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11화 (11/68)

제11장. 현상범

1

“후우! 이제 다 끝났나?”

쉐리가 한숨을 내쉬며 물기둥을 타고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얘들아, 수고했어.”

뽀그르르르!

쉐리의 주위에 떠다니던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클라우저와 렐리, 그리고 루슬란은 숨을 고르며 산적들을 구석으로 몰아서 포박했다.

전투 속에서 산적 셋이 죽고, 넷은 깊은 중상에 빠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머지 4명은 그나마 멀쩡했는데, 그중 한 놈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사색이 되어 헛소리를 지껄여 대고, 한 놈은 정신을 잃고 있었다.

“히이이익! 아, 악마! 악마! 가르르르르….”

헛소리를 지껄여 대던 녀석이 입가에 거품을 물며 눈을 뒤집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클라우저가 자신의 검을 어깨에 걸치며 눈썹을 구겼다.

“뭐야, 이 녀석은.”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의 강한 모습에 놀라서 저러는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루슬란이 한 뭉치나 되는 현상금 수배서를 들고, 쓰러져 있는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렐리가 말을 걸었다.

“돈이 될 만한 녀석들이 있어?”

“흠… 잠시만…. 저기 따로 빼놓은 한 놈이 있긴 한데….”

산적 녀석들을 몰고 왔던 두목으로 보이던 녀석이었다. 녀석은 한쪽 팔과 가슴에 깊은 검상을 입고 쓰러져서 헐떡이고 있었다. 클라우저가 상대한 흔적들이었다.

냉랭한 눈빛으로 슬쩍 돌아보던 렐리가 물었다.

“얼만데?”

“잠깐만….”

루슬란은 다시 현상금 수배서를 뒤적거리더니 한 장을 찾아 렐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디 보자. 흠… 십 골드야.”

“뭐야. 노동비도 안 나오는 잔챙이였잖아. 나머지들은 뭐야?”

촥촥 소리 나게 수배서를 모두 훑어보던 루슬란이 인상을 구겼다.

“가치 없는 조무래기들이야.”

“뭐, 그래도 다음 마을에서 잘 숙비는 벌었네.”

렐리의 말에 쉐리가 피식거렸다.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돈도 떨어지던 참이었잖아. 알아서 돈이 굴러왔네. 달밤에 체조하긴 했지만. 그런데 그 새낀 어디 있어요?”

“어떤 새끼?”

“설마 나?”

사람들의 고개가 소리가 들린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는 어디서 났는지 태연하게 고구마를 까서 먹고 있었다.

쉐리 일행은 기가 막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대체 뭐하는 새끼야?’

하지만 질문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자, 앉아요. 모두들 수고했어요.”

능청스럽게 고구마를 건네며 손짓하는 저 뻔뻔한 모습 때문이었다.

쉐리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조금 전 먹어봤던 고구마의 맛이 떠올랐다.

“흥! 이까짓 고구마로 용서를 바랄 생각은 버리라고.”

매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고구마를 낚아챈 쉐리가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것을 본 사내가 대답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그 말에 울컥했지만, 따지고 보니까 뭔가 잘못했다고 하기도 애매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고구마를 까먹기 시작했다.

날이 밝고, 떠나기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다른 산적들은 다 풀어주고, 빈사 상태의 두목만 끌고 갔다.

그때, 쉐리가 불안한 시선으로 도망치는 산적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몸값 많이 올려놓도록 해. 그래야 다음에 잡아가지.”

산적들이 저 멀리서 이를 갈며 외쳤다.

“두고 보자! 빈약 가슴!”

“누가 빈약 가슴이라는 거야!”

“너 말이야! 너!”

“이 자식들이 정말 죽고 싶냐!”

“우리 큰형님께서 찾아갈 거다!”

“큰형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큰형님 할아비가 와도 안 무섭다! 그리고 너, 네 얼굴 기억해놨어! 나중에 두고 보자!”

쉐리의 분노의 외침에 클라우저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괜찮아. 우유를 많이 먹으면 아직도 가능성은 남아 있어.”

쉐리의 머리에서 핏기가 쫙 가시는 느낌과 동시에 뚝 하고 뭔가 끊어졌다.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이다.

“솟구쳐라!”

“으응?”

갑자기 클라우저가 서 있던 바닥이 들썩이더니,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쿠구구구! 푸슈우우우!

“으악!”

쉐리 일행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후드를 쓴 사내가 자신들의 뒤를 따라와서 신경이 쓰였다.

“왜 따라와요?”

“내가 가는 길인데, 뭘 따라간단 말입니까.”

“그럼 앞서서 가세요.”

사내가 그 말에 앞섰다. 그러자 일행들이 그 뒤를 따르는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다. 정말로 가는 길이 같았던 것이다.

“뭐야, 저 사람? 언니, 우리 다른 길로 가요.”

렐리가 대답했다.

“안 돼. 이 녀석을 처리하려면 큰 도시로 빠져야 해. 그래서 길이 같은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럼 저 녀석 뒤를 따라서 가야 한단 말이에요?”

“뭐, 어쩔 수 없잖아. 길이 같은 것일 뿐이니까.”

그때, 사내가 우뚝 멈춰 서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행들도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신들이 발견하지 못한 뭔가를 저자가 발견하고 멈춰 선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참 동안 오감을 기울이며 수상한 뭔가를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루슬란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그 사내의 입이 떨어졌다.

“어라? 여기가 어디지?”

일행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아하하하! 고마웠습니다.”

후드를 쓴 사내가 시원하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길을 잃었다며 큰 마을까지 같이 가달라고 부탁한 것을 루슬란이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을에 도착하고 일행들과 사내는 갈라지게 되었다.

쉐리 일행은 자신들이 잡은 산적 두목을 마을 경비대에 넘기고, 현상금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

두목 녀석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숨이 간당간당했지만, 오면서 행한 응급처치 덕에 아직 죽지는 않았다. 상당히 위중한 상태였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해악이나 끼치는 녀석의 건강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던 응급처치를 한 이유도 시체를 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아서였기 때문일 뿐이었으니까.

현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경비대장이 직접 내려와서는 놀란 눈빛으로 말했다.

“이놈 어디서 어떻게 잡았지? 용케도 잡았군.”

“제 발로 찾아왔어요.”

클라우저의 대답에 경비대장이 되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아하하! 아니에요.”

쉐리가 클라우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대답했다.

클라우저는 갑자기 밀려온 통증에 눈물을 글썽이며 뭐라고 한마디 하려 했지만, 쉐리의 옴팡지게 움켜쥐어 있는 감귤 같은 주먹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생긴 것은 저래 보여도 치명적인 흉기인 탓이다.

그때 경비대장이 말했다.

“혹시 이놈 말고 이런 녀석은 보지 못했는가?”

그가 건네는 수배서에 한 사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하고, 인상이 더럽다 못해 무섭게 생긴 자였다. 그 밑에 현상금이 적혀 있었는데, 3천 골드나 되었다.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봤는데요?”

“그런가? 하긴 봤으면 이곳에 있을 리가 없….”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경비대장이었다.

그에 루슬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아, 별거 아니네. 못 봤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네. 자네들이 잡아온 이 녀석이 여기 그려 있는 해터슨이라는 녀석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거든.”

“해터슨? 설마 그 해터슨을 말하는 겁니까?”

“자네가 묻는 그가 아마 맞을 걸세.”

루슬란이 인상을 구기며 뚫어져라 수배서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렇게까지 볼 필요도 없었다. 워낙 인상이 강하게 생긴 자라 얼핏 봐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쉐리가 물었다.

“누굴 말하는 거예요?”

그러자 루슬란이 대답해주었다.

“두 달 전, 토요트 영지의 영주와 기사단 스무 명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일이 있었다.”

“정말로?”

“그것도 한 사람에게.”

“예에? 그게 가능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기사단을 몰살시키고, 영주를 때려잡았다니.

“그 자리에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 소드익스퍼트의 기사도 둘이나 있었다고 해.”

“마, 말도 안 돼!”

“더 놀라운 사실은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고,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찢어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지.”

이야기를 마친 루슬란이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저 녀석과 해터슨은 어떤 관계입니까?”

“소문이었네만, 친형제 지간이라고 알려졌다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네. 확실한 사실은 아니거든. 하하!”

쉐리 일행은 현상금을 받고 기분 좋게 나왔다.

렐리가 말했다.

“후! 지친다. 왠지 탈진되는 기분이야.”

“그러게. 유난히 지치네. 어서 식사하고 쉬자.”

“이 식당으로 갈까?”

클라우저의 말에 쉐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쪽이 냄새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쉐리가 가리킨 곳은 클라우저가 가리켰던 건물보다 고급스러워 보였다.

“저긴 조금 비싸 보이는데….”

쉐리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두 손을 모으고 앙탈을 부렸다.

“가자아! 수입도 생겼겠다. 오랜만에 숙소를 잡는데 조금 좋은 곳에서 쉬고 싶어. 안 될까아아?”

클라우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화끈거리는 자신의 뺨의 열기를 깨닫고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린 채 대답했다.

“그, 그러자. 나도 사실은 저기가 조금 더 마음에 들긴 했었어.”

그 모습에 렐리와 루슬란이 서로를 마주 보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지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렐리가 말했다.

“뭐,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저기로 가자.”

모두가 보이는 긍정적인 반응에 쉐리의 기분이 업됐다. 가벼운 깽깽이걸음으로 단번에 도달한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짓고는 그대로 멈춰 섰다.

그 뒤로 일행들이 잇따르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쉐리, 뭐해? 왜 안 들어가?”

“그게, 저, 저기….”

일행들의 시선이 쉐리의 손가락 끝을 향했다.

구석에 친숙한 사람, 아니 정확하게는 친숙해 보이는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물을 마시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들어서던 클라우저가 의외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라? 또 만났네?”

2

그 사내가 자신들이 시선을 돌릴 때마다 구석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자신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씩씩!

“저 사람 대체 뭐야! 우리를 일부러 따라다니는 거야, 뭐야?”

흥분한 쉐리를 클라우저가 다독였다.

“흥분 좀 가라앉혀. 왜 흥분하고 그래.”

렐리도 말했다.

“후후! 사실 그건 아니지. 저 사람이 먼저 와 있었는데, 저 사람 입장에서는 우리가 따라다니는 걸로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그렇지만 저 사람 왠지 기분 나쁘다고.”

“그럼 어떻게 할까? 내쫓아버릴까?”

투덜투덜.

“누가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하란 것은 아니고….”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는 쉐리를 보며 렐리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렐리에게서 떨어지지 못할 지경이었다.

쉐리가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렐리를 바라보고 있던 취객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변태 놈들! 뭘 봐!”

“꼬맹아, 몰라서 묻는 거냐? 흐흐흐!”

그러자 취객들이 반응했다.

“그만 봐! 우리 언니 달아!”

“큭큭큭! 네가 그렇게 말 안 해도 상당히 달아 보여.”

“난 벌써부터 후끈 달아올랐다구.”

“크헤헤헤헤!”

쉐리의 이마에 혈관이 발끈 일어섰다.

“이것들이 죽으려고!”

취객들은 반응을 보이는 쉐리가 재밌던 모양이었다. 더욱 도발을 유도했다.

“꼬맹아, 너는 걱정 마라. 우리가 변태 소리는 듣지만, 아직 풋내도 가시지 않은 년은 거들떠도 안 보니까. 억울하면 너도 키우라고, 이걸.”

사내가 자신의 가슴 앞에 손을 올려놓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취객들은 그것을 보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그 웃음 사이로 쉐리의 이 가는 소리가 식당 안을 울렸다.

빠드드드득!

“너희는 다 죽었다고 복창해! 솟구…!”

순간, 마나가 재배열되며 주위로 습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빨리 렐리가 막아섰다.

“쉐리야, 그만해! 여기는 식당 안이야!”

“하, 하지만 저것들이!”

울먹거리는 쉐리가 가리키는 쪽을 슬쩍 보니, 녀석들이 낄낄거리며 잔을 부딪치고는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들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던 상황도 모르고 말이다.

렐리가 쉐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쉐리 착하지?”

쉐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얌전하게 자리에 착석했다.

하지만 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취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렐리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섯 놈이었다.

식당 주인이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쩔쩔맸다. 녀석들은 유명한 동네 건달들이었다.

놈들은 히죽거리며 렐리의 몸매를 훑어보면서 혀로 입술을 쓸고는 입맛을 다셨다.

“쩝!”

렐리는 자신의 등 뒤로 송충이들이 기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이, 아가씨, 우리랑 같이 놀아보지 그래?”

“재밌게 놀아줄 용의가 있다고.”

쉐리가 인상을 구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루슬란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자신이 일어났다. 클라우저는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클라우저가 검집에 손을 올리고는 어금니를 꽉 깨문 소리로 말했다.

“좋은 말 할 때 가라.”

하지만 녀석들은 큰 덩치의 루슬란과 클라우저를 보고도 전혀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왜? 네 녀석들이 칼 뽑아들면 무서워할 줄 알았어?”

“난 무서운데? 어이구! 무서워라! 크헤헤헤헤!”

오히려 더 시비를 걸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건달 녀석들은 자신들의 머릿수를 믿는 모양이었다.

렐리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그것을 본 녀석들이 더욱 설쳐 댔다.

“왜 그렇게 화난 표정을 짓는 거야? 너무 섹시하잖아.”

“아, 이대로 반해버릴 것 같아. 오늘 이 오빠와 하룻밤 어때? 가격은 적당히 쳐줄게.”

“낄낄낄낄!”

건달들이 음담을 하며 렐리의 몸을 슬쩍슬쩍 쓰다듬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한계였다. 루슬란이 주먹을 움켜쥐고 공격 태세를 취하자, 녀석들이 반격할 자세로 대비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온 것이 확실했다. 충돌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바로 그때, 시비를 걸고 있던 한 녀석이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어라?”

구당탕!

“뭐, 뭐야?”

녀석은 자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 분명히 다리를 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화가 치민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녀석의 시선이 뒤로 돌아가자 패거리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자신들의 등 뒤에 후드를 뒤집어쓴 음침하게 보이는 녀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음침한 녀석이 말했다.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희롱하면 벌 받아요.”

“이런 미친 자식!”

건달들의 주먹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그러자 사내가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뒤로 뺐다.

주먹을 휘두른 건달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쭈? 그래, 한가락 한다 이거지.”

이곳 식당 주인의 안색은 창백해지고, 취객들은 환호했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뭐라 말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기 시작했다. 괜히 끼어들어 봤자 본전도 못 건지고, 자신도 함께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부서질 물품들을 걱정하며 최대한 몸을 피했다.

그때, 건달이 자신의 주먹을 피한 사내를 향해 팔을 뻗었다. 멱살을 움켜잡기 위해서였다.

사내가 조금 전과 달리 쉽사리 손아귀에 잡혔다. 건달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낄 자리, 안 낄 자리 구분하고 살아야지, 병신아.”

건달 녀석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을 들었다. 하지만 사내는 태연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거 휘두르게? 지금 휘두르면 피곤할 텐데?”

“뭔 개소리야? 미친 녀석!”

그렇게 말하고 주먹을 휘두르려던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병사들이 떠들썩하게 들어왔다.

“어휴! 배고파.”

“오늘 근무는 너무 힘들었어.”

“모두들 수고했어. 밥이나 먹자고… 응? 뭐지?”

기분 좋게 들어서던 병사들의 인상이 구겨졌다. 식당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 설마 싸우는 건가?”

“어떤 녀석들이야! 누가 싸워!”

병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취객들은 몸을 돌려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능하면 최대한 병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병사들과 트러블이 생겨 봤자 피곤해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의 멱살을 움켜쥔 건달이 조심스럽게 손을 뗐다. 그리고는 능청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하하하! 오늘도 치안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 자식! 또 너냐! 오랜만에 철창 안에서 숙식 좀 제공받아 볼 테냐!”

“그, 그럴 리가요!”

“그럼 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는 얼굴 만나서 반가워 가지고 인사 좀 한 겁니다.”

병사들의 시선이 쉐리 일행을 향했다. 그리고 인상을 구겼다.

“이 새끼들, 퍽이나 인사했겠다. 빨리 사라져라.”

“그렇지 않아도 저희는 식사를 마치고 가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렇지?”

동료들의 호응을 기다리며 시선을 돌리자 다른 건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 그렇지.”

“어서 나가야지. 아, 배부르다.”

동료들의 말을 들은 건달이 병사를 향해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빨리 꺼져라. 밥맛 떨어진다.”

“아이구! 그럼 빨리 꺼져야지요. 즐겁게 식사하십시오. 얘들아, 가자!”

그렇게 녀석들이 우르르 밖을 향해 나갔다.

녀석들만 나선 것이 아니었다. 눈치를 살피던 몇몇 취객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흠! 잘 먹었다!”

“주인장, 돈은 여기 놓고 가오!”

뭔가 켕기는 녀석들이 우르르 밀려 나간 것이다.

갑자기 식당 안이 휑해졌다. 그러자 병사들이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 주인은 감격한 표정으로 튀어나와 인사를 했다.

“아이고! 병사님들! 감사합니다!”

인상 좋아 보이는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죠. 저런 녀석들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현행으로 잡지 않는 이상 힘들어서. 미연에 대처를 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아이구! 아닙니다요. 그저 이렇게 신경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요. 병사 나으리들, 어서 저기 앉으십시오. 제가 맛있는 식사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앉아 계세요. 잭! 뭐하느냐! 어서 여기 병사 나으리 분들께 시원한 맥주 가져다드리지 않고!”

“어허!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요.”

“예! 지금 그렇지 않아도 가고 있어요!”

병사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기분은 좋은지, 히죽 웃으며 식당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때, 종업원 소년이 허겁지겁 맥주잔을 들고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병사님들, 맛있게 드세요.”

“그래, 잭. 네가 수고가 많다.”

“헤헤! 아니에요.”

잭이란 종업원 소년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식당 주인은 허리를 숙여 다시 한 번 인사하고, 쉐리 일행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

상황이 종료되자 렐리가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고,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별다른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네요.”

“저희 때문에 피해를 입으셔서….”

“아하하! 이런 미인을 구하는데 멱살 한번 잡히고 끝난다면 남는 장사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백번 잡혀도 상관없습니다.”

사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행들은 생각했다. 음침한 외형과 달리 목소리는 시원한 것이 호감이 간다고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사하네요.”

“뭘, 감사하실 것까지야.”

사내는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언밸런스해서 일행들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곧 루슬란이 말했다.

“아직 식사 전이신 것 같은데, 저희와 함께 드시겠습니까?”

“그럴까요?”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 사내를 보며 일행들도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 분위기는 음식이 나왔을 때까지 이어졌다.

자신의 음식을 앞에 둔 클라우저가 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한마디 흘렸다.

“저것들을 죽여 버릴까?”

“….”

클라우저의 말을 듣고도 루슬란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참은 것이었지, 밖에서 이런 상황이 생겼다면 벌써 칼부림이 났을 것이다.

일행들은 모두 속으로 화를 꾹꾹 눌렀다.

그때 렐리가 말했다.

“모두들 왜 그래. 즐겁게 먹어야지.”

“언니는 지금 상황에 웃으면서 먹을 수 있어요?”

“어머! 밥하고 저 녀석들하고 뭔 상관이니. 인상 구기고 있으면 맛도 없어지고, 탈만 나. 잊을 건 빨리 잊어야지.”

결국 클라우저가 피식 웃고 말았다.

“에효! 누님은 속도 좋수.”

“후훗! 이 누님은 겉도 속도 완벽하단다. 어서 먹자.”

그제야 일행들이 수저를 들었다. 물론 그 전부터 분위기 파악 하지 못하고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약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가 자신들에게 어떤 호의를 보였는지 봤기 때문이다.

식사를 시작한 일행들은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에 기분이 많이 풀리게 되었다.

쉐리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결 부드러워진 시선으로 사내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예요?”

“아, 제 이름을 말하지 않았던가요? 앤디라고 합니다.”

앤디의 대답에 렐리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안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통성명을 지금 하네요. 저는 렐리예요. 저 아가씨는 쉐리, 여기 듬직한 분은 루슬란, 저기 잘생긴 청년은 클라우저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클라우저라고 합니다.”

“반갑소. 루슬란이오.”

“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앤디가 시원하게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반겼다.

그때, 쉐리가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후드를 푹 덮고 다녀요? 갑갑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오해도 많이 할 것 같은데….”

한마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앤디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머쓱한 몸짓으로 대답해줬다.

“아, 제가 쑥스러움을 잘 타서요. 더 궁금한 것 있으신가요?”

그렇게 대답을 하곤 그대로 고기를 썰어서 입에 집어넣었다.

“암냠냠냠!”

앤디의 어처구니없는 대답과 처음부터 쭉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 그러니까 마치 자신 외에는 크게 관심 없는 듯한 모습을 보며 모두들 결국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원래부터 성격이 이런 사람이구나.’

“푸후후후!”

“하하하!”

앤디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고기를 썰어 부지런히 입으로 넣었다.

“….”

우물우물!

달그락달그락!

앤디의 자리에서는 뭔가 억울한 항변이라도 하듯 말 대신 접시와 칼, 포크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흘러나왔다.

3

앤디와 헤어진 일행들은 자신들의 숙소로 올라갔다.

방 안에서 쉐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 선 넘어오면 죽일 거야!”

클라우저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

“누가 너 같은 유아 체형을 탐낸다고 그러셔! 걱정 말고 잠이나 자셔!”

“너! 너너! 너어어!”

“오빠한테 너라니!”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다시 티격태격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한방에 몰아 자게 된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4인실인지라 방은 넓었다.

둘이 열심히 목청껏 싸우는 와중에, 루슬란이 예의 그 두꺼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미안하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잖아요.”

렐리가 화사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루슬란이 말했다.

“만일 불편하면 말하게. 나는 밖에서 자도 충분하니까.”

“후후! 비싼 돈 주고 숙소를 얻었는데 왜 밖에서 자요. 돈 아깝게. 그리고 노숙도 하루 이틀이지, 몸 상해요. 저는 신경 쓰지 않으니까 루슬란 오라버니도 그냥 주무세요.”

“…고맙군.”

“별말씀을요.”

그때, 클라우저가 렐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넌 좀 렐리 누님처럼 고분고분해져 봐라. 저거 봐. 저렇게 배려심도 많잖냐. 여자애가 그렇게 악만 써서 누가 거들떠나 보겠냐!”

쉐리가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고 악을 질렀다.

“남 이사! 신경 끄셔! 댁한테 갈 생각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셔!”

둘의 모습에 렐리가 한심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또 똑같은 대사로 똑같이 싸우네. 쟤네들은 지겹지도 않나?”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하긴요.”

하지만 오늘 싸움은 평소와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클라우저가 말했다.

“에효! 걱정이다, 걱정. 누가 너랑 결혼할지 생각만 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몸매도 안 좋지, 성격도 안 좋지, 얼굴도 안 예쁘지. 삼박자 고루 갖췄네.”

여기까진 똑같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틀어졌다. 순간 쉐리의 큰 눈동자에 이슬이 흔들리더니,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렁그렁!

그것도 모자라 눈물이 모이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뚝뚝!

클라우저는 자신에게 날아올 이야기를 예상하고 맞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당황했다.

‘뭐, 뭐지, 이건?’

괜히 죄지은 사람인 양 죄책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때 쉐리가 말문을 열었다.

“오빠.”

“으, 응?”

“오빠는 정말로 내가 그렇게 미워? 나 정말 안 예뻐?”

“아니, 저, 그게….”

클라우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정말 그래?”

“아, 아니, 예뻐.”

“거짓말!”

“아냐, 정말 예뻐.”

“그런데 왜 만날 못생겼다고 구박해?”

자분자분하게 나오는 게 더 무서웠다.

“그건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오빠 미워! 흑흑흑흑흑!”

결국 그대로 주저앉고는 울기 시작했다.

클라우저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뻣뻣한 움직임으로 팔을 뻗어서 쉐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쉐리야….”

“미워! 저리 가! 가란 말이야!”

쉐리는 어깨를 밀치며 클라우저의 손을 치웠다. 그러자 클라우저가 민망한 듯 자신의 손을 비비더니, 다시 팔을 뻗어서 조심스럽게 쉐리의 머리 위에 올리고 쓰다듬었다.

“쉐리야, 미안해. 잘못했어.”

“엉엉엉엉!”

쉐리는 더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 클라우저가 정말 잘못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안 그럴게. 용서해줘.”

“잉잉잉! 오빠 미워!”

쉐리는 그렇게 말하며 클라우저의 가슴을 두드렸다.

퍽퍽퍽!

‘컥! 아프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클라우저는 겉으로는 태연함을 보이며 양팔을 뻗어 쉐리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러자 쉐리가 포옥 안겨 왔다.

클라우저는 그런 쉐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래그래. 오빠가 잘못했어.”

“꺼이꺼이!”

“미안, 미안. 앞으로 안 그럴 테니 어서 뚝! 뚝!”

“…뚝! 흑흑!”

“옳지, 옳지….”

그런 둘을 보며 렐리와 루슬란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이들의 풋풋한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렐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클라우저 너의 좋은 때는 다 지나갔다. 후훗!’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라우저는 연방 울고 있는 쉐리를 다독이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온 앤디는 방 안에서도 후드를 벗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누웠다.

“언제 오려나.”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침대 위에서 뒹굴거렸다.

뒹굴뒹굴! 데굴데굴!

“역시 침대는 뒹굴거려 줘야 제맛이라니까.”

도무지 모른 척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을에 들어오기 바로 전부터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와 투기.

전혀 갈무리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만큼 알 사람은 알아도 상관없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고 말하는 듯한 자신감의 표출이리라.

이 기운을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지금 이 기운을 불쾌감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유 없이 몸이 무겁고, 기운이 가라앉는 수준으로 생각할 테니 말이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기사나 마법사라 해도 의아하게 생각하며, 불길한 기운 정도로 파악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앤디는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이 기운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전, 자신과 식사를 한 일행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라면 짐작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군.’

바로 루슬란이라는 중년의 사내였다. 짐작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빨리 와라. 기다리기 지루하다. 음?”

순간, 앤디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왔군.”

후드 속에 숨어 있는 앤디의 눈빛이 반짝였다.

일행들이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움찔.

가볍게 몸이 떨린 루슬란이 조심스럽게 깨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느끼고 있던 어떤 기운이 더욱 강해졌음을 느낀 탓이다.

그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느껴지던 심장을 옭아맬 정도로 음침하고 음산한 기운.

믿어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아는바 그것은 분명 투기였다.

믿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투기가 이렇게 넓은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뻗어나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한 자이기에 투기를 이렇게 뻗을 수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루슬란은 자신이 다른 기운을 투기로 착각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닥쳐 온 수수께끼의 현상이 상식의 선을 넘어서자, 자신의 상식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전투에 익숙한 일행들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과민 반응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행들이 평소와 다르게 피곤하다며 숙소를 빨리 잡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신경이 곤두서서 피로가 빨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기운이 일행들에게 스트레스를 자극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 기운이 자신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그럼 대체 뭐지? 이 기운의 정체는?’

불안함에 자신의 무기를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자꾸 불안함이 커져 갔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나가 수상하니 식당에 와서 벌어진 일들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일들이 걸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별일이 없자 마음을 놓을까 했는데 갑자기 기운이 강해졌다.

착각이 아니었다.

몸이 오싹오싹하게 전신을 자극하는 이 기운.

절대 착각이라 할 수 없었다.

그때, 부스럭거리며 렐리가 깨어났다.

“무슨 일이에요, 오라버니? 주무시지 않고요.”

그녀의 반응에 루슬란이 말했다.

“해터슨?”

조금 전 보았던 해터슨의 수배지가 무의식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경비대장이 이야기했던 둘이 형제 사이라는 소문에 대한 것도 떠올랐다.

“갑자기 해터슨이라니요.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렐리가 말을 걸었지만, 루슬란은 대꾸하지 않고 혼자 알듯 모를 듯한 말을 내뱉었다.

눈치 빠른 렐리가 뭔가 수상쩍은 상황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옷과 무기를 챙겨들었다.

루슬란이 괜히 저럴 사람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를 보니, 푹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쉐리와 클라우저가 어느새 일어나 무기를 들고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유 모를 엄청난 기세가 일행들을 향해 날아왔다.

슈와악!

착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엄청난 능력을 지닌 존재가 자신들을 확실하게 노리고 쏘아낸 것이다.

“으읏!”

“뭐, 뭐지, 이 기운은!”

모두 놀라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창밖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흐흐흐흐….”

동시에 창을 깨고 공과 같은 뭔가가 날아 들어왔다.

데굴데굴! 데구르르….

“헛! 저, 저건!”

날아 들어온 공의 정체는 사람 머리였다. 그것이 굴러서 쉐리의 발아래로 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쉐리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그 머리의 주인은 놀랍게도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이였다. 바로 자신들에게 현상금을 전해준 경비대장의 머리였던 것이다. 혀를 쭉 내밀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죽기 직전의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누, 누구냐!”

클라우저의 딱딱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밖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큭큭큭큭큭!”

그림자가 창밖에 우뚝 섰다.

“내 동생의 핏값을 받으러 왔다.”

“해, 해터슨!”

콰과과광! 챙그랑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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