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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95화 (177/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95화 수세 (3)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남궁천이 온 것까지는 좋았다.

시후가 아무리 용써 봤자 혼자선 한계가 있으니깐.

하지만, 천비령을 시작으로 적잖은 고수들이 나타나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도움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너무 과했다.

힘이 이렇게나 쏠리면 다른 쪽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었다.

시후는 막 싸움을 끝낸 비령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짙은 혈향 때문일까.

아니면, 몸은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졌기 때문일까.

비령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너랑 같은 이유겠지.”

시후는 퉁명스러운 대답에 짜증이 났지만, 생각해 보면 그녀는 ‘검’이지, 생각하는 역할이 아니다.

그녀가 이곳에 온 건 그녀의 의지가 아니다.

검후는 비령을 제갈세가에 맡겼으니 분명 그녀를 이곳으로 보낸 건.

“제갈려가 뭐래?”

정답을 맞췄는지 비령은 잠시 머뭇거렸다.

“······ 이쪽으로 향하는 놈들을 최대한 저지하래.”

“이쪽으로? 누구를?”

“마교 놈들이겠지. 그걸 말해 줘야 알아?”

그걸 누가 몰라서 묻겠는가.

시후는 비령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런 둘 사이로 남궁천이 끼어들었다.

“차 아우, 아마도 천마대일 걸세. 나도 놈들을 쫓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

“천마대요?”

남궁천의 말에 시후는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둘러봤다.

놈들의 가슴팍에는 하늘 천(天) 글자가 큼지막이 수놓아져 있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과하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욕했다.

천마대의 힘을 정파에 대입하면, 소림과 비슷하다.

물론, 그들도 온전히 이곳으로 다 오진 못 할 것이다.

그랬다간 전선에 큰 균열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마교의 숫자는 정의맹보다 많았다.

이는 곧, 그들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는 채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시후는 모여 있는 이들을 좀 더 꼼꼼히 살피며 최대한 냉정하게 전력을 평가했다.

이들과 함께 어느 정도를 막을 수 있을까?

일단, 천마대 전력의 절반이 온다면 필패다.

사 할이라면?

어림도 없다.

주변 전선이 뭉개지는 걸 감수한다면 삼 할 정도다.

여기 모여 있는 이들만으로는 이 할도 버거웠다.

“천마대주만 아니면 어떻게 될 텐데······.”

“천마대주? 그자가 왜?”

“무공이 대단하거든요.”

시후의 말에 남궁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대주.

그는 마존에 오를 수 있음에도 대주에 남아 있는 인물이었다.

즉, 그를 상대하기 위해선 팔황급 존재가 필요했다.

문제는 그 수준에 다다른 이들이 죄다 천마를 상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차 아우가 그자를 상대하면 되지 않는가?”

남궁천의 물음에 시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천마대주의 무공 수위를 밝힌다면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최소한 여기 모인 이들이라면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천마대주는 팔황급 고수예요.”

시후의 말을 들은 이들은 죄다 숨넘어 가는 소리를 내었다.

남궁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차 아우도 마존 중 하나를 죽이지 않았나?”

“외팔이를 이겼을 뿐이죠. 정상적인 상태로 붙었다면 필패였을 겁니다.”

물론, 내공이 충만하다면 어느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공의 힘으로 버티는 것에 불과하다.

하물며 지금은 내공도 반이나 비지 않았는가.

절대 불가능했다.

백번 양보해서 시후가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도와줄 이는 필요했다.

그것도 최소 쌍괴 정도의 고수가 말이다.

“그자가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시후의 표정이 좋지 않자, 남궁천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맞는 말이다.

천마대주는 이곳에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만, 지극히 희박한 확률이었다.

그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 멀찍이 떨어진 곳에 모이는 천마대 놈들을 지켜봤다.

놈들은 신경을 긁을 요량인지 아슬아슬한 거리에 서 있었다.

불안감이 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불안감의 실체와 맞닥뜨렸다.

“제기랄.”

천마대주가 도착했다.

천마대 놈들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온몸에 솜털을 곤두세우는 짜릿한 기운을 내뿜는 인물이 천마대주가 아니라면 누구겠는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대주는 오지 않은 듯했다.

“어떻게 하겠나?”

물음이었지만, 물음이 아니었다.

남궁천의 목소리에는 함께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어려 있었으니깐.

그의 경지는 초절정 끝자락.

나이를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성취였다.

하지만, 정기신을 완성하지 못한 채로 덤비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건 남궁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혼자가 편해요.”

“그래도 빈틈을 노린다면······.”

“천이 형님을 구하다가 제가 죽을 수도 있어요.”

시후의 단호한 거절에 남궁천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은 분노였다.

남궁천은 아직 정기신을 완성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시후는 그를 달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갔다.

여차하면 천외무신에게 받은 무공을 펼칠 것이다.

자운유성창을 움켜쥐었다.

어찌나 강하게 힘을 줬는지, 손끝이 저릿할 정도였다.

시후는 천마대주를 향해 창끝을 겨눴다.

놈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곧 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혼자 싸우려고? 안될 텐데?”

뒤에서 들려 온 익숙한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자마자 시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전 장로님!”

정말 의외였다.

제자들을 지킨다는 핑계로 뒤에 머무르던 그녀가, 처음으로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그녀의 무공은 쌍괴보다 반 수 정도 앞선다.

반 수.

지극히 적은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정도 고수들 사이에서 반 수는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천마대주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시후가 돕는다면 무리 없이 그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여긴 어떻게 아시고······.”

“네 녀석이 죽는 건 상관없지만, 그랬다가 홍설이 주화입마에 빠질 테니까.”

행적을 전하는 이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즉, 아직도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불쾌하진 않았다.

이건 행복한 감시다.

이런 감시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길 것이다.

“거치적거리지 말아라.”

시후는 창을 움켜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먼저 달려든 쪽은 천마대였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 남궁천과 천비령을 비롯한 정의맹 고수들이 달려나갔다.

시후는 몸을 좌측으로 틀며 나아갔다.

그에 맞춰 천마대주도 우측으로 몸을 틀었다.

“네가 앞장서서 뭐 하려고?”

전여린은 시후의 앞을 지나치며 냉랭하게 말했다.

하지만, 차가운 어투와 달리 그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여린은 천마대주와 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멈췄다.

촤아악!

그녀의 양손에 새하얀 섭선(摺扇)이 쫙 펼쳐졌다.

시후가 사용하는 창보다도 더욱 드문 무기가 바로 섭선이었다.

섭선은 일정 경지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대단히 무력한 무기였다.

다만, 경지를 넘어서면 대단히 유용한 무기가 된다.

그리고 전여린은 ‘경지를 넘었다’라고 단순히 말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경지였다.

그렇기에 천마대주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하지만, 금세 감정을 지우곤 검을 뽑아 들었다.

금방이라도 격돌할 것 같던 부위기와 달리 대치가 이어졌다.

선수 필승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곳에 적용하긴 어렵다.

전여린이 먼저 공격을 취하긴 어렵다.

선법의 특성상 선공을 취하기보다는 반격을 선호하는 편이고, 기본적으로 약한 쪽이 먼저 공격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천마대주는 신중했다.

그는 눈앞의 전여린도 신경 써야 했고, 뒤에 있는 시후의 기세도 제법 사나웠으니깐.

“팔문금쇄진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전여린의 뜬금없는 물음에 시후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갑작스레 왜 팔문금쇄진을 물어보는 것일까.

일단 맞장구쳤다.

“대단하죠. 팔진도를 더욱 개선한 진법이니깐요.”

그리고 말을 내뱉자마자 깨달았다.

천마대주가 선공을 취할 수 있도록 그를 흔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각 방위를 맡은 이들의 무공 특징에 맞게 진법을 구상하고, 방위를 지키는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생문의 위치가 변하는 진법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죠.”

“생문의 위치가 변한다고?”

전여린이 짐짓 놀란 척 맞장구를 쳐 주었다.

덕분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네, 무슨 원리인지 설명은 해 주셨는데 워낙 복잡해서······.”

“대단하네. 마혁 노사는 어떻게 그런 진법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보다 진법 안에 있으면 내공 소모도 엄청나잖아요? 저는 여태까지 버티고 있는 천마가 더 대단하다고 봐요.”

천마를 언급하자, 천마대주의 기도가 출렁였다.

힐끔 바라보니, 그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흉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찢어 죽일 놈들······. 네놈들 주둥이에 담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담을 수 없는 분은 얼어 죽을. 천마, 천마, 천마.”

전여린의 도발에 시후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유치해도 이렇게 유치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도발에 천마대주는 넘어갔다.

그의 몸에서 핏빛보다 더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곤 검강을 줄기차게 뽑아내며 달려들었다.

전여린의 섭선이 열십자를 그리자 은빛 강기가 교차하여 날아갔다.

천마대주는 고작 그따위 공격으로는 발목을 잡을 수도 없다는 듯,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공격을 상쇄시켰다.

전여린의 손에서 후속 공격이 이어졌다.

그녀의 섭선 주변 공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시후가 전력으로 와룡등천을 펼칠 때와 같은 광경이다.

천마대주는 급히 자리에 멈춰서며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전여린은 천천히 손목을 움직였다.

너무 느긋하게 움직여서, 다섯 살 난 어린아이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광경은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손에서 바람이 불었다.

미약한 바람이.

하지만, 그 미약한 바람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다.

돌풍이 되고 광풍이 되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는 듯, 바람은 폭풍을 일으켰다.

단순한 폭풍이 아니었다.

바람결 하나하나에 그녀의 내공이 실려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모여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고, 두 줄기 바람이 모여 천마대주를 슬근슬근 썰어 버릴 듯한 톱날이 되었다.

“천룡멸섬!”

전여린의 천룡멸섬이 천마대주를 휘감았다.

은빛 폭풍에 휩싸인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쇳소리는 공격을 무리 없이 막아 내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바람이 서서히 약해졌다.

은빛 폭풍이 뿜어내던 휘황찬란한 빛은 그 세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빛 폭풍이 빛을 잃을수록 시후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팔황급 존재에게 일격을 먹이려면 가진바 내공을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

그러기에 일원신공은 정말 최적의 심법이었다.

‘두 번은 없다.’

전여린이 마련해 준 기회를 제대로 붙잡기 위하여, 이갑자에 못 미치는 내공을 모두 창에 불어 넣었다.

“파천도래.”

이제까지와 달리 담담한 목소리였다.

아니, 담담한 게 아니라, 온 힘을 쏟아부었기에 소리지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탓이었다.

천마대주는 은빛 폭풍을 잠재우자마자 금빛 광룡을 마주했다.

금빛 광룡이 사납게 날뛰었다.

천마대주의 검에 맺혀 있던 검강은 흩어졌다 뭉치길 반복했다.

금빛 광룡은 천마대주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거칠게 발악했지만, 끝끝내 그의 목을 물어뜯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왼쪽 팔꿈치 아래는 먹어치울 수 있었다.

“죽겠네.”

시후는 간략한 소감을 남기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든 걸 쏟아부은 단전이 안겨 주는 공허함이 상상을 초월했다.

당장 뒤로 눕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전여린을 바라봤다.

“마무리해 주십쇼.”

시후는 그 말을 남기고 뒤로 발라당 누웠다.

- 196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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