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해터슨
“해, 해터슨?”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순간, 굉음과 동시에 깨어진 창문의 유리 조각들과 무너진 벽의 잔재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콰과과광! 챙그랑!
“크흐흣!”
“워터 실드!”
다급하게 쉐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대한 물의 장벽이 쉐리 앞에 생기며 방어막을 형성했다.
하지만 조금 늦었던 탓인지 벽과 창이 깨지며 날아온 파편이 작은 생채기를 만들어낸 후였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방어를 했지만, 터져 나온 벽에 가장 가까웠던 루슬란의 팔은 작은 상처들로 인해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양팔로 상체를 방어한 탓이었다.
큰 상처들은 아니었지만, 일행들은 그 모습에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루슬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조금 까졌을 뿐이야.”
밖에서 사람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지진이야! 지진!”
“불이야!”
“사람 살려! 으아악!”
잠결에 숙실에서 뛰쳐나오며 외치는 소리들이었다.
이곳 여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밖에도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자다가 터져 나온 굉음에 놀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러 밖에 나오는 것이다.
그때 커다랗게 뚫린 벽으로 한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배서에서 봤던 얼굴과 똑같았다.
그 수배서가, 아니 해터슨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찾았군. 크흐흐흐!”
“제기랄! 아니길 바랐는데.”
루슬란의 입에서 저런 상소리가 나왔다는 사실에 렐리는 놀랐지만, 놀랄 기색을 보일 겨를이 없었다. 해터슨이 자신들을 향해 한발 앞으로 내디뎠기 때문이다. 모두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조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역풍이 불면서 해터슨이 들어온 구멍으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킁킁!
별로 맡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역한 냄새는 자연스럽게 콧속으로 밀려들어와 비강을 뚫고 뇌리를 자극했다.
“피 냄새?”
그제야 일행들은 해터슨이 이 경비대장의 목 하나만 자르고 온 것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로 짙은 혈향이면 한두 명의 목숨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정문 경비병들도 모조리 죽어나가고, 감옥지기들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지기들의 죽음을 어떻게 아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알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꺄아악! 사람이 죽었어요! 어억!”
놀라서 비명을 외치던 한 여인의 가슴으로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 날카로운 쇠붙이가 어째서 자신의 가슴에서 튀어나왔는지 의심을 하기도 전에 쇠붙이가 모습을 감추고, 그 앞으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푸슈슈슈슈!
여인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며 숨을 멎었다.
그 등 뒤로 잔인한 인상을 지닌 한 사내가 자신의 검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킬킬킬! 이거 손맛이 아주 좋은데?”
“누가 내가 죽이려고 마음먹은 놈 죽이라고 했어!”
“여기 많이 있잖아. 알아서 골라 죽이라고.”
“제길! 그놈을 죽이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은 태연한 모습으로 자신의 옆으로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던 한 행인을 찔러 죽였다.
푸북!
“으악!”
“다음에도 내가 점찍은 것한테 손대면 죽을 줄 알라고.”
“그것 기대되는군. 큭큭!”
다시 살육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죽어! 죽으라고! 크하하하!”
푸부북!
“끄아아아악!”
“이게 얼마 만의 손맛이지? 크크크크!”
여기저기에서 살인자들의 광기 어린 웃음과 피해자들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지옥이 바로 이곳에서 펼쳐지는 중이었다.
“죄수들을 풀었군.”
클라우저의 말에 해터슨이 쑥스럽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대답했다.
“나 혼자 놀기엔 좀 그랬거든. 처음에는 풀어줄 생각이 없었는데, 풀어만 주면 수하가 되겠다고 하더라고. 더 이상 혼자 도망치는 것도 지겹고 해서 풀어줬지. 지금 보니 잘 풀어준 것 같아. 눈치가 빠른 녀석들이야. 크흐흐!”
생긴 것은 저래 봬도 똑똑한 녀석이었다.
영지의 기사단이 출동해도 자신들의 싸움에 바로 개입
하지 못하도록 수를 쓴 것이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살아날 생각은 하지 말라는 협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제길….”
루슬란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럼 이제 나도 놀아볼까? 동생 녀석의 핏값도 받아야겠고 말이지.”
“핏값? 우리는 녀석을 안 죽였다.”
클라우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찔리는 부분이 많았다. 현상금을 받고 건네주던 그때 녀석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터슨이 이렇게 말했다.
“안다.”
“안다고?”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자 해터슨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죽였으니까. 크흐흐흐흐!”
움찔!
“친동생 아니었나!”
“맞아.”
“그런데 어째서?”
“그건 말이지….”
“….”
“크큭! 지옥에서 녀석에게 직접 물어봐라.”
순간, 해터슨의 육중한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루슬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급히 쉐리가 허공에 팔을 뻗으며 크게 외쳤다.
“워터 실드!”
순식간에 물의 장벽이 해터슨과 루슬란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터슨이 감탄의 눈빛을 던졌다.
“오호! 정령술사!”
하지만 그뿐이었다.
해터슨이 마나를 모으더니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두터운 팔뚝의 근육과 힘줄이 펄떡거리며 뛰는 순간 검에 오러가 맺히더니, 그대로 워터 실드를 가르고 루슬란을 향해 날아갔다.
루슬란은 이를 악물고 전신의 마나를 끌어들여 재빨리 자신의 검에 오러를 싣고 그 검을 막았다.
쩌엉!
“크흑!”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팔에서 밀려온 통증이 어깨에 전달되어 그대로 탈골될 것 같았다. 이번 한 수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은 해터슨의 상대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자신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생각은 짧았고, 결단은 빨랐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결단을 전해야만 했다.
“피, 피해!”
하지만 이미 클라우저의 몸이 공격을 위해 뛰어오른 상태였다. 클라우저의 검이 루슬란을 공격하다가 중심을 잃은 해터슨의 흉상을 노리고 깊이 파고들었다.
해터슨은 클라우저의 검을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몸놀림으로 상체를 틀어 중심을 잡은 후, 바로 맞대응을 했다.
쩡!
클라우저의 몸이 경악할 틈도 없이 뒤로 날아가 여관 벽에 부딪혔다.
쿵!
“크흐헉!”
렐리가 빠르게 암기를 뿌리고 클라우저에게 달려가 보았지만, 한쪽 팔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팔이 부러진 것이다.
루슬란이 재빨리 외쳤다.
“빨리 피해! 어서!”
클라우저를 안아들은 렐리가 지체 없이 뒤로 몸을 뺐다. 쉐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통하지 않았다.
슈각!
그들은 거대한 마나의 파동에 허겁지겁 상체를 숙이고 쭈그려 앉았다.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검에서 뿜어져 나온 오러가 스쳐 지나가더니 벽면을 쩌억 갈랐다.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마라. 더 빨리 죽기 싫으면 말이지.”
해터슨의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단숨에 쓰러트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천천히 자신들의 숨통을 옭아매어 죽이려고 말이다.
악에 받친 쉐리가 외쳤다.
“솟구쳐라! 솟구쳐라!”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라 지붕을 뚫었다. 하지만 해터슨의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그사이를 노리고 날아든 암기 또한 해터슨의 검에 모조리 튕겨져 날아갔다.
“크크큭! 재밌군. 조금 더 발악해보라구. 그래야 네 녀석들이 한 번이라도 더 숨을 쉴 수 있을 테니까.”
루슬란이 자신의 모든 마나를 끌어올려 검에 오러를 맺었다. 그리고 해터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해터슨은 여유롭게 루슬란의 공격을 받아쳐 주었다.
조금 전처럼 루슬란의 몸이 뒤로 튕겨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검에 맺혀 있는 오러가 한 번의 격돌이 일어날 때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용병으로서 오러 유저이자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검사인 루슬란이다.
그가 한 범죄자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악다문 루슬란의 입가에서 핏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미 속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진탕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검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멈추는 순간,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도 함께 죽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루슬란의 검이 결국 오러를 소진하고 해터슨의 오러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루슬란의 검 반절이 동강 잘라져 나갔다.
쩡!
해터슨의 눈빛이 살기로 인해 붉게 물들었고, 루슬란의 눈동자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 그 모습에 일행들은 경악 어린 목소리를 내질렀다.
“안 돼!”
스각!
“응? 뭐야?”
그 어이없는 목소리는 해터슨이 자신의 검에 피가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뱉은 소리였다. 루슬란의 죽음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쉐리가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쉐리의 시야를 가린 눈물로 인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루슬란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루슬란이 말을 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아직 죽지 않은 건가?”
루슬란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몸을 훑었다.
“늦어서 미안하군. 밖에 있는 녀석들을 처리하다 보니 조금 늦었어.”
루슬란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가볍게 몸을 떨고는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게도 후드를 뒤집어쓴 앤디라는 사내의 목소리와 몹시도 흡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앤디가 자신의 등 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갑자기 땅에서 솟아 난 것처럼 느껴졌다.
루슬란은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있냐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던졌다.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는데….’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저 강력한 해터슨조차 앤디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지 않은가.
“당신이 어떻게 여길….”
“밖에 있는 녀석들?”
루슬란과 해터슨의 말이 동시에 나왔다.
루슬란은 자신의 의문을 잠시 접고 해터슨을 따라 밖으로 신경을 돌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밖의 소란이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더 이상 공포에 질린 비명은 울려 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앤디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조금 많더라고. 당신이라면 그 녀석들을 정리하는 동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
“다, 당신 대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우선은 저치부터 해결하고.”
“위험하네! 어서 도망치게!”
루슬란의 말에 앤디가 대답 대신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후드에 가려져 전체적인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반사된 빛에 드러나 보이는 부드러운 입매는 어째서인지 루슬란에게 믿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앤디가 루슬란을 뒤로하고 앞으로 한발 나서며 말했다.
“약한 애들 그만 괴롭히고 나랑 놀아보지?”
울컥!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왠지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쉐리와 일행들이었다.
쉐리는 생각했다.
‘역시 정이 안 가는 인간이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쉐리들의 표정은 걱정으로 물들었다.
2
“언제 덤빌 거냐? 오지 않을 거면 바쁘니까 내가 먼저 가지.”
앤디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해터슨이 대꾸하고는 발로 바닥을 박찼다.
“아니야. 내가 가도록 하지.”
타탓!
순간, 작은 진동음과 함께 해터슨의 몸이 일자로 쭈욱 뻗어 나와 앤디를 공격했다.
앤디의 손에 어느새 들린 검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파칭! 파칭! 파파팡! 파칭!
해터슨의 공격은 폭풍과도 같이 거셌다. 하지만 앤디는 그의 공격을 하나하나 모조리 막아냈다. 놀랍게도 그 모습이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제법이군.”
“너야말로.”
앤디의 여유가 마음에 안 드는지 해터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씹어 내뱉듯이 욕설을 흘렸다.
“재수 없는 새끼.”
“너야말로.”
“죽고 싶나?”
“너야말로.”
으드드득!
한마디도 지지 않고 히죽거리는 저 입매가 마음에 안 들었다. 얄밉게 혀를 놀려 대는 저 입을 쭉 찢어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했다. 해터슨은 앤디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적당히 해서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지금 나눈 수십 방의 공방으로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충돌한 그들의 검은 놀랍게도 시퍼런 오러로 물들어 있었다.
쐐에엑! 츠츳! 츠츠츳!
강력한 오러의 충돌로 인해 영향을 받은 대기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파파팡!
강력한 충돌이 연이어지자 압축된 공기가 폭발했다. 그 폭발의 반동으로 둘은 뒤로 튕겨져 날아갔으나, 순식간에 자세를 정비하고 전방을 주시하여 방위를 점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둘의 상황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해터슨은 뒤에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를 드러냈고, 앤디는 여유롭게 자신의 어깨를 돌리며 가볍게 풀어주고 있었다.
쉐리와 렐리, 그리고 루슬란은 숨도 쉬지 않고 그 몰아치는 공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부상을 입은 클라우저조차 팔이 부러진 것에 대한 통증을 잊었는지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해터슨의 능력도 경악스럽지만, 그와 맞서서 싸우고 있는 앤디의 능력은 경외스럽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해터슨의 검에 맺혀 있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푸른 오러의 정체! 저것은 분명 오러 파이어다!
놀랍게도 해터슨이 소드마스터라는 말이다.
검을 처음 든 유저를 소드유저라 하고, 검의 입구에 든 자들을 소드어웨어라 부른다.
그들에게도 단계가 있어서 초급과 중급, 상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상급을 넘어서 오러를 부리게 되는 자를 오러 유저라고 칭한다.
오러 유저를 소드익스퍼트라 부르고, 그 역시 초급, 중급과 상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초급까지 올라간다 쳐도 재능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중급의 경지조차 평생을 바쳐도 올라갈 수 없다.
오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기에, 익스퍼트의 단계에 올라서면 기사의 작위를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 하면 소드마스터는 어떻겠는가.
10만의 기사가 있다면 그중 1명만이 오를 수 있는 경지가 바로 소드마스터인 것이다.
소드마스터라 하면 어느 영지, 아니 어느 왕국에 가도 원하는 만큼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소드마스터는 검을 든 자들이 꿈꾸는 꿈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감히 절대자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경지가 소드마스터이다.
물론 소드마스터에도 단계가 있다곤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확인된바 없다.
그 이상의 경지도 있다.
마스터를 초월한 자.
그랜드마스터, 혹은 초인이라 불리는 경지다.
소드마스터가 그리 엄청난 경지라면 초인이라는 경지는 외경되어 만들어진 경지일까.
아니다. 현존하는 시대에 초인이라 부리는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쿠렌트 제국의 탈리온 공작이 있다.
하지만 그가 어째서 초인이라 불리는지 정확히 아는 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초인이라 하는 데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토를 달지 않는다. 전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해터슨이 그런 소드마스터에 올라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는데, 그런 그를 가볍게 상대하는 앤디는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앤디의 검은 평범했다. 약간 특이한 게 있다면 앤디의 검에 얇은 오러가 선명하게 맺혀 있다는 것뿐인데, 그것이 해터슨의 오러 파이어와 붙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 오러 파이어에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현상이었다.
“네 녀석도 소드마스터군.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력과 경지는 나보다 높아. 대체 어디서 뭐하던 녀석이냐?”
해터슨의 물음에 앤디는 정중하게 대답해주었다.
“나?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돌아다니던 나그네라고나 할까?”
“건방진 자식.”
“흥! 나는 조금 건방져도 돼.”
“크흐흐!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가 없군. 네 녀석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인간은 능력이 모든 것을 말하는 거지.”
“말은 입이 하는 거지.”
“그 망할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구나.”
“뭐, 그럴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 차전으로 가야지?”
앤디의 이죽거림에 표정을 굳힌 해터슨이 검을 흩날렸다.
츠츳! 퓨파파파팟!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검을 들고 있는 상대에게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충돌하고, 검과 검이 충돌했다. 또한 오러와 오러가 충돌했다.
바람이 몰아쳤다.
오러가 폭발하며 일어나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광풍이었다.
그 광풍으로 인해 여관이 부서졌다. 이미 여관은 여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지붕이 모두 날아가고, 방과 방을 나누는 경계가 모호하게 변했다.
아니, 변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광! 콰과과과광!
거대한 먼지구름이 형성되고, 그 사이로 번쩍이는 섬광과 굉음이 둘의 격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순간, 해터슨의 허리가 숙여지고, 검극이 땅에서 하늘로 솟구쳤다.
앤디는 자신의 검을 가로로 세워 사타구니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해터슨의 공격을 막았다. 이어, 허공으로 몸이 떠오른 그는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며 발로 해터슨의 가슴을 내질렀다.
해터슨은 그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 뒤로 두 발자국 밀려났다.
“치잇!”
해터슨의 손목과 어깨가 교묘하게 틀어지며 앤디의 사각을 노렸다. 하지만 그의 검은 빈 허공을 벨 뿐이었다.
해터슨은 짧은 순간 당황했다. 앤디의 기척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이런 움직임이라면 단순히 자신보다 한 수 높게 쳐줄 상대가 아니었다.
해터슨은 순간적인 판단에 검을 자신의 오른쪽으로 회전시켜 찔러 넣었다.
“아이쿠!”
앤디의 낭패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터슨은 그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바닥을 차서 몸을 허공에 띄웠다.
허공에서 자신이 있던 그 자리에 앤디의 검이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터슨의 발이 공기를 찼다.
파앙!
공중에서 몸이 쭈욱 밀려나듯 앤디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해터슨의 공세가 빨라졌다. 앤디를 향해 뻗어나간 검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전신의 요혈을 노리는 것이다.
앤디가 기합을 질렀다.
“합!”
움찔!
순간, 기세 좋게 날아들던 해터슨의 몸이 허공에 잠시 정체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앤디가 자리를 벗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해터슨은 이 현상에 대해 믿어지지 않아 눈을 부릅떴다.
곧 생각을 정리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공격을 거두고 착지해서 앤디를 노려보았다.
“뭐야, 그 표정은?”
“크큭! 안 되겠군. 이러다 지겠어.”
그 말에 앤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마치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를 봐주고 있었다는 듯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앤디가 의문을 드러내기 전에 해터슨이 나직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죽는 것보다 수명이 깎이는 게 낫지. 크흐흐!”
그 말과 동시에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입을 쩌억 벌리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꿀꺽!
“크으… 크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앤디의 입에서 ‘미친놈’이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해터슨의 전신에서 상식을 벗어난 기운이 폭사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그의 눈이 부릅떠지며 혈광이 번뜩였다.
“뭐지?”
앤디의 눈이 가늘게 떠지며 인상이 찌푸려졌다.
근처에 있던 쉐리와 렐리, 루슬란, 그리고 클라우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감당하기 힘든 마나의 폭풍에 숨 쉬기조차 힘들어진 탓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의 몸에서 폭주하는 마나의 양이 많아졌다.
잠시 후, 바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해터슨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크흐!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해터슨은 자신의 전신 가득 충만하게 차오르는 마나를 느끼며 희열했다.
이런 자신을 누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 같아선 초인이라 불리는 탈리온 공작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해터슨의 시선이 앤디를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자신의 이 터질 듯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힘에 놀라 두려움에 질린 녀석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앤디는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니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앤디가 물었다.
“대체 뭘 먹은 거냐?”
“비약이라고 해두지.”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 병 걸려. 식중독 같은 거 말이지.”
으득!
“이 자식이! 이것은 아무거나가 아니다! 이것은…!”
해터슨은 뭔가 말하려다가 뱉으려던 말을 목 뒤로 삼켰다.
“후! 흥분했군. 이런 식으로 도발하여 이것의 정체를 파헤치려 했나 본데… 크큭! 생각보다 똑똑한 녀석이었군.”
“난 전혀 그런 생각 없었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긴. 생각보다 멍청한 녀석이었군.”
꿈틀.
해터슨의 이마에 거대한 핏줄이 올라섰다.
“네 녀석은 내 몸에서 넘쳐흐르고 있는 이 거대한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냐!”
“그게 뭘?”
“아직도 모르겠나! 네 녀석은 더 이상 내 상대가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그거야 붙어봐야 알지.”
앤디가 히죽 웃었다.
“건방진 녀석! 상판이 대체 어떻게 생겨 처먹었기에 이렇게 건방진 것인지 봐야겠군.”
순간, 해터슨의 손끝에서 빛줄기가 쭉 뻗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을 때, 앤디의 후드가 반으로 갈라지며 뒤로 넘어갔다.
앤디의 후드가 벗겨지며 그의 비단과도 같이 매끄러운 갈색 머리가 뒤로 함께 넘어가 찰랑이고, 뽀얀 피부를 자랑하는 조각과도 같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어린 얼굴이었다. 뒤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일행들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들 정도였다. 쉐리의 입에서는 감탄사까지 흘러나왔다.
“어머!”
지금까지 앤디를 향한 적개감은 온데간데없고, 쉐리의 두 뺨이 발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렐리도 쉐리만큼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뿐, 상태는 비슷했다. 다른 두 남자 역시 그 얼굴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오래갈 수 없었다.
쉐리와 렐리의 반응에 왠지 울컥했기 때문이다.
그때, 앤디가 자신의 찰랑이는 머릿결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뭐, 조금 나아지긴 한 것 같군.”
여유 어린 앤디의 표정과 어투에 해터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시 후에도 그따위 시건방진 여유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두고 보지.”
“그래. 두고 보든 말든 알아서 해라. 그건 그렇고 말이지, 네 녀석 참 말이 많아.”
“뭣이!”
앤디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해터슨의 가슴을 노리고 허공에 스며들었다. 해터슨은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그 검을 막았다. 그러다 순간 그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지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격을 막을 때마다 망치가 무방비 상태로 있는 자신의 전신을 두드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신의 근육이 놀라 덜덜 떨려왔다.
해터슨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든 저럴 수가든.”
다섯 번의 공방이 더 이루어진 후, 앤디의 검이 해터슨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피싯! 쩌억!
왼쪽 얼굴에 깊은 검상이 생기며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 약을 먹음으로 인해서 내 능력은 최소 두 배는 강해졌단 말이다!”
“본 실력이 그만큼 허접했나 보지.”
“이 자식이!”
해터슨의 오러 파이어가 더욱 거세게 일렁이며 검에 맺혔다. 그리고 그대로 앤디를 향해 쏘아졌다.
쿠광! 콰과과과광!
“피, 피해!”
“워터 실드!”
쉐리와 일행들은 재빨리 몸을 빼냈다. 모든 전력을 다해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거대한 오러의 충돌이 가져온 폭발력이 너무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여관과 주위 건물 두 채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궁!
건물이 무너지며 솟구친 먼지구름에 시야가 앞을 가렸다.
허공에 떠오른 해터슨은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을 내려다보며 크게 외쳤다.
“크흐흐흐! 건방진 녀석! 이제 내 힘을 알겠느냐!”
“아니, 모르겠는데?”
해터슨은 등골이 오싹했다.
시건방진 녀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등 뒤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하지만 의문을 풀 여유도 없었다.
“이만 끝내자. 네 녀석 때문에 사람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앤디의 검에 시퍼런 오러가 맺히더니, 그대로 해터슨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해터슨은 다급히 검을 치켜들어 막았다. 동시에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못해도 지금 공격이 조금 전의 공격의 2배 이상은 강해져 있었던 것이다.
터어어엉!
“크흐허어억!”
해터슨의 몸이 허공에서 밀려 쭈욱 떨어지며 바닥에 그대로 충돌했다.
쿠궁!
허공에서 날아온 해터슨으로 인해 잘 정돈된 보도블록이 그대로 박살나며 속으로 움푹 파고 들어갔다.
앤디는 해터슨을 날린 대가로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한참 후, 몸을 가볍게 회전하여 중심을 잡고는 바닥을 향해 다리를 쭉 뻗었다. 정확하게 해터슨이 쓰러져 누워 있는 그곳을 향해 내리꽂았다.
콰과광!
“쩝! 아쉽군.”
앤디는 숨을 헐떡이며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해터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럴 수 없어!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해터슨이 이를 으득 갈았다. 얼마나 강하게 갈았는지 그의 어금니가 부러질 정도였다.
퉤!
해터슨은 부러진 어금니를 밖으로 뱉어냈다. 그리고 품을 뒤져 조금 전 입안에 밀어 넣었던 그 알약을 꺼내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 수명 따위는 얼마가 줄어도 상관없다. 아니, 지금 죽어도 상관없다! 네 녀석을 죽일 수 있다면! 크아아아아악!”
“또 불량 식품 집어먹….”
앤디는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쩌엉!
“크크큭! 나는 이제 불사신이다!”
“조금 짜릿한걸?”
“곧 죽어도 입만 살 새끼.”
다시 해터슨의 검이 앤디에게 쏘아졌다. 앤디는 더 이상 깐족거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해터슨은 검을 내지를 때 틈이 있었다. 앤디는 그 틈을 노리고 공략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 틈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앤디는 도저히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쉬지 않고 무지막지한 힘이 몰아쳐 온 탓이다.
한마디로 저 녀석이 먹은 약이 뭔지는 몰라도, 한순간 내력만을 강화시키는 것 같았다.
갑자기 전생에서도 저런 약을 본 적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폭혈단이라는 환약이었다.
순식간에 일 갑자의 내공을 올려 주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몸에 치명적인 이상을 남기고 폐인으로 만드는 독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을 자신의 앞에서 2알이나 먹었으니…. 정말 해터슨은 자신의 말대로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이다.
팔이 저릿저릿 아려 오는 것이 중심을 잃을 수준을 넘어 검을 놓칠 정도였다.
앤디의 하단을 노리고 해터슨의 검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날카롭게 베어드는 그의 검을 비스듬하게 각을 잡아 막아냈다. 날카로운 오러와 오러가 충돌하며 불꽃을 뿜어냈다.
파가가가가각!
앤디의 본능이 다급하게 외쳤다.
진짜로 위험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