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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73화 (155/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73화 곤륜 (2)

이변은 없었다.

우승은 운허의 차지였다.

그를 필두로 사단의 단주들이 정해졌다.

준결승전에서 떨어졌던 매화검자 주화수와 절혼쌍도 벽종오가 각기 주작단과 현무단을 맡았고, 운허에게 아쉽게 패했던 팽진철이 백호단주에 임명되었다.

“이렇게 보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네?”

“뭐가?”

“녹림과 수로채 연합을 때려 부수러 갈 때랑 크게 차이 없어 보이는데? 그때도 운허 도인은 청룡단을 이끌었고, 주작단도 이끄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 화산이 주가 된다는 똑같잖아?”

“······ 틀린 말은 아니네.”

백호단과 현무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후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또한 이전과 똑같이 현무단에 배치되었으니깐.

“달라진 점이라면······.”

시후는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중소 문파와 홀로 강호를 떠돌던 이들의 합류였다.

대화합에 왔던 이들이 모두 다 남은 건 아니지만, 세 명 중 한 명꼴로 힘을 보태겠노라 남았다.

비율로 따지면 삼 할.

하지만, 절반도 채 안 남았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떠난 이들은 대부분 삼류였지만, 남은 이들은 최소 일류 이상이었으니깐.

절정 무인 하나가 삼류 무인 백 명보다 낫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돕겠노라 나서봤자 애꿎은 희생만 키울 게 뻔하니 말이다.

“우쭐대긴.”

제갈려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대며 말을 건넸다.

시후가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제갈려는 주변을 가리켰다.

“조장님이라 불러 드려?”

“난 또······.”

각 단의 숫자가 백 언저리일 때야 하나의 단으로 움직여도 상관없었지만, 그 숫자가 열 배 이상 치솟은 상황에서 이전과 똑같을 순 없었다.

단(團) 아래 다섯 개의 대(隊)를 두었고, 그 밑에는 열 개의 조(組)를 편성했다.

시후는 그중 한 조를 맡았다.

조금 억지를 부린다면 대주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된다면 허울뿐인 자리에 불과할 것이다.

게다가 대주의 자리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각 단의 구성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은······.

“차 소협, 오랜만이군.”

“목 장로님.”

유운검자 목일자.

근래 점창파로 돌아갔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불과 몇 달.

그 짧은 사이에 그는 달라졌다.

만년 절정의 수준에 머물렀던 그는 유운삼절기를 완성함으로써 초절정을 밟았다.

그것도 막 초입에 오른 게 아니라고 말하듯, 기도가 제법 안정되어 있었다.

시후는 그런 목일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목일자는 포권이 아니라 손을 맞잡는 악수가 어색한지 머뭇거렸지만, 금방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손바닥 위로 돌덩이처럼 단단히 굳은살이 느껴졌다.

그가 짧은 시간 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많이 늦으셨네요.”

“출발 전날에 갑자기 하연이가 몰아(沒我)에 빠지지 뭔가. 깨달음을 정리하느라 제법 시일이 걸렸다네.”

목일자의 말에 시후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몰아’는 초절정에 발을 디디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 문은 매우 두터웠다.

함부로 뒤를 보여 주지 않을뿐더러, 넘어선다는 건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저 멀리 있는 취하연의 기세는, 불안정했지만 분명 문을 넘은 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즉, 그녀 또한 초절정에 발을 내디뎠다는 의미였다.

“대단하네요.”

“본래 재능이 있던 아이인데, 새로이 정립한 무공으로 날개가 달렸지.”

“장로님도 날개를 다셨고요?”

그 말에 목일자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니라 부정하지 않는 점으로 보건대, 점창파 내부에서 그의 지위가 제법 상승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자면, 최대한 빨리 이름을 외우게.”

“이름이요?”

“조원들 말일세.”

이번에는 시후가 멋쩍은 웃음을 지을 차례였다.

이름은커녕, 그들의 얼굴조차 외우지 못했다.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니느라 바빴으니깐.

목일자는 그런 시후에게 그러면 안 된다며, 믿을 수 있는 동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말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다만, 산중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그의 조언을 끊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 *

마교가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를 넘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공동산이 들썩거렸다.

공동에서 곤륜까지는 대략 삼천리 길.

하지만, 곤륜에서 탑리목분지까지의 거리도 그와 비슷했다.

서둘러 달린다면 비슷하게 도착할지도 모른다.

다만, 개방에서 전해 온 소식 앞에는 두 글자가 붙어야 했다.

이틀 전.

제아무리 전서응이 빠르다고 하지만, 육천 리를 날아오는 데 시간만 해도 이틀이 소요되었다.

즉, 마교는 아무리 못해도 이틀은 빠르다는 것이다.

하늘을 날아서 가는 게 아니라면, 마교보다 빠르게 곤륜에 도착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표정 관리하세요.”

“음? 아, 그렇군.”

시후의 조언에 목일자는 짐짓 표정을 굳혔다.

현재 곤륜은 풍전등화의 상황이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잠시 다녀올게요.”

어디로 간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목일자는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는 숙영지를 벗어나 서쪽으로 쭉쭉 나아갔다.

제법 높다란 산을 쭉쭉 올라가는데 앞에서 섬찟한 느낌이 전해졌다.

“접니다.”

말과 동시에 조금 누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닭살이 돋을 정도로 섬짓한 기운이었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가자 왼손에 커다란 활을 손에 쥔 무표정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도 성과가 있었습니까?”

시후의 물음에 궁귀의 시선이 좌측 바닥을 향했다.

바닥에는 목이 꿰뚫린 매 두 마리가 피떡이 된 채 놓여 있었다.

발목에 매달린 조그만 목함은 단순히 사냥을 위해 잡은 게 아니란 걸 증명했다.

시후가 허리를 숙여 목함을 떼어 내려는 찰나, 갑자기 궁귀가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거의 동시에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날세.”

추나행의 목소리에 궁귀는 시위에 걸린 화살을 거두었다.

시후는 막 떼어 낸 목함 두 개를 그에게 건네줬다.

그는 목함 이곳저곳을 만지더니, 기다랗게 접은 종이를 꺼내어 읽었다.

두 번째 목함도 마찬가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나는 정의맹 본대가 가고 있다는 내용이군.”

“다른 하나는요?”

“이전과 똑같지. 계속해서 팔황이 사라진 것을 의심하고 있네.”

의심은 당연하다.

준결승전 이후로 검후를 제외한 팔황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으니깐.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전서응을 통한 전달은 모두 차단되고 있으니깐.

‘궁귀’와 ‘천엽신궁’은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날 수 있는 건 태양과 달밖에 없다는 듯, 날아다니는 새들을 모조리 떨어트렸다.

“힘들겠지만, 내일까지 힘써 주게.”

궁귀는 추나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내일 이후로는 전서응을 날리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때면 마교 놈들이 곤륜에 도착할 테니깐.

* * *

‘청해성(靑海城)’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하는 주제에 바다 해(海)라는 이름을 썼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해호(靑海湖)’가 있는 성이니깐.

왜 호수 이름과 성의 이름이 같냐고 묻는다면, 간단히 대답해 줄 수도 있었다.

청해호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으니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망망대해’라 부르고, 끝없이 이어진 산들을 ‘첩첩산중’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이 황량한 들판을 부르는 단어는 아직 없었다.

정의맹은 그 이름 없는 들판을 내달리며 거대한 먼지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퉤!”

시후는 흙먼지 섞인 침을 내뱉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슬슬 먼지구름이 잦아드는 걸 보니, 휴식을 취하려는 듯 보였다.

삐이익, 삐이익.

짧은 피리 소리가 두 번 들리자, 시후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잠시 후,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뿌연 먼지를 뒤편으로 날려 보냈다.

시후는 옷을 털어 내고 싶었지만, 어차피 의미 없는 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청해’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삭막했다.

건조한 기후 탓에 땅을 밟으면 뽀얀 먼지가 일어날 정도.

덕분에 가장 후미에 있는 시후는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괜찮아?”

시후의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후미는 먼지 때문에 괴로울지언정 달리는 건 편했다.

시후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도객 하나가 팔을 번쩍 들었다.

호정문의 대제자 정엽이라는 녀석이었다.

“뭐지?”

“질문 있습니다.”

시후가 물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맹이 그리고 있는 가장 최악의 사태는 무엇입니까?”

그의 질문에 시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질문이 제법 교묘했다.

시후가 어떤 대답을 던져 줄지 고민하며 턱을 긁적이자, 꺼슬꺼슬 자라난 수염이 손끝을 간지럽혔다.

대충 둘러대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서쪽 하늘에 매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궁귀가 놓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이쪽에서 날아가는 게 문제지, 날아드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매는 만파견자의 어깨로 날아들었다.

만파견자는 녀석의 발목에 묶인 서찰을 읽더니,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시후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러댈 필요가 없어졌다.

“맹이 그리고 있는 가장 최악의 사태는······ 마교가 돌아가는 거였지.”

“예?”

정엽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의 감정이 전염이라도 된 듯, 시후의 말을 들은 이들의 얼굴도 비슷하게 변했다.

그 사이, 대주급 이상을 모으는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후는 목일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정엽, 마교가 왜 곤륜을 치려고 했을까?”

시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정엽은 당황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던 대답인 듯 곧바로 튀어나왔다.

“다른 문파와 달리 서쪽에 홀로 자리하고 있으니, 가장 손쉽게 공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이 있는 공동파와도 족히 닷새는 걸리는 거리이니 말이죠.”

“그것도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곤륜을 처리하지 않고 중원에 들어오면 뒤가 불안해진다는 점이 있지.”

최소한 퇴로는 확보해야 한다.

뒤가 없는 싸움은 불안감을 안겨 주니 말이다.

물론, 정엽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곤륜은 가장 공격하기 쉬운 상대이기도 했다.

소림과 무당에 이어 그다음으로 강력한 문파로 손꼽히지만, 홀로 동떨어져 있었으니깐.

“마교가 돌아가는 게 왜 최악의 사태인지 설명하자면······.”

“혹시, 맹은 마교가 곤륜을 노릴 걸 대비하고 있었나요?”

정엽이 시후의 말을 끊으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감이 좋은 녀석이다.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뒤편에서 목일자가 조장들을 불렀다.

다들 어서 말해 주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타인의 괴로움은 언제나 즐거운 법.

“다녀와서 말해 주지.”

시후는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시후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식을 뒤로한 채, 목일자에게 다가갔다.

목일자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각 조 조장들이 모두 모이자 목일자의 입술이 떨어졌다.

“급하게 갈 필요가 없어졌다.”

“예?”

“상황이 종료되었다.”

다들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조장급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목일자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간략히 상황을 설명했다.

“곤륜파를 습격했던 마교 놈들은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 174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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