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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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공세 (4)
극성으로 끌어올린 일원신공에 실영보가 더해지자, 시후의 모습은 흐릿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그보다 더욱 빨랐다.
“으아아아아아아!!”
시후가 뒤를 힐끔거릴 때마다 거리는 실시간으로 좁혀졌다.
천마와의 거리는 대략 오십여 장.
조금 더 좁혀진다면 공격 범위 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지만,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졌지 벌어지진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반대편 능선에 올라선 채로 도발하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시후는 그 즉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스악.
조금 전까지 시후가 서 있던 곳으로 무형무음의 무엇인가가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만히 있었다면 두 다리가 잘려나갔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눈앞의 위험은 피했으나, 등 뒤의 위험은 더욱 가까워졌다.
공격을 피하고자 잠시 방향을 틀었던 대가로 지불한 거리는 무려 십여 장.
시후의 등 뒤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전과도 같은 공격이 재차 날아든다면?
거리가 제법 있으니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는 좁혀질 것이다.
지금처럼.
“젠장!”
시후는 조금 전과 같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바닥에 새겨진 흔적은 이전보다 조금 더 깊었다.
그에 맞춰 시후의 얼굴에도 수심이 깊어졌다.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다음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십여 장쯤 더 나아갔을 때,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흡!”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자운유성창을 옆으로 눕혀 보이지 않는 공격을 막아 냈다.
텅!
순간, 반발력을 이용해 조금 더 달아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천마는 어림도 없다는 듯 검강 다발을 쏟아 내며 퇴로를 막았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불안정한 자세로 저 쏟아지는 검강 다발을 걷어 내며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그 틈을 노려 반격할 것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몸을 빙글 돌림과 동시에 창을 찔렀다.
자운유성창 끝에 맺혀 있던 금빛 섬광이 천마를 향해 쏘아졌다.
천마는 다방면으로 검강을 날리던 터라 잠시 대응이 늦었다.
그의 선택은 검병을 짧게 고쳐잡으며, 와룡등천의 기운을 최대한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흡!”
천마의 검 끝이 잘게 떨렸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기에 흘려내는 게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틈을 이용해, 시후는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마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이미 두 사람의 거리는 십 장 안쪽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보다 더욱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 정도 고수의 싸움에서 직접 병기를 맞대는 일은 드물었다.
하물며, 창이 검을 상대로 달라붙은 건 더더욱 드물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하지만, 시후는 이게 옳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거리를 벌린 채로 싸운다면 내공이 순식간에 바닥날 테니까.
판단은 틀리지 않았는지, 천마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선공은 이번에도 시후에게 있었다.
천마의 목을 향해 자운유성창을 찔러 넣었다.
일격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마는 검을 수직으로 세워 자운유성창을 옆으로 흘렸다.
“흡!”
놓아 주면 끝장이다.
시후는 착자결을 이용해 검을 붙잡은 채로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천마의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번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기세가 한층 더 거세졌다.
그의 검 위로 검붉은 기운이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그리고 그 불길은 자운유성창을 잡아먹을 듯 덩치를 키웠다.
내력 대결로 가려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표정을 굳히며 이를 꽉 깨물었다.
가슴을 섬찟하게 만드는 검붉은 기운이 자운유성창을 휘감았다.
“이 무슨.”
단, 그뿐이었다.
천마가 내뿜어내는 기운은 자운유성창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피어났다.
시후의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천마는 이를 꽉 깨물며 검에 맺힌 기운을 더욱 키웠다.
강렬해진 기운 덕분일까.
천마의 검붉은 기운이 자운유성창의 절반을 뒤덮었다.
“크으으윽.”
시후의 몸이 강풍을 만난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문제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 일어나지 않았다.
천마는 기운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시후는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천마는 냉랭한 표정으로 시후를 바라봤다.
“속았군.”
그의 말에, 시후는 구겼던 인상을 펴며 살포시 웃었다.
자운유성창은 배교를 상대하며 여러 번 효과를 입증하긴 했지만, 천마의 기운까지 완벽하게 막아 낼 줄은 몰랐다.
시후는 천마가 내력 대결로 가려고 한 덕분에 두 가지를 얻었다.
“덕분에 살았어.”
하나는 목숨이다.
천마가 그냥 착자결을 떨쳐 낸 뒤 검을 휘둘렀다면, 아무리 상황이 좋게 흘러갔어도 검 한두 번은 찔렸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목이 달아나는 건 순식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숨을 구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시간이다.
시후의 등 뒤로 먼지구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천마의 뒤편으로도 희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둘 간의 거리를 가늠했다.
미소 짓는 쪽은 시후였다.
“뒤로 물러나는 게 이로울 텐데?”
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천마는 시후를 향해 달려드는 대신 뒤로 물러나는 걸 선택했다.
팔황을 필두로 달려오는 정의맹의 본대가 조금 더 빨랐으니깐.
“네놈의 심장을 뽑아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
“살벌하긴.”
시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손을 휘적거렸다.
그에 천마는 뭐라 하고픈 말이 더 있어 보였지만, 지척까지 다다른 팔황 때문인지 뒤로 확 거리를 벌렸다.
그 가벼운 움직임 속에 담긴 무리(武理)는 결코 얕지 않았기에, 다들 섣불리 쫓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곧 다섯 마존 또한 천마의 뒤에 바짝 붙었다.
아직 양쪽의 본대는 도착하기 전이었다.
“예상보다 천마의 경공이 더 뛰어났나?”
제갈마혁은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다소 힐난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그럼 왜 여기서 붙들렸나?”
“놈이 외곽에 있었어요.”
“······ 죽지 않은 게 용하군. 아니, 여기까지 온 게 대단할 지경이야.”
제갈마혁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시후를 힐끔거리며 대견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천태 진인은 화제를 돌리기 위함인지 짧게 손뼉을 쳤다.
“그보다, 준비해 둔 것들을 죄다 내버려 두고 왔는데, 이대로 놈들을 상대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겠나?”
“내 생각도 같네. 싸우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얼마나 죽어 나갈지 상상조차 안 되는군.”
백리은이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확실히 계획이 틀어짐으로써 준비했던 것들은 죄다 물거품이 되었다.
제갈마혁도 두 사람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듯했다.
하지만, 시후는 아니다.
“이곳에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지금이 가장 적기이기도 하고요.”
“지금이 적기라니. 무엇하나 우리에게 유리한 게 없는데 뭐가 적기란 말인가?”
백리은의 물음에 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습니다.”
확신에 찬 말투.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그에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툭툭 건드렸다.
“여기에 내공을 제법 쏟아부었거든요.”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제갈마혁이었다.
원래 자운유성창의 주인은 그다.
정확히는 제갈세가.
제갈세가에서 만들고 보관했던 자운유성창인 만큼, 그 효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 터.
그의 눈이 반짝였다.
시후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풍마와 전마의 안색을 보아하니 제법 회복이 된 듯하지만, 영약이라도 복용하지 않은 이상 내상이 그리 쉬이 나을 리는 없고, 당가의 말에 따르면 폐혈독은 결코 단기간에 나을 수 있는 독이 아니라고 하였지. 두 사람을 빠르게 처리하고 도와주게.”
제갈마혁이 검후와 백리은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이라면 아직 회복이 덜 된 두 마존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어서 적시걸을 바라봤다.
“진마를 맡아 주게. 최소한 발목만 붙잡고 늘어져도 되네.”
“발목을 붙잡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적시걸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진마는 검마와 더불어 유일하게 멀쩡한 십이마존 중 하나였다.
즉, 적시걸과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상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적시걸이 작정하고 버티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제갈마혁은 공진을 바라봤다.
“자네에게 또 무거운 짐을 맡겨야겠어.”
검마는 또다시 공진이 상대하기로 했다.
그는 이미 검마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기에, 제갈마혁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 사이, 이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천마와 다섯 마존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려 했다.
“네가 초마를 맡거라!”
“예?”
시후는 제갈마혁을 향해 되물으면서도 초마를 향해 달렸다.
천마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는 달아날 수 없다.
천마가 도망친다는 건 마교 전체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검을 들어 올렸다.
“본좌가 우습게 보이더냐!”
그가 우스웠다면 그에게 제갈마혁과 금정신니에 이어, 천태 진인과 연설련까지 달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네 사람은 훌륭하게 사방진을 구축하여 천마를 압박했다.
시후는 그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보고 싶었지만, 눈앞의 초마가 먼저였다.
이번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저들이 아니었다.
공진과 적시걸이 버티는 역할이라면, 검후와 백리은이 뚫어내는 역할이었다.
두 사람이 합류하면 자연스럽게 검마와 진마도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깐.
물론, 시후도 뚫어내는 역할이었다.
토로번에서 팔을 잃은 초마는 시후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초마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가 팔만 멀쩡했어도······.”
“뭐 뭐 했어도~ 라는 변명이 가장 구차한 건 알지?”
“내 이래도······.”
말을 섞을 시간조차 아깝다.
시후는 바로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팔을 잃었다고 무공까지 잃은 건 아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초마는 재빨리 직도를 휘둘러 창을 쳐 냈다.
다만, 궤적을 그리 크게 뒤바꾸진 못했다.
양손으로 휘두르던 직도를 한 손으로 휘두르려니 힘이 달리는 것이다.
힘이 부족하면 내공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
하지만, 초마가 익힌 심법으론 일원신공의 폭발력을 감당하긴 어려웠다.
자운유성창을 튕겨 낼 때마다 초마의 팔이 뒤로한 것 젖혀졌다.
손을 섞을 때마다 그의 얼굴은 더욱 구겨졌다.
“크윽.”
그러나 초마는 몰랐다.
시후가 아직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는 것을.
시후는 와룡등천부터 시작하는 조가창식 후반부 초식을 아직 펼치지도 않았다.
초마가 공격에 익숙해지도록 의도적으로 조절한 것이다.
그가 이를 악물며 창을 쳐 내자, 시후는 때가 됐음을 느꼈다.
튕겨 나온 자운유성창을 움켜쥐며 이전보다 왼쪽 무릎을 조금 더 굽혔다.
어깨와 허리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젖히고 조금 더 비틀었다.
오른발에 힘을 주어 밀었다.
발바닥이 땅으로 쑥 꺼지는 느낌과 함께 비튼 허리를 풀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젖혔던 어깨를 앞으로 밀었다.
굽힌 팔을 뻗음과 동시에, 왼발을 축 삼아 몸을 살짝 돌렸다.
손을 뻗으며 응축된 힘을 풀었다.
이 일련의 동작을 시후는 눈 깜짝할 사이에 행하였다.
그리하여 펼쳐진 초식은, 붕악굴천이었다.
금빛 섬광이 쏘아졌다.
이전과 전혀 다른 위력에, 초마의 팔은 젖혀지다 못해 완전히 위로 들렸다.
그리고.
챙.
초마의 손에서 떨어진 박도는 자갈과 부닥쳐 맑은 쇳소리를 내었다.
곧, 그의 몸도 쓰러지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주변을 살폈다.
뚫어내는 데 성공했으니 버티는 이들을 도울 때였다.
- 19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