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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83화 (165/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83화 변수 (5)

천막으로 지어진 막사들이 줄지어 지어진 광경은 익숙했다.

북방 토벌에 참여하면서 지겹게 보았으니깐.

다만, 상황 자체가 달랐다.

그때는 명나라군과 북원과의 전쟁이었다면, 지금 그 자리는 마교와 정의맹이 채웠다.

즉, 구성하고 있는 인원부터 차이가 났다.

제아무리 전 동군도독부의 정병들이 이름 높다고 하지만, 정의맹의 이름 아래 모인 구성원은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다.

일류 미만의 무인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든 게 달랐지만, 그때와 같은 이도 있었다.

“차 아우!”

같이 북방 토벌에 뛰어들었던 남궁천이 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오랜만에 본 그의 기도는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제왕검형을 익힘으로써 초절정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이다.

다만, 시후가 그의 변한 기도를 읽었듯, 남궁천 또한 시후가 성장했음을 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이제는 차 아우와 비무하려면 한 손을 묶어 두고 해야겠군.”

“에이, 그러면 어떻게 창을 들어요?”

“그래야 형평성이 맞지 않겠나? 아니면 적수공권은 어떤가?”

“맨손으로······. 아무리 봐도 일방적으로 얻어터질 것 같은데요? 이왕 그럴 거 둘 다 맨손으로 치고받고 싸우시죠.”

“하하, 그럴 순 없지. 자, 일단 남궁세가 막사로 가서 그간 이야기 좀 나누세.”

남궁천은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엔 부적합하다고 느꼈는지, 시후를 잡아끌고 빼곡히 지어진 막사를 지나쳤다.

지나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자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는 점창파가 자리 잡았나 보네요.”

“정확히는 현무단이지. 그러고 보니 차 아우도 현무단 소속 아니었나?”

그의 물음에 시후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남궁천이 대답을 재촉하듯 어깨를 툭툭 건드렸지만, 시후는 말할 생각이 없는 듯 딴청을 피웠다.

“차 소협?”

그런 두 사람에게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짙은 녹의를 입은 인물이 다가왔다.

시후는 그의 얼굴을 확인한 뒤, 머릿속에서 그의 이름을 뒤적였다.

“당적능입니다. 그때 말을 섞을 기회가 그다지 없어서 기억하기 어려웠을 테지요.”

하지만, 시후가 기억 속에서 이름을 끄집어내는 것보다 그의 소개가 조금 더 빨랐다.

덕분에 머쓱해진 시후는 뒤통수를 긁적여야 했다.

적능은 그런 시후를 보며 빙긋 웃었다.

“종패 숙질께서도 이곳에 와 계시니, 추후 시간이 되시면 당가를 찾아와 주십시오.”

순간적으로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괜히 얼굴을 보기 위해 찾는 건 아닐 테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적능은 옆에 있던 남궁천을 향해 꾸벅 인사를 건넨 뒤 물러났다.

“당가는 예로부터 은원(恩怨)을 잊지 않는다고 하지.”

“원이 아니라는 점이 천만다행이네요.”

“그랬다면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지도 못했을 테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남궁세가가 모인 천막에 다다르자, 시후를 알아본 이들이 연신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당가도 독각혈망의 독낭 등을 받아 제법 은혜를 입었다고 하지만, 남궁세가는 시후에게 그보다 더욱 큰 빚을 지고 있었으니깐.

남궁천은 그들을 지나 주변과 비교해서 제법 커다란 천막으로 시후를 이끌었다.

천막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제법 넓었다.

남궁천은 간이침대에 걸터앉으며 시후에겐 앞에 놓인 의자를 권했다.

“이만한 물자를 옮겨 오는 것도 일이었겠는데요?”

“중간에 있는 화산과 종남에서 힘써 줬지. 특히 화산의 속가 제자들이 앞장섰다네.”

“화산? 의외네요.”

시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남궁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에게는 화산이 제법 좋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 역시 협을 숭상하고 의를 세우는 구파의 일원이지. 너무 고깝게 보진 말게.”

남궁천의 말에 시후는 자신이 너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나 싶었지만, 그간 화산이 보여 준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런 시후의 표정을 읽은 것일까.

남궁천이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이번에 합류한 서장의 별은 어떤 사람인가?”

“음······. 분명 필요하긴 하지만, 가까이하기는 싫은 사람?”

“계륵이라는 말이로군.”

“그래도 꼭 필요하긴 하죠. 성격은 좀 그렇긴 해도 무공 하나는 확실하니까요.”

“그런데······. 그자는 화산과 척을 지지 않았나?”

분명 화산과 적시걸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아래에 있는 ‘염수’라는 자가 얽혀 있었다.

“그렇긴 한데, 그 문제는 해결했어요.”

“어떻게 말인가?”

남궁천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시후는 머리를 긁적였다.

적시걸이 이끄는 서평회는, 포달랍궁이 문을 열고 나왔기에 더는 서장에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중원으로 들어서야 할 텐데, 아무리 이번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고 해도 화산에서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적시걸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방법을 선택했다.

“쫓아냈어요.”

제 손으로 넘길 순 없었으니, 염수를 서평회에서 쫓아냈다.

즉, 염수를 어떻게 처리하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덕분에 화산은 즉시 염수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욕설을 내뱉긴 했지만, 그를 위해 나서 줄 이는 없었다.

다들 내쳐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염수라는 자를 내놓지 않았으면 모를까, 내놓은 이상 원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구파나 팔대세가 정도면 모를까, 앞에서 따지고 들 인물이 몇이나 있겠어요. 그리고 정의맹에서도 마교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와 척을 질 이유도 없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죠.”

“으음······.”

남궁천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 결정에는 남궁선유의 의견도 들어가 있었기에 말을 아꼈다.

그런 남궁천의 반응에 이번에는 시후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미아는요?”

“이런 자리에 데려올 수 없지 않은가. 집에서 열심히 무공을 갈고 닦는 중이지.”

“하긴, 아직 일류에 불과하니······.”

“재능은 있는데 원체 노력을 안 하던 터라, 그래도 조만간 절정에 발을 디딜 것 같네.”

‘조만간’이라고 해 봤자, 분명 정마대전이 끝난 뒤일 것이다.

시후는 미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인들에 관한 근황을 물었다.

비령이야 이미 검후의 곁에 있는 걸 확인했지만, 검후의 사저인 설련도 참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쌍괴보다 한 끗발 위인 그녀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 그리고 황실에서도 사람을 보냈다고 했네.”

“황실에서요? 병사 몇 명 보내고 생색이나 내겠죠.”

시후가 비아냥거리는 기색으로 말하자 남궁천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병사를 보내진 않을 거라 보네. 마교에서 보모상궁의 일과 더불어 북원의 일까지 손을 뻗쳤으니, 황실에서도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테지. 게다가 저 험지에 일반 병사를 보내진 않을 테니 말일세.”

“별 기대는 안 되네요.”

“그래도 다행 아닌가. 황실이 끼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확 올라갈 걸세.”

“뭐······. 그렇긴 하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황실의 개입은 명분을 준다.

이쪽이 옳다는 명분을 말이다.

남궁천은 시후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끊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리고 두 사람도 왔네.”

남궁천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때, 시후는 분명 곤란한 일을 겪었다.

반드시 말이다.

* * *

“응?”

시후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소리는 분명 이곳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의문과 동시에 깨달았다.

조금 전 남궁천이 지었던 음흉한 미소의 의미를.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쭉쭉 걸어 나갔다.

소리에 끌려 모여든 자들이 제법 있었지만, 시후는 그들 틈 사이로 어깨를 집어넣으며 앞으로 파고들었다.

“역시.”

산중에 울려 퍼지는 깊은 금(琴)소리의 주인공은 아니나 다를까, 홍설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던 중, 홍설의 뒤에서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는 불노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놀람이 번졌지만, 아직 홍설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연주는 곧 살을 뜯어버릴 듯 고통스러운 음이 심장을 옥죄어왔다.

[추모별인 사인곡의 영향으로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홍설은 어느덧 움직임을 제약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하지만, 이전에 들어본 바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추모별인 사인곡의 영향으로 무공 사용 시, 내공 소모가 배로 증가합니다.]

[추모별인 사인곡의 영향으로······.]

효과는 굉장했다.

하지만, 잔뜩 붉어진 불노괴의 얼굴을 보아하니 실패가 분명했다.

“그만, 그만.”

불노괴의 서슬 퍼런 목소리와 함께 연주는 끝을 맺었다.

홍설은 감은 두 눈을 뜨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대상을 제대로 한정 짓지 못한다는 건 내면에 그만큼 잡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현을 뜯는 순간에는 눈앞에 칼이 들어와도 꼼짝하지 않아야 하는 법. 그렇지 않으면 되레 아군에게 피해만 끼친다고 하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실전에서 이러면 죄송하다고 끝날 줄 아느냐? 네 마음이 흔들리면 열 사람, 백 사람의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그들이 네 연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면 억울해서 눈이라도 감을 수 있을쏘냐?”

홍설의 이마가 현에 닿을 듯 숙여졌다.

죄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다.

“들어갈 테니 정리하고 오너라.”

“······예.”

눈이 마주친 불노괴는 시후를 한차례 힐끔거린 뒤 자리를 떠났다.

마치, 대신해서 달래 주라는 듯 말이다.

덕분에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홍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다가오는 발소리에도 홍설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어깨를 흠칫흠칫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뺨을 타고 떨어진 투명한 이슬은 현에 닿아 반으로 갈라졌다.

“물에 닿으면 안 좋을 텐데 말이야.”

시후는 금에 떨어진 홍설의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갑작스러운 목소리 때문일까.

홍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상공!”

“울다가 웃으면······.”

시후는 농담을 던지려다가 주변의 시선에 입을 닫았다.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과년한 처자에게 건네기엔 부적절한 농담이었으니깐.

하지만, 홍설은 시후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좀 걸을까?”

홍설은 재빨리 바닥에 금을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후는 홍설과 나란히 걸었다.

단, 정말 걷기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홍설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밝아졌다.

“괜찮아졌어?”

“예.”

“뭐가 잘 안 되나 봐?”

밝아지던 홍설의 얼굴에 재차 그늘이 졌다.

의기소침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기에, 시후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 줄 알아?”

“방법이 있나요?”

홍설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해.”

순간 홍설이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후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붙잡고 있어 봤자 괴롭기만 할 뿐이잖아. 완전히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야.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란 거지.”

시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숙영지를 벗어나서인지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은 없었다.

기감을 더욱 확장해 봤지만 걸리는 게 없자, 시후는 홍설의 허리를 붙잡았다.

“꺄, 꺄악?!”

홍설이 비명을 지르며 잠시 발버둥 쳤지만, 시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올랐다.

몇 번의 도약으로 아름드리나무 가장 윗가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

확실히 기와 신이 완성되니, 한 사람의 무게를 더하고도 이 정도는 우스웠다.

시후의 품에 매달리다시피 하던 홍설은 움직임이 잦아들자 눈을 떴지만,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는 더욱 격하게 안겼다.

“산이든 무공이든,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 법이잖아. 잠시 내려놓고 있으면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한 길에 집착하면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 법이니깐 말이야.”

“다른 길······.”

시후의 말에 품에 매달려 있던 홍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시후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래에서 보는 거랑 다르지?”

“네.”

불노괴는 천재다.

하지만, 홍설은 음공에 관해서는 그녀보다 더욱 천재였다.

불노괴의 방식으로는 기초를 다질 수 있을지언정 끝으로 도달하게 만들 순 없었다.

홍설에게는 홍설만의 방식이 있을 테니깐.

“가르침은 잠시 내려놓고 다르게 봐. 그리고 네 길을 찾아.”

그리고 그 길은 홍설이 각성토록 인도할 것이다.

- 184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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