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4화 (4/68)

제4장. 수도 헤르미아

1

“오늘은 이곳에서 자자꾸나. 이제 내일쯤이면 헤르미아에 도착할 것 같구나.”

카렌 마을이 헤르미아의 인근 산맥이라곤 하지만, 족히 5일은 걸어가야 본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를 살피던 안드레이는 적당한 공터를 발견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부지런히 손수 몸을 움직여 마른 나뭇가지와 두터운 장작용 토막들을 주워왔다.

앤디도 보고만 있지 않고 직접 장작을 주워왔다.

안드레이는 시키지 않음에도 노숙을 위한 준비를 하며 바지런히 움직이는 앤디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후, 앤디가 어디선가 잡아온 꿩을 구웠고, 노릇노릇하게 잘 익자 안드레이는 직접 손을 뻗어 살이 많은 몸통을 뜯어다가 앤디에게 건넸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꿩은 비리지도 않고 정말이지 맛있었다. 밖에서 먹는 단출한 음식이었지만, 이 이상의 만찬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집에서 일부러 만들어 먹으려 해도 나올 수 없는 맛이랄까?

평소 노숙하며 하는 식사라면 마른 육포나 건빵을 씹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둘은 쩝쩝거리며 꿩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웠다.

안드레이는 아쉬운 눈치로 조금 전에 꿩의 형태를 유지했던 뼈다귀 더미를 바라보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평소 식탐이 별로 없는 안드레이건만, 이상하게도 앤디와 식사를 하면 식욕이 올랐다.

앤디가 히죽 웃더니 클레오가 싸준 육포에 어떤 소스를 슬쩍 바르더니, 불에 구워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안드레이에게 건넸다.

둘은 육포까지 다 먹자 장작 아래를 휘젓더니, 사냥을 하면서 어디선가 캐온 감자를 꺼냈다. 이어,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 익은 정도를 확인하고는 감자를 까기 시작했다.

“후, 후….”

“냠냠냠!”

안드레이는 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으며 마무리를 하고, 냇가에서 떠온 시원한 물까지 들이켜자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정말 기분 좋게 식사를 한 안드레이가 말문을 열었다.

“어디서 이런 것들을 배웠느냐?”

“노숙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돼요.”

“노숙을 오래 해? 네가 그곳에 살면서 노숙할 일이 있었더냐?”

그 말에 앤디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죠. 어른들에게 배운 거예요.”

“네가 사용하는 전투 기술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그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보는 안드레이였다.

앤디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안드레이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사실 그도 눈치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앤디를 가르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부모조차 앤디의 능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 않았던가.

앤디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이는 그런 앤디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의문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더 물어봐도 답을 들을 수 없을 것임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만 자자꾸나. 일찍 서두르면 내일 저녁은 늦게나마 도시에서 먹을 수 있을 거다.”

다음 날, 새벽이슬에 눈을 뜬 앤디와 안드레이는 자리를 정리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오솔길을 한참을 걷자 눈앞에 넓은 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위적으로 넓힌 도로인 것이다.

잘 정돈된 도로를 본 앤디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이 도로가 저 지평선 끝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를 따라 이동을 시작하자 저 뒤에서 마차 한 대가 다그닥거리며 달려오더니, 앤디와 안드레이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앤디와 안드레이는 어느새 저 멀리 앞서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차를 보니 사람 사는 곳에 온 기분이 드는군.”

안드레이가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앤디는 시선을 돌리곤 질문했다.

“가면 무엇을 하죠?”

“특별하게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나?”

“우선은 보고 싶네요.”

안드레이가 슬쩍 웃음 지었다.

“강한 자들을 말인가?”

앤디는 그 말에 객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두근거렸다. 이곳이 자신이 있던 곳과 다른 것처럼 사용하는 무술도 다를 것이다. 그들이 어떤 무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무기를 활용하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있던 작은 카렌 마을에서 궁금한 것을 배우는 일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어른들의 지식과 기억만이 유일한 배울 거리였기 때문이다.

안드레이는 앤디의 마음을 모두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다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해줄 테니 말이다.”

앤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이가 내려다본 앤디의 표정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말 2마리가 이끄는 낡은 사륜마차 한 대가 앤디와 안드레이 곁에 멈춰 서더니 창이 열렸다.

앤디와 안드레이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간 것은 당연했다.

창 안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앤디와 안드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만일 헤르미아로 가는 거라면 타십시오. 태워주겠습니다.”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감사하오. 그럼 실례를 하겠소.”

곧 안드레이와 앤디가 마차에 오르고 마차 안에 있던 중년인이 마부석에 있는 창을 두드리자, 찰진 채찍질 소리와 동시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는 콧수염이 멋지게 말려 올라간 중년인 한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앤디와 안드레이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앤디가 먼저 대답했다.

“카렌이란 마을에서 왔어요.”

“카렌?”

앤디의 대답에 중년인은 한참 고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군. 그런 마을이 있었던가?”

“바론 산맥 중턱에 있는 작은 화전 마을이에요. 모르실 수도 있어요.”

“그렇군. 하하하!”

그제야 너털웃음을 흘리는 중년인이었다.

웃음이 시원하고 선한 것이, 보는 이도 기분 좋게 마주 웃도록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앤디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운도 그렇고, 기질도 그렇고 나쁜 사람은 아니군.’

“이 노인 분께서는 자네의 할아버진가?”

앤디가 태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지금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는 중이에요.”

그런 그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안드레이는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극한의 인내로 참아냈다.

중년인은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앤디를 바라보면서 안드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구나. 손자가 참 귀엽군요.”

“허허! 늙어 무슨 낙이 있겠소. 우리 손자 녀석 자라나는 것을 보는 걸 낙으로 살고 있지요.”

안드레이의 뻔뻔한 대응에 이번에는 앤디의 입에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중년인이 앤디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안드레이가 물었다.

“아이를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제가 좀 그런 편입니다. 후후! 이 아이는 몇 살입니까?”

“이제 열한두 살쯤 됐습니다.”

“하하! 이제 자기 고집을 부리며 말을 안 들을 때겠군요.”

“또래에 비해 성숙한 편인지라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후후! 할아버지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겠지?”

“예, 아저씨.”

중년인이 앤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똘망똘망하게 아주 잘생겼네요. 크면 여자깨나 울리고 다니겠는데요?”

중년인의 장난스러운 말에 안드레이가 받아쳤다.

“제가 과거에 여럿 울렸었지요.”

“아하하하하!”

그렇게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던 와중, 중년인이 뒤늦게 깜빡한 것 같은 표정으로 안드레이에게 말문을 열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패드로라고 합니다.”

“나는 안드레이라고 하오. 여기 이 아이의 이름은 앤디라고 하오.”

“반가워요. 그런데 패드로 아저씨는 무슨 일을 하시는 거죠? 귀족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마차를 끌고 다니셔서요. 상인이신가요?”

“하하! 그렇단다. 하지만 약간 다르지. 내 직업은 보급 상인이란다.”

“보급 상인이요?”

“흠… ‘주보 상인’이라고도 하지. 예를 들면… 흠! 설명하기 복잡하군. 그냥 보따리장수라고 하면 쉽게 알아듣겠지?”

“아하!”

앤디가 고개를 끄덕이자 패드로가 안드레이에게 양해의 말을 건넸다.

“손자에게 뭐 좀 줘도 되겠습니까?”

“허허! 물론이오.”

안드레이의 허락에 패드로는 자신의 짐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며 꺼냈다. 그리고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앤디의 앞에서 두툼한 손바닥을 펼쳤다.

“짜잔!”

그것을 본 앤디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탕이네요?”

“사탕이네요오?”

“난 또 뭐라고.”

“나 또 뭐라고오오?”

패드로는 실망한 표정으로 앤디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이 특유의 엄청난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사탕 별로 안 좋아하니?”

그제야 뭔가 눈치챈 앤디가 난감한 표정으로 안드레이를 슬쩍 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그런 앤디를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움을 줄 분위기가 아님을 깨달은 앤디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와! 와아! 사, 사탕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입꼬리에 미세한 경련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패드로는 그 경련을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다.

“아하하! 그렇지. 아이가 사탕을 좋아하지 않을 리가 있나.”

“냐, 냠냠! 정말 맛있네요. 달고… 우물우물….”

큰 눈깔사탕 하나를 입안 가득히 넣은 앤디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스러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눈앞의 사내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 없다는 책임 의식이 고개를 치켜 들은 탓이다.

패드로는 그 모습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안드레이는 억지로 눌러 참았던 웃음을 결국에는 터트리고 말았다.

자신이 요 며칠간 지켜봐 오며 알게 된 앤디의 모습은 어른스러운 수준을 넘어, 그냥 어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앤디가 땀을 삐질 흘리며 ‘아이스러움을 연기’하고 있는데 어찌 웃기지 않겠는가.

“푸, 푸핫! 푸핫핫핫!”

“왜 웃으십니까?”

패드로의 물음에 안드레이가 힘겹게 답변했다.

“그, 그냥 그럴 일이 있다오! 푸핫핫핫핫핫핫!”

“….”

앤디가 안드레이의 반응에 속으로 이를 갈며 고개를 숙였다.

“우물우물….”

“푸하하하하하하!

“우물우물….”

2

헤르만 왕국의 수도 헤르미아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신분 확인을 받고 있었다.

패드로의 마차가 멈춰 서고, 앤디와 안드레이가 내렸다. 패드로는 섭섭한 듯 말했다.

“아쉽지만 여기에서 헤어져야겠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잘 왔소이다.”

“하하! 별말씀을요. 손자 분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패드로 님께서 하는 일도 잘 풀리시길 바라오.”

패드로는 안드레이의 인사에 예를 보였다. 그리곤 앤디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여기 네가 좋아하는 사탕 더 있으니, 이것 받고 네 할아버지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겠니?”

“예, 가, 감사합니다.”

사탕을 양손으로 받으며 땀을 삐질 흘리는 앤디였다.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자. 영감님, 살펴 들어가십시오.”

“이 배려 잊지 않겠소.”

“하하! 잊으셔도 됩니다. 제가 끄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굴러가는 마차에 같이 타게 된 건데 말입니다. 저야말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벗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혼자 심심하던 참이었거든요. 그럼 저는 이만….”

다그닥다그닥!

마차가 천천히 앤디와 안드레이 앞을 지나서더니, 마차가 줄지어 서 있는 성곽 앞으로 나아갔다.

앤디는 멀어진 마차에서 시선을 떼며 안드레이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죠?”

그러자 안드레이가 손을 뻗었다.

“저기 사람들이 줄서 있는 곳으로 가자.”

“후! 한참 걸리겠어요. 왕실에서 오라고 했다면서요? 그냥 못 들어가요?”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행동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눈에 띌 터인데, 벌써부터 눈에 띄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물론 너는 그 안에서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될 거다. 그때부터는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이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장 6시간이 지나서야 신분 확인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카렌 마을이라고?”

검사하는 병사가 앤디와 안드레이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이 건넨 신분 패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는 이상이 없는 듯하자 안으로 들여보냈다.

“통과! 다음!”

병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안에서 살벌하게 자리하고 있던 병사들이 앤디와 안드레이의 통행할 길을 터주었다.

그에 앤디가 성벽을 통과해 수도에 들어서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밥부터 먹자.”

“어디로 가야 하죠?”

“숙소를 잡고 푹 쉬자. 옷도 사서 입고. 지금 이런 상태로 폐하를 어찌 뵙겠느냐.”

“폐하께서 안드레이 님을 급하게 부르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나요?”

질문은 그렇게 했지만, 앤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지금까지 안드레이가 보여 준 행동은 급한 사람이 보여 주는 행동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따지고 살펴봐도 안드레이의 모습에서 서두르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급하다는 사람이 느긋하게 걸어서 이동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마법은 그렇다 치고,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여유? 누가 여유를 부린다고 그러느냐?”

“지금 안드레이 님께서 하시는 행동이 바로 여유 그 자체인 걸 몰라서 하시는 말씀인가요?”

그 말에 안드레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속이 타 죽겠군요.”

“글쎄다….”

안드레이의 의미심장한 어투에 앤디의 궁금증이 더해갔다. 하지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앤디는 앞서가는 안드레이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숙소와 식당을 같이 운영하는 여관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두 명이 묵을 방 있소?”

“309호로 올라가십시오!”

“그곳으로 식사도 보내주시오. 아 참, 옷도 부탁하오. 옷은 거기에 적혀 있는 곳에 가서 가져오면 될 거요.”

안드레이가 어떤 쪽지를 건넸다. 그것을 얼떨결에 받아들은 여관 주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옷은 직접….”

그 말에 안드레이가 품에서 금화 한 개를 꺼내줬다.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여관 주인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그런데 옷값은 어떻게 할깝쇼?”

“이미 다 지불을 마쳤소. 내일 우리가 일어나기 전까지 찾아다 놔주시면 되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 쉬십시오.”

여관 주인은 헤헤거리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틀자, 뒤에 시립해 있던 어린 소년에게 말했다.

“직접 방까지 안내해드려라.”

“네, 알겠어요. 손님, 따라오세요.”

식사를 마친 앤디는 오랜만에 시원하게 몸을 씻었다. 묵은 때를 벗기고, 깨끗한 속옷과 여관에 있는 가운으로 갈아입자 몸이 가뿐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가부좌를 튼 앤디는 눈을 감고 심상 수련에 들어가려 했다. 운기조식을 하고 싶었지만, 안드레이가 곁에 있었기에 피한 것이다.

내공을 운기할 때 안전은 필수다. 안드레이가 뭐하는지 싶어 건드리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말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만일 이야기하게 되면 설명해야 될 부분들이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때 안드레이가 물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게냐?”

“심상 수련을 하려고요.”

“심상 수련?”

“예. 이곳에서 몸을 직접 움직일 수 없으니 마음속에서 수련을 하는 거죠.”

“허! 놀랍구나.”

“무엇이 말이죠?”

“네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하는 것 하나하나 모두 현기가 담겨 있음에 놀랐다만, 오늘처럼 놀란 것은 처음이다.”

앤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안드레이가 그것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너와 같은 것을 하는 이를 내가 한 번 보았기 때문이다.”

앤디는 더욱 의아했다. 자신처럼 수련하는 이를 한 번 보았다고 놀라는 안드레이가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고수라면 당연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스스로를 관조하는 심상 수련을 한다. 자신을 보지도 못하면서 타인만 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자신의 능력도 모르고 설치다간 죽기 딱 좋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은 심상 수련을 하지 않는 모양이지요?”

그 말에 안드레이가 파고들었다.

“너는 누군가에게 심상 수련을 배웠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아니면 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이라거나.”

안드레이의 날카로운 말에 앤디는 찔끔했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저는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런 방식의 수련이 효과가 있음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다른 분들도 이렇게 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저만이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논리 정연한 앤디의 말에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이 약간 미심쩍어 보였다.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앤디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 더욱 의문이 들었다.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있다니…. 이들은 대체 어떤 무공을 어떻게 사용하고 수련하는 것일까? 혹시 이들의 검술이 미개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런 의혹은 금세 지워졌다.

목격하지 않았던가. 마법사가 가지고 있던 힘을 말이다.

검사가 약하다면 세상은 마법사가 지배를 하고 있어야 했을 텐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을 보면 이곳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수련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을 정리하고 보자 호기심이 일었다.

안드레이가 놀랄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 그 사내.

아마도 자신이 기대하고 있을 고수임이 확실할 것이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수련 방식을 찾아낼 정도라면 말이다.

그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분은 누구십니까?”

“어떤 사람 말이냐?”

“저와 같은 수련을 한다던 그 사람 말입니다.”

“탈리온이라는 분이시지.”

“그가 누군데요?”

“현 대륙의 최강자.”

“현 대륙의 최강자?”

앤디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가 어디에 있죠?”

앤디의 물음에 안드레이는 미소 지었다.

“그분을 뵙고 싶으냐?”

“예.”

“아마 힘들 것이다.”

“어째서요?”

“우리 헤르만 왕국의 적국인 쿠렌트 제국의 공작이기 때문이지.”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앤디는 알 수 있었다.

적국 쿠렌트를 말하는 안드레이였지만, 그의 눈빛은 서글펐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안드레이의 눈빛은 마치 아련한 친우를 그리는 눈빛 같았다.

3

저녁이 되자 앤디와 안드레이는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간단한 음식을 시킨 후 배를 채워나갔다.

식사를 하며 안드레이가 말했다.

“흠… 생각보다 먹을 만하군.”

“오므라이스를 좋아하시다니 뜻밖이에요. 애들도 아니시면서….”

앤디의 말에 안드레이가 정색을 하며 변명했다.

“음식에 애들 음식, 어른 음식 써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긴요. 좋은 게 좋은 거지요.”

“그리고 이상한 걸로 따지면 너를 따라갈 수가 없지.”

“제가 뭘요.”

“아이가 아이 같아야 말이지. 쯧!”

“패드로 아저씨랑 있을 때는 성숙해서 말 잘 듣는다더니요?”

“쯧! 너는 너무 성숙해서 숙성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거 원, 또래 노친네랑 같이 식사하고 있는 기분이 드니.”

“킥킥킥킥!”

안드레이의 말에 앤디가 피식 웃었다.

딸랑!

그때, 누군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색 셔츠에 갈색 베스트를 걸친 평범하게 생긴 사내였다. 그는 일부러 구석진 자리를 찾았는지, 앤디와 안드레이를 스치고 지나가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어이! 여기 맥주 좀 가져와!”

사내는 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비우고는 계산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갔다. 정말 목이 타서 마시고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앤디의 눈빛이 밖에 나선 사내의 등을 보며 묘한 빛을 흘렸다. 교묘한 솜씨였지만, 그가 들어와서 안드레이에게 두툼한 뭔가를 건넸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인가는 안드레이의 품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제야 안드레이가 어째서 하룻밤을 자고 가자고 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왕실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그새 정보원을 고용한 것이리라.

그때 오므라이스를 모두 비운 안드레이가 말했다.

“이런 대도시에 와본 적이 있느냐?”

“아니요. 한 번도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마을 밖을 나와본 적이 없지요.”

“그럼 이곳의 밤거리를 한번 보고 와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앤디의 귀가 솔깃했다.

“밤거리요? 다들 잘 시간이 아닌가요?”

“물론 자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이들도 있지. 이런 번화한 도시는 낮보다 저녁이 더욱 활기차단다.”

그제야 앤디는 중원에 있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유흥가의 밤은 낮보다 환했던 기억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이곳의 밤은 어떤 화려함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앤디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안드레이에게 말했다.

“그런데 애를 위험한 밤거리에 혼자 보내시다니. 할아버지로서 실격 아닌가요?”

“큭큭! 네가 보통 애면 혼자 보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보통 애가 오크 부대를 휩쓸고 다니지 않지는 않느냐.”

역시 입심으로 밀리지 않는 안드레이였다.

씨익 하고 미소 지은 앤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안드레이에게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자리를 피해주려 하지 않았던가.

곧 앤디는 나가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안드레이가 불렀기 때문이다.

“잠깐만 기다리거라.”

“왜요?”

안드레이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나가서 사탕 사먹을 돈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일없네요.”

아침 일을 떠올린 앤디가 순간 욱했지만, 안드레이가 건네주는 돈을 굳이 거부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돈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앤디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한 걸음씩 옮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볼거리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술집에서는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고, 길가에 있는 노점상에서는 적적한 입안을 유혹하는 군것질거리들이 가득했으며, 골목에서는 싸움 소리가….

“응? 싸움 소리?”

그것이 앤디의 흥미를 자극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주위를 잠시 둘러본 앤디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갔다.

타탓! 탓탓탓!

한 마리의 날다람쥐를 보는 것같이 신속하고 기민한 모습이었다.

앤디가 건물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사내와 한 여인이 7명의 사내들과 대치 중이었다.

잔뜩 겁먹은 여인을 보호하려는 듯 사내는 여인을 등진 채 주먹을 휘둘렀고, 7명의 사내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무기를 꺼내 사내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그 사내에게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에 2명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있는 것이 앤디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그제야 조금 전 싸움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먼저 쓰러져 있는 두 녀석이 외친 비명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호! 꽤 선전하는군.’

그때, 한 녀석이 사내에게 단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동료들이 등을 떠민 것이다.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이 휘두른 단검을 피하며, 주먹으로 녀석의 팔꿈치를 올려쳤다. 그러자 뽀깍! 소리가 나며 녀석의 팔 관절이 밖으로 휘는 것이 아닌가.

“크아악!”

사내는 녀석의 멱따는 소리가 부담스러웠는지 발을 휘둘러 안면을 후려갈겼다.

뻐억!

“캑!”

녀석은 조용히 먼저 누워서 자고 있는 동료들 틈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좁은 골목이었음에도 불편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후에는 조금 불편할 것이다. 꼴을 보니 몇몇 더 누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뭐해! 어서 공격들 하지 않고! 한 번에 덮치란 말이야!”

남아 있던 여섯 놈이 단체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앤디는 생각했다.

‘여기까지인가….’

몰려오는 놈들에 부담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사내도 약간 주춤한 모습을 보이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곧 등 뒤의 여인을 의식했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녀석들을 주시했다.

놈들이 단체로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사내는 몇 놈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았지만, 두 녀석이 휘두른 둔기는 그대로 허용하고 말았다.

퍽! 퍼퍽!

“크흑! 크허헉!”

사내가 휘청거렸지만, 둔기를 휘두른 녀석들을 밀치며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견제를 시작했지만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앤디는 고민했다. 자신이 이 상황에 개입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개입해서 저 둘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확한 상황도 모르고 끼어들어서 피를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쫓기는 소수를 도와주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소수가 나쁜 놈들일 때도 있다.

여인을 지켜 주는 사내는 확실하게 나쁜 놈 같지는 않았는데….

앤디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여인에게 향했다.

‘저 여자가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앤디는 이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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