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85화 (167/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85화 시산혈해 (2)

시시각각 마교가 다가오고 있지만, 대다수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다가올 일전을 위해 초식을 가다듬는 자도 있었고, 평소 내공을 쌓는데 소홀했던 이는 운기조식에 여념이 없었다.

시후는 그중 전자에 속했다.

다만,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초식을 가다듬었다.

“허리!”

“허리 아니잖아요!”

시후는 가슴을 향해 뻗어오는 후괴의 쌍장을 막아 내며, 되레 그의 허리를 향해 목봉을 찔러 넣었다.

그걸 예상이라도 한 듯, 후괴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옆구리와 오른팔로 목봉을 잡아 두었다.

시후는 ‘아차’ 싶은 마음에 거칠게 목봉을 흔들었지만, 후괴의 오른팔은 깊게 뿌리내린 거목처럼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시후를 향해 후괴의 왼손이 날아들었다.

‘피하기엔 늦는다.’

그렇다고 막기도 어렵다.

시후는 정확한 판단 후 재빨리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

후괴는 그럼 시후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 듯, 시후의 옆구리를 향해 뻗어 가던 주먹을 바로 거뒀다.

대신, 정수리에서 딱 소리가 나게 알밤을 먹여 주었다.

“아윽!”

“반격을 노리려면 상대가 대응하기 힘든 곳을 노리거나, 중심을 무너트리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 법.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잡아먹히는 법이다.”

“허리가 인체의 중심이잖아요.”

“내 중심은 골반이다.”

무슨 헛소리냐고 따지려 했지만, 후괴는 얄밉게 허리를 씰룩이며 요염한 골반의 움직임을 보여 줬다.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시후가 실소를 터트리자, 그 역시 피식 웃으며 시후에게 목봉을 돌려 주었다.

“내 중심이 골반은 아니지만, 허리보다 조금 아래는 맞다. 그리고 체형에 따라 중심이 다른 법이니 상대를 보고 재빨리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 저 짤막한 추가의 경우에는 몸의 중심이 갈비뼈쯤 되겠지.”

“이놈이? 가만히 있는 나는 왜 끌어들여?”

“가슴쯤이던가?”

“이놈이!?”

저 멀리서 구경하던 서괴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후괴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수십 번의 손을 섞은 뒤, 짧디짧은 다리로 후괴의 다리를 걸었다.

후괴가 재빨리 뒤로 도약하자, 서괴는 시후의 손에서 목봉을 빼앗아 들더니 후괴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레 시작된 두 사람의 투덕거림을 지켜보고 있자니, 시후는 낙양에 머무를 때가 떠올랐다.

“두 분은 오늘도 저러시네요.”

“뭐, 반 세기를 지내오면서 저렇게 지내셨을 텐데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이상하지.”

뒤편에서 들려오는 비령과 남궁천의 대화를 들으니 정말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을 꼽으라면, 바로 제갈려의 부재였다.

그녀는 지금 제갈마혁과 함께 마교가 옆길로 빠지지 못하도록 수를 쓰고 있었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 될 가능성이 컸다.

마교는 무려 삼 만에 달하는 인원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라도 토로번을 지나쳐야 한다.

방향을 튼다면 식량 조달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거나, 식량 지원 부대를 응용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도 험난했다.

그렇기에 마교는 분명 토로번으로 올 것이다.

“길어야 닷새인가.”

시후의 중얼거림에 대화를 주고받던 남궁천과 비령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닷새 뒤 치러질 마교와의 일전은 수만의 무인이 격돌하는 자리인 만큼,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후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슬쩍 걸음을 옮겼다.

* * *

언뜻 보면 시체라고 생각할 법한 퀭한 눈동자와 먹이라도 바른 듯한 시커먼 눈 밑.

제갈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죽을 거 같아.”

자리에 앉혔다간 정말로 초상이라도 치를 듯했기에, 제갈려를 회의장 구석에서 몸을 뉘게 해 주었다.

등을 땅에 붙이자마자 코를 골고 자는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지만, 마교를 이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예상보다 반나절 더 늦으셨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제갈마혁이 엉덩이를 붙이기 무섭게 추나행이 물었다.

그 또한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래도 간단한 대답을 할 여력이 있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래 앞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뚫고 싶은 법이지.”

“그 말씀은?”

“놈들이 뚫을 만한 진법을 펼쳐 두었다. 반나절 늦은 만큼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행여나 토로번으로 오지 않으면 어쩌냐는 이야기는 없었다.

제갈마혁이 무작정 길을 막아 두진 않았을 테니깐.

“원래라면 하루를 늦출 수 있었을 텐데, 놈들이 발목을 붙잡는 이유가 토로번에서 뭔가 수작질을 부리기 위함이라 느꼈는지 속도를 올렸다.”

“주춤하는 게 아니라 속도를 올린다라······. 마교답군요.”

“무식한 거지.”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마교가 언제 도착하느냐였기에 제갈마혁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제갈려를 업은 채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가 나가자마자 회의실은 본격적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비무를 금해야 하오. 며칠간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하루에만 해도 비무로 인한 자잘한 부상자가 두 자리 숫자라고 하오”

“좋습니다. 행여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현 시간부로 비무를 금하도록 하지요.”

“결전의 전날 숙면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놈들이 정확히 당도하는 시점을 확인하여, 경계를 최소한으로 하여 수면을 보장해야 합니다.”

“금일 경계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취할 것이며······.”

비무와 경계를 시작으로 자잘한 것들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시후는 딱히 낼 의견도 할 것도 없었기에 적당히 자리를 지키다가 조심스럽게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제법 멀어졌음에도 그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는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웅성거림이 잦아들 무렵, 저 멀리 금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과 똑같은 곡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이전과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후는 뿌듯한 마음에 다가가 칭찬을 건네줄까 싶었으나, 막 가닥을 잡아가는 와중에 건드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 주어야 했다.

시후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람이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를 시킨 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소리를 감상했다.

지금 회의실에서 논하는 수십 가지 의견보다, 홍설의 성장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녀가 한 단계 위롤 발돋움할수록 아군은 목숨을 구할 것이니깐.

* * *

“오늘 하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겠어.”

추나행의 말대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하지만, 천산산맥 끝자락과 맞닿은 하늘에서는 희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있었다.

늦어도 한 식경.

그 안에 마교와 얼굴을 맞댈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각기 다른 방법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평소 친분이 깊은 이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태연한 표정으로 운기조식을 취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모두가 다 긍정적으로 긴장을 해소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검을 갈다가 애꿎은 손톱을 갈아 버리는 이도 있었고, 고이 접힌 서찰을 불안한 듯 바라보는 자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거리는 시시각각 좁혀졌다.

내공으로 안력을 돋운다면 얼굴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각자 무기를 움켜쥐며 긴장을 끌어올리는 찰나.

“음?”

매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히던 마교가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전히 멈춰 서더니, 그 앞으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드문드문 자란 새치와 일반적인 검보다 두 치는 더 짧아 보이는 검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시선을 잡아끄는 건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도였다.

‘독보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그의 기도는 강렬했다.

옆을 바라보자, 잔뜩 굳어진 공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가 십이마존 중 가장 윗줄이라 평가받는 검마임이 분명했다.

그에 맞서 공진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으나, 그보다는 제갈마혁이 한발 빨랐다.

“천변기황이로군.”

“그러는 그쪽이 검마인가?”

검마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제갈마혁은 손에 들린 천로수변 중 하나를 휙 던져 바닥에 꽂았다.

“돌아가라. 그러면 목숨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건 우리가 할 말 같은데?”

“우리가 못 할 말도 아니지.”

“고작 그 정도 인원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마교가 언제부터 주둥이로 떠들었지?”

제갈마혁의 도발에도 검마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검마는 신중한 표정으로 정의맹을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난다.”

그의 말에 마교와 정의맹 모두가 당황했다.

제갈마혁 또한 이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한 듯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유혁량! 그게 무슨 말이냐!”

검마의 뒤편에서 등장한 이의 외침은 모두의 물음을 대변했다.

하지만, 검마는 대답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그의 물음을 무시했다.

“유혁량!”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그럼 또 불러 주지. 유혁량!”

검마의 가슴 앞에서 그려지는 한 줄기 빛.

그 빛의 끝자락에는 검마의 이름을 불렀던 이가 서 있었다.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을 테지만, 검마가 공격을 쏟아 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그자는 간신히 공격을 받아 내었다.

“야, 이 미친놈아!”

“광마, 미친놈은 너이지 않은가?”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이라도 공격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제갈마혁은 침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광마의 뒤편으로 몇몇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개판이군.”

추나행의 말마따나, 개판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천마가 지휘하지 않는 마교는 이게 정상이었다.

처음 광마와 검마가 다투던 때와 달리, 그들은 기막을 펼친 뒤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말이 오가는지는 알아채기 어려웠지만, 어떤 결과에 다다랐는지는 알 수 있었다.

검마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져 있었으니깐.

그 혼자서 물러나 지켜보자는 의견을 내세웠겠지만, 검마와 같이 이성적인 놈들은 진즉에 죽었다.

곧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혈마대는 나를 따르라!”

“금풍대는 본좌와 함께할 것이다!”

시후는 여덟 마존들의 외침을 흘려들으며 안력을 돋아 전방을 훑었다.

‘찾았다.’

‘철혈(鐵血)’이라 적힌 깃발 앞에 우뚝 서 있었는 목주림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근처에 있어야 할 목천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흘러간 시간을 생각한다면, 분명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를 설득해서 마교에서 빼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시후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품은 채 자운유성창을 들어 올렸다.

“저는 점창을 돕겠습니다.”

“너와 천지협로는 좌익. 삼태령, 이군 좌익을 돕되 주시.”

“천지협로께서는 좌익의 중추에서 주시고, 삼태령과 이군께서도 좌익을 돕되, 중원에 도움이 필요하면 나팔을 불 테니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갈마혁은 십이대와 여덟 마존의 움직임에 따라 인원을 배치했고, 추나행은 조금 더 세밀한 움직임을 지시했다.

시후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점창을 향해 달려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철혈대가 점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으니깐.

시후의 목표는 철혈대주인 목주림이었다.

그를 붙잡아 목천추의 행방을 물어볼 것이다.

다만,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항상 이런 불길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듯, 목주림의 두 눈에서 붉은 흉광(凶光)이 뿜어져 나왔다.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붙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후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 손으로 그를 죽여야 할 것이다.

시후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창을 바닥에 꽂은 채 뺨을 짝짝 때렸다.

그리곤 목주림을 노려보며 바닥을 박찼다.

“목주림!!”

- 186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