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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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 천마 (2)
비에 젖은 옷은 기분 나쁠 정도로 몸에 착 달라붙었다.
하지만, 천마에게서 전해지는 압박감은 그보다 더욱 진득했다.
마치 지독한 늪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한 정도였다.
시후는 전신을 옥죄어 오는 압박감을 이기고자 천마를 향해 자운유성창을 겨눴다.
“유중원.”
천마는 제 이름을 부르는 시후를 바라보며 웃었다.
“말한 대로 심장을 뽑아 잘근잘근 씹어먹어 주마.”
“네 이상 식욕에는 관심이 없어.”
“조금 후에도 그렇게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지 두고 보지.”
그 말을 끝으로, 천마의 양손에는 검붉은 수강이 맺혔다.
천태 진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천마의 내공은 시후를 크게 웃돌았다.
‘무리다.’
천외무신에게 받은 무공을 사용한다면?
그래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말은.
“내가 관심 있는 건 북명신공이지.”
덜컥.
분명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소리가 귓가에 와닿은 듯했다.
천마와 눈이 마주쳤다.
거친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그의 동공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됐다.
이제 천마는 의심하고 또 의심할 것이다.
시후가 어떻게 북명신공에 대해 알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순진하게도 목주림이 알려 준 게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천마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연신 입을 뻥긋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시후는 확신이 섰다.
제대로 찔렀다.
아직 그의 가슴 속에는 한줄기 의심이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시후는 그런 천마를 바라보며 창을 까딱였다.
“심장을 씹어먹겠다며?”
“······놈, 북명신공에 대해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걸 실토하게 해 주마.”
그의 목소리에서 반드시 그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듣는 이로 하여금 오싹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시후는 되려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실토하게 해 준다고 말했으니,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천마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공격을 최대한 지양할 테지만, 시후가 불쑥 목을 들이민다면 피하기 급급할 것이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그림이 그려졌다.
천마의 양손에 수강이 맺혔다.
죽이지 않기 위함인지 여태껏 보아 왔던 수강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옅었다.
거리를 좁히기 위함일까.
그는 손에 맺힌 수강을 쏘아 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쾅!!
시후도 공격을 무리 없이 받아 냈다.
아무리 천마의 내공이 대단하다지만, 공력을 완벽히 거둬들일 수 있는 최대치는 그리 대단치 않다.
전력을 다한다면 역으로 찍어 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판단을 내린 시후는 창에 내공을 더욱 불어 넣었다.
그에 화답하듯, 자운유성창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 이미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천마를 향해 일수만리를 펼쳤다.
그는 옆구리를 노리는 창을 손등으로 때리며 궤적을 틀었다.
그리고 손등으로 때린 반발력으로 몸을 반 바퀴 돌렸다.
천마의 의도가 눈에 들어왔다.
팔꿈치로 창대를 가격하여 손에서 창을 떨어트리려는 것이다.
시후는 천마가 손등으로 튕겨 낸 방향으로 창을 확 끌어당겼다.
덕분에 그의 팔꿈치는 허공을 가격했다.
수를 낭비했으니, 이쪽이 수를 놓을 차례.
하지만, 천마의 움직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팔꿈치로 허공을 가격하는 듯했지만, 그대로 몸을 회전시킨 것에 불과했다.
팔꿈치는 속임수.
그렇다면?
시후는 재빨리 도약했다.
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발밑에서 들렸다.
발끝에 얇게 강기를 둘러 초승달처럼 날려 보낸 것이다.
가만히 서 있었다면 앉은뱅이가 되었을 터.
그러나 공격을 피했음에도 안심하긴 일렀다.
공중에 뜬 상태로는 공격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법.
아니나 다를까, 천마의 공격이 재차 날아들었다.
시후도 중심을 잡기 힘든 상황.
게다가 땅을 디디지 못했기에 창에 힘이 실리기 힘들었다.
자운유성창을 수직으로 세웠다.
터엉!
시후는 반발력에 저 멀리 튕겨 날아갔다.
바닥을 구르며 충격을 상쇄시킨 뒤 주변을 둘러봤다.
천만다행으로 운기조식을 취하는 이들에게 날아오진 않았다.
“오지 마요!”
시후는 다가오려는 검후를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천마가 죽지 않을 정도로 내공을 조절하는 대상은 자신 한정이다.
검도 없는 검후가 온다면, 몇 번 손을 섞지도 못하고 죽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검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내공도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깐.
시후의 외침에, 검후는 제 상태를 파악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졌다.
천마는 다가오다 말고 검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
“쫓아가 봐.”
시후는 저 자신에게 물었다.
담담하게 말했는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
감정을 전혀 절제하지 못했다.
누가 들어도 검후를 쫓아가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게 말했다.
그에 천마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무릎을 굽혔다.
“쫓아가면 난 반대쪽으로 달린다.”
그 말에, 천마의 고개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진심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말했을 뿐이다.
“네가 검후를 쫓는 순간, 난 이곳을 달아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거다.”
“가능할 것 같은가?”
“그건 내가 아니라 너 자신에게 물어야겠지.”
나는 자신 있다.
너는 어떠한가.
시후의 태도에 천마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검후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는 몸을 돌렸다.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강하게 움켜쥐며 그의 공격을 대비했지만, 천마는 당장은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듯 팔을 늘어트렸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시후는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는 곧 한참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본대 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곳은 힘의 균형이 팽팽하군.”
정확히 말한다면, 정의맹이 조금 앞서고 있었다.
마교는 단순히 숫자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정의맹이 이기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천마’라는 거대한 산 말이다.
“내가 저곳으로 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사방에 내공을 흩뿌리며 정의맹을 박살 낼 것이고, 내공이 달리면 마교도 몇 놈의 내공을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천마가 저곳에 뛰어드는 순간, 정의맹의 무력한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시후는 했던 말을 또 하려고 했다.
저곳으로 가면 달아날 것이라고.
하지만, 천마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내 자비를 베풀어 주지. 네가 순순히 잡히는 조건으로 이들이 물러나는 걸 허락해 주마. 천마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죽이는 것보다 제압이 훨씬 어려운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물며, 천마가 죽였으면 죽였지 제압을 해 본 적이 있겠는가.
그렇기에 천마는 거래를 제안했다.
정의맹의 전력을 대거 소실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안이라니.
그가 얼마나 북명신공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북명신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는 듯 입을 놀렸지만, 실상 시후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검마의 내공과 진원진기를 흡수한 것으로 보아, 이미 북명신공은 완성됐다.
즉,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천마는 더 강해질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차라리 알려 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 보든가. 혹시 알아? 내키면 알려 줄지.”
“악수를 두는군.”
시후의 말과 함께, 천마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시후는 재빨리 뒤로 물러남과 함께 조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등룡적출을 날렸다.
우르르릉.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에 착지하기 무섭게 천마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큭!”
무식할 정도로 내공을 꽉꽉 실은 공격이었다.
다행인지, 주로 팔다리를 노렸기에 절반 이상은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땅에 내려서거나 창을 휘두르는 도중의 공격을 부득이하게 막아야 했다는 점이다.
노리는 바는 명확했다.
교환.
더 많은 내공을 사용하더라도 시후의 내공을 소진시키는 것.
제 살을 깎아 먹는 행위였다.
하지만, 행하는 이가 천마라면 살이 아니라 손톱 정도에 불과한 행위였다.
시후는 최대한 피하는 데 집중했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다.
손을 섞을 때마다 내공이 뭉텅뭉텅 날아갔다.
줄어드는 내공에 맞춰 발이 무거워졌다.
발이 무거워짐으로써, 피하기보다 공격을 받아 내야 했다.
악순환의 반복.
내공은 더욱 빠르게 소진되었다.
“이런 씨······.”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 사이에도 천마의 공격을 날아들었다.
시후는 승천호를 펼쳐 공격을 흘려보냈다.
물론, 천마 역시 내공은 무한하지 않다.
그의 손에 맺힌 검붉은 강기도 이전과 달리 형체가 제법 흐릿해졌다.
하지만, 시후의 상태는 그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자운유성창은 더는 황금빛을 뿜어내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한줄기 내공은 실영보를 펼치기 위하여 용천혈로 옮겼으니깐.
촤르르륵!
간신히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모든 내공을 소진해야 했지만.
시후는 일순간 단전이 비어 버리자 밀려오는 탈력감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그 와중에도 창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천마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본교 아이들이 이 모습을 봐야 할 텐데 말이야.”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남궁천은 얼마나 거칠게 싸웠는지, 옷이 넝마나 다름없었다.
천비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옆으로, 없는 내공을 끌어모아 악착같이 검을 휘두르는 검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후는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가능하겠어.”
시후는 아리송한 말을 내뱉으며 천마를 향해 창을 겨눴다.
그리곤 조그맣게 속삭였다.
“자명공래(自命貢來)”
시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운유성창을 붙잡은 손등에 핏줄이 터질 듯 불거졌다.
힘!
텅 빈 단전으로 미증유의 힘이 몰려들었다.
끝없이 몰려들 것만 같던 힘은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겼다.
[자명공래로 회복한 내공은 198.7입니다.]
자명공래는 천외무신에게 교환 받은 기공(氣功)이었다.
일전에 흑련회 몇몇 놈들이 사용하던 폭렬기공과 같은 기공 계열이지만, 그와는 상당히 달랐다.
남은 내공의 힘을 증폭시키는 폭렬기공과 달리, 자명공래는 단전을 모두 채워 주며 힘을 증폭시킨다.
회복한 내공을 자운유성창에 집중했다.
뿜어져 나온 금빛 휘광은 먹구름에 닿을 정도로 번쩍였다.
“이, 이 무슨······.”
천마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하지만, 그의 당황은 짧았다.
그 역시 기공을 이용하여 남은 내공을 증폭시켰다.
시후는 힘에 적응하기 위해, 가볍게 용적출해를 날렸다.
두 힘의 격돌!
콰르르르릉!!
땅이 흔들리고, 내리던 빗방울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가 물러났다.
무려 두 걸음이나.
적시걸이 그의 팔에 겸을 꽂은 것은 단순한 변수였다면, 이번엔 힘에서 밀린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꺼내지도 않았다.
용적출해는 조가창식의 초반 삼 초식에 불과했다.
시후는 몸의 중심을 뒤로 이동하며 어깨를 젖혔다.
그리고 허리를 살포시 비틀며 앞으로 창을 내질렀다.
“와룡등천!”
똬리를 튼 용이 승천을 위해, 앞을 가로막는 천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용이 지나간 바닥은 언제 비에 젖었냐는 듯 바짝 마를 정도로 엄청난 양기를 품고 있었다.
천마는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공을 끌어올려 쌍장을 앞으로 뻗었다.
흉악한 마귀 형상이 나타나 용의 뿔을 붙잡았다.
천마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이번에는 무려 열 걸음이나 물러났다.
자세히 관찰하자, 그의 소매가 시꺼멓게 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로써 확신했다.
후반부 삼 초식은 못 막을 것이란 걸.
“잠깐, 이야기 좀······.”
시후는 천마의 다급한 목소리를 무시한 채, 자운유성창에 내공을 차곡차곡 들이밀었다.
마치 번개가 치듯, 몸 주변에 금빛 섬광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시후는 자운유성창에 갇힌 힘을 풀어내었다.
일순간,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이 천마를 휘감았다.
그리고.
[자명공래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벌책(罰責)이 적용됩니다.]
[사망하셨습니다.]
- 19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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