기로 결정을 내렸다.

쉐리가 말했다.

“그런데 영주의 방을 어떻게 찾죠?”

“그러게. 방이 수십 개는 될 텐데. 일일이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렐리의 의문에 앤디가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쉬우니까.”

“정말요?”

“물론이죠. 찾아서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한 큐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요.”

앤디의 자신 있는 얼굴을 보고 일행들은 든든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그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게 되었다. 앤디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창밖을 향해 미친 듯이 외치기 시작한 탓이다.

중요한 것은 외쳤다는 사실보다 그 외침속에 담긴 내용에 있었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 탈출했다! 죄수들이 탈출했다!”

밖이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뭐, 뭐라고!”

“어디냐! 어느 쪽이냐!”

앤디는 대답하지 않고 목 놓아 외칠 뿐이었다.

“죄수들이 탈출했다! 죄수들이 탈출했다!”

그때 저편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제길! 감옥을 지키던 녀석들이 당했다! 기사단을 집결시켜라! 어서!”

순식간에 밖이 환해졌다. 저택과 근처 사무실, 숙소에 자리하고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횃불을 들고 사방을 뛰어다니는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앤디가 즐겁기 그지없다는 듯이 방긋 웃으며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앤디와 달리 쉐리와 렐리, 루슬란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모두들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앤디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앤디가 자신의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윙크를 하더니, 일행들을 끌고 앞에 있는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 바로 옆에 있는 곳이었는데, 청소 도구나 기타 잡다한 물품 등을 넣어두는 창고였다.

“지금 대체 뭐하자는…!”

“쉬잇!”

앤디가 쉐리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쉐리는 자신의 입술에 닿은 앤디의 손가락을 느끼는 순간 전기가 짜릿하게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입술을 가로막은 손가락이 조금 전 앤디가 자신의 입술에 대고 있던 그 손가락이었기 때문이다.

루슬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증이군. 중증이야.’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내조차 반할 것 같은 앤디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것은 단순히 예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내다운 두꺼운 선이 살아 있는 예술 조각 같은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간혹 보여 주는 저 천진난만한 모습은 여자들의 모성애를 자극하기까지 했다.

루슬란이 같은 남자로서 느껴지는 이유 모를 자괴감에 입맛을 다셨다.

‘쩝!’

하지만 그런 잡생각도 잠시.

곧 사람들 넷이 어디론가 다급하게 달려가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셋은 단련이 된 기사의 발소리였지만, 한 명은 검술과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의 발소리였다. 그 발소리가 정확하게 앤디들이 숨어 있는 창고 앞을 지나더니, 다급하게 계단을 밟고 뛰어 올라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앤디가 이제 왜 그랬는지 깨달았냐는 듯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이해를 못한 듯 보이자 한마디로 모든 설명을 마쳤다.

“졸개들은 사건이 터지면 머리를 찾아가는 법이죠.”

“아아!”

모두 놀란 표정으로 앤디를 바라보았다.

이미 앤디의 신형은 창고를 벗어나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일행들이 뒤늦게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프린지 영주가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몸에 수면 가운을 걸쳤다.

“죄, 죄송합니다. 저택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가 탈옥한 것 같습니다.”

“뭣이! 대체 감시를 어떻게 했기에 죄수들이 탈옥을 한단 말이냐!”

서릿발 어린 프린지 영주의 목소리에 집사의 몸이 가볍게 떨려 왔다.

“죄송합니다.”

“삼 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이런 밥버러지 같은 놈들!”

모두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프린지 영주가 질문을 던졌다.

“누가 빠져나갔는지 확인은 되었는가?”

“삼 일 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용병들이 탈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들이군. 어떻게 탈출한 것으로 보이는가?”

기사단장이 앞으로 나서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게…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군.”

“희한하게도 철창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가 끊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뭐가 희한하단 말인가. 그것을 끊었으니 탈출을 했겠지.”

“그 자물쇠가 마치 오러를 실은 검으로 자른 것처럼 매끈하게 잘려 있었습니다.”

프린지 영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건 무슨 말인가? 지금 누군가가 외부에서 탈출을 도왔다는 말인가? 그것도 오러를 검에 맺혀서 사용하는 소드익스퍼트급의 기사가?”

“송구하옵게도 그리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기사들 중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가 몇이나 되는가?”

“저를 포함하여 열둘입니다.”

프린지 영주의 눈가에 살기가 어렸다.

“그 열두 명 중에 범인이 있겠군. 감히 어떤 녀석이 나를 배신하고 검을 드리운단….”

“그것도 아닙니다.”

“대체 이도 저도 아니라니, 그럼 뭐란 말인가!”

프린지 영주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언성이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십시오.”

기사단장이 자신이 들고 온 자물쇠를 프린지 영주에게 건네 보여 줬다.

“이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그 단면을 보십시오.”

“매끈하군. 마치 거울 면을 보는 것 같아.”

그렇게 감상을 말한 프린지 영주에게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 기사들 중에 그렇게 매끄럽게 자물쇠를 자를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이들이 없습니다.”

“뭐라고?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구만.”

“그래서 희한한 일이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프린지 영주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자네는 어떤가?”

“이렇게 자를 수 있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아마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의 모든 전력을 다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도 이런 자물쇠 모양이 아니라 같은 굵기의 쇠막대를 세워놓은 상태로 말입니다.”

“그, 그 말은!”

“영주님의 짐작이 옳습니다. 아마도 자물쇠를 이렇게 만든 이는 저보다 훨씬 윗단계의 고수일지도 모릅니다.”

프린지 영주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프린지 영주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안색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더 긴급한 상황이었던 것임을 알게 된 탓이다.

프린지 영주가 말을 더듬으며 기사단장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죄송합니다.”

“이럴 수가….”

“자물쇠를 이렇게 만든 이가 만일 아직도 영지에 남아 있다면 영주님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비상 체제를 선포하고, 기사들을 모두 저택 앞에 모이도록 지시를 해놓았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기사들과 용병, 그리고 병사들이 이 저택을 물샐틈없이 에워싸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로군.”

그때, 프린지 영주의 침실 문이 열리며 낯익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냐!”

“누구긴. 네 녀석들이 찾던 장본인이지.”

앤디가 씨익 웃으며 방 안을 향해 한 걸음 걸어 들어왔다.

2

앤디를 따라 루슬란과 쉐리, 그리고 넬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 발아래에 기사 둘이 입가에 거품을 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사단장의 명으로 문 앞을 지키던 이들이었다.

“아니, 어떻게!”

모두들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불청객을 향해 다급히 검을 뽑아들었다.

프린지 영주를 포함하여 기사단장과 기사 둘, 그리고 집사의 등 뒤로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기사들이다. 그런데 프린지 영주의 문밖을 지키는 기사들이 작은 기척도 내지 못하고 처리되었다. 기감이 뛰어난 기사단장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처리했다는 말이다.

이것을,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앤디가 말했다.

“그러게 좋게 말을 했을 때 좋게 들었어야지.”

프린지 영주가 이를 악물고 한마디 내질렀다.

“범죄자 녀석이 말이 짧구나!”

순간, 앤디의 전신에서 무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정말로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누가 범죄자라는 거냐.”

고오오오! 푸콰콰!

방 안에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펼쳐진 책과 서류, 그리고 커튼이 펄럭이며 사방으로 휘날렸다.

“크으으으윽!”

“대, 대체 이 상황은!”

앤디의 입에서 살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게을러터지고 무능력한 너희를 대신해서 감옥을 탈출해 평민들을 살인하며 난장을 부리던 살인귀들을 잡아주고, 영지에 침입한 해터슨까지 잡아줬더니 범죄자 취급을 하다니. 정말로 범죄자가 될까 하는 유혹이 이는군. 킥킥!”

그 말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오!”

프린지 영주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반존대가 흘러나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니, 몰라서 묻는 건가?”

앤디의 눈가에 싸늘한 기운이 어리자 소름이 끼쳤다. 프린지 영주는 다급하게 기사단장을 돌아보았다.

“쥴리어스 기사단장! 지금 저자가 하는 말이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저… 그게….”

기사단장이 당황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쉐리들이 예상했던 대로 그는 그때 그 상황을 자신의 공으로 모두 돌린 것이다. 그리고 잡아온 앤디들을 철창에 가둔 후, 프린지 영주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살인귀들이 날뛸 때 그 틈을 타서 마을을 파괴하고 난장을 부린 용병들이었다고 말이다.

그 대가로 쥴리어스 기사단장은 프린지 영주로부터 훌륭히 일을 처리한 보상으로 적지 않은 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저들에 대해서 신경을 끊었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평민들의 증언을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을 수가 없었다.

어리석은 평민들이 자신들이 본 것을 과장해서 떠드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오러 파이어라니. 그것도 범죄자와 용병이 마스터의 증거인 오러 파이어로 서로 치고받으며 싸워서, 그 충격의 여파로 건물이 무너졌다니.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자신이 그 말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토록 강한 고수가 뭐가 아쉽다고 자신에게 순순히 잡혔다는 말인가.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왠지 지금 이 알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고 있는 현 상황도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의구심이 커지자 모든 현상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특별한 능력으로 자신들의 이목을 속이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때 프린지 영주가 그를 불렀다.

“쥴리어스 단장!”

쥴리어스 기사단장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단칼에 녀석을 죽이고 모든 것을 덮자. 녀석을 죽이고 내가 우긴다면 영주가 더 캐묻지 않을 것이다!’

쥴리어스 기사단장은 자신의 검에 오러를 일으키며 앤디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앤디는 그런 기사단장을 보고도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쥴리어스 기사단장은 그런 앤디를 보며 쾌재를 불렀다. 역시나 속임수로 자신을 기만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돌발 상황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쥴리어스 기사단장은 토끼를 사냥해도 전력을 다하는 호랑이의 마음으로 가만히 서 있는 앤디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기사단장은 딱지치기로 따먹은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그의 검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찔러 넣은 검이 허공에서 튕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쥴리어스 기사단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도 뭔가 이상한 속임수로 자신을 기만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리.’

그것은 쥴리어스 기사단장의 희망 사항이 되었다. 앤디의 검이 가볍게 쥴리어스 기사단장의 검을 튕겨 내고, 그대로 검결을 타서 팔을 베어 넘긴 것이다.

서어어어억!

팔 근육이 포를 뜨듯 매끄럽게 베어졌다.

“크악!”

팔이 화끈함과 동시에 살이 쩌억 벌어지며 피가 철철 쏟아졌다.

그것도 모자라 앤디의 발차기가 쥴리어스 기사단장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뚜둑! 뚜두두둑!

갈비뼈가 으스러지며 그대로 함몰되었다.

“네가 분명히 말했었다. 우리의 죄가 없으면 네 녀석의 명예를 걸고 순순히 풀어주겠노라고.”

“크흑! 크흐흑!”

쥴리어스 기사단장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너는 네 명예를 지킬 행위를 하였느냐?”

“단장님!”

“네 녀석이 감히 단장님을!”

앤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프린지 영주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기사 둘이 바닥을 박차고 달려왔다.

하지만 앤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올 것을 이미 파악한 루슬란과 렐리, 그리고 쉐리가 방위를 막아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루슬란이 말했다.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건방지게 애들이 끼어드는 것은 예가 아니다.”

렐리가 덧붙였다.

“흥!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하더니. 네 녀석들의 대장을 닮아서 그런 것인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이들이구나.”

“당신들, 용서하지 않겠어요! 워터 애로우!”

쉐리의 말과 동시에 물로 된 화살 2개가 2명의 기사들을 향해 각각 날아들었다.

두 기사들은 다급하게 그것을 막기 위해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렐리의 수리검이 기사의 갑옷 틈 사이를 노리고 날아들었고, 루슬란의 검이 거침없이 다른 기사의 하단을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차창! 챙챙!

한 명의 기사는 루슬란에게 확실하게 막혔으며, 다른 기사는 쉐리와 렐리의 연합 공격에 반격은커녕 막는 것도 벅차했다.

앤디는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쥴리어스 기사단장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다시 묻겠다. 너는 네 명예를 지킬 행위를 하였느냐?”

“나, 나는 당당하다.”

“그렇다면 고개를 들어서 그 당당한 눈빛으로 나를 봐라.”

쥴리어스 기사단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꼴에 부끄러움은 아는 것이냐?”

“힘이 없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네가 부끄러운 짓을 했기에 힘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느냐? 부끄럽지 않은 자는 힘이 없어도 의지가 있기에 누구의 앞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다.”

“흥! 궤변 따위 늘어놓지 마라! 나를 더 모욕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앤디가 한숨을 가볍게 토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발길질을 했다.

퍼억!

“퀘헥!”

갑작스러운 공격을 허용한 탓에 고통이 배가되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내부 장기들을 찌르고 있는지 너무 아파서 숨을 들이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앤디는 끙끙거리는 쥴리어스 기사단장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내가 성격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 옛날에는 너 같은 정신 나간 녀석은 그냥 두지 않았어. 그 결과, 그 녀석들은 다른 놈들 앞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서는 숨 쉬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어. 웬 줄 알아? 정신교육을 받은 탓이지. 어떤 교육인지 궁금할 거다. 그것은….”

“…!”

앤디가 쥴리어스 기사단장의 귓가에 자신의 입을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서 전음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람의 귓가에 다가가 가까이 접촉하며 귓속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자신이 그 어떤 존재보다 가까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앤디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앤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만으로도 그는 작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그리고는 결국 눈을 까뒤집더니, 입가에 거품을 물고 기절하고 말았다.

앤디가 아쉬운 눈빛을 던지며 일어났다.

“담이 약한 녀석이었군. 명예 어쩌고 죽여라 어쩌고 해서 기대를 했더니만, 모두 허풍이었어. 쯧!”

겉으로 보이는 노블레스한 외모와 달리, 앤디의 말은 참으로 양아치스러운 느낌을 잘 살리고 있었다.

주위를 보니 이미 루슬란과 렐리, 쉐리는 다른 두 기사를 제압한 상태였다.

앤디와 일행들의 시선이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받게 된 집사와 프린지 영주의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3

“대, 대체 무엇을 원하시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마치 우리가 뭔가를 강탈하러 온 듯해서 기분이 더러워지지 않습니까?”

말과는 달리 어투는 삼류 잡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침 복도 쪽으로 기사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안에서 수상쩍은 소리와 비명이 들렸기에 집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들은 루슬란과 쉐리, 그리고 렐리의 표정이 조금 딱딱하게 변했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힘만으로 저들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프린지 영주와 집사의 표정은 한결 여유가 생겨났다. 기사들이 자신들을 구해주기 위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앤디가 목소리를 걸걸한 톤으로 바꾸며 이렇게 외쳤다.

“이곳으로 한 발자국만 더 들어오면 영주의 목숨은 없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시위를 하듯 프린지 영주 침실의 문을 세게 닫으며 걸어 잠갔다.

앤디의 말과 행동에 프린지 영주와 집사의 표정에서 여유가 다시 사라졌다.

한데, 루슬란과 렐리, 그리고 쉐리의 안색도 푸르죽죽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이러다가 진짜로 저들이 누명을 씌운 죄명을 그대로 짓게 되는 범인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 들어온다 해도 결정을 내릴 동안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앤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루슬란이 프린지 영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 있습니까?”

“뭐가 어디 있냐는 말이오?”

“우리 일행 말입니다.”

“일행?”

프린지 영주는 한참을 고민해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집사에게 시선을 돌려 보았다. 집사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알고 있는 게 있거든 이야기해보게. 저들이 대체 누구를 찾는단 말인가?”

집사는 프린지 영주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듯 쓰러져 있는 기사단장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속 편하게 기절해 있었다.

프린지 영주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그는 잠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을 시작했다.

“치,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그 말을 듣게 된 프린지 영주의 이마가 일그러졌다.

집사의 대답에 앤디가 물었다.

“어디서 말이오?”

“치료사의 집에 있을 것입니다.”

앤디는 집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앤디의 절대 감각은 사람의 눈동자의 움직임과 심장박동, 그 외 사소한 신체 반응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조합하여 진실과 거짓에 관한 부분을 예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거기가 어딥니까?”

“여기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의 치료가 끝나면 감옥으로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죠?”

쉐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어투로 질문하자 앤디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저자의 말은 사실인 것 같군요. 우리의 우려대로 고문을 당하거나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집사가 움찔했다.

고문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그렇게 되면 고지식한 영주의 시선에 자신들의 행사가 걸릴 수도 있었기에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사는 내심 무리해서 고문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안도하느라 자신을 주시하고 있던 앤디의 반짝이는 눈빛을 볼 수 없었다.

그때 앤디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쉐리가 ‘당신이 어떻게 알아서 그런 확답을 내리느냐.’고 말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앤디를 올려다보던 중이었다.

하지만 앤디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 보자 그런 질문을 던지려는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눈동자를 보고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앤디의 눈동자는 신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기운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앤디가 믿어달라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쉐리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프린지 영주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들을 단순한 범죄자들로 보복을 위해 자신을 치러 왔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하는 행동들을 보면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결코 해코지를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분노를 표현하되 이유가 있었고, 결코 오버하지 않았다. 귀족 앞에서 최대한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절제하는 모습도 비춰졌다.

일반 범죄자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힘들게 감옥에서 탈출하기까지 한 그들이다. 이들이 평범한 범죄자였다면 귀족에게 억눌려 있는 분노를 풀기에 급급한 행동을 보이고, 최대한 욕보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 잘생긴 사내의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저 모습은 마치… 귀족 같지 않은가.

범인이 사건을 이끌기 위해 담담한 척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리낄 것이 없어 당당한 것과 담담한 척하는 것은 그 차이가 확연하게 달랐다.

제정신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여 행동하는 미친 자들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미친 자로 보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기사단장이 쓰러지기 전에 보였던 돌발적인 행동이나 모습들, 그리고 집사의 불안한 눈빛. 뭔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프린지 영주가 의문을 던졌다.

“지금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군.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나에게 설명해줄 사람이 있는가?”

그 말에 루슬란과 렐리, 그리고 쉐리는 불신감 어린 시선을 던졌다.

프린지 영주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서 집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집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자신의 시선을 회피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확실해졌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시선을 피해서 기사단장과 어떤 작당질을 했다는 심증을 굳히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집사에 대한 신용이 단숨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대답을 한다고 해도 올바른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앤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앤디는 프린지 영주의 시선을 받으며 그의 눈빛을 주시했다.

앤디가 말문을 열었다.

“정말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처음에 자신에게 보이던 건방진 눈빛과 거친 말투가 사라지고 정중하게 바뀌었다.

절도 있는 그의 모습은 분명 귀족에게서나 볼 수 있는 행동 양식이었다.

“미안하오. 내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인인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소. 혹시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알려 주길 바라오. 확실한 확인 절차 후, 본 영지에서 그대들에게 잘못한 것이 발견되면 그것에 대해 확실한 사죄를 하겠소.”

진심이 담긴 프린지 영주의 말에 루슬란과 렐리, 그리고 쉐리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누가 설명을 할지 시선을 교환하던 일행들 중 결국 루슬란이 앞으로 한발 나서서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는 와중 프린지 영주는 감탄과 분노 같은 감정을 드러내며 기사단장과 집사를 노려보았다.

집사는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결국 프린지 영주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본 영주는 우리 영지를 지켜 준 영웅들에게 크나큰 실례를 범했구려.”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루슬란의 말에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조금 더 조사해봐야 확실한 진위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저 기사단장과 집사의 행동만으로도 그대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오. 하지만 왕의 백성이며, 폐하를 대신하여 이 영지를 다스리는 대리인으로서 확실하게 파악하지 않을 수가 없다오.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줄 수 있겠소?”

프린지 영주의 정중한 말에 앤디를 포함한 일행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저희의 누명을 벗겨 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신뢰를 잃을 행동을 했음에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어 고맙소.”

프린지 영주의 표정이 단단하게 굳어갔다. 사건을 확실하게 파악하겠노라 다짐한 것 같았다.

곧 그는 수면 가운을 벗고 의복을 걸친 후,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프린지 영주를 본 기사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했다.

프린지 영주는 얼마 전까지 저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던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한심스러운 마음만 들었다.

‘저런 녀석들을 믿고 내가 영지를 운영했다니….’

순간, 머릿속에 자신의 침실 안에 자리하고 있는 저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왠지 욕심이 났다.

뛰어난 인재들에 대한 욕심. 저런 이들이 자신의 밑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순서가 아님을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믿었던 수하들로 하여금 눈과 귀가 가려져 왔었지만, 영주는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프린지 영주가 복도에 있는 기사들에게 외쳤다.

“긴급 의회를 소집할 것이다! 각 지역 장로와 평의회의 수장들을 불러 모으라! 그리고 영지의 기사들에게 모조리 소집할 것을 명한다! 또한 저 방 안에 있는 기사단장과 집사를 포박하여 끌고 가라!”

프린지 영주의 명을 들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절하여 질질 끌려가는 기사단장과, 울고불고 소리치며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는 집사를 바라보는 영주의 눈동자는 얼음보다 차가웠다.

“이야! 신수가 훤한데? 다들 잘 지냈어?”

속도 모르고 실실거리며 건들건들 나타나는 클라우저를 향해 동료들의 애정 어린 주먹과 발길질이 이어졌다.

“크악! 커헉! 왜, 왜 때리는 거야! 케헤헥!”

“….”

“자, 잘못했어! 잘못했다구! 살려 줘! 렐리 누님! 루슬란 형님! 형니임! 쉐, 쉐리! 오빠야! 오빠라구! 서, 서, 서, 서, 설마 거기를 차려는 것은 아니겠… 케헤헥!”

루슬란과 렐리, 쉐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무작정 때리고 봤다.

클라우저의 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뺀질거리는 얼굴을 보자, 지금까지 그로 인해 마음고생 했던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얼굴은 다쳤다는 이유로 누워서 놀고먹었는지 피둥피둥 살이 올라 있었다.

순간, 자신들이 먹었던 맛대가리 없는 음식이 떠올랐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를 울화로 인해 때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넝마가 되도록 두들겨 패고 나서야 일행들의 정신이 돌아왔다.

“어머! 클라우저 오빠! 왜 이렇게 됐어!”

클라우저가 그 말을 듣고 눈을 부릅뜨며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힘겹게 들어올리려다가, 정신을 잃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오빠! 정신 차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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