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의 이름으로-3화 (3/68)

3장. 앤디의 위치

1

마을 사람들은 즐거워할 틈도 없이 일어난 상황들을 정리해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것 말이다.

누군가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이겼다!”

“오크들을 물리쳤다!”

분노도 슬픔도, 그 한순간 동안 잠시 잊은 것이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에 환호성이라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도망치던 오크들이 폭사를 했는지는 모르겠

지만,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모두들 기쁨에 대한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쁨의 환성은 길지 못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직한 흐느낌 소리들로 인해 곧 숙연해진 것이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이성을 돌린 이들이 시선과 발

길을 돌려 자신의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여인들도 자신의 아버지와 남편을 찾아 뛰어다녔다.

이들은 곧 싸늘한 주검을 부둥켜안고 우는 이들과, 생존을 확인하고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부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앤디의 가족은 다른 가족과 달랐다. 클레오와 벤존스는 조용히 서서 자신들의 아들인 앤디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들의 시선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앤디는 그런 부모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저 멀리 흰 로브를 휘날리며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노인에게 시선을 빼앗겨 있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안드레이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세상에 나오기가 무섭게 자신이 그토록 걱정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몬스터들에 의해 붕괴된 작은 마을만 네 곳을 볼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나하나 모두 제국의 귀한 백성들이거늘. 자신이 조금만 일찍 귀환했어도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더욱 씁쓸했다.

지금은 그나마 몬스터들의 흔적을 안드레이의  패밀리어가 확인하여 다급히 발길을 돌린 덕에, 민간인을 습격하는 오크들의 뒤를 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저 멀리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발길을 더욱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마법을 쏴서 도움을 주려던 찰나, 안드레이의 움직임이 멈추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탓이다.

한 아이의 경이로운 움직임.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될 줄이야.’

많이 봐줘야 열한두 살이나 되었을까!

놀랍게도 그 아이는 작은 몸에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파괴력과 빠른 움직임으로 오크들을 휩쓸고 있었다.

그 과단하고 빠르며, 민첩한 움직임. 무엇보다 작은 신체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강력한 파괴력까지.

안드레이가 자신의 시야에 잡힌 소년에게 내린 평가는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었다.

경악!

저 소년을 제국이 만들어낸 비밀 병기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아이가 나타났단 말인가!

안드레이의 몸이 들떴다. 저 소년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1백여 마리가 넘는 오크 전사들이 그 아이에게 꼼짝도 못하고 휘둘리더니, 이윽고 후퇴를 택하는 것이 아닌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장면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안드레이는 저 밉살맞은 오크들이 도망치고 있는 후방에 대범위 공격 마법을 날려서 가뿐하게 전멸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드레이와 앤디는 가까운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로 다가오고 있는 안드레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앤디뿐이 아니었다.

안드레이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았다.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친우와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밀려오는 슬픔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정체불명의 노인을 향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의 시선과 표정에는 두려움과 경계가 가득했다.

안드레이의 발길이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주민들이 병기를 들고 자연스럽게 막을 형성했다. 정체가 확실해지기 전까지 누군지 모르는 이를 함부로 자신들의 마을에 들일 수 없다는 의사 표현인 것이다.

사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예의를 차리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전투가 일어나고 흉흉한 분위기였다. 평소 같았으면 우선 무기부터 휘두르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조금 전에 후퇴하던 오크들을 전멸시켰던 알 수 없는 폭발 때문이었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것이 마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촌장과 일부 주민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전장에서 그 마법으로 인해 수많은 동료가 죽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 말은 지금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저 노인이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드레이는 자신을 막아선 이들의 표정에 어린 두려움을 읽고는, 가볍게 한발 뒤로 물러서며 이해의 몸짓을 보였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촌장이 앞으로 나섰다.

“누구십니까?”

안드레이가 촌장을 향해 대답했다.

“안드레이라고 하네.”

자연스러운 하대.

촌장은 안드레이의 대답을 듣고 잠시 머뭇거렸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히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한 촌장이 다시 질문했다. 이름을 듣고자 질문한 게 아니라 정체를 물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사이십니까

“그렇다네.”

“그렇다는 말씀은 안드레이 님께서 저 오크들을 처리하신 것입니까?”

“정확히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인가?”

잠시 뜸을 들인 촌장이 물었다.

“저 오크와의 관계를 알고 싶습니다.”

안드레이는 마치 당신이 오크를 끌고 온 것이 아니냐는 듯한 뉘앙스에 살짝 기분은 나빴지만, 촌장의 질문은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상황을 보게 된 것이네.”

촌장은 안드레이의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곤 허리를 숙이며 예를 보였다.

“죄송합니다. 은인을 이렇게 모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용서해주십시오.”

“이해하네.”

촌장은 상대가 자신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마을 주민들을 돌아보았다.

촌장이 뒤로 몸을 빼자 마을 주민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던 사냥꾼 켄스가 돌아온 것이다.

다급히 마을 앞까지 달려왔던 켄스와 아랫마을 사내들은 촌장을 바라보았다.

“수고했네.”

“끝났습니까?”

“그렇다네.”

켄스를 따라온 아랫마을 사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 후, 하나둘 마을 안으로 들어선 사내들은 주민들을 도와 어질러진 마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평소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모습을 지금 이 자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함께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슬픔을 가슴에 묻으며 바삐 마을을 재정비하고 있을 때, 안드레이는 앤디와 마주 서 있었다.

앤디의 뒤에 자리하고 있던 아버지인 벤존스가 안드레이에게 물었다.

“저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 소년의 이름이 무엇인가?”

클레오와 벤존스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대답해주었다.

“앤디라고 합니다.”

“앤디라. 좋은 이름이구만.”

그 말에 앤디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안드레이는 흠칫 놀랐다. 앤디의 눈빛에 담겨 있는 호기심은 그렇다 치고, 호승심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을 강자라고 인식하고, 붙어보고 싶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안드레이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지금 왕국에 인재의 필요성에 대해 떠드는 것은 시간 낭비다. 다시 과거의 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많은 인재들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 이런 놀라운 아이를 만나게 될 줄이야. 이것은 선황 헤르만 7세의 은덕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선황께서 아직도 우리를 굽어보시고 있음이야.’

안드레이는 선황 헤르만 7세를 떠올리자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때 앤디가 다시 물었다.

“당신이 바로 마법사이십니까?”

“그렇다.”

“조금 전에 만들어낸 열양지기가 바로 마법입니까?”

앤디는 믿어지지 않았다. 눈앞의 노인이 만들어냈던 그 엄청난 열양지기. 자신이 직접 맞상대한다면 과연 어떻게 파훼할 수 있을까? 아니, 파훼를 차치하고 피하기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뜨거운 불꽃의 마나? 그것참, 말이 되는구나. 그래, 그것이 마법이다.”

“한번 다시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앤디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에 클레오가 걱정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얘야, 지금 큰 실례를 범하고 있는 거란다.”

클레오의 걱정 어린 눈빛이 앤디와 안드레이를 번갈아 보았다.

죄송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안드레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하! 무슨 실례랄 것이 있겠는가. 보여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 이것 말이냐?”

후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드레이의 손 위로 불꽃이 이글거리는 불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앤디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의심할 것 없이 조금 전의 그 열양지기였다.

앤디의 표정이 충분하다는 뜻을 보이자, 안드레이는 만들어낸 불공을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곧 먼 하늘 위에서 불공이 폭발했다.

퍼펑!

그 폭발력에 짙게 뭉쳐 있던 구름이 밀려나 하나의 큰 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빛이 쏟아지듯 뿜어져 내려왔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안드레이가 앤디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걸었다.

“마음에 드느냐?”

“….”

앤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보여 주마. 어떠냐?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2

안드레이는 뜨겁게 김이 나는 찻잔을 앞에 두고 벤존스, 그리고 클레오와 마주 앉았다.

클레오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부상으로 인해 치료를 받아 깁스를 한 벤존스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이들 셋은 한참이 지나도록 말이 없었다.

“아이를 나에게 맡길 수 있겠소?”

안드레이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하대를 하던 것과 달리, 앤디의 부모에게는 존칭을 사용했다.

클레오와 벤존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안드레이는 조급하게 보채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조용히 마시며 기다렸다.

곧 클레오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앤디에게 무엇을 해주실 수 있죠?”

안드레이는 클레오를 보며 속으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슬픔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줄 것이오.”

“안드레이 님께서 해주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물질적인 모든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충분한 고등교육까지 해줄 수 있소. 원한다면 마법도 가르칠 수 있고 말이오. 제발 부탁이건대, 그 아이의 능력을 이런 곳에서 썩히지 말아주길 바라오.”

클레오와 벤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이의 말마따나 그들은 자신의 아들인 앤디가 이런 곳에 있을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보지 않았던가. 자신의 아들이 가진 엄청난 능력을 말이다.

그 모든 것이 놀랍기도 한 반면에 화가 나기도 했고, 기특하기도 했다.

어떻게 지금까지, 아니 자신들에게까지 숨길 수 있었는지.

그러나 아들에게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위안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자신들의 아들이지 않은가.

자신들의 아들. 사랑스러운 아들.

그 이유 하나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용서가 무슨 말이겠는가. 오히려 이런 아들을 뒀기에 자랑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들을 떠나보낼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한없이 가슴에 안아두고 싶은데….

이토록 복잡한 심정 속에서조차 클레오와 벤존슨의 결론은 확실했다. 아들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였다.

“좋아요. 하지만 저희는 처음 보는 당신을 믿고 아들의 인생을 맡길 수 없어요. 당신을 어떻게 믿어야 하죠?”

안드레이는 이 말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내 말로 무슨 설명을 해도 믿음이 갈 것 같소?”

이 말이 정답이었다.

클레오와 벤존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어떤 달콤한 설명을 이들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 클레오와 벤존슨은 그의 확실한 신분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그냥 믿어줄 수 없겠소?”

클레오가 말했다.

“믿고 싶어요. 아니, 믿음이 가요. 당신의 눈이 지닌 진실함을 저는 읽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저의 짧은 판단이 가져온 오류일 수도 있지요. 제 사소한 실수로 제 아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답니다.”

빙 둘러 말했지만, 한마디로 반대라는 뜻이었다.

안드레이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일 것이다. 마법사라는 특성상 금전적인 문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괴짜라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야만 새로운 길을 뚫을 수 있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정신병을 지닌 이들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법사는 미지의 존재다. 눈앞에 있는 이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맞는 말이구려.”

안드레이가 수긍 어린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품 안에서 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패를 꺼내 보여 주었다.

“혹시 이것을 알아보시겠소?”

그것을 본 벤존슨의 눈빛이 흔들렸다.

안드레이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알고 계시는 것을 보니 말을 하기 조금 더 편해지겠구려. 나는 헤르만 왕국의 전 수석 궁중 마법사 안드레이라고 하오.”

“아!”

‘안드레이!’

어디서 들었던 이름인지 이제야 기억이 났다.

과거 쿠렌트 제국의 정복 전쟁 당시 입은 중상으로 인해 숨을 거뒀다고 알려진 궁중 마법사의 이름이 아닌가!

그가 살아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를 벤존슨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눈앞의 황금 패가 가짜일 수도 있었기에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패 안에는 지금이라도 당장 불길을 뿜을 것 같은 쌍두룡이 새겨져 있었다.

쌍두룡은 헤르만 왕국의 징표.

과거 헤르만 제국을 건립하였을 때 헤르만 대제가 그의 친우로 알려진 블랙 드래곤 칸타르노에게 선물로 받은 15개의 황금 패.

그것을 사람들은 칸타르노의 패, 혹은 헤르만 대제의 패라고 불렀다.

그 15개의 패는 제국과 황제에 대한 깊은 충성심을 지닌 충신들에게 하나씩 내려 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비밀리에 받은 것이기에 누가 언제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몇몇은 짐작이 가능했지만, 그것의 소유에 대한 사실 확인까지는 불가능했다. 왕이 직접 선포하거나, 그가 직접 밝히지 않는 한 말이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지식 선에서 저것은 확실한 진품이었다.

저 금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신비한 느낌의 붉은빛. 다른 것은 복제가 가능할지 몰라도 저 붉은빛만큼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보면 안다고 하던데, 확실하게 어째서 보면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벤존슨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안드레이가 앤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지금 그가 정체를 밝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한편, 벤존슨의 설명은 없었지만, 클레오는 눈치로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클레오는 깊은 고민을 하더니 이윽고 결심 어린 시선을 안드레이에게 던졌다.

“그 약속 꼭 지키시길 바랍니다.”

그때, 앤디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저는 갈 생각이 없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앤디에게 쏠렸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을 한 앤디가 눈에 들어왔다.

“앤디.”

클레오의 입에서 갑갑한 신음성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

안드레이가 물었다.

“어째서 가지 않겠다는 것이냐?”

“가지 않겠습니다.”

앤디는 고집에 가까운 대답을 할 뿐이었다. 안드레이를 포함해 클레오와 벤존스조차 답답해질 정도였다.

그때 안드레이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설마 마을이 걱정되어서 떠나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

정곡이 찔렸음인가. 앤디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라고 가고 싶지 않을 리 없었다. 이 새로운 세상의 강자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와 검식, 전투 방식 모든 것이 보고 싶었다. 특히나 마법의 엄청난 힘은 강함을 추구하는 무인으로서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남기고 홀로 떠나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몬스터들의 등장을 목격했다. 그리고 녀석들이 자신의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끼칠 수 있을지 확인했다.

자신이 지켜 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부모가 안다면 불호령이 떨어지겠지만, 앤디는 신경 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혼이 난다 하더라도 확실한 대응책이 없다면 이 마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생각을 했다.

물론 많이 아쉽다. 아쉽긴 하지만 사람을 잃고, 슬픔을 느끼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다.

힘을 얻는 것보다, 권력을 얻는 것보다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 때문에 자식들과 제자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았지만 말이다.

스스로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수련을 시킨 것이 과했던 것이다.

뭐, 그것은 현재 중요하지 않은 옛날이야기고.

지금 중요한 것은 앤디가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는 것에 있었다.

“정말 그런 거였나? 아하하하!”

안드레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순간, 앤디의 속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어째서 웃으시는 겁니까?”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다 큰 어른처럼 행동을 해놓고, 막상 상황에 닥치자 놀라 머리를 몸속에 집어넣는 거북이처럼 부모 품에 안기는데 말이다.”

바로 옆에서 다른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 옆을 보니 클레오와 벤존스가 피식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보이던 고민과 괴로움은 모두 지워진 상태로 인자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이다.

앤디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저는 그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나를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냐. 그것에 대해 설명해보거라.”

앤디의 말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뭔가 할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나는 네가 이곳을 떠나야 할 이유를 말할 수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네 부모는 너를 더 이상 품 안의 아이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앤디가 이야기를 듣고 놀란 눈빛으로 클레오와 벤존스를 보았다.

클레오와 벤존스는 앤디의 시선을 맞이하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 속에 자신의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저는… 저는….”

앤디는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영혼이 아이의 몸에 들어오며 정말로 아이가 된 것일까?

부모의 곁에서 떠나기 싫었다.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과 함께 자리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부였던 이곳을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아쉬웠다.

전생에서는 더 강한 힘에 대한 열망만 있었을 뿐, 언제 세상을 떠나도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아!’

그 순간, 앤디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고 있던 연륜이라는 것은 오랜 기억과 삶을 살았기에 지니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족된 무엇인가를 이루어나가면서, 혹은 포기하면서 생기는 것이었던가?’

한마디로 지금 이 생각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타인이 모르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다는 우월감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뜻이었다.

앤디의 고민이 길어졌다.

지금 자신의 위치와 자리, 자신이 죽기 전의 위치와 자리. 둘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너무나 많은 것이 달랐다.

둘 모두 자신이었지만 죽기 전에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굽어보았고, 지금은 아이의 입장으로 부모의 시선을 받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쪽이었고, 지금은 모든 것을 받는 쪽이었다.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받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지금 이 말은 잘못된 것이다. 받는 것의 포근함에 빠졌다가 옳은 말이다.

앤디가 전생을 하나하나 짚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던가.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기 시작한 것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신의 것을 다른 이에게 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말이다.

앤디는 남들과 달리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기에 2가지 삶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하염없이 주는 무한한 사랑의 포근함을 더욱더 강렬하게 느끼게 된 것이리라.

이런 말이 있다. 그 사람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에 따라 사람은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말.

과거가 어찌 되었든 지금 자신은 이들의 아들이고,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때, 앤디의 머리 위로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클레오의 부드러운 손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크고 두툼하며 거칠지만, 친숙한 손길이 따라왔다. 바로 아버지 벤존스의 손이었다.

그러자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남는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토록 거대한 이를 걱정한 자신이 바보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꼭 개미가 코끼리를 걱정하는 것 같지 않는가.

앤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아버지 벤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어떻게 큰 힘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단지 이런 곳에서 썩히라고 얻은 것이 아닐 것이다. 얻은 힘은 분명 그 사용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걱정하지 말거라. 이번에는 방심해서 당한 것이지, 차후 대책을 마련해서 준비하면 오늘과 같은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네가 멀리 떠난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다.”

어머니 클레오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앤디를 믿는단다.”

앤디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자신에 대한 걱정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앤디의 입에서 말문이 트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이 세 가족을 바라보는 안드레이의 눈빛이 푸근하게 변했다.

“대장! 잘 가! 잘 가!”

“….”

앤디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보이지 않음에도 손을 흔들고 있는 아이들의 기척과 인사말. 아직도 서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부모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 안드레이가 말했다.

“내 하나 네게 약속하마.”

앤디가 안드레이를 올려보자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동안 저들의 안전을 말이다.”

앤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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