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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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마교 (3)
시후는 멈춰 있던 젓가락을 움직이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생긴 것과 달리 말이 많은 놈이었다.
놈의 불만에 가까운 이야기를 배제하더라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철혈대주의 이야기에 이어 시후의 귀를 자극한 건 적랑과 독마의 이야기였다.
둘이 함께 교를 떠났다.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기형도의 사내는 어디로 향했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시후는 어디로 향했는지는 대충 짐작했다.
“아, 그리고 탈혼도가 추마대에 들어갔다는데 들었어?”
“바로 조장의 자리를 꿰찼다고 하더군.”
“그런 놈을 두고 난 놈이라고 하는 거지.”
놈들의 대화는 다시 영양가 없이 흘러갔다.
시후는 놈들의 대화를 훔쳐 들으며 젓가락으로 그릇 속을 헤집었지만,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만두도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추가로 만두 두 접시를 시켰다.
하지만, 시후는 창밖만 바라보느라 놓친 게 있었다.
“내 앞으로 달아 놔!”
놈들이 앉은 자리의 음식이 동이 났다는 사실을.
시후는 고개를 돌려 객잔 밖으로 나가는 두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막 만두 두 접시를 들고 오던 점소이는 익숙하다는 듯 허리를 숙였다.
만두는 딱 먹기 좋을 정도로 뜨끈뜨끈한 김을 뿜어냈지만, 시후는 젓가락을 뻗지 않았다.
어차피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시켰던 거니깐.
시후는 탁자에 돈을 올려 두며 일어났다.
점소이는 잠시 주춤거렸지만, 곧 빵긋 웃으며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만두야 찜기 안에 다시 넣으면 그만이니깐.
밖으로 나온 시후는 저 멀리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행여라도 눈치챌까 싶어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했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성안의 성.
바로 내성(內城)이었다.
내성이야말로 ‘진짜’ 마교라고 할 수 있다.
바깥에 있는 추마대, 추혼대 등 다소 급이 떨어지는 부대와 달리, 내성은 마교의 진짜 힘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시후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추나행이 왔다고 해도 저 안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원하는 목표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만향관(萬香關).
시후가 찾는 곳은 바로 다관이었다.
* * *
마교의 내성은 소위 ‘힘 있는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 안에서도 힘의 크기에 따라 할당된 공간은 달라진다.
철혈대나 혈마대, 귀마대를 비롯한 마교 십이대(十二隊)의 대원이라면 공용 숙소가 주어질 것이다.
최소 네 명부터 최대 여덟 명까지 같은 방을 쓰기에 가장 저질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 조장부터는 대우가 달라졌다.
무려 개인실이 주어졌으니깐.
물론, 그때까지는 부대 생활을 해야 했다.
확 달라지는 건 대주부터다.
대주 이상이라면 조그만 집 한 채가 주어진다.
즉, 내성에 누군가를 들일 수 있었다.
부모를 모시고 싶다면 부모를 데리고 와서 살 것이고, 자신의 정인을 데려와 가정을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위로 올라간다면 대궐 같은 저택과 전용 시비까지 내려 주지만, 그 위는 가정을 꾸렸을 가능성이 컸다.
“결국, 가장 노리기 쉬운 건 대주 급이지.”
만향관은 특이하게도 창이 매우 컸다.
어느 정도로 컸냐면, 창가에 앉아 있으면 정문에서 나온 이들이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
다수의 여인과 소수의 남성이 창가에 앉아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껏 꾸민 모습을 보며 시후는 혀를 찼다.
“철관음 하나.”
시후는 차를 주문한 뒤, 창가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앉았다.
구주신협이 지나갈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자신의 눈이 되어 줄 사람은 저기에도 잔뜩 있지 않은가.
“철혈대주는 안 지나가려나.”
아니나 다를까,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어느 여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시후는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반응한 것 시후만이 아니었다.
“어머, 왜 만향관을 찾았나 했더니 철혈대주를 노리는 거였어?”
“내가 못 노릴 이유도 없잖아?”
“뻔뻔하기도 하지. 네가 정 조장과 배꼽을 맞췄다는 건······.”
“누가 그런 헛소리를 퍼트려!?”
여인은 성이 난 듯 소리쳤다.
이후 두 사람은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들 욕설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주변에 앉은 그 누구도 두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마치, 만향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이라는 듯.
시후는 듣기 거북한 수준에 다다른 욕설에 인상을 찌푸렸다.
슬슬 짜증이 밀려오려는 찰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곁눈질로 살펴보자, 그녀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길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조를 닮았다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백조는 수면 위에는 고고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아래는 쉴 틈 없이 발을 움직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백조는 두 사람과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휴전은 길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철혈대주를 찾더니, 귀마대주에게 눈웃음을 쳐?”
“그러는 넌? 정신 차려, 너한테는 귀마대 을동이도 아까워.”
“뭐, 뭐?? 을동이? 야, 이······.”
다시 2차전이 시작되자, 다관의 사람들은 다들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시후도 반쯤 마음을 놓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대라, 내성으로 돌아가는 대주급 인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즉, 두 사람은 떠드는 시간보다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
시후가 철관음을 다 비워갈 때쯤, 누군가 벌떡 일어나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다들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각자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한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시후도 식어 버린 철관음을 단숨에 비우고 창가로 다가갔다.
오늘 하루 평생 할 욕을 다 퍼붓고 있던 두 여인도, 언제 욕을 했냐는 듯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철혈대주가 지나가기만 해 봐. 넌 오늘 죽었어.”
철혈대주.
시후는 재빨리 창가로 다가갔다.
“너야말로······. 아! 깜짝이야!”
갑작스레 시후가 다가오자 한 여인이 화들짝 놀랐지만, 시후는 말없이 대로변을 훑었다.
이들이 이야기했던 철혈대주가 구주신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
원래라면 천마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어야 하는 건 그였기에, 시후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지금 산산이 깨부숴졌다.
“저자가 철혈대주인가?”
시후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묻자, 조금 전까지 대차게 욕설을 내뱉던 여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후의 몸에선 은연중에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초절정의 무인이 내뿜는 기세는, 남의 지위에 기대 살려는 이들이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힘든 수준이었다.
그녀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갈 때쯤, 시후는 황급히 기세를 갈무리했다.
‘낭패다.’
이곳은 엄연한 적지임에도 구주신협을 보곤 평정이 깨졌었다.
시후는 일단 자리를 뜨기 위해 몸을 돌렸다.
찻값을 지급하고 내려가려는 찰나, 창가에 있던 여인들이 동경을 꺼내어 얼굴 이곳저곳을 비춰 보기 시작했다.
‘혹시.’
불안감이 한층 커졌다.
시후는 ‘설마’ 하는 생각에 빈 찻잔을 들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아 속으로 서른을 헤아렸을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가 나타났다.
구주신협.
아니, 이제는 ‘철혈대주 목주림’이라 불러야 할 그가 만향관에 나타났다.
시후는 백리은이 펼쳐 준 천태만변이 제발 그의 눈을 속여 주길 기도했다.
목주림은 내부를 쓱 훑어보더니 창가로 다가갔다.
조금 전 시후가 내려다봤던 그곳이었다.
지금 내려갈까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욱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 네 뒤에 있던 사람이 누구냐?”
“네? 뒤에 있던 사람이라면······.”
시후는 고래를 짧게 저었지만, 여인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빌어먹을.’
목주림이 고개를 돌리자 시후는 찻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빌어먹을. 그냥 가라.’
속으로 기도했지만, 본래 기도는 하늘이 들어만 주는 법이었다.
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믿을 건 백리은이 펼쳐 준 천태만변뿐이었다.
인피면구를 뒤집어쓴 정도로 큰 변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일인임을 의심할 정도로 허술하지도 않았다.
시후는 곁으로 다가온 목주림을 똑바로 바라봤다.
“방금 날 노려봤나?”
다짜고짜 반말이라니.
변해도 너무 변했다.
시후는 씁쓸한 마음을 숨기며, 그럼 어찌할 거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 시후의 모습에 목주림은 피식 웃다 말고,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속이 타들어 갔다.
들킨 건가?
지금이라도 일어나야 하나?
그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어디서 본적이 있나?”
“없······ 지 않지.”
없다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꿨다.
언젠가 지나치며 보았다는 식으로 말하면 될 테니까.
그도 그냥 던져본 질문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나치다 한 번쯤 마주쳤을지도 모르겠군.”
목주림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지만, 전혀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내성에선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화를 길게 나눠 봤자 좋을 건 없었다.
시후도 본래의 목소리를 억누르긴 했지만, 말을 섞다 보면 이상함을 느낄 수 있으니깐.
“과묵한 녀석이군.”
꿈보단 해몽이다.
그는 시후의 침묵을 좋을 대로 해석하곤, 발을 탁자 위에 올렸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아야 하는가?
아니다.
이건 분명 선을 넘었다.
여기서 참는다면 되려 의심을 살 것이다.
시후가 심상치 않은 기세를 뿜어내자, 목주림은 웃으며 다리를 내렸다.
“역시······. 내가 잘못 느끼지 않았군. 자, 그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보지. 왜 내 이목을 끌었나?”
“······ 의도한 건 아니다.”
“내 자리가 탐나는가?”
뜬금없는 말에 시후는 당황했다.
하지만, 목주림은 정곡을 찔렀다고 판단했는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검마가 그러더군. 내가 철혈대주에 오른 걸 못마땅하게 보는 놈들이 있을 거라고. 너도 그 부류냐?”
아니다.
시후는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목주림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그렇다면 오늘 밤 자정. 서문 앞으로 와라. 날 이기면 내 자리를 주지. 하지만, 네가 진다면 내 밑으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돌발 임무 ‘위쟁투(位爭鬪)’가 발생합니다.]
시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시후에게 그윽한 눈빛을 보냈다.
“꼭 나왔으면 좋겠군.”
목주림은 시후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시후는 이번에 새로이 생겨난 ‘위쟁투라’는 임무를 살폈다.
“승리 시 대주, 패배 시 부대주라······.”
헛웃음이 나왔다.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마교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
“죽일 순 없나?”
훗날 성장할 것을 생각한다면 죽이는 게 좋다.
하지만, 목주림이 혼자 나올 것인가?
과거 그의 성격이라면 그럴지 몰라도, 지금은 확신할 수 없다.
아니,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객잔에서 들은 대화에는 검마가 그의 임명식에 참석했다고 했다.
그리고 검마를 언급할 때, 목주림은 제법 친근하다는 듯 말하지 않았던가.
“검마가 나온다면······.”
이쪽에는 백리은이 있었다.
그라면, 검마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문제는 합류.
이곳이 마교의 앞마당이라는 점을 잊어선 곤란했다.
추나행이 손을 보탠다고 한들, 검마가 작정하고 버틴다면 발목을 잡히는 건 이쪽이다.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하자 내성으로 들어가는 목주림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다음에 만난다면······.”
‘널 죽일 것이다.’
- 16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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