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5화 (5/68)

제5장. 셀린

1

사실 더 볼 것도 없었다. 이미 끝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대머리 놈이 꿋꿋하게 버티며 덤벼드는 사내에게 핏대를 새우며 목소리는 높였다.

“이 새꺄! 너 이용당하는 거라고! 네가 저년을 몰라서 그래!”

그 말에 사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지 마라! 내가 그깟 이빨에 넘어갈 것 같으냐! 이토록 힘없는 여인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오명을 씌우다니! 더러운 깡패 새끼들! 퉤엣!”

“흑흑흑흑흑….”

“울지 마시오. 내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필코 당신을 지켜 주겠소.”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소. 위기에 처한 여인을 돕는 것은 사내로서 당연한 일인 것이오.”

사내가 피를 철철 흘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것을 본 놈들이 혀를 차며 말했다.

“병신 새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시끄럽다! 덤벼라!”

사내는 정말이지 멋스러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저년에게 이용당하는 네 녀석이 불쌍해서 지금까지 봐줬는데 안 되겠군. 우리는 분명히 처음부터 경고했었다.”

“웃기시네.”

“쳐라!”

놈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윽! 커헉!”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사내는 장렬하게 여섯 놈들에게 밟혀 쓰러졌다. 사내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보려 했지만, 뚱뚱한 녀석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나자빠졌다.

퍽!

“캑!”

그 순간, 오들오들 떨면서 사내 뒤에 자리하고 있던 여인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턱을 치켜들고 눈을 내리깐 그녀는 자신을 위해 싸우다가 쓰러진 사내를 쓰레기 보듯 쳐다보았다.

“등신 같은 새끼. 이런 조무래기들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쓰러지긴.”

“….”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쓰러진 사내는 부들부들 떨다가 픽하고 전신이 축 늘어졌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상황을 보니 저 사내와 여인의 연관 관계가 없어 보였다. 여자가 도망치며 도와달라고 하자 의협심을 발휘해 끼어든 모양이었다.

그것을 확실하게 목격한 앤디는 입맛을 다시며 사내를 향해 이유 모를 연민 어린 시선을 던졌다. 놈들도 갑갑한 표정으로 사내를 내려봤으니 말 다 했다.

놈들이 시선을 돌려서 여인을 노려보았다.

“크흐흐흐! 네년은 이제 죽었어.”

“이제 더 이상 도망은 못 치겠지?”

“망할 마귀 할망구 같은 년! 어서 우리 돈 내놓지 못해!”

놈들의 입에서 한마디씩 튀어나왔다. 여인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는 말했다.

“훗! 능력 있으면 가져가 보시지? 그리고 이렇게 예쁜 마귀 할망구 봤어?”

이유 모를 여유와 탱글거리는 가슴이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그녀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놈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꼴깍 하는 소리가 앤디가 있는 곳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저 마녀에게 휘둘리지 마! 우리 동료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잊었냐!”

“헉! 그, 그렇지! 쓰읍!”

“헛! 나도 모르게 그만!”

놈들이 입가에 흘리던 침을 소매로 훔치고는 여인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이 모두 가신 것은 아니었다. 녀석들도 사내였기 때문이다.

“잡아!”

녀석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몸은 상당히 민첩했다. 슬쩍슬쩍 피하며 몸을 뒤로 빼더니, 허벅지에서 단검을 꺼내 집어던졌다.

푹!

“크아아악!”

그것은 한 녀석의 어깨에 명중했다. 녀석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단검을 뽑아들었다. 상처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이 한마디 던졌다.

“어머! 터프해라.”

묘하게 염장 지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도 모르게 뺨을 붉히며, 고통도 잊었는지 알통을 만들면서 씨익 웃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동료들이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이 병신아! 뭐하는 짓이야!”

“아? 아! 나, 나도 모르게!”

녀석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뒤통수가 얼얼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모습에 여인이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후훗!”

그러자 녀석은 이를 갈았다.

으득!

“이 마녀! 내 결코 네년을 가만두지 않겠다!”

녀석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여인이 자신의 뒷머리를 끌어올려 아름다운 선을 가진 뒷목을 드러내며 요염하게 물었다.

“가만히 안 두면 어떻게 할 건데에?”

“이렇게 저렇게 해주겠어! 크흐흐!”

“어머나! 나는 아픈 거 싫은데. 부드러운 게 좋아.”

“크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오늘 이 오빠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 캑!”

녀석은 다시 뒤통수를 맞고 두리번거렸다. 지금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하아! 이 병신은 놔두고 어서 잡아! 그리고 최대한 저년하고 시선을 마주치지 마! 안 그러면 또 당한다! 저년하고 눈이 마주치면 홀리는 것 같아 보여!”

눈치가 상당히 빠른 녀석이었다.

그 말을 들은 사내들은 최대한 시선을 피하며 여인을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을 좁혀 나갔다. 그제야 여인의 얼굴에서 여유가 조금 사라졌다.

“흐응! 오빠들, 연약한 여자한테 너무들 한 거 아냐?”

한 놈이 이죽거렸다.

“연약한 여자 다 얼어 죽었다.”

“칫! 내 유리같이 섬세한 가슴이 상처 받았어. 너무해.”

푸릉푸릉!

그녀가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자 탄력적인 가슴이 출렁였다.

그에 사내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떤 놈은 마른침을 삼켰다.

“꼴깍!”

“시, 시끄러! 어서 저년을 잡앗!”

잠시 동안 여인의 가슴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사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자 고운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요년아!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고!”

놈들이 여인을 덮치려던 그 순간, 앤디와 여인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여인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2

처음 여인의 눈빛을 본 순간 앤디는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여인의 눈빛이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뱀의 눈처럼 느껴진 탓이다. 정확하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의 눈을 통해 들어와, 심맥을 타고 스며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앤디는 이것이 심안술의 한 종류에 바탕을 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어째서 사내들이 여인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인의 눈을 보면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인 최면에 빠지는 것이다. 여인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최면에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복종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여인이 사용하는 술법을 확인한 앤디는 여인에 대한 감정이 더욱 악화되었다.

아이에게 이 기운을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도 남자는 남자다.

셀린은 자신의 능력에 한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저 소년도 자신에게 넘어왔음이 확실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정심한 기운으로 충만한 앤디를 사술로 흔드는 방법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것을 모르는 와중에 셀린은 갈등했다.

‘저 아이를 이용하면 나는 도망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위험에 처하겠지? 저 구석에 두들겨 맞고 뻗어 있는 바보 같은 사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나 하나 살겠다고 아이까지 위험에 처하게 해야 하나?’

셀린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고혹적이었다.

곧 셀린은 결정을 했는지 앤디를 보며 반갑게 웃어주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재빨리 등을 돌려 몸을 빼서 도주를 택했다.

“저년이 도망쳐?”

“큭큭큭! 뛰어봤자 벼룩이지. 어이, 마녀, 네가 들어간 그 골목은 막힌 골목이라고.”

“킥킥킥킥킥!”

녀석들은 슬금슬금 몰이사냥을 하듯 셀린이 들어간 골목길을 따라 들어섰다.

셀린은 막힌 골목길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고 결국 놈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한 놈이 웃으며 셀린의 풍성한 상체를 끌어안듯 덮쳤다.

“잡았다!”

“꺄악!”

“큭큭! 하는 행동하고 달리 목소리는 귀여운데?”

“가만 안두겠어!”

“해봐! 해보시지? 지금까지처럼 건방 떨어보란 말이야! 킥킥킥킥!”

“이것 놓지 못해! 이거 놔!”

“이년 이거 파닥거리는 것이 잡는 손맛이 있어. 크크크!”

“낄낄!”

“놓으란 말이야!”

쫙!

순간, 셀린의 눈앞이 번쩍이며 뺨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마주 서 있던 빼빼 마른 놈이 셀린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가만히 있지 못해! 네년한테 당한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못 잔다고!”

셀린이 자신을 때린 놈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녀석의 시선은 땅을 향하고 있었다.

셀린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여자하고 눈도 못 마주치는 고자 새끼가!”

“큭큭! 더 이상 도발하지 마라. 이 이상 꼭지가 돌아버리면 돈이고 뭐고 그냥 죽여 버리는 수도 있으니까.”

앤디는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뜻밖이었다. 그녀가 도와달라고 하거나, 무슨 짓을 시켰다면 신경을 껐을 텐데….

사실 지금도 별로 개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꾸 발길이 안 돌아갔다. 마지막에 지었던 미소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 환한 미소가 말이다.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니니 어서 가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의 미소였다.

“에효….”

앤디의 마음이 굳어졌다. 저 여인을 구하고 보기로 말이다.

마음을 먹기 무섭게 허공에 떠오른 앤디의 신형이 깃털처럼 가뿐하게 골목길 사이로 착지했다. 그리고 나직하게 한마디 흘리고 말았다.

“거기, 그만둬.”

“거기, 그만둬.”

“뭐?”

“어떤 미친….”

놈들의 시선이 낯선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많이 봐줘야 10살이나 되어 보일까?

귀엽게 생긴 어린 녀석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가 막혔다.

“헛!”

“참 나!”

입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너무 기가 막혀서 화도 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윽고 인상을 구기며 뚱뚱한 사내 하나와, 얼굴에 깊은 흉터가 있는 사내가 앤디의 앞으로 다가왔다.

“어흥! 혼 좀 나고 싶냐?”

“네가 잠자기 전에 엄마가 무슨 동화책을 읽어주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좋게 말할 때 그냥 가서 자라.”

“….”

웬만한 아이들이 봤다면 놀라서 오금이 저릴 만한 얼굴들이었다. 문제는 앤디는 웬만한 아이들의 범위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대답할 가치가 없었기에 대꾸 없이 서 있었는데, 그게 이들에게는 아이가 무서워서 얼었다고 생각이 된 모양이었다.

그 상황에 만족한 녀석들은 음침하게 웃으며 아이가 겁먹은 모습을 즐겼다.

그때, 앤디가 한심한 표정으로 놈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그러자 녀석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 놈은 눈썹이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녀석들이 머리가 달리긴 하지만, 앤디가 내쉰 한숨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에 눈이 멀자 눈앞의 녀석이 아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았다. 녀석들의 인내심은 거미줄보다 얇았던 것이다.

“이 자식이 지금 우리에게 한심한 눈빛을 던진 거 맞지?”

“나만 그렇게 본 게 아닌 모양이군.”

“으득! 단단히 교육을 시켜야겠어.”

얼굴에 흉터가 있는 녀석이 앤디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내리꽂을 기세였다. 아니, 이미 뻗었다.

부웅!

거칠게 휘둘러진 녀석의 주먹이 바람을 갈랐다.

그것을 본 셀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이야! 어서 도망쳐! 어?”

순간, 셀린은 자신이 잘못 봤나 했다. 소년이 자신을 향해 이 급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너무나도 부드러운 미소를 보냄과 동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3

셀린은 길 가던 어떤 정의감 넘치는 머저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톤이 높았지만 긴박한 상황이다 보니 크게 신경 쓰지 못했는데, 시선을 돌렸다가 당황했다. 조금 전 옥상에 있다가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아이가 아닌가. 그 아이가 자신을 도와주러 온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자신 때문에 애꿎은 아이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셀린의 예상대로 녀석들은 아이를 향해 거침없이 손을 쓰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아니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상태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 뭐야?”

뒤늦게 자신이 공격하려 했던 목표물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얼굴에 흉터가 있는 녀석이 의아한 목소리를 드러냈다. 아이가 있던 자리에, 허무하게 허공을 휘두른 자신의 주먹만 초라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 갑자기 어디 갔어?”

녀석이 눈을 껌뻑이며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얼굴에 흉터가 있는 녀석 옆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저 찾으세요?”

그러자 그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 그래 너, 언제 거기로 갔냐? 엉?”

앤디는 씨익 웃더니 오른쪽 팔을 최대한 위로 끌어올린 후, 녀석의 뺨에 싸대기를 갈겼다.

쩌어억!

“커헉!”

살가죽과 살가죽이 달라붙는 시원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녀석의 얼굴이 돌아갔다. 그러자 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려 자신의 뺨을 때린 앤디를 바라보았다.

아픈 것을 떠나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런 조막만 한 놈에게 농락을 당하다니 말이다.

녀석의 눈빛은 터질 것 같은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애송이 새끼! 정말 죽여 버리겠어!”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앤디는 양팔을 들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이구! 무서워요! 덜덜덜!”

얼굴에 흉터가 있는 녀석은 자신의 눈앞에서 자꾸 깐족거리며 신경을 건드리는 앤디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순간, 터진 굉음.

퍼억!

동시에 그의 머리가 울려 왔고, 눈앞에서 거대한 별을 볼 수 있었다.

“어라? 어라?”

“뭘 어라, 어라입니까. 그냥 주무세요.”

앤디가 휘청거리고 있는 녀석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 밀자 옆으로 쓰러지더니, 바닥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뒤에서 웃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녀석의 동료들과 셀린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아이에게 뺨을 맞고 분노로 칼을 휘두르려던 녀석의 몸이 순간 기우뚱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은 탓이다. 아무리 봐도 그 이상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뭐, 뭐지?”

“이봐,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녀석들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면에 셀린은 상황이 어찌 되었든 아이가 무사한 것을 보자 안도하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아이야! 어서 도망쳐! 지금이야!”

셀린이 몸부림을 치며 외치자, 조금 전 뺨을 후렸던 빼빼 마른 놈이 이번에는 그녀의 복부에 주먹을 쑤셔 박았다.

“시끄러워, 이년아!”

퍼억!

“…!”

셀린은 너무나 고통스러운지 비명도 흘리지 못했다.

그 모습에 앤디는 지금까지 여유 어린 미소로 녀석들을 주시하던 표정을 지웠다.

빼빼 마른 녀석이 남아 있는 동료들을 주시하며 다급히 외쳤다.

“뭐해! 저 녀석이 튀기 전에 어서 잡아!”

그러나 자신이 소리쳤음에도 동료들은 앞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자리에 멈춰서 머뭇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빼빼 마른 녀석은 답답해서 다시 한 번 외쳤다.

“뭣들 하는 거야!”

“니 앞.”

“뭐?”

“니 앞이나 보라고.”

“무슨 개소리야!”

그때, 빼빼 마른 녀석의 앞에서 낮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저씨들이 하는 말의 뜻은 바로 저를 보라는 것이지요.”

“응?”

퍼억!

앤디의 주먹이 빼빼 마른 녀석의 얼굴을 시원하게 갈김과 동시에,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뒤돌려 차기로 가슴을 내리찍었다.

뻑!

“꺽! 꺼억!”

녀석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바닥에 나자빠졌다.

쿠쿵!

그렇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녀석이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아이구! 아야! 아이구! 아야!”

데굴데굴.

어디가 아픈지 모를 정도로 전신이 다 쑤셨다. 떨어질 때 충격이 심했던 것이다.

녀석이 신음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던 앤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내가 너무 약하게 때렸나? 아직까지 비명이 튀어나오는 걸 보니 덜 아픈 모양이군요. 원래 제대로 맞으면 비명도 안 나거든요.”

대체 뭔 개소리냐는 듯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빼빼 마른 녀석은 자신을 향해 발을 치켜드는 앤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

“응? 이보세요, 아저씨? 이번에는 내가 너무 세게 밟은 모양이군요.”

“….”

앤디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쉽게 보냈어. 쯧!”

그리고 귀여운 목소리로 상큼하게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셀린을 잡고 있던 한 녀석과, 그 녀석 주위에 자리하고 있던 세 녀석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앤디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자 소름이 돋은 탓이다.

“너, 넌 누구냐!”

“저요? 앤디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누군지 말한다고 아시나요?”

녀석들의 가슴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마가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일어날 정도였다.

그런 착각을 할 만도 했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거기다 이유도 없이 쓰러진 동료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 탓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현실감이 없었다. 그게 두려운 것이다. 악마가 자신들의 정신을 컨트롤하는 것 같았다.

한 녀석이 결국 마음에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 아, 악마다!”

“히익!”

그 말에 공감대를 형성한 녀석들이 잡고 있던 셀린도 놔준 채, 두리번거리며 도망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앤디는 그런 그들을 보며 말했다.

“누가 악마라는 거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잔혹한 미소는 충분히 악마와 비견될 만했다.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자, 잘못했어요!”

앤디가 슬며시 앞으로 발걸음을 움직이자, 녀석들이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눈썹이 없는 녀석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그렇게 풀려난 셀린 역시 꼼짝하지 못했다. 앤디가 정말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탓이다.

그럼에도 앤디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 셀린의 아름다운 눈빛 속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 앤디가 셀린의 시야에서 다시 한 번 사라졌다.

퍽퍽퍽퍽!

그와 동시에 깔끔한 타격음이 연이어 터지고, 4명의 사내가 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끄악!”

“꾸어억!”

화급히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피니, 녀석들 모두가 주저앉아서 콧잔등을 부여잡고 있었다. 녀석들의 코에서는 피가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졌다.

고통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자신들이 어떻게 맞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재빠르게 무릎을 꿇더니 앤디에게 사정했다.

“아, 악마님! 전하! 폐하! 사, 살려만 주십시오!”

“제가 뭘 했기에 살려 달라는 겁니까? 제가 언제 죽인데요?”

“그, 그럼….”

“조금 여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는 것뿐이랍니다.”

“아!”

순간, 앤디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저씨들도 아저씨들이 잘못한 것을 아는 모양이군요.”

“무, 물론입니다!”

“저희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녀석들은 정말 절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정말 자신들은 죽어야 한다는 것 같은 슬픈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에 앤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잘못한 것을 아는 거죠?”

“예! 물론입니다!”

“그럼 잘못했으면 맞아야 해요, 안 맞아야 해요?”

“예?”

그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녀석들이 앤디를 올려다보았다.

앤디는 싸늘한 표정으로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잘못했으면 맞아야 해요, 안 맞아야 해요?”

“마, 맞아야… 해요….”

그 대답에 앤디가 환하게 웃었다.

“훌륭해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랍니다.”

앤디의 칭찬을 들은 녀석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동료들은 부럽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돌아보았다. 앤디가 끝말을 이어나가기 전까지 말이다.

“그래요. 아저씨의 말대로 맞아야 해요. 그러면 몇 대 맞을래요?”

“….”

움찔.

한 녀석이 말문을 열었다.

“마, 맞아야 하나요?”

“그럼요. 잘못했으면 맞는 거라면서요.”

“그, 그래도….”

“잘못했으니까 맞는 거예요.”

앤디는 한 치의 양보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단호히 말했다. 어떻게든 때리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녀석들이 연방 마른침을 삼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맞은 것 같은데… 아, 아닌가요?”

앤디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말이시죠?”

“저희 코….”

“아하하하! 그건 쓰다듬은 거지요.”

“그, 그럼….”

꼴깍!

녀석들은 억지로 마른침을 삼켰다.

곧 앤디가 대답했다.

“질문을 들어보니 정말 맞아본 적이 없으신 모양이에요.”

오싹.

녀석들의 등줄기에 닭살이 돋아 올랐다. 앤디는 한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때렸다고 하는 것은 이런 거랍니다.”

슈슛!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지불식간에 앤디의 주먹이 뚱보 녀석의 주둥이를 향해 날아갔다. 바람과도 같은 빠르기였다.

퍽!

“캑!”

퍽퍽퍽!

주먹이 연쇄적으로 녀석의 주둥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자신이 몇 대나 맞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뚱보 녀석의 입 밖으로 그렇지 않아도 별로 좋지 못한 치아 상태를 자랑하는 노란 이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커허허허헉!”

그리고는 결국 눈알을 뒤집고 그대로 쓰러졌다.

앤디는 자신의 주먹을 쓰다듬으며 시선을 나머지 녀석들에게 돌렸다.

“다음.”

“사, 사람 살… 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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