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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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마교 (2)
추나행의 계획을 듣던 시후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요.”
생각할 여지도 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런 시후의 모습에도 추나행은 포기하지 않았다.
“꺼려지겠지. 그 심정 이해하네. 수십만에 달하는 마교 놈들의 본거지에 들어가는 건, 목숨이 열 개라도 못 할 짓이란 걸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는 나와 달리 젊으니 저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번을 서는 놈들에게 들은 대화를 토대로, 자네가 절대 들키지 않도록······.”
“제 얼굴은 이미 팔렸다는 거, 잊으셨어요?”
추나행의 표정에 미약한 균열이 생겼다.
시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금성에서부터 제가 지독하게 얽혀 있는 걸 생각한다면, 추 장로님이 들어가는 것보다 제가 들어가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다.
추나행이 들어간다면 촌각도 지나지 않아 혈마대가 출동할 것이다.
물론, 시후가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다소 과장이 섞이긴 했어도, 시후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추나행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이내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확실히 네 녀석은 들어갈 수 없겠군.”
호칭이 다시 소협에서 녀석으로 바뀌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재빠른 태세 변환.
화가 나는 것보다는 되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외각에서 이틀 정도 더 지켜보다가 물러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겠습니다. 지나온 길을 되짚어간다면 왔을 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돌아갈 수 있을······.”
“요컨대, 얼굴이 문제란 거지?”
백리은의 갑작스러운 말에 시후는 눈을 좌우로 굴리며 추나행을 바라봤다.
그가 도통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몰랐으니깐.
“어, 그게······.”
잠시 주저하는 사이, 백리은의 손이 시후의 얼굴을 붙잡았다.
예상치도 못했거니와 워낙 창출 간에 일어난 일이라, 시후는 별다른 반응조차 못 했다.
“가만히 있거라.”
그가 해를 끼칠 리 없으니 가만히 있었지만, 얼굴 여기저기를 두들기는 타인의 손길이 썩 달갑진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묘하게 얼굴 근육이 땅기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보다 배는 시간이 지나자, 미약한 고통으로 변했다.
백리은에게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어느 순간 얼굴에 느껴지던 위화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천태만변(千態萬變)의 영향으로 얼굴이 변형되었습니다.]
“어?”
백리은을 제외한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추나행은 시후의 바뀐 얼굴을 봤고, 시후는 알람을 확인했으니깐.
시후는 얼굴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바뀌었나 확인하려 했지만, 손끝으로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눈을 찢고, 턱선이 날카로워졌네. 눈썹은 하늘을 향해 솟구쳤으며, 윗입술이 얇아짐과 동시에······.”
추나행의 설명을 듣다 보니 대충 바뀐 얼굴이 그려졌다.
눈이 마주친 백리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얼굴이긴 하되, 얕보이진 않을 것이다.”
“젊게 보이는 방법은 없나요?”
시후의 물음에 백리은의 시선이 추나행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계는 있다.”
추나행의 얼굴은 술은 잔뜩 먹은 것처럼 붉어졌다.
* * *
시후는 추나행을 따라 성벽에 바짝 붙었다.
성벽에 붙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붙은 이상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 들킬 염려는 없었다.
“젠장, 이번 달은 쫄쫄 굶게 생겼군.”
“쯧쯧, 그러기에 내가 그만 끊으라고 했잖아? 그 치들이 죄다 한통속인데 어떻게 이겨 먹으려고 그래?”
“한 번만. 딱 한 번만 크게 따고 나면······.”
성벽 위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도박과 기루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추마대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금방 시들어 버렸다.
이러니 추나행이 기를 쓰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 것이다.
“저기다.”
걸음을 멈춘 추나행이 가리킨 곳은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성벽이었다.
추나행은 넝쿨로 다가가 땅과 닿아 있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헤집었다.
순간, 넝쿨을 젖히자마자 바람이 불어왔다.
막혀 있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시후와 눈이 마주친 추나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했던 말만 기억해도 별 탈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후는 콧방귀를 꼈다.
안으로 들어간 뒤에 생길 수 있는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달리 말하면, 최초의 계획과 틀어질 가능성은 한없이 크다는 말이었다.
시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등에 메고 있던 자운유성창을 추나행에게 넘겨줬다.
무기가 없는 건 위험하지만, 자운유성창을 소지한 채 시선을 끈다면 더욱 위험하다.
천령목으로 만들어진 자운유성창은 일정 수준에 다다른 마인의 신경을 긁을 테니깐.
시후는 넝쿨을 옆으로 조금 더 젖혔다.
좁은 공간.
하지만, 사람 한 명은 충분히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다.
뒤돌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추나행에게 돌아가라고 손짓한 뒤 시후는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물론, 넝쿨로 입구를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어 걸음 나아갔을 뿐인데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내공을 끌어 올려 안력을 돋았다.
낯선 이의 등장이 달갑지 않은 이곳의 주인들이 달아났다.
찍, 찌지직!
놈들의 비명을 무시하며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길은 구불구불했다.
그리고 높이도 높이가 제각각이었기에 허리를 숙여야 하는 곳도 있었고, 오리걸음으로 지나야 하는 곳도 있었다.
다만, 길은 성벽 두께와 큰 차이가 없었다.
출구는 들어온 곳과 마찬가지로 넝쿨로 뒤덮여 있었다.
넝쿨 너머의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시후는 조심스레 넝쿨을 옆으로 젖히며 고개를 내밀었다.
시야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오감을 극도로 끌어 올리며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새벽 어스름이 저 멀리 달아난 듯 밝아지는 하늘.
밥 짓는 냄새.
성벽 위에서 들려오는 쓸데없는 대화.
차가운 새벽 공기.
시후는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곳은 명백한 적지(敵地)다.
안일한 생각으로 있다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시후는 성벽을 따라 슬금슬금 이동한 뒤, 해가 떠오른 틈을 이용해 가까운 민가로 붙었다.
십 장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
하지만, 시후의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담장에 붙은 채로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성벽 위에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웠다.
시후는 주변을 둘러본 뒤, 목표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가장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곳은 어디일까?
개방이나 하오문에 묻는다면, 백에 백 시장(市場)을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를 얻기에 좋은 곳이냐?
그건 또 아니다.
대화를 많이 주고받을 뿐이지, 정보가 오가는 곳은 아니니깐.
하지만, 시후가 가장 먼저 들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가는 곳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있어 시장보다 좋은 곳은 없다.’
시후는 추나행의 충고를 떠올리며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다.
마공을 익혔을 뿐이지,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마공 특성상 인구 비중이 젊은 쪽이 치우친 덕분에 여느 성보다 활력이 넘쳤다.
“이딴 게 은 열 냥이라고? 뒈지기 싫으면 다섯 냥만 받아라.”
“하하, 손님 목숨이 열 개라도 되나 봅니다.”
“이 개자식들아! 저쪽 가서 싸워!”
물론, 매우 격할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마공을 익힌 탓에 다들 성격이 폭력적이면서 급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거친 말이 터져 나오는 것과 달리,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최소한의 선은 지키는 모습이었다.
‘중요한 정보가 흘러나오는 곳은 기루지만, 역으로 네 정체를 들키기도 쉽다. 그러니 객잔을 이용해라.’
시후는 추나행의 조언을 떠올리며 장소를 옮겼다.
산 위에서 봐 둔 곳이 있었다.
인근의 건물보다 다섯 배는 큰 건물.
‘마령객잔’이라는 곳이었다.
하지만 객잔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시후는 주변을 맴돌았다.
이 또한 추나행의 조언이다.
‘무작정 들어가지 말고 들어가는 인물들을 살펴라. 마교의 특성상 젊은 무인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괜찮겠지만, 나이가 제법 있는 녀석들이 찾는 곳이라면 괜히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의 조언은 매우 적절했다.
시후가 지켜보는 동안 마령객잔으로 들어간 사람은 총 다섯이었는데, 한 사람은 부티가 흐르는 옷을 입은 젊은 공자였고, 나머지 네 사람은 나이가 오십 줄에 다다른 놈들이었다.
보통 객잔이 아니다.
시후는 바로 걸음을 돌렸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천산객잔’.
이곳은 그나마 평범한 젊은이들이 찾는 곳이었다.
시후는 잠시 눈치를 살피며 다음 손님들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기에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허리에 기형도를 매단 녀석이 천산객잔으로 향했다.
시후는 놈의 뒤를 따라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옵쇼! 어? 두 분은 일행입니까?”
기형도를 매단 사내가 눈을 찌푸리며 노려봤다.
시비가 걸려도 곤란하지만, 너무 마교도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시후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가 뭐라 입을 열려는 찰나, 그 사이로 점소이가 끼어들었다.
“먼저 오신 손님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점소이는 이 정도 기 싸움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기형도의 사내를 안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점소이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객잔 내부의 자리는 제법 차 있었다는 것을.
점소이는 시후도 기형도를 매단 사내 주변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추마각이 근처에 있음을 기억하시길.”
의미는 모르겠지만, 점소이의 말에서 느껴지는 건 경고였다.
이대로 넘어가면 마교도가 아닐 터.
시후는 불쾌한 듯 기세를 피어 올렸다.
기세를 조절했다고 한들, 시후의 경지는 초절정이었다.
점소이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더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 정도면 되었다 판단했기에 기세를 거뒀다.
“간단한 요깃거리.”
시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점소이는 냅다 주방으로 달려갔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기형도의 사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봤다.
다소 과했나 생각이 드는 찰나, 그의 시선이 객잔 입구를 향했다.
새로이 들어온 인물은 기형도 사내의 자리로 다가가더니, 그의 앞에 털썩 앉았다.
“늦었군.”
“네 녀석이 빨리 나온 거지. 오시도 지나지 않았는데 각을 빠져나오다니, 언제 대주한테 걸려서 된통 혼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대주가 나가는 걸 보고 나온 거다.”
“염병.”
시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조금 전 점소이의 말을 떠올렸다.
추마각.
그리고 추나행과 성벽에서 들었던 말로는, 추마대에서 사람을 모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아, 빌어먹을. 신청자가 이렇게 없을 줄 몰랐어. 이러다가 이번 차 기수는 텅텅 빌지도 모르겠는걸?”
“비면 비는 거지.”
“아랫놈들 없으면 고달파지는 건 우리란 걸 몰라?”
주로 투덜거리는 건 새로 온 사내였다.
시후는 무심히 창밖을 보는 척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계속 기울였다.
“그보다 새로이 임명된 철혈대주 못 봤지? 고작 대주 임명식에 검마(劍魔)께서 직접 올 줄 몰랐는데 말이야.”
“······ 그래 봤자 애송이지.”
“애송이는 무슨. 철혈대주 앞에서 그렇게 말해 봐.”
“못할 건 없지. 게다가 임무에 실패한 놈이 대주로 임명되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더군.”
임무? 실패?
막 이야기가 재밌어지려는 찰나, 점소이가 소면과 만두를 가져왔다.
시후는 얼른 꺼지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곤, 재차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던데?”
“놈을 두둔하는 자들의 변명이지. 나라면 최소한 쿠빌라이의 아들은 빼내 올 수 있었다.”
만두를 입으로 가져가던 시후의 손이 멎었다.
놈들이 말하는 철혈대주는······ 구주신협이 분명했다.
- 160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