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67화 (149/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67화 대화합 (3)

공동파의 제자들이 흘린 땀으로 다져진 연무장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족히 수천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좁았다.

예상보다 더욱 많은 인원이 몰렸으니깐.

모인 인원은 수천이 아니라 만을 넘겼기에, 그 넓은 연무장이 비좁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연무장을 벗어나 주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간 자들이 즐비했다.

연무장 가장 앞쪽에는 높다란 단상이 놓여 있었다.

단상 뒤편에는 몇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대화를 나누느라 몸을 돌린 도인의 등에는 태극이 수놓아져 있었으며, 그의 앞에 있는 중년인의 소맷단에는 매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무당제일검과 화산의 매화검자(梅花劍子)로군.”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무당제일검이지. 괜히 제일검이라 불리겠어?”

“매화검자도 그에 밀리진 않잖아?”

“패배의 경험이 있다는 건 크나큰 단점이지.”

“언제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무당제일검이라니? 공진 도인이 있는데, 감히 제깟 놈이 제일검이라고?”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들의 입에서 쓸데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천비령에게 과연 소검후라는 별호가 가당키나 한지, 그의 곁에 있는 견적은 얼마나 강할지 등등.

이름깨나 떨친 무인이라면 한 번씩 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봐, 그자도 있잖아.”

“누구 말인가?”

“용봉지회에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이 있는데······.”

“아, 비무광자?”

시후는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별호에 귀를 쫑긋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붉은 가사를 두른 정진 대사가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으니깐.

웅성거리는 소리는 단번에 사라졌다.

정진 대사는 허리 숙여 합장을 취한 뒤 고개를 들었다.

“먼저 이 자리를 찾아 주신 강호의 협객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심후한 내공 덕분에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여기저기서 ‘과연 소림’이라는 말이 나오긴 했지만, 다들 정진 대사의 다음 말을 듣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정진 대사는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재차 입을 열었다.

“작년부터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음을 다들 아시지요? 녹림채와 수로채가 회합을 하고, 배교의 손에 모용세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등 충격적인 일들이 발생했지요. 그러는 와중, 운남에서 당가와 독왕문이라는 문파 사이에 조그만 마찰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놈들이 던진 노림수에 불과했습니다.”

정진 대사는 잠시 말을 끊으며 단산 아래를 쭉 훑어봤다.

“마교.”

그의 말에 반응은 다양하게 갈렸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자 등등.

하지만, 그들의 눈에 어린 감정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막연한 두려움.

마교가 남긴 상처를 잊기에 삼십 년이라는 세월은 지나치게 짧았다.

정진 대사는 웅성거림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단상 위에서 한차례 발을 굴렀다.

쿵!

충격파와 함께 자욱한 먼지가 일어났지만, 잠잠해질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정숙들 하시오! 아직······.”

정진 대사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아니, 정확히는 검후의 손에 밀려났다.

검후를 알아보는 자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녀는 다른 팔황들과 다르게, 강호 이곳저곳을 심심찮게 돌아다녔으니깐.

같은 팔황인 전진파의 적풍도 정처 없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그야 워낙 은밀히 돌아다니니 마주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에, 그녀는 팔황 중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얼굴이었다.

검후가 단상 위로 올라옴으로써 조금 웅성거림이 잦아들긴 했지만, 아래는 여전히 개판 오 분 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후는 인상을 찌푸리며 발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정진 대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파가 좌중을 덮쳤다.

가장 앞줄에 있던 자들 가운데는 뒤로 넘어간 자들까지 있었다.

단상도 멀쩡하지 못했다.

거미줄처럼 쭉쭉 이어진 균열은 한눈에 보아도 얼마나 강력한 힘이 작용했는지 보여 줬으니깐.

“마교라는 소리에 겁에 질렸다면 당장 공동산을 내려가라.”

고저 없는 검후의 말에 다들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하지만, 움직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왠지 움직였다간 검후의 검이 움직일 것만 같았으니깐.

검후는 단상 아래를 쭉 훑어본 뒤, 다시 아래로 훌쩍 내려갔다.

정진 대사는 자리로 향하는 검후에게 감사의 눈짓을 보낸 뒤 몸을 돌렸다.

“작년부터 이어진 수상한 움직임은 흑련회라는 단체에서 벌인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건 마교였습니다. 마교는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이것저것 일을 벌이며, 우리의 힘을 약하게 만들려고 했지요.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마교는 지금 힘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정진 대사의 말에 다들 귀를 쫑긋거렸다.

“삼십 년 전. 마교가 중원을 침공했을 당시, 물러난 쪽은 어딥니까? 그때 우리가 흘린 피도 적지 않았지만, 마교는 오지로 숨어들어야 할 정도로 큰 피해를 보았음을 잊었습니까? 물론, 마교는 강합니다. 놈들이 할퀴고 간 상처는 아직 흉터로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처음 마교를 언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잠시 말을 끊었다.

하지만, 반응은 이전과 전혀 달랐다.

다들 눈빛을 이글거리며 마교에 대한 적개심을 내비쳤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를 읽은 정진 대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꼬리를 말고 도망친 승냥이에게 겁을 먹을 필요는 없지요.”

“옳소! 우리 중원 무림은 마교 놈들에게 안겨 줄 빚이 있소!”

“내 스승님도 잔악마도에게 좌수를 잃으셨소! 선대의 빚은 후대가 갚는 법이지!”

하오문이다.

곳곳에 심어 두었던 하오문 사람들이 복수를 거론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마교 타도를 외쳤다.

시후도 적당히 소리치며 주변을 둘러보며 힐끔 시선을 돌렸다.

몇 번 보지 못했지만,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잔뜩 흥분한 듯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흔들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눈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듯.

“그림이 더 잘생겼네.”

시후는 그의 용모파기를 떠올리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 *

“천원문에서 오신 주진후 소협 안 계십니까?”

“삼십일 조는 이쪽으로 오십시오! 거기 비무대 아래로 내려오십시오!”

시끌벅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의맹은 삼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비무를 통하여 사신단을 재구성할 것이라 공표했다.

능력만 있다면 사신단을 이끄는 단주가 될 수도 있었다.

즉, 팔황과 직접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자리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중간한 능력으로는 단주는커녕 조장도 무리겠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게 사람의 심리가 아니겠는가.

비무 대회에 참가한 숫자는 무려 이천에 달했다.

이는 구파일방과 팔대세가를 제외한 숫자이기에, 거의 네 명 중 한 명꼴로 신청했음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최초 계획과 달리 비무 대신,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충족하느냐를 보기로 했다.

그에 관해 잡음이 다소 있긴 했지만, 어차피 절정 이상의 무인이라면 통과할 수 있다는 말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십사 조, 태현문의 조광례 소협 탈락!”

“팔 조, 적심방의 심익현 소협 탈락!”

물론, 절정에 못 미침에도 기어코 참가하여 시간을 허비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도 마찬가지.

대표적으로, 저 앞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천비령이 그러했다.

“저도 해야 한다고요?”

“예, 천 소저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시험을 보지 않으려거든 탈락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아, 진짜!!”

비령이 성질을 부렸다.

예외는 아무도 없었다.

검후의 제자인 그녀 또한 줄을 서서 시험을 봐야 했다.

시후는 그녀를 지켜보며 낮게 혀를 찼다.

“쟤는 뭘 시키면 안 되겠는데요.”

“나도 그리 생각하네. 검만 휘두를 줄 알지······.”

추나행 또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비령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비무 대회를 공평하게 치르겠다는 보여 주기식 연기.

비령을 잘 아는 자들이라면 단번에 어색함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어설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들 소검후라 불리는 그녀가 똑같이 시험을 치른다는 사실에 집중할 뿐, 그녀의 어색한 연기에 관심을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작하게.”

시후는 추나행의 말에 준비한 청석에 창을 가볍게 찔러 넣었다.

자운유성창은 단단한 청석을 마치 두부처럼 파고들었다.

“삼십이 조, 차시후 소협 통과!”

“수고하세요.”

시후는 추나행을 지나치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도 익숙한 얼굴이 맞이했다.

“삼십이 조의 차시후 소협, 맞는가?”

시후는 후괴의 물음에 대답 대신 패를 내밀었다.

패를 건네받은 후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르는 놈들을 볼 때는 상관없었는데, 네놈을 보니깐 내가 이걸 왜 돕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구나.”

“원래 일하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머쓱한 법이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후괴는 재차 한숨을 내쉬며 앞을 가리켰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면서 통나무 다섯 개 이상을 밟으면 탈락이네. 준비되면 바로 출발하게.”

“고생하세요.”

시후는 후괴의 부끄러움을 덜어 주고자 바로 움직였다.

그가 밟은 통나무의 숫자는 단 두 개.

마음먹으면 한 개만 밟고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시선을 잡아끌기에 자중했다.

물론, 비령은 하나만 밟고 지나갔다.

이후로 이어지는 시험은 확실히 절정이라면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 주를 이뤘다.

시후는 모든 시험을 빠르게 통과한 뒤,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물으러 갔다.

“몇 명이나 떨어졌나요?”

“세어 보던가.”

서괴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턱으로 나무 궤짝을 가리켰다.

얼핏 보기에도 백은 훌쩍 넘는다.

아직 시험을 치른 인원이 절반은커녕 그 반도 안 된다는 걸 생각한다면, 몇 배로 늘어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진짜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신청했었나 보네요.”

“패를 돌려주러 오는 게 부끄러워서 오지 않았을 놈들도 있을 테니, 족히 천은 떨어진다고 보면 되겠지.”

천이라.

확실히 중소문파에서 오르기에 ‘절정’은 그리 낮은 경지가 아니었다.

시후는 주변을 살핀 뒤 조심스레 물었다.

“놈들은요?”

“아직 온 건 없다.”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한참 시험이 치러지는 곳을 바라봤다.

워낙 북적북적한 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저곳 어딘가에 놈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시후는 서괴에게도 수고하라는 말은 남기곤 합격자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시후는 앞을 막는 공동파 제자에게 합격 증표를 보여 준 뒤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비령이었다.

이제 왔느냐는 거만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시후의 손이 간질거렸다.

하지만, 이 자리엔 둘만 있는 게 아니라 자중했다.

시후는 구석에서 검을 닦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어디서 왔나?”

시후가 잔뜩 목소리를 내리깔며 묻자, 조용히 검을 닦고 있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우리 낭인의 희망, 섬전창 아니시오?”

“우리? 그쪽도 낭인인가?”

“그렇소. 저기 절강성에서 해결사로 조금 활동했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수를 청했다.

시후는 그런 그의 손을 맞잡으며 씩 웃었다.

녀석은 두 번째 단추로 활용될 것이다.

- 168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