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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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공세 (3)
시후는 동이 터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폐부를 찔러오는 시원한 새벽 공기 덕분일까.
정신이 확 맑아졌다.
숨을 가늘게 내뱉으며 젖힌 고개를 내렸다.
시간이 되었다.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꽉 움켜쥔 채 수풀 밖으로 나섰다.
새벽이슬이 잔뜩 맺힌 탓에 순식간에 옷이 젖어 왔다.
“어, 어?”
번을 서던 마교 졸개 하나가 시후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빨리 입으로 호각을 가져다 댔지만, 시후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때문일까.
입에 호각을 물었음에도 불지 않았다.
그 어수룩한 모습에 시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일원신공을 끌어올렸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녀석은 그제야 호각을 불었다.
“빨리도 분다.”
시후는 고개를 내저으며 어깨를 풀었다.
그 사이, 호각 소리를 듣고 찾아온 놈들이 시후의 뒤를 잡기 위해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넓게 퍼졌던 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를 좁혀 왔다.
뒤를 빼앗기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하지만, 시후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어차피 외곽에 자리한 놈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작정하고 손을 휘두르면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럴 순 없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일을 벌이는 거니깐.
“그래도 겁을 주는 정도라면 가능하지.”
시후는 살짝 끌어 올리며 창을 휘둘렀다.
물론, 그건 시후의 기준일 뿐이었다.
콰가가가각!!
시후를 중심으로 고랑이 파였다.
깊이는 고작 한 자를 살짝 넘겼고, 너비는 다섯 치에 불과했다.
별거 아닌 힘이었다.
하지만, 그 원의 반지름이 무려 일곱 장에 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후는 걸음을 멈춘 그들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날려 주었다.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였다.
놈들은 다들 눈치를 살폈지만, 선을 넘는 이는 없었다.
“뭣들 하느냐?!”
그에 조장으로 보이는 자가 버럭 소리쳤으나, 그조차 저 뒤에 물러나 있었기에 별 효력은 없었다.
시후는 그런 그들에게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노리는 건 이런 잔챙이가 아니라.
“왔다.”
시후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뿜어내는 기세를 볼 때, 최소 오십 악에 이르는 고수였다.
그의 무기는 극한의 쾌(快)를 지향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야월도(夜月刀)였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최적의 상대다.
그런 시후의 미소를 본 것일까.
달려오던 그의 표정이 구겨졌다.
“놈!”
야월도객의 기세가 한층 더 강해졌다.
시후도 그에 맞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자운유성창의 창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내공을 끌어 올리자, 자운유성창이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후의 몸 전체가 금빛 휘광을 내뿜었다.
그에 거침없이 달려오던 야월도객이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시후는 그가 속도를 줄일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창을 앞으로 찔렀다.
파삭.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시후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야월도객이 놀라서 몸을 틀었지만, 자운유성창에서 쏘아진 금빛 줄기는 이미 그의 코앞까지 다다른 뒤였다.
그는 이를 악물더니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삭.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나, 그의 야월도는 어느새 도갑 밖으로 빠져나온 뒤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발도술이었다.
야월도객은 당차게 빛줄기를 베어내기 위해 묵빛 도강을 두른 야월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콰르르르르릉!!!!
지축이 흔들렸다.
시후가 펼친 붕악굴천은 땅으로 파고들며 작은 지진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지진은 산사태를 일으켰다.
조그만 규모일지라도, 산사태는 산사태다.
산 전체에 자욱한 먼지가 일고, 어린아이의 머리만 한 바위 여럿이 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시후는 자신에게 굴러오는 바위를 향해 가볍게 창을 휘둘러, 그 자리에서 자갈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곤 창을 한차례 휘둘러 먼지를 걷어 냈다.
“어? 어?!”
야월도객이 사라졌다.
붕악굴천이 그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운 것이다.
일합(一合).
단 일 합만으로 오십 악 수준의 고수를 처리했다.
에워싼 이들의 시선 속에 공포심이 자리했다.
시후가 주변을 한 차례 쓱 훑자, 막아선 이들이 흠칫 놀라며 거리를 벌렸다.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고쳐잡았다.
놈들이 거리를 더욱 벌렸다.
그들이 거리를 벌리자, 시후는 내공을 발바닥 용천혈로 돌리며 땅을 박찼다.
“으아아아······ 아?”
공포심을 떨쳐 내기 위해 소리를 지르던 놈들은 멀어지는 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달아났다.
시후는 그들을 지나쳐 폭발적인 속도로 달아난 것이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 조장 하나가 손가락을 뻗어 그 뒷모습을 가리켰다.
“쪼, 쫓아라!”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누가 어떻게 쫓을 것인가?
하지만, 헛소리하는 조장을 노려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던 이들은 죄다 달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저 멀리서 검마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으니깐.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짧은 시간 동안 거리는 더욱 벌어졌다.
그건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검마조차 시후와 거리를 좁히지 못했으니깐.
아니, 점차 멀어졌다.
가장 선두에서 뒤쫓던 검마가 추격을 포기했다.
검마는 능선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멀리서 숨을 헐떡이는 조장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그는 불규칙하게 숨을 토하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있었던 일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라.”
검마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그는 일생일대의 집중력으로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천마의 귀에 들어가겠죠?”
시후는 멀어지는 검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검마가 자신을 놓친 건 분명 부끄럽겠지만, 천마에게 거짓을 고하긴 어려울 것이다.
제갈마혁도 그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백리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그보다 저 녀석까지 유인해서 처리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구나. 공진이 상대하는 걸 보니 제법 번거로운 녀석 같던데 말이지.”
그의 말에 시후는 머리를 긁었다.
확실히 검마는 껄끄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도 그 생각을 잠시 하긴 했는데, 속도를 줄였으면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을까요?”
“놈을 이곳에서 죽였다면 당장에 전력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놈들을 끌어내는 계획은 틀어졌을 테지. 네 판단이 옳았다.”
변명 아닌 변명에 제갈마혁이 시후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에 백리은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이런 미친 계획을 세운 이유는, 천마의 관심을 끌어내어 놈들을 움직이기 위함이다.
놈들이 자리 잡은 곳에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정의맹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테니깐.
“그보다, 선을 정확히 예상하셨네요?”
제갈마혁을 비롯한 이들이 이 능선에서 기다리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정확히 계산한 덕분이었다.
그 주인공은 시후의 물음에 코웃음을 쳤다.
“네가 전력으로 달리는 속도와 토로번에서 저 녀석이 달아나는 속도를 떠올려 보면, 대충 이쯤에서 놓칠 것이라는 걸 모르는 게 어렵지 않지 않느냐?”
“어려운데요?”
“그게 왜 어려워? 대충 보면 머릿속에서 안 떠올라?”
후괴의 말에 다른 이들은 죄다 고개를 저었다.
한번 본 것만으로 어떻게 정확히 그걸 예상한단 말인가.
경공에 한해서, 후괴는 확실히 독보적인 능력을 지녔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자, 백리은이 환기하기 위함인지 헛기침을 해댔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제갈마혁을 향해 물었다.
“그보다 정말 천마가 움직일 것 같나?”
“어제까지는 반반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무조건 움직이리라 생각하네.”
“어째서?”
“정파 무림의 미래를 보지 않았나. 조급할 수밖에 없겠지.”
시후는 쏟아지는 시선에 뺨을 긁적였다.
제갈마혁은 낯간지러워하는 시후를 돕기 위함인지 재차 입을 열었다.
“요 녀석이 무공을 펼친 흔적을 본다면 흥미가 동할 테고, 검마가 쫓았음에도 놓쳤다는 보고를 들으면 더욱 관심이 쏠리겠지. 하물며 이토록 어린 나이라면 제아무리 천마라고 한들 긴장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훗날 얼마나 성장할지 짐작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야.”
돕긴커녕, 더 띄워 줬다.
시후는 귓불에 누가 촛농을 부었나 싶을 정도로 화끈거렸다.
하지만, 제갈마혁과 눈이 마주치자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몸이 차갑게 식었다.
* * *
“빌어먹을.”
시후는 눈을 뜨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사방에 가득한 적막은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이르다고 말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일어나야 했다.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자신에게 일어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시후는 짜증 섞인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밖으로 나오자, 추나행이 막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를 누그러트렸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추나행에겐 아직 마음의 빚이 있었으니깐.
추나행은 그런 시후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건넸다.
“간단하게 식사라도 하겠나?”
“아뇨, 곧 격렬하게 움직여야 할 텐데 뭘 먹었다간 고스란히 게워내지 않을까요?”
“벽곡단 같은 걸 먹으면 되지 않겠나?”
“차라리 견과류나 몇 줌 주세요.”
추나행은 미리 준비해 놨는지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안을 확인하자 고소하게 볶아 낸 잣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시후는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렸다.
잣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담백함에 기분이 한결 풀어졌다.
주머니에서 한 움큼 더 꺼낸 뒤 입에 털어 넣자, 시후의 볼이 다람쥐처럼 부풀었다.
그 상태로 자운유성창을 등에 멨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조심하게.”
뒤편에서 들려오는 추나행의 염려 섞인 목소리에 어깨 위로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안을 가득 채운 잣이 위장을 채웠다.
그와 동시에 달렸다.
방향은 마교 놈들의 숙영지였다.
달빛조차 없는 새벽이었지만, 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후에겐 훤한 대낮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니깐.
그렇게 달린 지 한 시진이 지났을 때쯤, 익숙한 지형이 나타났다.
“조금 빠른가?”
느긋이 달렸음에도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소모된 내공도 극히 미미했기에 운기조식을 취할 필요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곤 적당한 나무를 찾아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저 멀리 번을 서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번을 서는 인원이 어제보다 곱절은 많아 보였다.
할 일도 없었기에 시후는 추나행에게 받은 잣을 꺼내 먹었다.
그렇기 시간을 죽이며 번을 서는 이들을 지켜보는데, 조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곧 해가 뜬다.
본래 해가 뜨기 직전은 가장 해이해지기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 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어제 일로 얼마나 시달렸겠는가.
몇몇은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졸음이라는 녀석은 참으려야 쉽게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심이 가자, 조금 더 면밀히 놈들을 관찰했다.
“확실히 이상해.”
오랜 기간 제자리에 서 있는 건 힘들다.
그렇기에 중간중간 몸을 푸는 건 필수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당장 화살이 날아드는 전장도 아닌데, 몸을 풀지도 못할 정도의 긴장 하고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주변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곧 움직여야 한다.
그러던 찰나.
“어?”
눈을 비볐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시 앞을 바라봤다.
재차 눈을 비볐다.
이후 똑같은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보이는 건 그대로였다.
“아, 그래서······.”
왜 번을 서는 놈들이 그토록 긴장했는지.
왜 단 한 명도 조는 이가 없었는지 알았다.
천마.
그는 일반 평교도의 옷을 입은 채 번을 서는 이들 속에 숨어 있었다.
“일단······.”
계획은 취소다.
어제와 같이 가까이 다가간다면 그의 손에 붙잡힐 테니깐.
시후는 일찍 깨워 준 추나행에게 감사하며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곤 수풀 속으로 이동하여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하지만, 달아나기 위함은 아니었다.
시후는 까마득한 점으로 보일 정도로 거리를 벌린 뒤 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 유중원!!”
내공을 잔뜩 실어 소리쳤다.
사방에서 메아리가 울리며 귀를 어지럽게 간지럽혔다.
그와 동시에, 등골을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안력을 돋우자 천마와 눈이 마주쳤다.
주먹 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팔목을 잡았다.
“감자나 처먹어.”
- 19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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